Home / /
  • 열림터
  • 울림
  • 울림
  • 열림터
  • ENGLISH
水의 이야기 - 수의 치료법 1 ‘노출’
  • 水 (성폭력 피해생존자)
생존자 말하기 · 연재 14th

수의 치유비법 1 '노출'

[편집자주] '생존자의 목소리'는 성폭력피해생존자의 투고로 채워지며, 연재 혹은 단회로 독자 여러분과 만남을 갖습니다. 글 보내주실 곳은 ksvrc@chol.com 입니다. 이번 호에는 '水'의 연재수기 열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 水

“말하고 싶지 않은데요, 아직 말 못하겠어요. 나중에 말하면 안 될까요?”

이 말은 내가 상담을 받게 된 이후에 여러 상담자를 만나면서 제일 첫머리에 하는 말이 되었다. 나는 나를 돕겠다는 상담자를 만날 때조차 내 이야기를 들을만한 사람인지 철저히 따지고, 쟀다. 상담자까지 고르고 골랐는데 친구들은 오죽했을까? 그래서 나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단숨에 재끼고, 상당히 가려서 사귀는 사람으로 오해 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오해가 차라리 낫다, 내게 아빠가 한 짓을 폭력의 문제가 아닌 성의 문제로 오해받는 것보다는.

# 귀가 있는가?

“저 아빠한테 강간당했어요.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부터……”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집을 뛰쳐나와 찾아간 교수한테 '강간'이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처음 말했다. 그런데 그 교수는 엄마와 통화를 하고, 몇 마디 나눈 후 “다시는 너한테 그러지 않겠다는구나”라고 하며 엄마를 불러 나를 집으로 데려가도록 했다. 병신 같은 년! 처음으로 다른 사람한테 말했는데, 도움도 청했는데……. 나는 다시 집으로 끌려가 그놈에게 더 악랄하게 그 짓을 당해야 했다, 그년 때문에. 그리고 오랜 시간 아빠란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아이도 즐긴 건 아닌지 걱정했다고 한다, 미친년.

“강간”이 소리가 되어 나왔던 첫 노출은 그렇게 잔인한 오해로 끝났다.

사실 그 여자에게 말하기 전 엄마는 그동안 나한테 있었던 일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던 걸 기습적으로 나에게 확인했다, 아빠가 아닌 나에게.

대학교 1학년 여름, 엄마와 대중목욕탕을 갔다. 엄마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이곳 대중목욕탕뿐이었다. 아빠란 사람은 내가 엄마에게 뭐라도 말할까 싶어 단둘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아빠가 그랬지?”

'그랬지'라는 표현으로 모든 게 다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전혀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나의 상처가 노출되면서 갑자기 눈앞이 하얘졌다. 더운 목욕탕이었는데도 소름이 온몸을 스쳤다. 옷이라도 입은 상황에서 이야기하지 싶은 이상한 수치심에 사로잡혔다. 엄마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끌고 싶었던 나는 방금 양치질을 했던 칫솔로 머리빗에 낀 때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나의 생각은 통했다.

“야, 더럽게 무슨 짓이야?”

엄마는 얼굴을 찡그린 채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게 더러운 짓일까? 아빠란 놈이 나에게 한 짓이, 또 자신의 남편에게 딸이 성폭력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딸을 '아빠 붙어먹은 년'으로 부른 그 짓이 더러운 게 아닌지 묻고 싶었다. 아니 엄마의 “더럽게”는 아빠란 사람과 나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처럼도 느껴졌다. 그놈이 더러운 건데. 엄마는 위로의 말이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은커녕 남편이 바람 피우는 현장에서 상대편 여자를 잡아 취조하듯 몇 마디 따져 묻고 말이 없었다. 엄마는 목욕탕을 나와 옷을 입는 동시에 나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옷 속으로 숨긴 듯 집에 와 다른 가족들 앞에서는 잠잠했다. 노출된 상처 깊은 곳을 헤집고 소금을 한 주먹 쑤셔 넣고 쳐다보는 듯 했다.

나는 그때 알았다, 노출은 상대방을 보아가며 해야 한다는 걸, 들을 귀와 마음이 있는 자인지 철저히 살피지 않으면 오히려 노출이 내 상처를 더 깊게 할 수 있다는 것을.

# 하고 싶은가?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노출하는 이야기들의 수위가 높아갈수록 내 가슴은 더 세게 뛰어댔다. 교회 수련회에서 이런 상황은 처음 보는 것이라 놀랍기도 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집단상담도 경험해보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성폭력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 나누는 것이었는데 이건 달랐다.

'할까? 말까? 해도 괜찮을까? OO야, 하고 싶니?'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다.

강당에 둥글게 앉아 하고 싶은 사람들이 하나씩 돌아가며 자신들의 상처와 아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성폭력문제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는 집단도 아니고, 교회로 돌아가 계속 얼굴을 봐야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노출시킬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3박 4일이 걸렸다. 마지막 날 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힘을 주고 있었다. 나는 계속 망설이다 조용히 말을 시작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내 속에만 담아두기 너무 힘들어서 나누고 싶어요.”

당시 참여자들 중 가장 마지막에 말하기 시작해 꽤 늦은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모두 조용히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들었다.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며칠 동안 이야기를 나눴던 중 가장 아픈 문제였는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친 후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울음소리와 비명소리가 터져나와 예배당 안에서 엉켰다. 나는 눈물도 흘리지 않고, 담담하게 내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나의 치유와 용서를 위해 기도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나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도 말했다. 교회 친구들은 밤늦은 시간까지 나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모아 기도해주었다.

교회로 다시 돌아온 후 나는 약간 걱정이 되었지만 그 일은 소문이 되어 돌지 않았고, 교회 친구들은 부담스럽지 않은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그 교회를 다니고 있는 거지 싶다. 사실 이러한 자리에서의 노출은 한 번 보고 말아버릴 사람들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 사람들을 보아야 하는 것, 그들은 나와 같은 성폭력문제를 가지지 않았다는 것,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들도 내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다는 것 등 다양한 것들을 미리 생각하고 말하기 시작해야한다. 이런 경우 말하고 난 이후가 더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이 영 아니었다 하더라도 움츠러들지 말자,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해냈는지가 더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성폭력만 말할 수 있는 안전장치 없이 내가 말하고 싶은 대상에게, 내가 말하고 싶은 때 하는 실험을 성공적으로 해낸 느낌이었다.

그래, 그렇구나. 상대가 들을 귀가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내가 나의 상처를 이야기하고 싶은가? 어떻게, 누구에게 말하고 싶은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인식하고 받아들인 대로 말하게 될 것이고, 그 인식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질 테니 말이다.

교회 수련회 이후 나는 성폭력문제만 다루는 집단이 아닌 사이코드라마 워크숍을 신청했다. 워크숍 첫날 다들 너무 잘난 사람들이라 부담스러웠다. 교수, 의사, 전문 상담가……. '도대체 이것들은 왜 여기까지 와서 이런 걸 듣고 난리야? 자기문제 풀어보고자 온 사람들 맞아? 이거 기교 좀 배워서 상담할 때 써먹으려고 하는 거 아냐? 재수 없어, 난 내 문제 좀 이야기하고 풀어보고 싶어서 왔는데.'

삐딱한 내 마음은 일단 다른 이들의 사이코드라마를 지켜본 후 내 드라마를 할지 말지 결정하겠다고 결론지어졌다. 내 드라마 순서를 맨 나중으로 미루어두었다. '니들이 양말 벗으면 나도 양말 벗을 거고, 팬티 벗으면 나도 팬티 벗을 거야.'

몇 주 동안 진행되고, 밤새 술도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었다. 사이코드라마는 점점 깊은 자기 이야기들로 들어가고 있었고, 밤샘 술자리에서는 더 깊은 이야기들이 오갔다.

'어라, 저것들이 속옷도?'

그래도 나는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결국 내가 사이코드라마를 하던 날 밤.

아빠 역할을 맡은 사람은 이야기가 전개되어가면서 점점 사색이 되었다. 나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졸지에 가해자가 된 사람의 말 한마디에 나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쓰러져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악' 소리조차 내지르지 못하는 나를 보고 디렉터는 사이코드라마를 중단시켰다. 그날 저녁 프로그램 일정은 모두 중단되었고, 같이 하던 참가자들은 그날 보고 들은 내용을 다 지우려는 듯 술을 마시고 또 마셨다. 그리고 함께 울며 아파했다. 같이 사이코드라마를 하면서 '왜 쟤는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사과나 씹어 먹을까?' - 그때 나는 다른 사람의 사이코드라마가 절정을 향해가고 있을 때면 한쪽에서 '흥, 저게 힘들다고 지금 저 지랄을 떠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사과를 우적우적 씹곤 했다 - '쟤는 왜 저렇게 끝까지 자기 드라마를 못하고 뒤로 미루나'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디렉터는 나에게 따끔한 한 마디를 했다.

“자기 상처의 깊이에 갇혀 '뭐 저걸 가지고 힘들다고 난리야?' 그런 생각을 넘어설 때 너는 진짜 멋진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될 거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상처로 아프고 힘든 거지, 니가 제일 힘든 건 아니다.”

그때는 그 말이 듣기 싫었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그 말이 떠오르는 걸 보면 맞는 말이기도 하고, 도움도 되는 말 같다.

혼자 훌떡훌떡 벗어 제끼는 게 노출의 능사는 아니다. 말하고 싶은 나에게만 집중하다 보면 함께하는 이들은 어느 수위에서 서로를 공유하고 싶은지 살피지 못하게 된다. 나만큼 다른 이들도 중요하다. 다른 이들은 얼마나 벗는지, 그걸 살펴가며 노출의 수위를 조절하는 건 나와 함께 다른 이를 배려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너 양말? 나 양말, 너 팬티? 나 팬티” 이 방법은 좀 치사해보여도 서로 간에 상처를 덜 주고받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말 벗는 사람 앞에서 팬티를 벗고 싶다면 스스로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고 하면 되지 싶다. 지금까지 나의 경험으로는 상대방의 반응보다 더 중요했던 건 말하고 난 후의 내 반응이었다. 상대방도 상대방이지만 내가 괜찮으면 괜찮다.

노출 후 중요한 것은 노출 후 '내 마음은 어떤가?'라고 생각한다. 내가 시원하고, 편안한 것 만큼 중요한 건 없다. 노출의 중심에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두는 게 좋은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몇 년 후 나는 '치유하는 글쓰기'에 참여하여 내가 그동안 말해온 것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말하기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면 글쓰기는 나 자신에게 나를 보여주기 위한 과정 같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는 혼자 많이 울었고, 써 놓은 글을 보고 다듬으며 내 경험에 대한 나의 생각도 조금씩 다듬어져 갔다. 입에서 소리가 되어 공간 속으로 흩어지던 나의 생각들이 활자가 되어 종이 속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갔다.

말하기보다 더 세밀해진 글쓰기, 성폭력 상황을 묘사하는 내용들은 내게 이상한 수치심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당한 일들을 소상히, 낱낱이 표현하고 싶었다. 너무 수치스런 기억으로 내게 새겨진 것들은 여전히 말이나, 글로도 표현하지 못한다. '내가 느껴야 할 수치심이 아니다, 그놈이 느껴야 할 수치심이다' 나에게 아무리 주문처럼 외워주어도 수치심은 절대 지워지지 않을 그을음 같이 남아 있었다.

말하기보다 묵직해진 나의 글쓰기는 노출의 수위를 한층 더 높였다. 일기처럼 넋두리처럼 시작된 글쓰기에서 시작해 좀 더 다듬고, 살을 붙여 나는 지금의 '나눔터' 글을 써오고 있다. 보다 많은 이들에게, 불특정 다수에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시작한 것이다. 나의 글을 읽은 이들의 반응에 연연하지 않고, 한번 쏟아내는 소리로서의 노출이 아닌, 정교하게 내가 겪은 일에 대한 나의 생각들, 나의 반응들을 정리하면서 나의 노출은 단순히 나의 만족을 위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나의 글을 읽은 이들도 생각하며 노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 휴가를 쪼개어 원고를 쓰는 지금 나는 결코 나에게만 집중하지 않는다.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자꾸 신경 쓰여 고치고, 다듬고,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고 있다. 단순히 잘 썼다는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이런 방법이 도움이 되더라구요'라는 민간요법을 말하고 있으려니 어려운 것이다. 나에게는 유용한 방법이었지만 다른 이들이 그냥 막 써보다 더 아파지면 안 되니까, 그런데 먼저 슬슬 걸어나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한번 슬슬 자기만의 길로 여기 와보라고 권하고 싶은 거다, 그 정도다.

9년 동안 꽁꽁 감싸두었던 날것의 상처는 다양한 노출을 통해 그렇게 나의 새살이 되어 돋아 올랐다. 나눔터에 '수의 이야기'를 연재하면서 나는 좀 더 단단해졌고, 나의 문제를 이야기로 나눌 때 내 글을 가지고 나누기도 했다. 말보다 훨씬 편안하고, 과거에 묶인 내가 아닌 이런 글을 공유하고 있는 현재의 나를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

나의 상처를 노출하는 건 단순히 상처를 열어 보이고, “마이 아파”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상처에 앉은 딱지와 이미 새살이 돋아 볼록하게 솟아오른 나의 일부를 보여주며 “이 약을 써보세요, 이런 방법이 참 괜찮네요”라고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글을 통한 노출이 이러한 단계로 건너가게 해준 것 같다.

# 편안한 관계부터 시작하는 게…….

'왜 저한테 이런 일이?'

아빠란 인간에게 그 짓을 당한 후 하나님께 처음 했던 말이다. 엄마, 외할머니, 오빠, 남동생들에게는 왠지 창피해서 말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께 처음으로 진짜 속 얘기를 시작했다. 그 새끼한테 당한 날이면 잠자리에 누워 울면서 기도를 하다 잠들곤 했다. 몇 번은 그 새끼가 기도하지 말라고 때리기도 했다. 기도하고 싶어도 너무 지쳐 울다 잠들어버린 하루는 꿈에서 내가 교회에 혼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며 방언으로 기도를 하기도 했다. 현실의 나는 방언을 못하는데 신기했다. 내가 너무 힘드니까 내 속의 영혼이 깨어서 기도하나 싶었다. 아무튼 나는 아무에게도 입도 뻥긋 못하는 일들을 하나님께 미주알고주알 말하고 있었다. 그냥 힘들다고만 하지 않았다. '이런 악한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저 새끼 벌 받게 해주세요, 저 미친 새끼, 개새끼, 내가 찢어죽이고, 말려 죽일 테야(드라마 토지에서 여자 주인공이 하던 대사를 인용하기도 했다), 병신, 집 나가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는 새끼가 집에서만 지랄이야' 등등 다양한 욕을 하면서 내 속의 분노를 격렬하게 뿜어내고 있었다.

하나님도 맞장구를 쳐주시는 듯 욕하면서 전혀 죄책감이 들지 않고 신이 났다. 욕을 하고 나면 내 속이 시원하고, 창피하지도 않았고, 부끄럽지도 않았다. 기도하기 어려울 때는 종이에 그놈에 대한 욕을 마구 쓴 다음에 찢어버리기도 했다.

어찌되었든 그놈이 내 속을 힘들게 하고, 썩어들게 할 것 같은 건 죄다 내 밖으로 끄집어냈다. 계속되는 성폭력 상황에서 자포자기도, 자책도 않고 혼자 힘들어 하며 주저앉지도 않았다. 가해자인 그놈을 미워하고 마음껏 내 속 말을 할 수 있었던, 혼자만의 노출의 시간을 가진 거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그냥 머리로만이 아니라 내 가슴 깊은 곳에서까지 그 사람이 나쁜 놈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 같다. 괜한 죄책감도 갖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 가출한 이후에 아빠였던 그 사람을 양가감정 없이 고소도 할 수 있었으리라. 나는 언제부턴가 그놈과 살아야하는 이 지옥에서 벗어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9년 동안 그 새끼에게 얻어맞고 당해도, 포기하지 않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던 건, 내 문제를 죄책감 없이 지속적으로 말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9년 동안 정말 하루도 빠짐없이 하나님과 내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집을 나와 혼자 지내며 교회에 다닐 때도 나는 나의 아픔의 치유를 소망한다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이야기했다. 밤새 '하나님'만 속삭이며 울며 기도하기도 했고, '아파요'란 말만 하기도 했다. 내가 그놈과 살 때 제일 가까이서 내가 하던 이야기를 들었던 분이니 과거 이야기 안 해도 다 아실 테고, 그래서 그냥 참 많이 울었다. 몇 날 며칠을 울면서 기도하기도 했다. 울기만 해도, 이런 저런 설명 안 해도 내 속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는 것이 편했다.

사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어디까지 해야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부담스럽다고 도망가지 않을까? 창피한데,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등등 오만가지 생각을 해야 해서 불편하기도 하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에 하나님께 말하는 것은 어떤 상처도 주거나 받지 않아도 되었다. 사람들과 말할 때처럼 이 눈치 저 눈치 살피지 않고 그냥 내가 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말할 수 있는 것도 편하고 좋았다. 언제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걸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고, 지속적으로 노출해도 지치지 않는 대상은 진정한 힘이 된다. 이러한 길고 긴 깊이 있는 노출의 과정이 있었기에 편하게 사람들과도 나누게 되었지 싶다.

# 최근의 노출

가장 최근에 말로 내 이야기를 노출했던 건 남자친구에게 였다.

“나 아빠한테 강간 당했어.”
“OO, 잘 컸네요.”

작년 여름, 사귈지 말지를 결정하려는 시점에 그에게 대뜸 “강간”을 말했다. 왜 그렇게 짧은 문장으로 “강간”을 넣어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간단하게 말하고 싶었다.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놀라서 도망갈 사람이면 시작하기 전에 보내고 싶었다. 내가 '나눔터'에 글을 쓰고 있는 것도 말하고, 나의 글도 보여줬다. 그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잘 컸네요'라고 하고, 따뜻한 눈으로 나를 보며 그런 일이 있었던 사람인지 몰랐다고, 밝고 당당해서 깊은 상처 있는 사람 같지 않다고 했다. 나중에 내가 썼던 글들을 모아 책을 내고 싶다고 했더니 자기도 응원하겠다고 했다. 지금도 내가 쓰는 글들을 읽고, 같이 이런 저런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나에게 있었던 일을 불쌍해하지 않고, 그 일을 잘 겪어낸 지금의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이런 이야기를 편하게 나눌 수 있다. 가까운 사람에게 편안하게 노출할 수 있는 건 참 좋은 것 같다.

■ 꼭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것은 이건 어디까지나 '수의 처방전'이라는 사실이다. 상처를 노출하는 게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지만 아닌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게 더 힘든 이도 있을 수 있다. 각자 자신만의 비법을 찾고, 고민하고,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 상담소 친구들도 말한다, 나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고. 들을 귀와 마음을 가진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되어 참 감사하다. 당신 주변에도 들을 귀와 마음을 가진 이들이 있기를 바란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