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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자기방어훈련을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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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야기

내가 자기방어훈련을 하는 이유

날_해

#1 운전강사를 처음 만났다. 50대쯤 되보이고 장신구는 전부 금이다. 칭찬을 한다.‘예쁘게생겼네ㅋㅋ‘’아감사해요’운전대에 손을 올린다.‘아니위를잡으라고‘’아네‘’아니이쪽이쪽’. 손을 잡는다. 축축하다. 언덕코스다.‘여기선차체의떨림을느껴야해눈을감아봐‘’네?‘’왜?이렇게뽀뽀라도할까봐?’얼굴이 가까워졌다 멀어진다. 직각코스.‘자저기안내선이랑니어깨랑일직선이되야해‘’아이렇게요?‘’니어깨는거갔니뒤로기대서다시한번봐봐’어깨를 만진다. 조물조물. 한마디 대꾸도 못한다. 좁은 공간. 남자 둘. 적나라한 스킨십.

#2 방 안에 박스들이 쌓여있었다. 이삿짐센터 팀장이 내방을 담당한다. 40대 후반의 커다란 아저씨. 옷이 많은걸 신기해한다.‘넌어떻게형보다옷이네배는되니‘’제가형인데요‘’아냐니가귀여우니까동생해’무슨 말이 하고싶었던 걸까. 이래저래 새집으로 먼저 도착했다. 이삿짐 차도 곧이어 들어온다. 팀장이 내린다. 엄마와 내가 인사를 한다. 팀장이 나를 껴안더니 들쳐메버린다.‘가볍네’웃어야 했다. 낯선 공간. 가족들 앞.

#3 너무 춥던 이사 다음 날, 두 시간 떨어져 있는 치과를 갔다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내려 택시를 타야 한다. 택시승강장에서 10여 분째, 택시가 안온다. 할아버지가 택시승강장 쪽으로 걸어온다.‘학생,어디까지가?‘’당산이요‘’나영등포시장가는데같이타고가지않을래?‘’아네뭐그래요‘’학생이니까내가2천원낼게.영등포시장은기본료도안나와‘’아네알아서주세요‘’고마워.택시타면택시기사한테둘러대기나잘하자고. 나를삼촌이라고부르면의심안할거야’할아버지의 임기응변에 감탄하며, 굳은 택시비에 기뻐하며 함께 택시를 잡는다. 택시를 타면서 할아버지의 은밀한 싸인, 엉덩이 툭툭.

삼 년 전쯤? 왔다갔다 하던 여성주의공간에서 처음으로‘자기방어 훈련’이라는 말을 들었다. 성폭력 피해생존자로서의 정체성을 갓 가지기 시작한 나로서는 당연히 함께 하려고 했는데, 헌데‘우리는 괜찮은데, 다른 여성들이 불편해 할 것 같아.’라며 양해를 구해왔다. 여성주의자가 되어가던 중이었고,‘다른 사람들이 그렇다면 당연히 난 같이 안 하는 게 맞지.’라며 일말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딱히 그 당시의 상황이 배제의 경험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도 못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이나 프로그램이 열릴 때마다 신청했지만 번번이 같은 이유로 거절당했고, 그때마다‘아 그런가보다.’싶을 뿐이었다. 근데 마지막으로 거절당한 작년 구월 쯤, 빵 터진 것 같다. 도대체 내가 왜?

‘남성’이라는 권력과 역할을 버려가면서 살아가는, 남성으로 보이는 나의 일상의 경험을 꺼내기 시작해 보니 와, 예상했던 것보다 나는 많이‘이성애/비장애남성적 폭력’의 대상이었다.‘진짜 남성’이 되지‘못’한(=여성스러운, 약한, 흐물흐물한) 남성(처럼 보이는 사람)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폭력이 참 쉽게 나타난다.

진짜 남성이 되어야 한다는 전제. 진짜 남성이 되려면 맞아보기도 해야 하고, 싸워보기도 해야 한다는 의로운(!) 마음에 건드린다. 자기와 같아야 하는데 다르니까 그냥 짜증나는 마음에 건드린다. 자기보다 약하기 때문에 그냥 심심해서 건드린다. 때려도 되는 대상(남성)이기 때문에 또 건드린다. (적어도 그들이 믿고 있는‘진짜 여성’을 때리는 건 죄악으로 읽히나 보더라. 뭐 그렇다고 안 때리는 것도 아니다. 뭐냐 너네 정말!) 아무튼 오만가지 이유로‘남성’을 때리는 죄책감을 한껏 덜며 마음껏 건드린다. 건드린다는 건 때린다, 폭력적인/음흉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만진다 등을 포함하고. 나는 항상 남성의 모습을 한 (따라서 폭력을 행한다 해도 도덕적인 제제를 받지는 않는) 여성으로 위치지어지고, 판단되어왔던 것 같다.

결국 누가 더‘진짜 남성’으로 여겨지느냐에 따라 폭력의 사용자가 정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이성애/비장애‘정상’남성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구도라고 하면 될까. 하지만 이 길고 긴 말을 고민없이‘남성가해자’/‘여성피해자’로 명명하면서‘남성이절대로아닌건아니지만그렇다고남성은더더욱아닌 나’는 어느 곳에서나 배제된다고 느끼게 된 것 같다.

(물론‘여성’이 폭력에 노출되어있다고 말하는 것이 은폐되어있던 수많은 가부장적, 남성중심적 구조들을 드러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 유의미한 명명인 것 같기도 하고.)

폭력의 개념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당연히 폭력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않을 것이 기대되는 대상인 여성이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기존의 폭력의 개념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거라고 한다. 그런데 이 문장에 있는‘여성’에‘나’를 넣어도 기가 막히게 말이 되었다!‘폭력이 기대되지 않는“여성”’의 범주가 확 넓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서 다 다른 생각인데, 아마 우리가 나쁘게 쓰는‘폭력’앞에는‘비장애/이성애 남성적 폭력’이 생략 된 것 아니었을까, 하는 거다.

고민하다보니 나 같은‘남성(의 형상을 한) 동지’들이 꽤 많을 것 같다. 그래, 또 같은 결론이다.‘남성(의 형상을 한 사람)’을 너무 쉽게 배제하면 많은 고민을 놓치게 되는 것 같다.‘남성(의 형상을 한 사람)’과 함께할 수 있게 함으로써 우리가 자기방어훈련을 통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는 폭력의 개념을 재구성하는 주체를 확장해야 한다. 그간‘여성’으로 대표되어왔던 폭력의 대상에‘진짜 남성이 되지 않는, 남성의 형상을 가진 사람’도 포함시켜야 한다. 우리가 놓쳐왔던 또 다른 수많은 폭력의 대상들을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이렇게 저렇게 사람들을 꼬드겨 완전변태1에서 자기방어 훈련을 해 보기로 한 이유다. 맞다, 내가 당신들을 꼬셨다. 책임은 안 진다! 그치만 재밌을 것 같지 않나?!

완전변태 웹진 <내 몸이다> 지면
<내 몸이다> 자기방어훈련 프로그램 포스터

이 글은 완전변태 웹진 2호‘내몸이다’와 퀴어 퍼레이드에 맞춰 나올 2010년 정기호에 실릴 예정입니다.

1 완전변태 : 성소수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읽고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모인, [망할 세상을 횡단하는 LGBTAIQ, 완전변태]입니다. wanbyun.org의 6번 메뉴를 읽어주면 몹시 고마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