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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서 부쳐온 힘나는 이야기-『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 여성소설읽기모임 해밀
소모임생각

지구 반대편에서 부쳐온 힘나는 이야기
『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 여성소설읽기모임 해밀

『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는 열세 명의 라틴 아메리카 여성작가들의 단편소설을 모은 책이다.‘개인 속에 함몰된 하찮은 이야기’를 양산하는 한국 여성문학계에 귀감이 되기 위해 번역 했다는 옮긴이의 말이 허튼 소리라고 소설들이 스스로 증명할 만큼, 한 편 한 편이 모두 매력적인 이야기들이다. 그 중 어렵사리 두 편을 골라 보았다.

『난 여자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책 표지

훌륭한 어머니처럼 - 훌륭은 개뿔

짧은 소설 분량 내내 아이들은 거의 악마처럼 엄마를 오븐에 밀어 넣고, 깨진 유리조각위로 넘어뜨리고, 발을 삐게 하며 괴롭힌다. 참다못한 엄마가 아이들을 때리는 순간 그녀의 머릿속에 스친 생각은‘훌륭한 어머니’라면 이렇게 아이들을 혼냈을까 하는 것이다. 그때 뿐만이 아니다. 식료품을 배달시키면서도, 아기에게 일회용 기저귀를 사용하면서도, 그녀는 끊임없이‘훌륭한 어머니’를 떠올리며 자책한다.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의 이야기가 어쩜 이렇게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 같은지. 나도 내 친구도 우리 엄마도, 어디에도 존재 하지 않는 착한 딸, 훌륭한 어머니, 알파 걸이 되려고 낑낑거리며 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뿐이 아니다. 아이들의 끊임없는 폭력처럼, 이곳에도 숨을 고를 틈조차 주지 않고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일들이 가득하고, 분한 마음에 짱돌이라도 들고 던져보지만, 이내‘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하고 자책하는 모습마저 슬프도록 닮아있다. 믿었던 아기의 손톱에 엄마가 각막을 다치는 마지막 장면을 읽고, 약간은 우울해진 마음을 위로해 준 것은‘입 다문 마을’이었다.

입 다문 마을 - 닫혀있던 기억 열기

‘산타 마리아 델라 벤디시온’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그곳은 혁명군이 해방시킨 영토의 첫 방어선이었지만, 정부군에 의해 주민들은 모두 몰살을 당하고 마을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오늘부터 산타 마리아 델라 벤디시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군의 명령에 따라, 주변 마을 사람들조차 그곳을 기억에서 지우고, 모두 입을 다문 채 잊기 위해 살아간다. 그렇게 산타 마리아 델라 벤디시온은 완전히 사라진 듯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기억을 잃은 한 남자가 나타나면서 사정은 달라진다. 그는 모두 잊은 산타 마리아 델라 벤디시온을 기억하고, 그곳에서 벌어진 참혹한 폭력을 기억하며, 마침내 그곳의 사령관이었던 아벨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똑똑히 기억해 낸다. 그 순간 그를 뒤쫓은 정부군의 총알에 아벨은 죽지만, 이제 산타 마리아 델라 벤디시온은 다시 존재하게 된다.

아벨이 자신의 이름을 또렷이 기억해내는 장면만큼이나 인상 깊었던 것은 잊기 위해 살아가는 ‘입 다문 마을’, 산헤로니모의 모습이다. 기억과 말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어서, 주민들은 사랑하는 이들이 살았던 산타 마리아 델라 벤디시온을 잊기 위해 모두 굳게 입을 다문 채, 우울함과 두려움 속에 매일을 보낸다. 훌륭한 어머니가 되라는 둥의 당치도 않는 명령과, 크고 작은 폭력에 지쳐 차라리 입을 다문 내 모습이 자연히 떠올랐다. 말도 안 되는 일은 연일 일어나지만, 한편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상에 젖은 한국의 모습도 겹쳤다.

하지만 아벨이 그와 마을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산타 마리아 델라 벤디시온이 다시 제 자리를 찾는 것처럼, 말도 안 되는 명령들을 기억하고 이야기 하는 것 또한 내 자리를 찾기 위한 길의 일부가 아닌지 위로해 본다. 열세 편의 소설과‘지붕 뚫고 하이킥’과 어린 시절 친구들 이야기를 오가며 진행 되었던 소모임원들의 열띤 대화도 역시 제 자리를 찾기 위한 중요한 여정일거라고 믿는다. 어쩌면 이렇게 여자들이 말하고 글 쓰는 것이야 말로, 이 책의 옮긴이와 같은 이들이 가장 두려워한 일이 아닐까 하며 글을 맺는다.

꿈을 꾸고 희망을 잃지 않는 능력은 젊은이들의 특권이며,
글을 쓴다는 것은 바로 꿈을 쓰고 희망을 갖는 행위이다.
글을 쓰는 데는 여러 동기가 있지만, 나는 젊음을 간직하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죽음을 극복하기 위하여 글을 쓴다.
- 비비아나 메예트, 작가의 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