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시위!
달빛은 없었으나 찬란했다!
⊙ joora
2009년 7월 17일 오후 6시. 우리들은 보라색을 가진 어떤 것을 각각 하나씩은 가지고 집을 나섰다. 이유는 바로 오늘이 올해로 6회째를 맞이하는 ‘달빛시위’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악천후임에도 연기되지 않은 데에 내심 의아해하며 달빛시위가 열릴 청계광장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청계광장에 도착하자 이미 달빛시위는 시작되어 있었다. 거의 끝나가고 있어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빗속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광경이었다. 나름대로 버스 안에서 시위현장을 머릿속으로 그려보았었다. 피켓을 들고, 머리띠를 매고, 대표 한 사람이 나와서 확성기 들고 구호를 외치면 나머지 사람들도 따라하는(심지어는 머리 깎는 장면도 상상했음) 장면이었는데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 부르고 축제 분위기가 따로 없었다. 예상과 다른 광경에 나도 모르게 흥이 났다. 리듬도 타졌다. 얼른 그곳에 참여 하고 싶어서 발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버스에서 했던 지겨운 상상들은 저 멀리 사라져 버렸다.
퀴즈 게임을 통해 얼떨결에 리포터가 된 나는 일단 리포터의 일을 수행해야 했다. 그날 나의 임무는 사진을 찍는 것이었는데, 좋은 사진을 구하려면 일단 많이 찍고 봐야 한다는 거북 샘의 조언대로 보이는 것은 무작정 찍고부터 봤다. 무대를 찍어야 한다는 핑계로 무대 코 앞까지 간 나는 무대를 집중해서 감상할 수 있었다.
한 여자가 우산을 쓰고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녀는 삼성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는 이런 데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남의 일이라고만 여겼던 그녀라고 했다. 그녀가 말하는 그 일은 직장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는데 주위 사람들 모두 그녀에게 책임을 넘겼고 모른 체 하더라고 했다. 그 후 회사에서는 자연스레 왕따를 당했다고, 그런 와중에도 결근 한 번 안 하고 8년 째 꾸준히 회사에 다니고 있고 승진까지 했다고 말하는 그녀는 당당해보였다. 목소리에도 힘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모든 사람들에게 얘기할 때 그녀의 진심이 느껴져 가슴이 미어졌다.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억울함에 눈물이 차올랐다.
열림터 선생님들은 달빛시위가 열림터의 공식 프로그램이라며, 중요하다며 다른 프로그램은 빠져도 되는데 이건 절대 빠지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요리 빼고 조리 뺐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움직이는 걸 싫어한다. 놀러가는 것도 그리 즐기지 않는데 시위라니…….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으면 다음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용기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불이익이 있을 때 소리 내어 말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포터 일이나 열심히 수행하자고 덤볐던 나는 어느새 그들과 하나가 되어있었다. 참여자가 된 기분은 참 짜릿했다.
여성이 사회적으로 목소리를 높인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폐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들에 의해 아직도 여성들은 사회에서 통제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인 나 역시 나를 그런 생각으로 통제해왔다. ‘계집아이가 정숙해야지’, ‘그건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하는 소리를 시도 때도 없이 듣고 살아왔던 나는 그것에 너무 익숙해져 나중엔 그 소리를 듣게 되어도 당연한 듯 받아들였고 또 그렇게 말해왔다. 어떤 친구가 ‘나는 커서 경찰이 될 거야’ 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탐탁지않은 표정으로 ‘여자가 무슨, 남자도 힘들다더라’ 하며 그 친구와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열림터에서 지내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속임을 당하고 살아왔는지 잘못된 인식을 세뇌 받고 살아왔는지 느꼈다. 처음에는 ‘여자인 내가 어떻게 저걸 할 수 있지?’, ‘그건 여자가 하는 일이 아니잖아?’ 하고 일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저절로 들기도 했었지만, 또 가끔씩 ‘여자도 저런 일쯤은 할 수 있어’ 라고 생각한 내 자신을 보며 새삼 신기해 하기도 했었지만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통해서 나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양성평등 인식을 갖게 되었다.
이번 달빛시위를 통해 여성들의 힘이 느껴졌다. 길거리 행진 때 목소리 높여 외쳤던 구호들은 내 마음속에 숨어있던 응어리를 흩어버렸다. 아주 시원 통쾌했다!!! 비가 많이 와서 달은 보이지 않았지만 달빛시위! 달빛은 없었지만 찬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