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한국,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불순한’ 만남
성인종차별대책위활동을 둘러싼 쟁점과 입장
⊙ 성문화운동팀 보짱
인도인 남성이 한국인 여성과 버스 안에서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양복을 차려입고 ‘멀쩡하게 보이는’ 30대 회사원 남성이 “더러워, 너 더러워 이 개새끼야”,“Arab!”이라고 느닷없이 욕설을 퍼붓는다. 그리고 같이 있던 한국인 여성에게는 “조선년이 새까만 자식이랑 사귀니까 기분 좋으냐?”라고 발로 걷어찬다.
당신은 이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난다고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는 2009년 7월, 서울의 한복판에서 버젓이 일어난 일이다. 사실 인도인 남성은 아랍인도 아니었고, 한국인 여성과는 동료일 뿐 연인사이도 아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졸지에 ‘냄새나는 아랍인’과 ‘(한국 남자를 두고) 새까만 아랍인 자식과 사귀는 조선년’으로 호명당하며 느닷없이 테러를 당했다.
이 사건의 핵심은 한국인 여성이 외국인 남성과 사귀는/관계맺는 것에 대한 한국인 남성의 혐오·공포에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심지어 그 외국인 남성이 백인도 아닌 유색인종이었다는 것이다. 백인 남성과 사귀는 한국인 여성은 얄밉고 재수 없지만, 한국인보다 우월한 백인과 사귀기 때문에 그나마 납득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보다 열등한 유색인종 남성과 사귀는 한국인 여성은 어이없을 뿐만 아니라, 한국인 남성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 불가능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한국인 남성은 (타락한) 한국인 여성을 몸소 처벌함으로써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우월감/열등감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을 뿐만 아니라, 인종적 위계를 끊임없이 재구축한다.
인종차별만이 부각되면서 부차화되는 성차별
민족주의에 대한 감수성만이 존재할 뿐 인종주의에 대한 감수성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사회에서, 최초로 인종차별 문제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된 이 사건은 많은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이 사건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차별문제를 누락한 채 철저히 인종차별로만 다루어졌다. 다음 글은 이 사건해결을 위해 구성된 성인종차별대책위원회에게 피해자인 한국인 여성이 보낸 편지 중의 일부이다.
예전부터 한 보도에는 (인도인남성의 진술과 관련없이) 인도인남성이 (여성인) 저를 보호하려고 경찰에 갔다는 둥, 정말 터무니없게 이야기를 지어내어 항의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은‘한국어에 주어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삭제하려고 했어요. 됐습니까?’였습니다. (됐냐는 말에 대한 기분나쁨은 둘째 치더라도……) 기사를 다시 확인해도 그 부분은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해자인 한국인남성의 옷깃을 잡고 경찰서로 향하기 위한 첫 걸음을 내딛은 사람은 저입니다. 이유야 단순합니다. 제가 복도 쪽에 앉아 있었고 말이 통해서 더 화가 났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당연한 역할 및 행동을 하는 사람은“여성”이나“한국인”이 될 수 없는 것일까요? 때로 기사화를 위한 전화/대면 인터뷰를 하고 나면 저는 통역이나 증인으로서의 역할로 이용되는 기분입니다. 결과물에는 여성의 피해에 대한 언급은 없고 인도인남성에게 가해진 인종주의적 차별의 부분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지요.“여성”으로서의 제 경험은 더 나아갑니다. TV 뉴스 및 신문 보도를 보면 저의“행동”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아예 이 사건에서 제 성별 및 침해사실에 대한 중요성이 나와 있지 않거나,“피해”의 측면만을 아주 슬쩍 언급할 뿐이지요. 저는 그냥 부속품처럼 동행한 한국인 여성 정도이거나 보호되어야 하는 대상이지요. 모 방송국에서는 아예 버스사건을 연출하기 위해 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한국사람처럼 생긴) 여성의 찬조출연까지 요구했다는군요. 그 여성은 말 한마디 행동하나 할 필요 없이 옆에 서 있기만 하면 그 당시의 느낌을 전해줄 수 있어야 하는 설정이었답니다.
모든 한국인 여성이 버스에서 느닷없이 한국인 남성의 공격을 당하는 것은 아니다. 아랍/유색인종 남성에 대한 경멸은 그의 일행이었던 한국인 여성에게도 고스란히 옮겨와서, 그 남성과 함께 있는 한국인 여성은 모욕당해도 되는‘불순한 여성’이 된다. 친구이든, 동료이든, 애인이든, 부인이든 가릴 것 없이, 그 여성은 외국인 남성, 그것도 유색인종 남성과 놀아난 타락한 여성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외국인 남성의 일행이 한국인 여성이 아니라 한국인 남성이었다면 어땠을까? 이 경우에도 가해자였던 한국인 남성이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이 문제는 유색인종 남성에 대한 인종차별인 동시에 그 유색인종 남성과 함께 있는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론은 이 사건의 일부만을 취사선택하여 이를‘인종차별’문제로만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차별은 이렇게 단선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며, 성별, 인종, 국적, 민족, 계급 등의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교차하는 그물망으로 작동한다. 이번 사건은 한국사회가 차별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주며,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삭제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낸다.
남성 경찰과 가해자 남성 사이의 한국인/남성연대, 소외되는 주체들
언론뿐만 아니라 이 사건에서 또 하나의 주체로 활약(?)했던 경찰의 태도를 보면 한국사회의 성·인종차별에 대한 감수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한국인 여성은 경찰의 눈을 피해 도망가려고 시도하는 한국인 남성을 도망가지 못하게 해줄 것을 경찰에게 요구했지만, 오히려 경찰은“왜 당신이 그것에 대해 상관하느냐? 그의 죄가 증명되지도 않았는데, 경찰이 그를 붙잡아 둘 수도 없는 것이 아니냐?”며 윽박지른다. 그리고 다른 경찰이 도착하자, 인도인 남성과 한국인 여성이 떠들어서 조용히 하라고 하는 상황에서 일이 커졌다는 식으로 한국인 남성의 입장에서 진술된 정황을 요약해준다. 경찰은 인도인 남성을 불법체류자 취급하면서 고압적인 자세로 반말로 취조하기도 하고, 피해자들에게 합의를 종용하기도 하지만, 정작 가해자인 한국인 남성이 경찰서에서까지“똘아이”,“냄새나고 에티켓 없는 놈”등의 모욕을 하며 두 사람을 괴롭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수수방관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 여성은 따지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좌절감은 남성 경찰에게 가닿지 못한다.
경찰의 입장에서는 유색인종 남성과 함께 있는 한국인 여성의 존재는 그다지 미덥지 못할 뿐만 아니라, 별 것도 아닌 일로 유난떠는‘별종들’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경찰에게 보호해야 할‘국민/한국인’으로 인식되는 것은 인도인 남성/한국인 여성의 웃기는 조합이 아니라, 멀쩡한 회사원으로 보이는 한국인 남성이다. 남성 경찰과 한국인 남성 사이에‘한국인’과‘남성’이라는 이중의 연대가 강고하게 맺어지고 있는 동안에, 한국인 남성의 보호 하에 있지 않은 한국인 여성은‘국민’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이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인종주의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질 뿐만 아니라,‘성별’과‘인종’이라는 각각의 차별들이 어떻게 매개될 수 있는지,‘국민/한국인’의 경계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등 여러 가지 복잡한 질문들을 담고 있다. 새로운 사유와 성찰이 필요한 이 문제는, 언론과 사회의 입맛에 맞는 특정 사건만이 부각되고 있으며, 뜨거웠던 관심은 더욱 급속도로 식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인종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질문들을 한국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성찰하기 시작할 때, 한국사회의 인종주의 및 차별에 대한 담론 또한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