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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의 이야기 - 연재 15th 수의 치유비법 2‘표출
  • 水 (성폭력 피해생존자)
생존자 말하기 _ 수의 이야기 15th

수의 치유비법 2 ‘표출’

[편집자주] ‘생존자의 목소리’는 성폭력피해생존자의 투고로 채워지며, 연재 혹은 단회로 독자 여러분과 만남을 갖습니다. 글 보내주실 곳은 ksvrc@chol.com 입니다. 이번 호에는 ‘水’의 연재수기 열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 水

# 욕하기

씨발, 개새끼, 어디 가서는 찍소리도 못하는 게 또 지랄이야, 개새끼, 개새끼야, 저걸 갈기갈기 찢어 죽여 버려야지, 병신 같은 새끼, 너 나중에 늙으면 개새끼야 구박하고, 막 팰 거야 이 새끼야. 지랄, 지랄, 에에에에에에에 하나도 안 들리거든, 병신 새끼야, 나중에 두고 보자 병신 새끼, 니가 무슨 아빠냐 개새끼야…….

그 새끼한테 맞고, 당하고 나면 내가 쓰는 글씨들을 볼 수도 없는 어둠 속에 쪼그리고 앉아서 갈겨썼다. 곧 잘게 찢어 연탄불에 넣어 태우거나 했지만 그래도 속은 시원했다.

나의 욕하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 새끼가 나를 화나게 하면 나는 입술을 떨썩이며 욕을 했다. 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종이로 쓰는 것보다 좀 더 시원한 느낌과 힘이 느껴졌다. 욕을 하다 입술을 꽉 악물었을 때 나의 분노가 힘으로 느껴지는 묘한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그 새끼가 오빠의 배를 주먹으로 쳐서 오빠가 숨을 ‘켁켁’ 대고 있는 상황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졌다. 어느 새 내 머릿속에서는 내가 아빠란 새끼를 주먹으로 막 패고 있었다.

‘병신 새끼, 밖에 나가서 다른 아저씨들 앞에서는 꼼짝도 못하는 새끼가 집에서 어린 자식들, 아픈 엄마만 패고 지랄이야, 병신아 너 진짜 웃긴 새끼거든.’

욕하기는 단순히 분노를 뿜어내는 것뿐 아니라 내 속의 힘을 키워주는 것 같았다. 적어도 나는 욕을 하면서 점점 그 새끼에 대해 속으로나마 막말을 할 수 있었고, 패줄 수 있었고, 죽일 수도 있었다.

며칠 전에 아빠란 새끼한테 전화를 했다. 작년 그 사람을 우연히 마주친 이후 화가 나면 종종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따지는 습관이 생겼다.

“아가, 왜?”

“지랄한다, 그렇게 부르고 싶냐?”

“너 자꾸 왜 그래? 어디야? 술 마셨냐?”

“병신, 아주 지랄을 한다. (비웃음을 적절히 날려준 후) 나 잘 살고 있어 개새끼야. 너는 나를 사랑할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개새끼야, 진짜 괜찮은 애 만났거든. 근데 내가 부모가 제대로 없다고 걔네 부모가 결혼 반대한다, 개새끼, 너 때문이야”

“야, 아가, 왜 그러냐? 너 걔가 너 가지고 노는 걸 수도 있어. 정신 차려”

“벼~~엉~신 새끼, 그렇게 말하면 좋냐?”

“너 왜 그러냐? 아가, 지금은 아무튼 전화 끊는 게 좋겠다.” 뚝.

“병신 같은 새끼, 개새끼 지가 뭔데 전화를 먼저 끊어”

이상했다. 몇 년 만에 내가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알아내고 난 후 몇 번 전화해서 욕을 했는데 속이 참 후련하다. 내 속에 쌓인 쓰레기 같은 감정을 버려야할 곳에 버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게 됐다. 주변 사람들에게 화도 잘 내고, 신경질적이라는 평을 자주 듣곤 했는데 그들에게 가야 할 것들이 아니었다. 그 사람이 내게 쌓이게 한 분노가 엉뚱한 곳으로 튀는 것을 이제는 멈추고 싶었다.

물론 그 사람이 나를 찾아와 괴롭힐까봐 겁도 살짝 났다. 처음에 전화했을 때는 특히 그랬다. 처음 전화했을 때, 내 목소리는 떨지 않았지만 전화기를 들고 있는 내 손과 다리는 살짝 떨기까지 했다. 그런데 몇 번 전화를 해서 욕을 하기 시작하면서 겁 낼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에게 할 욕들을 종이에 글쓰기나 입속말, 머리 속 말이 아닌 소리 내어 하기 시작하니 또 다른 경지의 욕하기에 이른 듯 했다.

그 사람의 귀에 직접 욕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의 그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더 이상 내 어린 시절 막강한 힘으로 나를 마구 대할 수 있었던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개새끼를 개새끼라고 하고(나는 이 욕을 할 때마다 개한테 미안하지만 달리 무슨 욕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너 때문에 진짜 화가 났거든’을 그 사람에게 직접 전달하고 있는 지금이 참 좋다. 야, 김재섭 개새끼야!(꼭 실명으로 올려보고 싶었다)

나는 쉽사리 용서를 말하고 싶지 않다. 욕할 만큼 욕하고, 미워할 만큼 미워하고, 죽이고 싶으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죽이고, 또 죽이면서 내 속이 풀릴 때까지 원도 없이 욕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설프게 미워하고, 대충 욕하지 말고, 완벽하게, 철저하게 온 마음을 다 실어서 더 이상 미워할 힘이 남지 않을 때까지 미워하라. 욕하고, 욕하다 더 이상 어떻게 욕해야할지 이 세상에서 나쁜 표현들은 다 써버려서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때까지 욕하라.

# 싸우기

지하철을 타러 사당역에 서 있는데 어떤 술 취한 아저씨가 진한 화장을 한 내 친구에게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건넨다.

“야, 너 어디 룸싸롱 다니냐? 어디에 있냐고, 한번 가줄게“

“하지 마세요”

겁에 질린 친구 대신 내가 한마디 했다.

“아니 어느 룸싸롱에 다니냐고? 내가 한번 가준다고”

“야, 그만 하랬지? 너 성추행으로 경찰서 한번 가볼래?”

나는 겁나서 대꾸도 못하는 친구 대신 말까지 터가며 취한 아저씨에게 따졌다.

“니가 왜 그래? 얘한테 말하는데?”

“야, 얘가 룸싸롱에서 일하는 애도 아니고, 니가 뭔데 다른 사람들 있는 데서 그런 말을 해? 야, 따라와”

근데 그 술 취한 아저씨가 순순히 내 뒤를 따라왔다. 속으로는 ‘짜식 따라오란다고 따라오냐?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하고 도망갈 것이지’ 그러나 시작한 이상 그만둘 수는 없었다. 친구는 옆에서 그냥 가자고 했지만 나는 어느 새 둥근 기둥에 붙어있는 ‘지하철 수사대’에 전화를 걸고 있었다.

“여기요, 성추행 사건이 있어서요, 여기 OOO로 와주세요.”

취한 아저씨는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난리다.

“야, 앉아서 싸, 조금 있으면 경찰 오니까.”

이상하게도 그 술 취한 아저씨는 말을 잘 들었다. 의자에 앉아 경찰을 기다렸다. 조금 있으니 경찰이 왔다.

“어디 만졌나요? 어떤 성추행인가요?”

나는 술 취한 아저씨가 했던 말과 정황을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경찰은 대뜸,

“그러니까 어디를 만진 건 아니네요?”

“저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는 사람인데요, 이 사건 그냥 넘기면 저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갑자기 경찰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아, 그럼 일단 가까운 경찰서로 가시죠.”

그 사람을 끌고 작은 파출소에서 경찰서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강력반 형사가 술 취한 아저씨를 조사하고, 우리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형사는 나에게 ‘좋은 사건’ 있으면 자기에게 연결해달라며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원을 다니며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시간제로 아르바이트를 할 때였는데 명함이 있었던 덕을 톡톡히 봤던 것 같다. 우리는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으면 저 사람 그냥 안 넘어간다고 해주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왔다. 그 사람은 조그만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밤을 지새우고, 그 다음 날 우리에게 사과 전화를 하고 나서야 경찰서를 나설 수 있었다.

사실 나도 안다. 그게 그렇게 크고, 무거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그 사람은 술 취한 것을 핑계로 젊은 여성들에게 그딴 식으로 말하거나 더 심한 날은 성추행도 했을 수도 있다. 그러고도 귀찮아서, 두려워서 피해버리는 여자들만 만나왔을 수 있다. 그래서 계속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겠지. 나는 그게 싫어서 더 싸우게 되는 것 같다. 이런 싸움은 내 인생에 자잘하게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그 싸움들에서 어떤 피해도 입지 않고, 이겨왔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도와주었고, 경찰들도 순순히 내 말들을 잘 들어주었다. 싸울 때면 생각나는 그림이 있다. “오늘도 무사히”라는 문구와 함께 귀여운 꼬마가 기도하고 있는 성화다. 싸우기 전에 이 기도를 해보는 것도 좋겠다. “오늘 싸움도 무사히~”

아무튼 싸우기는 내게도 편안한 방법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필요했던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별로 사용할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소개하는 이유는 혹시 여러분 중 이런 시기를 지나는 분들이 있다면 더 열심히 싸우라고 말하고 싶어서다. 부탁이 있다면 시작한 싸움은 이기고, 다치지 않게 안전장치를 지혜롭게 마련한 후 싸우라는 것이다. 나는 싸우다 불리할 것 같으면 경찰을 부르기도 했고, 주변에 도움이 필요할 때는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소모적인 면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그 사건들을 즐겼고, 나의 힘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도 같다. 별로 권장하고 싶은 방법은 아니지만 각자의 생활 속에서 자기에게 맞게 적용해보길 바란다. 이것은 꼭 타인과의 싸움만은 아닐 수도 있다. 자기 자신과도 처절하게 싸우고, 이겨야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들이 다가오면 피하지 말길 바란다. 싸울 때는 상대가 타인이든 나 자신이든 열심히, 끝까지 싸우는 게 중요하다. 시작하다 물러서거나, 참으면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되고, 점점 위축될 수 있다. 만약 싸우기가 겁이 나면 ‘자기방어훈련’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은 힘 기르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싸우기에서는 우선 눈빛과 단단한 목소리로 상대를 제압하는 시작부터 연습해두는 게 도움이 된다.

# 따지기

‘이건 뭐 너무 쉽구만, 어떻게 상처를 입었는데 용서가 이렇게 쉬워? 쳇 상처도 받아보지 않은 저자가 썼나보네, 이거 봐, 신부니까 이런 말 써놓지. 암튼 종교인들은 너무 쉽게 용서에 대해서 말한다니까 재수 없게. 이걸 확 가서 한번 따져봐?’

<상처와 용서>라는 책을 읽던 나는 속이 부글거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나는 워낙 상처나 치유, 용서에 관심이 많아 관련 있는 책들을 찾아 읽었다. 그러던 중 당시 대학원 원장신부님이셨던 송봉모 신부님이 쓰신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상처와 용서>였다. 진부해 보이는 제목, 쉽게만 써내려간 상처와 용서를 보면서 이건 그냥 넘기면 안 되겠다는 이상한 독기가 올라왔다. 이런 글은 진짜 깊은 상처를 입어서 용서하기 힘든 나와 같은 이들을 두 번 죽이는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도서관에서 읽던 책을 집어던지고 원장실로 뛰어갔다.

“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요, 신부님“

“네? 뭐죠?”

“신부님은 상처를 받아보시기는 하고 <상처와 용서>라는 책을 쓰셨나요?”

“아, 잠깐만요, 문 좀 닫고 이야기 나눌까요?”

어느새 내 목소리 톤이 떨리며 올라가고 있었다.

“신부님은 상처를 받아보긴 했냐구요? 어떻게 그렇게 쉽게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용서를 말할 수 있는 거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다 너무 화가 나서 왔어요.”

“아, 왜 그런 생각이 들었죠? 사실 제가 그리 깊은 상처를 받아보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용서에 대해서도 그리 심각한 용서를 해야 했던 경험은 없어요. 단지 그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썼어요. 네, 제가 상처나 용서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저는 아빠란 사람에게 9년 동안 성폭행을 당했어요. 그래서 용서에 대해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우리 교회 목사님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니가 용서 안 해도 된다고 하셨단 말이예요. 그런데 신부님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나를 위해서 용서해야 하는 것처럼 말했는데 모든 상처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아, 그렇게 힘든 일이 있었군요.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해요. 상처나 용서에 대해서는 제가 잘 알아서 그 책을 쓴 건 아니에요. 미안합니다.”

자신이 상처와 용서에 대해 잘 모른다고 겸손히 말해버리는 신부님 앞에서 나는 막 따지고 싶었던 기운이 한풀 꺾였다. 책의 저자에게 따지기는 내가 즐기는 습관 중에 하나다. 집에서 나온 이후 상처, 치유, 용서에 대한 책들을 많이 찾아 읽곤 했다. 그럴 때면 책의 빈 공간 곳곳에 빼곡이 글을 썼던 기억이 있다. 그 내용들은 이렇다. ‘치, 이건 당신 생각이지, 용서가 그렇게 쉬울 것 같으면 누가 못하냐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는 내 시간에 맞출 거야, 무조건 빨리, 나를 위해서라도 빨리 용서하라고? 안 되면 못하는 거지, 일단 미울 때는 미워할 거야……’ 등등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쓴 글이라도, 아무리 훌륭한 사람의 생각이라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받아들이고, 소화해나가는 것이 나의 치유에는 도움이 되었다. 세상 그 누가 말해도 나의 생각, 기준에서 따지고, 또 따져보자. 그 사람이 내 인생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내 인생 내가 사는 데 나만의 방식이 있어야할 것 아닌가. 직접 책의 저자를 찾아가 따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나에게도 신선하고,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다. 일단 그 신부님의 반응이 좋아서 그런 것도 같다.

독하게 욕하고, 처절하게 싸우고, 건방지게 따지는 시간을 통해 당신 안에 눌리고, 감춰진 감정들을 표출해내는 시간을 충분히 가지길 바란다, 당신의 상처가 잘 익어가도록.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수의 방법’들이다. 당신만의 방법으로 치유의 길을 걸어가길 바란다.

상처에 대하여

복효근

오래 전에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젊은 날 내내 속 썩어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요즈음 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
하다못해 상처라면
아이들의 여드름마저도
초여름 고마리꽃을 닮았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괸다.
오래된 누이의 화상을 보니 알겠다.
향기가 배어나는 사람의 가슴속엔
커다란 상처 하나 있다는 것

잘 익은 상처에선
꽃향기가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