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 치유비법 3‘투자’
⊙ 水
# 돈
모든 게 비용이 드는 것 같다. 치유의 과정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 돈이 없다면 치유의 과정도 어렵단 말인가? 솔직히 말하면 그럴 수도 있는 것 같다. 빚을 내서 하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수입 범위 내에서 투자를 하라는 것이다.
그 사건으로부터 빠져 나온 지 17년이 된 지금까지도 나는 개인상담을 받고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치유를 위한 과정에서 볼 때 개인상담은 치유의 초기단계에서도 필요하지만 치유의 과정 중에도 필요하다면 언제든 받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개인상담은 찬찬히 자기 기억을 풀어내보고, 그때 느꼈을 나의 감정들을 세밀하게 살펴주는 과정이다. 힘들어도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견디며 살아남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던 나에게‘그때 정말 힘들었다, 아팠다, 죽여버리고 싶었다……’의 여러 감정들을 쏟아내는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상담비가 많이 들긴 했지만 그만큼의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친한 친구가 해주기에는 너무 버거운 어떤 부분이 있기에 친밀하면서 무엇이든 털어놓을 수 있는 편안한 개인상담자를 두는 것은 치유의 과정을 한결 수월하게 한다.
그런데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돈이 없을 때가 있었다. 나는 상담자에게 아주 솔직하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상담을 계속 받고 싶은데 앞으로 몇 개월 간 돈을 못 벌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죠? 상담비를 지금처럼 내야하면 못 다닐 것 같아요. 근데 상담은 계속 받고 싶어요.”
선생님은 기존 상담비의 1/3로 해주시고, 계속 상담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셨다. 방법을 찾으면 어떤 식으로든 찾을 수 있다. 요즘은 성폭력피해자 치료비가 지원되기 때문에 상담소를 통해 지원을 받아도 도움이 될 것이다.
치유글쓰기 워크숍을 배울 때도, 스토리텔링을 배울 때도 내 문제를 어떻게 글로 풀어갈까 고민하며 각 과정을 배울 때 돈이 들었지만 아끼지 않았다. 돈과 함께 투자되어야 하는 것이 시간과 나의 정신이다. 나에게 소중한 것들을 나의 치유를 위해 투자할 때 투자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의 진전이 있을 것이다. 가해자를 죽도록 패거나 심지어 죽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하다보면 돈은 없는데 정말 하고 싶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 쉽게 포기하지 말자.
몇 년 전 사이코드라마를 다닐 때는 워크숍 비용만 해도 적게는 20만 원에서 40만 원이었다. 버는 족족 프로그램 참여에 바치던 때였다. 사이코드라마를 하는 디렉터가 지방에 있어 KTX 요금으로 사용한 돈도 한 두 푼이 아니었다. 당시 100만원 남짓의 월급생활자인 나로서는 나의 치유를 위해 수입 중 절반 이상의 매달 투자한 셈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사이코드라마를 디렉팅 하는 날이 되었다. 모든 교육참여자들은 자신이 디렉팅을 처음 하는 날, 기념으로 20명 남짓의 같이 배우는 사람들에게 저녁식사 대접과 2차, 3차까지 대접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디렉팅을 하는 것보다 나는 밥과 2차, 3차를 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일주일 내내 고민하던 나는 선생님에게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저요, 디렉팅 마치고 밥 살 돈 5만 원 밖에 없어요. 그게 제 최선이고, 이 이상 드는 비용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5만 원에 맞는 밥집을 소개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런 걱정하지 말고 그냥 와”
나는 디렉팅하는 내내‘아 20명한테 5만 원으로 누구 코에 붙이냐…….’걱정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여느 때와 같이 우리를 삼겹살집으로 안내했다. 일단 먹고 싶은 만큼 삼겹살을 먹었다. 나는 일을 벌일 때 뒷일은 잘 걱정하지 않는 편이다. 일단 내 뱃속에 들어간 거 누구도 못 꺼낸다는 식철학이 있었던 나는 맛있게 열심히 먹었다.
선생님이 조용히 나를 불렀다. 귓속말로“5만 원 나한테 주고, 뒷일은 걱정하지 마. 내가 알아서 할께”라고 말해주셨다. 선생님께 5만 원을 넘긴 후 난 속이 다 후련했다.
그러고 나서 2차, 3차를 마음 놓고 갔다. 그러다 그만……. 나는 소주 3잔에 필름이 끊기고 말았다.
나는 평소에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고 말았다.
“○○○, 우리나라에서 사이코 드라마 제일 잘한다고 생각하지?”
“언니야, 언니는 남편이 교수지 언니가 교수야? 왜 교수처럼 보이고 싶어해?”
“그리고 언니는 좋겠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 가지고 이런 데 와서, 난 여기 다니면서 생활비가 모자라. 돈 걱정 없어 좋겠어.”
“난 내 상처 때문에 왔는데, 오빠는 뭐 정신과 의사라 이거 환자한테 써먹으려고 왔어? 다들 배가 불러가지고. 이런 데 왜 오고 난리야?”
(*그들의 대답이 걸작인데……. 그들의 사생활보호를 위해 흘릴 수 없어 아쉽다.) 나는 할 말 못 할 말 막 했다. 그때 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난 돈 없으면서 이렇게 당당한 것 처음 봤네. 얘가 뭐랬는지 알아? 지난주에 나한테 전화하더니 자기는 5만 원 밖에 없으니까 5만 원에 맞춰달라는 거야. 근데 그 말하는 게 너무 당당한 거야. 너 오늘 하고 싶은 말 다해봐. 여기 있는 것들한테 다 해봐.”
난 그날 완전 신나서 하고 싶은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속이 다 시원했다.
돈이 없어도 돈 없음으로 기죽지 않고, 약간의 똘기를 발휘하면 오히려 신나고, 멋지게 살 수 있다. 나를 위해 필요한 투자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만큼 최선을 다해 투자하고, 없지만 꼭 하고 싶다면 여러모로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아무튼 돈이 가는 곳에 마음도 가고, 마음을 다하는 투자는 효과가 있기 마련이다.
# 식食 & 의衣
“얘는 돈은 없어도 입은 고급이야”
내 친구들이 나의 식생활에 대해 놀릴 때 하는 말이다. 나는 먹는 것 하나를 고를 때도 어디 것인지, 농약은 얼마나 사용한 농산물인지, 식품첨가물은 어느 정도 들어갔는지 꼼꼼하게 살펴보는 편이다. 나는 나를 소중하게 대해주고 싶은 마음에 돈이 더 들더라도 생협의 유기농 또는 무농약 농산물을 주문해서 먹는다. 소고기 버거 하나를 먹을 때도 어느 나라 소를 사용하는지 꼭 물어본다. 친구들 말대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아니라서 엥겔지수가 높은 편이지만 나는‘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내가 나를 귀하게 여겨주어야지 하는 마음에 먹을거리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먹는 것뿐 아니다. 이번 겨울 너무도 추운 저녁이었다. 천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발이 너무 시려워 서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추워지면 눈물이 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어그 부츠 매장으로 가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츠를 골랐다. 그런 후 아주 조금 망설인 후‘난 이정도 대접은 받을 자격이 있어’하는 마음으로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유난히 추운 날이 많았던 올 겨울 나는 어그부츠 덕분에 따뜻해서 행복했다. 어그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후 왜 진작 몰랐을까 싶을 정도였다. 나는 이런 식으로 내가 어린 시절부터 귀하게 대접받지 못했던 것을 보상해주려고 스스로 노력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것이 비싸더라도 다른 사치를 포기하고, 그것에 투자했다. 나를 강하게 보이게 해주는 색상의 옷을 사는 데 한동안 꽂혔던 때도 있었다. 또 혼자서 비싸고 맛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서빙을 받으며 스테이크를 썰기도 했다. 나는 특히 글을 쓰는 지금 같은 때는 내가 평소에 가고 싶었던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혼자 따뜻한 허브차에 스콘을 먹으며 글을 쓰는 지금 내가 멋있어 보이고, 괜찮아 보인다.
그러나 나는 원칙이 있다. 매달 수입을 넘어서는 지출은 없을 것, 신용카드 쓸 때는 보유한 자산에서 충당할 수 있는 만큼만 선결제할 것, 의생활에 지출이 많은 달은 식생활을 줄이고, 식생활에 지출이 많은 달은 의생활에서 줄일 것 등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있어 빚을 지지 않는다는 대전제를 늘 지켜왔다. 그래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 같아 그렇게 해왔다.
# 타인
내가 할 수 있는 투자에는 한계가 있다. 내가 가진 자원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투자를 유치하는 것 또한 나의 치유에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좀 이기적이고, 뻔뻔하게 보이더라도 나는 그만큼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타인이 나에게 투자할 수 있는 것은 물질적인 것부터 정신적인 것까지 다양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 투자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한 투자를 도움으로 여기며 비참해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비관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일이다. 학교에서 하는 영어캠프에 참여하고 싶었다. 참가비가 비싸서 이리저리 마련해보았지만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기숙사로 들어가던 길에 총장님을 만났다. 총장님은 평소 인사를 나누고, 짤막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였는데 그날은 기숙사를 한번 둘러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럼 제 방으로 초대할게요. 제 방 친구들이 깜짝 놀라겠는걸요.”
여대생 4명이 함께 쓰는 좁은 방으로 초대받은 총장님은 우리가 대접하는 따뜻한 차 한 잔과 과자 조각을 맛나게 드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겨울방학 영어캠프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방학 때 고향집에 내려가지 않으면 겨울 영어캠프에 참여해보는 건 어때요? 이번에 미국에서 특별히 모시고 온 선생님이 심혈을 기울이시는 것 같던데.”
“그렇잖아도 저도 하고 싶어서 알바해서 돈도 좀 모았는데요. 너무 비싸요. 이제 겨우 절반 밖에 못 모았는걸요. 정말 하고 싶은데…….”
“아 그래요? 그럼 이 돈 봉투가 그래서 생겼나? 내가 어디 가서 강의를 하고 왔더니 이걸 흰 봉투에 넣어서 직접 주던데 세어보지도 않고 양복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는데 이거라도 보태요. 어때요? 받아줄래요?”
“어? 정말 저 주시는 거예요? 고맙습니다. 전 거절 안 해요. 잠깐만요. 얼마인지 세어볼게요. 하나, 둘, 셋……. 서른. 우와 저한테 필요한 30만 원 맞네요. 고맙습니다. 영어캠프 참가할게요. 열심히 공부할게요.”
총장님을 보낸 후 같은 방 친구들은 어떻게 그 돈을 그 앞에서 세어보냐고 했다. 아무튼 나는 그분의 투자로 영어공부 한 자라도 더 했고, 지금까지도 영어캠프에 참여했던 좋은 추억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돈이 없어 못할 것들이 많았던 순간들 그때그때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나 나에게 직접 돈으로 투자해주었던 이들이 꽤 있다. 그분들의 투자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타인의 투자는 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이들을 만나 사랑을 듬뿍 받는 것도 좋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대해 기본적인 신뢰가 없던 나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주는 친구들의 사랑으로 인해 사람들을 조금씩 신뢰하게 되었다. 사랑으로 채워야할 공간은 사랑으로만 채워지는 것 같다.
연인과의 관계는 정말 더 어려웠는데……. 이건 또 설을 풀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에 여기서는 요점만 말하고 싶다. 모든 사랑은 아프다. 그러니 일단 사랑할 기회가 오면 겁내지 말고, 당당하게 사랑부터 하고 보는 게 남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 것만큼 영혼을 성숙하고, 풍성하게 하는 것도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특히 나는 사랑받는 것에 있어 내가 잘 주지 못해도 미안해하기 보다는 고마워하며 그 사랑을 받아들이곤 했다. 이기적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부족한 내 사랑의 공간을 채워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나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을 만큼 풍성해졌다.
사람마다 다 때가 있는 것이니 내가 별로 주는 것 없이 받고 있다고 너무 미안해하지 말자. 타인의 투자를 넉넉한 마음으로 받을 줄 아는 것도 치유를 위한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水의 한마디
요즘은 직장에 일이 바빠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옛 사람들, 옛 일들을 떠올리는 지금 이 시간이 참 감사하다. 그래……. 그래……. 지금의 내가 그냥 있는 게 아니구나. 나 혼자 된 게 아니구나. 당신의 치유를 위한 투자유치를 해보라. 의외로 많은 이들이 당신을 위해 각자가 줄 수 있는 것들을 내어놓을 것이다. 당신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