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페미가 어쩌다 만난 사람들
꿀벅지, 루저녀, 똥꼬치마
⊙ 소모임 <여성소설 읽기> 회원 당고
얼마 전 모 여가수의 탄탄한 허벅지를 지칭한 ‘꿀벅지’라는 신조어가 언론에 등장, 성희롱이냐 아니냐 하는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 후 꿀벅지는 성희롱이므로 사용을 금지시켜 달라고 여성부에 청원한 고등학생이 나타나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또 <미녀들의 수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여대생은 “키 180cm 이하의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을 하여 남성들의 공분을 샀습니다. 인터넷에서 그녀의 신상정보가 공개되고 본인은 물론 재학 중인 대학까지 무차별적인 공격을 당하는 등 큰 곤욕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모 시사 잡지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가리는 거냐? 봐달라고 표시하는 거냐? 착하게 입었으면 행동도 착해야지”라는 내용으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을 비하하는 ‘똥꼬치마’라는 글을 올려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본 코너에서는 일련의 사건들과 관련된 가상의 인물을 섭외하여 솔직담백한 대담을 진행하였습니다. 진행상의 편의를 위해 관련 용어를 대담자의 가명으로 지정했으니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등장인물
꿀벅지 길고 탄탄한 허벅지로 뭇 남성들에게 꿀벅지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루저녀 남자의 키는 경쟁력이며 180cm 이하의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
똥꼬치마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지만, 계단을 올라갈 때는 조신하게 핸드백으로 치마 뒤를 가린다.
꼴페미 꿀벅지, 루저녀, 똥꼬치마와 같은 사건들 때문에 심기가 매우 불편한 열혈 페미니스트다.
요즘 다들 어떻게 지내?
꿀벅지 _ 요즘 대세가 꿀벅지잖아. 예전엔 무조건 마른 여자만 선호했는데, 드디어 나의 길고 탄탄한 허벅지가 각광을 받는 시대가 온 것 같아. 주변 남자들이 내 허벅지를 보고 모두 입을 모아 꿀벅지라고 찬양을 하더라.
똥꼬치마 _ 난 최근에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 모 시사 잡지 기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똥꼬치마를 입고 계단을 올라갈 때 치마 뒤는 왜 핸드백으로 가리느냐, 뒤에 있는 남성으로서 잠재적 가해자로 의심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라는 요지의 글을 올렸더군. 거기다가 ‘착하게 입었으면 행동도 착하게 하라’는 식의 여성비하적인 발언에 몹시 속이 상했어.
루저녀 _ 아무래도 가장 힘들고 괴로운 건 나일 것 같아. 예능 프로그램에서 말 한 번 잘못했다가 인터넷에서 모든 개인정보가 공개되고 내가 다니는 대학의 홈페이지까지 네티즌의 공격을 받았어. 온갖 원색적인 욕설과 비난이 쏟아지고 난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진짜 이렇게 엄청난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어.
꿀벅지는 칭찬일까? 아니면 성희롱일까?
꼴페미 _ 이 사건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여성을 쉽게 평가하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 꿀벅지라는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은 여성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말을 성폭력으로 인지하는 여성들도 많아. 꿀벅지의 어원이 ‘꼴리는 허벅지’라는 걸 알아? 결국 꿀벅지는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고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말이라고. 루저녀도 마찬가지야. 지금까지 여자들은 항상 50kg가 넘으면 여자도 아니라는 둥, 못생긴 얼굴이 곧 무기라는 둥 외모에 대한 갖은 비하와 말도 안 되는 편견을 짊어지고 살아왔어. 남성은 여성을 그토록 쉽게 평가하는데, 여성이 남성을 평가하니까 대번에 난리가 나잖아.
꿀벅지 _ 솔직히 꼴페미의 말은 나한텐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아. 난 꿀벅지라는 말이 전혀 거슬리지 않는걸. 나쁜 의미가 아니라 칭찬하는 의미로 얘기하는 거잖아. 성희롱이나 성차별 같은 말을 갖다 붙이는 건 과장이 아닐까? 여자들이야말로 초콜릿 복근이니 짐승돌이니 하면서 남성의 몸을 상품화하고 성적 대상화하고 있지 않아?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고. 남자든 여자든 자신의 성적 쾌락을 마음껏 표출하고 더 좋은 상품으로 인정받기 위해 몸을 가꾸는 시대야. 그걸 남녀 성대결로 몰아가는 건 좀 촌스럽지 않아?
꼴페미 _ 그래, 꿀벅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자마자 많은 남성들이 ‘여자들도 초콜릿 복근을 보고 좋아하지 않냐’면서 물타기를 시도했지. 하지만 초콜릿 복근과 꿀벅지가 똑같다고 믿는 건 우리 사회가 가부장제 사회나 남성 중심 사회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과 똑같아. 현재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지위가 평등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해? 여성이 남성의 초콜릿 복근을 아무리 좋아한다고 해도 그 사실이 남성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아. 하지만 남성이 여성의 꿀벅지를 보고 흥분한다는 사실은 여성에게 곧바로 성폭력 위협으로 다가갈 수 있지. 출발선이 전혀 다른데 자꾸 똑같다고 우기면 물타기 밖에 되지 않는 거야. 그리고 초콜릿 복근을 보고 흥분하는 여성과 꿀벅지를 성희롱이라고 문제제기한 여성이 과연 같은 부류일까? 누구보다도 성적 대상화에 민감한 페미니스트들이 함부로 타인의 몸을 파편화하고 대상화할 거라는 생각은 별로 안 드는데?
보일락 말락 똥꼬치마, 가려야 해? 말아야 해?
똥꼬치마 _ 나도 꼴페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해. 문제의 기자처럼 자칭 ‘좌파 언론인’으로 이름난 사람도 젠더 문제로 넘어오면 곧잘 저열한 인식을 드러내잖아. 꿀벅지라고 부르면서 침 흘리는 거랑 착한 몸매를 왜 가리냐고 빈정거리는 거랑 뭐가 달라? 자기를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말라는 말이 오히려 잠재적 가해자가 뜨끔해서 화내는 걸로밖에 안 들려.
꼴페미 _ 성폭력 가해자의 대부분이 남성인데도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로 보지 말라고 화를 내는 건 진짜 넌센스야. 여성은 당연하게도 누구나 잠재적 피해자가 되는데 말이지. 애당초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들이 뒤를 가려야 하는 이유가 뭐겠어? 휴대전화 카메라로 치마 아래를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고 다리를 흘끔거리는 남성들 때문이잖아. 안 가리면 조신하지 못하다고 비난하고 가리면 당당하지 못하다고 비난하고, 이건 명백히 여성에 대한 이중 잣대라고 봐.
꿀벅지 _ 그렇게 보이는 게 싫으면 처음부터 짧은 치마를 입지 않으면 되잖아. 기를 쓰고 가리면서도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는 심리는 좀 모순되지 않나?
똥꼬치마 _ 짧은 치마를 입는 이유가 남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아니잖아. 자기만족이라는 말도 모르니? 스스로 아름다워지고 자기를 사랑하기 위해서 화장도 하고 다이어트도 하잖아. 그게 꼭 남자들을 위해서 하는 거야?
꼴페미 _ 잠깐, 난 꿀벅지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여성들이 정말로 자기만족을 위해서 화장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하거나 짧은 치마를 입는 걸까?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여성이라면, 그래도 자기만족을 위해 치장을 할까? 평생 방 안에만 갇혀 사는 사람이라면 다이어트를 하거나 짧은 치마를 입으려 들지도 않을 거야. 차라리 맛있는 걸 배달시켜서 먹으면 먹었지, 과연 굶으면서까지 살을 빼려고 할까? 혼자서 거울을 보고 만족한다는 아름다움의 기준 자체도 철저히 남성 중심적이잖아. 짧은 치마도 남성에게 성적으로 어필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아이템이고. 여성이 진정으로 자기만족 때문에 짧은 치마를 입는지는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똥꼬치마 _ 그럼 꼴페미는 절대로 짧은 치마 따위는 안 입고 노상 바지만 입고 다니니? 화장도 안 하고? 살이 쪄서 통통해져도 다이어트 안 한단 말이지?
꼴페미 _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갈등이 없는 건 아냐. 나도 가끔 다이어트의 유혹에 시달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짧은 치마를 입기도 해. 다만 내 행동의 의미에 대해 열심히 성찰하려고 노력하지.
남성에게 돌아간 자본주의와 외모지상주의 부메랑
똥꼬치마 _ 근데 루저녀는 어떻게 생각해? 사실 루저녀의 발언 때문에 키 작은 남자에 대해 전혀 편견을 가지지 않은 여자들까지 욕을 먹고 있잖아.
루저녀 _ 솔직히 나도 억울한 감이 있어. 키가 큰 남자가 좋다, 돈이 많은 남자가 좋다, 결혼할 남자는 집 한 채 정도는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건 보통 사람들도 다 하는 얘기잖아. 남자들 스스로도 늘 자기들끼리 ‘루저놀이’ 같은 걸 하고 있고 말이야.
꿀벅지 _ 루저녀는 정말 돈, 외모, 학벌 같은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니? 꼴페미는 입버릇처럼 항상 여성들과 연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다니던데, 그럼 루저녀 같은 여성과도 정말 연대할 수 있어?
꼴페미 _ 물론 생물학적 여성이라고 해서 모든 여성이 똑같은 것도 아니고, 모든 여성과 연대를 할 수도 없을 거야. 하지만 연대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루저녀가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할 만큼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그램의 제작의도를 봐. 처음부터 남성에게 성적으로 가장 쉽게 어필하는 ‘외국 여성’, ‘미녀’라는 프레임을 가지고 만들어졌어. 프로그램 자체가 이미 남성 중심적 외모지상주의로 점철되어 있다는 뜻이야. 그런데 남성들의 판타지가 실현되는 장소에서 여대생인 루저녀가 남성의 외모를 평가했어. 남성들은 이걸 용납하지 못하는 거지. 남성은 원하는 기준에 따라 미녀를 선발하고 앉혀놓고 보면서 즐길 수 있지만, 여성은 남성을 평가하고 선별하면 안 되는 거야. 그런 관점에서 보면, 사실 이 사건은 남성들이 극단으로 부추긴 외모지상주의가 그들 자신에게 부메랑처럼 돌아간 것에 불과해.
루저녀 _ 꼴페미가 말 한번 잘하네. 맞아, 남성들도 항상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면서 여성이 남성을 키나 연봉으로 평가하면 안 된다는 건 불평등한 것 같아.
꼴페미 _ 남성 중심적인 환상이 재현되는 공간에 나가서 남성들이 욕하고 싶은 여성을 연기한 루저녀가 실망스러운 건 사실이야. 남자들은 ‘예쁘고 머리 빈 여자’라는 극단적 여성상을 만들어놓고 그 여성을 짝사랑하지. 그러다가 자기가 가질 수 없을 것 같으면 돈만 밝히고 머리는 빈 속물이라고 욕하는 거야. 그들이 만든 환상의 한 축을 외국 미녀들이 담당한다면, 다른 한 축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루저녀야. 다양한 여성들을 동질화하고 남성 중심성에 기대어 ‘만들어진 현실’에 일조했으니, 스스로를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덮어놓고 한 놈만 패는 중세적인 마녀사냥은 제발 그만~
루저녀 _ 그래서 지금 내가 당해도 싸다는 거야?
꼴페미 _ 그건 절대 아니지. 루저녀와 얽힌 논란은 남성 중심적 사회와 그에 편승하여 시청률을 올리려는 제작진이 만든 건데, 여성 개인을 마녀사냥의 희생양으로 삼는 광폭한 움직임은 당장 중지해야지. 이번 루저녀 사건을 통해 여성이 얼마나 마녀로 몰리기 쉬운 존재인지, 남성 사회가 여성을 매장하는 것이 얼마나 간편한지를 확인할 수 있었어. 지금 세상은 탈근대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우리 사회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전근대적이고 중세적인 ‘마녀사냥’이야. 꿀벅지에 대해 문제제기한 여성 블로거의 개인정보를 캔다든지, 루저녀의 신상을 캔다든지, 소송을 걸어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결코 발전적인 문제해결방식이 아니야. 젠더 불평등, 외모지상주의, 자본주의로 격화된 물질중심주의 등의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를 성찰하고 서로 대화하며 해결해 나가야지. 지금 루저녀에게 가해지는 마녀사냥은 그냥 한 개인을 말살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넘어가려는 자세에 불과해.
몸 고생, 마음고생 많은 여자들, 마지막으로 한마디씩만 한다면?
꿀벅지 _ 지금 시대는 윤리보다 욕망이 우선하는 시대인 것 같아. 너희는 초콜릿 복근, 우리는 꿀벅지처럼 1:1로 욕망을 주고받는 식의 공방은 계속되지 않을까.
똥꼬치마 _ 짧은 치마를 입고 뒤를 가리느니 안 가리느니 하는 문제에까지 신경을 쓰고 살자니 너무 피곤한 것 같아. 여자로 산다는 게 참 피곤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어. 오늘 이야기를 나누면서 짧은 치마를 입는 것이 과연 나의 자유의지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긴 만큼,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겠어.
루저녀 _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공개되고 마녀사냥을 당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이번 기회를 통해 알게 됐지. 속물적으로 웃고 즐기자는 오락 프로그램도 누구누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거였구나 싶고. 세상이 무섭고 만사가 피곤해.
꼴페미 _ 여성에게만 쉽게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이 없어지길 바라지만, 요즘 벌어지는 사태들을 보면 요원한 것만 같아. 그래도 이런 일을 통해 배우는 것이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되도록 많은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어가고 싶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