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 거세’ 관련 미국과 유럽의 정책 동향
⊙ 前 활동가 / 운영 자문위원 정유석
‘화학적 거세’와 ‘약물 치료’
가해자에 대한 약물요법이 일반적으로 ‘화학적 거세’로 불리는 것에 대해 한편에서는 ‘화학적 거세’라는 용어가 사실과는 달리 매우 강제적 처벌의 느낌을 주므로 ‘화학적 치료(chemical treatment)’, ‘약물치료’ 혹은 ‘항남성호르몬 약물치료(antiandrogenic pharmaco therapy)’라는 용어 등으로 바꾸어 써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입장은 소위 ‘화학적 거세’가 대부분 가해자의 자발적 동의하에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다는 점, 물리적 거세와 달리 약물중단 시 이전 상태로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 입법 취지 역시 가해자에 대한 종래의 인지행동요법, 심리치료와 마찬가지로 가해자 치료에 있다는 점 등을 지적한다.
‘화학적 거세’라는 용어는 법안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용어자체가 대중의 분노와 보복감정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지만, 또 한편에서는 가해자의 자발적 동의가 실제로는 강제성을 가진다는 점, 약물에 의한 부작용1 자체가 처벌의 성격을 띤다는 점 등에 주목하여 가해자의 고통을 부각하고 법안의 실질적 처벌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한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미국의 관련 정책
1996년 캘리포니아주가 외과적 고환절제술이나 남성호르몬을 조절하는 약물요법(MPA)2 방안을 도입한 이래, 2009년 현재 미국 내 9개 주에서 성폭력 범죄 확정 판결 후 가석방이나 보호관찰이 고려되는 가해자들을 대상으로 유사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3 주에 따라 화학적 요법(조지아, 몬태나, 오레곤, 위스콘신)뿐 아니라 물리적 거세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캘리포니아, 플로리다, 아이오와, 루이지애나), 대부분의 주에서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가석방이나 보호관찰의 조건부로 작용하게 된다. 반면 텍사스의 경우는 약물요법의 선택지 없이 물리적 고환절제술만을 결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수술 여부가 가석방 사유가 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해당 범죄유형, 자발적/강제적 집행여부, 불응시 조치 등에서는 다양한 차이를 보이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표>와 같다.
미국의 각 주별 현황
Scott and Holmberg(2003), Norman-Eady(2006) 인용, 재구성
가해자 석방 1주일 전 치료 시작
가해자 석방 전에 시작해서 법원에 더 이상의 치료가 필요치 않음을 증명할 때까지 지속
석방 6주 전에 시작
치료는 석방 일주일 전에 시작·부작용에 대한 사전 고지 필요
치료 프로그램에 협조하지 않거나, 치료에 반하는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을 복용할 경우 석방 조건을 위반하는 것으로 간주함
수술 전 언제든 결정을 바꿀 수 있지만, 번복 후 다시 신청할 수는 없음
유럽의 관련 동향
유럽에서 성폭력에 대한 대응과 가해자 ‘치료’수단으로서의 고환절제술은 19세기 후반 스위스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Carpenter 1998) 이후 1990년대 들어 네덜란드, 독일,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에스토니아, 아이슬란드, 라트비아 등지에서 대부분 가해자의 동의에 따른 외과적 거세방안이 사용되어 왔고, 여전히 여러 나라에서 합법화되어 있지만 현재로서는 매우 적은 규모로만 시행되고 있다(Harrison 2007). 체코의 경우는 최근까지 다수의 사례가 보고되었는데, 이에 대해 유럽연합의 고문방지위원회(2009)에서는 성폭력가해자에 대한 물리적 거세가 치료가 아닌 ‘회복불가능한, 신체를 훼손하는’조치로 보고 체코 정부에 관련조치 중지를 요청한 바 있다.
화학적 요법과 관련해서는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가해자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한 화학 요법을 사용하고 있다(Koller, 2008). 영국(잉글랜드, 웨일즈)의 경우 1970년대 중후반 시행되었다가 일부 부작용으로 중단되었고, 80년대 들어서는 런던의 병원에서 치료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는데(Harrison 2007), 이후 2007년 영국 내무부에서는 ‘재범에 영향을 줄 정신건강상의 특정한 문제가 있거나 통제하기 어려운 성적충동, 새디즘 등의 증거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교정, 보호관찰 관련인의 위탁과 가해자의 자발적 선택하에 다양한 수위의(남성호르몬에 영향을 주지 않는 약물요법을 포함) 화학요법을 실시할 수 있도록 공식 발표하였다(NOMS-영국 가해자 관리감독부, 2007).
이밖에도 캐나다 역시 가해자의 자율적 선택을 바탕으로 한 화학적 요법을 시행하고 있고, 최근 이스라엘에서도 아동 성폭력가해자들이 ‘화학적 거세’에 동의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한편 가해자의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유럽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지난 9월 폴란드에서는 아동성폭력가해자의 ‘화학적 거세’를 강제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관련 쟁점들
찬반 그룹 모두에 의해 문제제기 되는 화학요법의 실질적 효과성 이외에, 가해자 인권 침해여부와 관련해서는 국제협약과 국제관습법, 각국의 헌법 등에 의해 인정되고 있는 고문 및 비인도적 처우를 받지 않을 권리, 동의 없는 의학적 치료를 받지 않을 권리, 사생활에 관한 권리-성적권리, 심리적, 신체적 통합성을 유지할 권리-, 결혼과 가족을 형성할 권리-재생산권-등의 과도한 침해여부, 절차적 정당성과 이중처벌여부 등이 쟁점이 되고 있다(Scott and Holmberg 2003, Ward and Cannon 2007). 법안에 따라 법원이 ‘물리적, 화학적 거세’를 명할 수 있는 경우 해당조항이 본질적으로 잔인하고 과도한지, 이러한 조치가 범죄에 상응하는 정도인지, 다른 수단에 의해서는 같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지, 가해자의 자발적 선택과 동의에 의해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경우는 당사자가 약물의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충분한 인식을 바탕으로 동의한 것인지, 가석방이나 보호관찰 등의 조건부로서의 동의가 자발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지 등이 질문된다.
가해자 인권 관련 논의 이외에, 한편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사회전반의 공포와 분노를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위험 관리를 강조하는 정부의 규제적 경향이 강화되는 것은 아닌지, 법원의 약물치료 명령이 범행동기가 소위 ‘성적이기만 한’소수 범죄 이외에, 폭력과 증오, 권력의 남용이 원인이 되는 다수 성폭력범죄를 ‘치료’할 수 있는지(Spalding, 1998), 전자팔찌, 화학적 거세 등의 일련의 정책들이 성폭력을 정상화하는 사회문화적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성폭력을 개인의 정신적 결함의 문제로 보게 하는 등 성폭력 이슈를 더욱 비정치화, 병리화하는 것이 아닌지 등을 주요하게 질문한다.
1 화학요법에 의한 부작용으로는 체중증가, 자살성향을 포함한 우울증, 호흡곤란 등(harrison, 2007), 혈전정맥염, 폐색전증(Bradford, 1983), 고혈당증, 고협압, 당뇨(Spalding, 1998), 골다공증(Grasswick, 2003) 등이 보고되고 있고 장기적 효과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음.
2 Medroxy Progesterone Acetate : 인공여성호르몬으로 비정상적 자궁출혈이나 월경불순, 갱년기증상 치료 등을 위해 사용된다. 남성이 사용할 경우 테스토스테론을 사춘기 이전 수준으로 감소시키는 효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과 캐나다의 경우는 States and Cypro terone Acetate(CPA) 사용.
3 현대의 관련 정책 이외에, 역사적으로는 성충동을 없애기 위한 물리적 거세가 19세기 미국(인디애나)에서 죄수들 대상으로 다수 시행된바 있고, 1940년대 들어서는 가해자의 남성호르몬 약화의 목적으로 약물을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