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
  • 열림터
  • 울림
  • 울림
  • 열림터
  • ENGLISH
친고죄 폐지가 먼저다
  • 사무국장 김민혜정
기획특집 _ 친고죄 폐지가 필요한 이유

친고죄 폐지가 먼저다

사무국장 김민혜정

지난 3월 31일, 제288회 국회 본회의에서는 4개 법률, 33개 이상 항목에 달하는 성폭력 관련 개정안이 통과되었다.1 2년전 발의된 후 잠자고 있던 법안부터 최근 발의된 법안까지 긴급히 처리되었다. 이 중에는 오랫동안 요구하고 기다려왔던 내용도 있다. 예컨대 친족의 범위를 2촌 이내의 인척에서 4촌 이내로 확장하여 고모부, 이모부에 의한 가해도 가중처벌할 수 있게 되었고, 미성년자의 경우 공소시효가 성년이 될 때까지 정지되어, 미성년 피해자가 추후에라도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헌법소원 공익소송, 서명운동 캠페인을 해온 지난 노력이 반영된 결과일까.

그러나 개정결과의 면면을 살펴보면 마음이 착잡하다. 조OO, 김OO 사건 이후 성폭력 개정안들이 우후죽순 쏟아졌으나 성급하거나 표면적이라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전자발찌 부착가능기간이 10년에서 30년으로 상향되고 재범자 뿐 아니라 초범자에게도 부착 가능하게 되었으며 살인죄에도 확대했는데, 면밀한 검토나 토론은 거의 없었다. 성폭력 발생을 전자발찌가 막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전자발찌 만능론’이 왜곡되게 재생산되고 있고, 위헌소지 논란은 법 적용 현장에서 피해자에게 부담으로 전가될 수 있음에도 과감한 개정은 강행되었다. ‘묻지마’ 개정은 늘어가고, 구체적인 대안논의는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을 중심으로 성폭력 대책의 중요성, 기본성, 시급성을 살펴봐야 할까? 지금 발생하여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안에 발맞춰 쏟아지는 대책은, 언론과 여론 역시 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면을 쉽게 간과한다. 매번 극소수 가해자의 이미지에만 집중하면, 드러나 있지 않은 다수의 일반적인 피해경험은 사각지대에 처하여 계속 반복될 수 있다는 역설이 발생한다.

그렇다면 성폭력 발생건수 중 어느 정도가 ‘대책’들과 만나게 되는지 살펴보자. 0.071×0.4×0.2=0.0057. 성폭력 고소율 자체가 7.1%, 고소된 사건 중 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되는 비율이 40%, 그 중 실형판결율이 20%라고 하니 결과적으로 0.0057, 0.57%, 즉 1,000건의 ‘발생한’ 성폭력 중 5.7건만이 가해자가 처벌받고 있다는 결론이다. 5.7건 중에서 13세 미만 대상, 재범자에 의한, 재범가능성이 높은 자에 의한 것만 따지면 1~2명이 될까. 전자발찌, 화학적거세, 사형부활 논의는 이 1~2명에게 시민들의 분노를 모두 쏟아붓고 예방을 책임지우자고 제안하는 꼴이다. 일상 속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999건의 성폭력에 대한 일관되고 구체적인 관심과 대응이야말로 1~2명의 극소수 재범가해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999건을 놓치지 않는 시야를 가졌다면 1~2명의 극단적 가해자는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성폭력에 대한 사법 시스템의 무기력증

이번 3월 국회의 개정에서도 누락된 대표적인 ‘근본’ 대책 중 하나는 바로 형법상 성폭력에 대한 친고죄 규정폐지다. 친고죄란?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게 한 것. 피해자 본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존중하겠다는 취지다.

피해자 본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강조하지만, 이미 특별법 규정에 의해 13세 미만, 장애인, 친족내 피해자, 윤간 강도강간 등 특수강간 피해자는 친고죄가 적용되지 않으며, 이번 개정 이후 14세~19세에도 비친고죄가 적용될 예정이다. 이들에게는 명예와 사생활이 없다는 것인가? 국가는 ‘강력한 의지’를 발휘하여 수사, 처벌에 나서고 있는 것이라고 비친고죄의 의미를 강조한다. 결국 남는 친고죄의 해당자는 강간과 추행 등의 피해를 입은 ‘성인 여성’이다. 성인 여성 성폭력의 경우 이미 국가의 사법시스템은 수사과정에서의 의심과 비난 등 2차 가해, 검찰의 무고죄 의심, 가해자 변호인의 화간 및 꽃뱀 주장, 가해자에 의한 합의종용, 재판부의 ‘최협의 폭행 협박 판단기준’ 등으로 사실상 그 기능을 왜곡, 변형하고 있다.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을 보호하겠다는 친고죄의 목적은 성폭력 문제는 피해자의 개인적인 치부, 감추어야 할 부끄러운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한다. 가해자가 성폭력 범죄에 쉽게 다다르는 이유는 성폭력은 피해자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는 인식 때문인데, 친고죄가 이러한 편견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면? 친고죄 규정은 피해자 보호 보다는 도리어 잠재적 가해자들에게 성폭력 범죄에 담대히 나아가게 하는 동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2

지금도 법무부 관계자와 다수의 형법학자들은 친고죄 폐지 요구에, 미성년자와 장애인, 특수강간 등 ‘이미 거의 대부분이 비친고죄’라고 답변하면서 성인 여성 성폭력에 대한 고집스러운 고립화 전략을 거두지 않고 있으나, 수많은 ‘예외규정’만으로 충분한가? 무색하게도 ‘친고죄적 사고방식’은 이미 압도적, 보편적으로 자리잡고 있다. 비친고죄 피해자 역시 신고를 하기 까지 주변의 만류와 싸우며 어렵게 결심을 해야 하고, 남들이 쉽게 하지 않는 고소·수사를 한 것은 오히려 가해자를 모함할 불순한 의도로 의심되기까지 한다. 형사법체계가 성폭력 문제를 경감하고 예방하기보다는 피해자 개인에게 부담과 고통을 전가하는 꼴이다.

신고율부터 높이자

현재 법무부는 형법 제정 이후 가장 대대적인 형법 개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성폭력은 형법체계상 중한 범죄임에도 친고죄로 규정되어 있어 형법의 시스템 장애를 유발한다. 친고죄 규정 때문에 형사사법체계는 성폭력범죄에 일관되게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어렵게 된다. 성폭력의 불법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단지 피해자의 고소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자의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다면 이는 형사사법의 중대한 결함임에 틀림없다.3 형법 개정위원회의 친고죄 폐지 논의를 기대해본다.

성폭력은 타인의 신체와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며, 그에 따라 제재 받게 된다는 일관되고 명확한 인식이 확산되길 바란다. 친고죄의 개정은 매번 시기상조론에 좌절되면서, 극소수의 재범자에게 극단적인 형을 부과하는 방안만이 시행된다면, 실질적 예방과 성폭력 발생 원인의 개선은 요원하기만 할 것이다. 성폭력이 우리 일상과 문화에서 발생한다는 성찰로부터 멀어지면 ‘진짜 대책’으로부터도 멀어지게 된다. 고소율 7.1%의 장벽을 먼저 해결하자. 숨은 999건의 성폭력에 대한 ‘발견’과 ‘응답’이 먼저 필요할 때다.

1 2010년 3월 31일 제288회 제2차 국회 본회의 통과된 성폭력 관련 내용은 다음과 같다

특정 범죄자에 대한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이 법 시행 당시 형 집행 중이거나 형 집행의 종료된 후 3년 안된 자에게도 소급부착
성범죄 2회 이상이 아니라 1회로 이상자에게도 부착가능, 형기합계의 요건을 삭제
적용대상에 살인범죄 추가
부착기간 상한을 10년에서 30년으로 상향, 13세 미만의 대상일 경우 하한을 2배로 가중
피부착자는 부착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보호관찰을 받도록 함
피부착자 준수사항에 주거지역 제한 추가, 7일 이상 여행 출국은 허가사항으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성범죄에 성희롱 등 학대행위, 음행을 시키거나 매개하는 행위, 강도강간 추가
음주 또는 약물상태에서 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범죄는 감경되지 아니하도록 함
공소시효는 해당 피해 아동·청소년이 성년에 달한 날부터 진행되도록 함
성 매수, 성매수 강요행위, 알선 영업행위에 대한 형량 강화
유죄판결을 선고시 수강 또는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명령을 병과하도록 의무화
가해자가 친권자나 후견인인 경우 검사가 친권상실, 후견인 변경청구하도록 의무화
추행, 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제외하고는 비친고죄로 전환
진술내용과 조사과정을 촬영·보존하고, 피해자의 재판증언이 곤란할 경우 영상물 증거보전 청구 가능
검사가 가해자 분리 및 퇴거 조치, 보호시설에 대한 보호위탁결정 등 법원에 청구가능
신상공개 명령된 범죄자에 대해 여성가족부 장관은 신상공개내용을 아동 청소년 개별가구로 우편송부
성인대상 성범죄자도 아동·청소년 관련 교육기관에 취업제한, 개인과외도 해당.
교육기관의 장인 경우 교육기관의 설립 당시 관할청이 당사자 동의를 받아 경력 확인 실시
형법개정법률안
유기징역의 상한 형을 현행 15년 이하에서 30년 이하로, 형의 가중을 현행 25년에서 50년까지로 조정
사형에 대한 감경을 20년 이상 50년 이하로 상향 조정
무기징역·무기금고에 대한 감경을 10년 이상 50년 이하로 상향 조정함
무기징역의 가석방요건을 현행 10년에서 20년으로 상향함
강간·추행죄 등 성폭력범죄의 상습범에 대한 가중규정 신설함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
친족내 강간, 강제추행 처벌 강화, 친족범위 4촌 이내의 인척까지 확대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처벌 강화함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심신장애 상태에서 강간, 강제추행 한 자는 감경 배제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력범죄의 공소시효를 해당 미성년자가 성년에 달한 날부터 진행
DNA증거 등이 확실한 경우 공소시효 10년 연장함
검사와 사법경찰관은 증거가 충분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할 때 피의자 얼굴과 신상정보 공개가능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성폭력범죄 전담재판부를 지정하여 재판토록
피해자가 13세 미만 또는 신체정신장애로 의사결정능력 미약한 경우 전문가 의견조회 의무화

2 서보학, “형사절차상 성범죄 피해아동 보호방안”, 형사정책연구 제7권 제4호, 1996 겨울, 182쪽.

3 이호중, ‘성폭력 형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과 쟁점’, 〈성폭력 관련 형법개정안 공청회〉, 2007.2.8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