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성폭력에 대한 분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소장 이윤상
아동성폭력 피해자 ‘만’ 보호하라?
지난 해 조○○ 사건으로 불리운 아동성폭력피해 사건이 국민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으면서, 언론은 대대적으로 성폭력 문제를 다루었고 정부는 대책을 내놓기에 분주했다. 관계 전문가나 반성폭력 운동단체들도 의견을 내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피해자가 아동이었다는 사실 때문일까? 정부 관련 부처에서 내놓은 정책을 보면 아동성폭력 가해자는 엄중 처벌하고, 아동성폭력 피해자는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국회의 움직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조○○ 사건이 여론화 된 이후 제기된 수많은 개정안들은 감경사유배제, 형사사법절차에서의 피해자 권리 및 보호방안 등 오랫동안 반성폭력 운동현장에서 주장해왔던 내용들을 대폭 포함하고 있으나, 모두 아동성폭력 피해에 한정하고 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까닭
반성폭력 운동진영에서는 성폭력이 개인이 운이 없어 느닷없이 당하는 피해가 아니라, 불평등하고 성차별적인 사회구조 때문에 발생하는 폭력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왔다. 대다수의 피해자가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라는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더는 논증이 필요 없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성폭력은 단순히 치안 강화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는 범죄가 아니다. 약자에게 성적 폭력을 손쉽게 행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를 의심하고 비난하는 이 사회의 인식을 변화시킬 때에만 성폭력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 있다. 반성폭력 운동이 통념에 맞서고 부당한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고 균열을 내면서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에 집중하여 온 까닭이다.
이 운동은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가 피해라는 것을 주장하고 인정받는 ‘투쟁’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성의 조금 난폭한 성행위는 남성답고 주도적이며 통제할 수 없는 욕정에 따른 것이라는 믿음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하여 지배하는 가부장제 전략의 산물이다. 그러니 술을 마셨으면 그건 욕정을 통제하지 못한 결과이기 때문에 봐줘야 하고, 사활을 건 저항이 없었으면 그건 충분히 헷갈리게 했으므로 오히려 상대방인 여성이 빌미를 제공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는 통념은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만 하고, 반성폭력 운동은 이 통념을 깨야만 하는 사명을 안고 있는 것이다. ‘성관계’ 혹은 ‘화간’이 아니라 ‘강간’이었다는 주장 자체가 남성중심적 규범과 질서로 다져진 이 사회에 대한 반론이며 투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녹화진술이나 음주감경배제 등은 형사사건 피해자의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보편적 조치일 수도 있지만, 반성폭력 운동가들이 이 문제를 핵심적으로 제기해온 데는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다. 끊임없는 피해자 의심과 비난이 멈추어야 피해자의 목소리가 들리고, 성폭력의 문제를 술과 욕정의 문제로 환원하는 통념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아야 성관계가 아닌 성폭력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만 인권침해를 이야기할 수 있고, 가해자에게 정당한 처벌을 가할 수 있으며, 성폭력이 사회문제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아동 보호로 둔갑한 피해자 권리
아동같이 성적 의도에 의심의 여지가 없고(아동은 무성적인 존재라는 믿음), 연령차나 사회경제적 의존도 등에 의해 취약한 존재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회적 약자에만 ‘보호받을 권리’를 한정한다면, 이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는 수많은 경우는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기 위한 투쟁을 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아동성폭력 가해자에게만 음주에 의한 심신미약을 인정할 수 없다면, 결국 부부강간, 데이트 성폭력 등과 같이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 성폭력, 함께 일하는 동료나 상사로부터 발생한 직장내성폭력 등 일상에서 너무나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폭력의 피해자는 계속되는 술 공방, 욕정 공방(성폭력으로 기소된 사건의 판결문에 ‘욕정에 못이겨……’라는 표현이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에 더욱 강도 높게 시달리게 될 것이다. 피해자의 태도, 이해관계, 저항여부는 계속해서 의심받을 것이며, 여기서 사회적 권력과 불평등의 문제는 모두 삭제된다.
아동성폭력에 대한 분노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형벌을 강화하자는 여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뜨거운 여론의 관심을 받았던 사건들은 모르는 사람에 의한 범죄, 심각한 신체적 후유증을 남기는 범죄 등이었다. 대부분의 성폭력은 아는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고, 장기적/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가해행위는 때에 따라서는 법적 구성요건을 만족시키지 못하기도 하고, 둘 사이에서만 발생한 폭력이라 물적 증거를 대기조차 어려운 경우도 많다. 무거운 양형의 부담을 안고 더욱 엄격한 잣대를 사용할 재판부를 생각하면 형량 상향이 실제로 피해자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현장에서는 고소할 용기조차 내지 못하는 피해자, 어렵게 용기를 냈지만 한발 한발 내디딜 때마다 각종 의심과 비난에 시달리는 피해자, 무고죄와 명예훼손의 공포에 떠는 피해자의 모습에 답답하고 안타까운데 말이다. 어린 나이에 시작된 피해가 10대, 20대까지 이어지는 경우에도 피해자는 의심의 눈길을 먼저 받아야만 한다.
탈정치화되는 성폭력 문제
아동성폭력에 대한 분노가 거칠고 클수록 성폭력은 나와 무관한 사건이라는 가정이 더욱 견고해지기 마련이다. 성폭력 가해자는 모두 정신이상자라는 둥, 애들을 상대로 그러는 사람은 교정이 불가하니 아예 거세를 해야 한다는 둥, 비정상인에 의한 예외적인 사건이라는 전제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의 일상을 성찰해보는 기회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이번 아동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천인공노할 노릇이라며 분노하는 글은 숱하게 보았지만, 나의 동료, 친구, 부하직원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또 나의 직장, 가정, 학교의 문화를 뼈아프게 성찰하는 글은 본 적이 없다.
보호의 대상인 아동에게만 피해자 지원책이 전면 손쉽게 수용됨으로써 ‘권리’를 통해 성폭력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고 성차별적 사회질서에 균열을 내고자 했던 애초의 계획은 무산되고 성폭력 문제는 극심하게 탈정치화 된다. 성폭력 문제에 대한 온갖 정체 불분명한 공포심과 사회에 대한 불신 외에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이 무엇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