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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담은 도시 공간을 만들어내려면 -『공간, 육체, 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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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임 생각

상상력을 담은 도시 공간을 만들어내려면
-『공간, 육체, 권력』- 강내희

⊙ 소모임 <토닥 스터디> 회원 토리

과거 노동자 수기에서 서울로 대표되는 ‘도시’에 대한 이미지는 두려움과 희망이 이중적으로 교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자본과 신기술이 집중되는 공간에선 관계나 공동체보다 개인에게 귀속 될 이익이 중요했다. 알아두면 편리할 ‘서울의 문화’들도 나날이 새롭게 등장하여 도시에 익숙한 몸과 생활방식을 말하는 ‘서울 사람’은 모두가 따르면 좋을 기준이 되어갔다.

여기서 ‘도시’는 마치 무한한 자원을 가진 신대륙을 상징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제 사람들은 국경과 바다를 넘어 더 먼 신대륙을 찾아 이동한다. 그러나 그 이동이 신대륙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만큼 희망적인 것은 아니다. 새로운 공간에선 새로운 공간의 문법에 맞추어 이전의 나를 변화시켜야 하며, 정착과 탈락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텨내야한다. 한편 하이퍼(?)신대륙을 경험하고 온 사람들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 자신들만의 공간을 만들고, 또 다시 그 공간을 욕망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소비재들을 등장시키기도 한다. 서울은 이러한 방식으로 다양한 지역의 공간의 문화들을 빠르게 조합해 가고 있다.

『공간, 육체, 권력』이라는 책은 성인 지식인 남성의 시각에서 본 90년대 초반 서울의 공간적 변화들에 대한 분석집으로서, 도시-서울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현대 사람들에게 그 공간들의 역사와, 변화의 의미를 해독할 수 있게 해주는 지침서 역할을 해준다.

우리가 많은 부분 ‘문화’라고 말하는 현상들의 대부분은, 사회의 권력구조와 그 속에 귀속된 다양한 계급의 사람들의 행동양식으로 바꿔 말함으로써 인식의 전환을 가져올 수 있고, 보이지 않던 사회 곳곳의 귀퉁이들을 발견해내게 한다. 이러한 면에서 저자가 말하는 ‘공간의 공개성과 민주성’은 우리에게 새로운 언어를 갖게 한다. 우리가 머무르고 움직이는 도시 공간, 특히 ‘거리와 광장’은 분명한 공개성을 지니며 누구나 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아무리‘공용’의 공간이라 하더라도, 어떤 사람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많이 대입되었는가 고민해본다면, 과연 공개성이 반드시 민주성일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서울시청 광장이 만들어진 이래로 그곳이 민주성을 띄었던 적은 없었다. 어쩌면 우리의 촛불시위가 (정부가 말하는) 도시 문법의 전복을 가져올 수 없었던 것은, ‘문화 집회’라는 - 집회를 둘러싼 일부 사람들의 욕망만을 표현하는 수식어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매년 상담소가 함께 하고 있는 밤길되찾기시위는 그러한 면에서 가장 솔직하고 분명하게, 공개적인 공간에 감춰진 비민주적 속성들을 이야기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대단히 큰 착각에 빠져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성들이 기존의 남성연대 사회의 언어들을 비판하기 시작했을 때, 공간을 쟁취하는 투쟁은 함께 존재했다. 공간의 위치, 성격에 따라 여성들은 남성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 공간을 인식하고 사용하고, 때론 접근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대로 공간과 육체와 권력이 맞물려 움직이는 것이라면, 그 속에서 젠더가 매우 중요한 작용을 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도심 거리에 모인 사람들

지금 우리는 광장의 사라짐을 보고 있지만(최근 생긴 광화문 광장을 ‘광장’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약 20년 전 서울은 ‘거리’의 사라짐을 목격해야 했다. 사적 용도의 건물들이 거리를 새롭게 구획하였고, 잠재적 광장의 역할을 하던 거리는 법과 제도가 적용되어야 하는 위험한 공간이 되었다. 이처럼 문법과 구조를 중시하는 ‘도시’에서는, 자유로운 움직임과 상상이 가능했던 공간들은 끊임없이 성격을 바꾸거나 사라진다. 어떤 이슈이든 ‘공론의 장’의 필요성은 지식적이고 심정적인 연대는 물론, 우리가 직접 몸으로 느끼고 보는 물질적인 공간을 어떻게 마련해 나아갈 것인가가 함께 이야기되어야 하지 않을까.

소모임 생각
‘소모임 생각’은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소모임들이 돌아가며 그간의 만남을 통해 길어낸 생각들을 풀어내는 꼭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