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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고죄, 그냥 절차만의 문제는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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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_ 친고죄 폐지가 필요한 이유

친고죄, 그냥 절차만의 문제는 아냐

〈비/친고죄〉는 형사소송법에 등장하는 전문적인 절차의 문제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 속에 숨어있는 인식과 문화, 사회적인 영향력은 만만치 않다. 친고죄의 저변과 저의를 들춰보기 위해 두 입심 회원이 만났다. 직접 고소해본 경험도 있는 고움, 래이 님의 수다좌담을 들어보자.

정리 _ 오매

고움 _ 친고죄를 바꾸자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피해자 부담만 커지는 거 아니냐? 는 의문이 들었어.

래이 _ 나도. 법적 절차를 밟는 게 너무 힘드니까. 절차상 편견이 너무 많은 상황에서 일일이 싸워야 되고, 같은 얘기 반복해야 하고, 가해자 얼굴도 다시 보기 싫은데.

고움 _ 진짜 귀찮지. 피해자가 노동을 정말 많이 해. 왔다갔다 하는 데 심신이 다 지치고. 그런데 비친고죄가 된다 해도 여전히 피해자는 수사를 거절할 수 있더라고. 간단하게. 그런데 말야, 사건을 정식으로 제대로 처리하고 싶은 피해자들을 생각하기 보다는 왜 자꾸 숨고 싶어하는 피해자만 강조해 온 걸까?

직장 동료 10명에게 물었다

래이 _ 직장 사람들에게 간단히 설문을 해봤어. 결과는? 열 명 중에 ‘비친고죄여야 한다’ 다섯, ‘친고죄로 남아야 한다’ 셋, ‘경우에 따라 다르다’ 둘. 친고죄 쪽 이유는 ‘여성의 명예는 지켜져야 하기 때문’이래.

고움 _ 여자의 명예? 뭔 명예?

래이 _ 비친고죄 주장하는 다섯 명도 그 부분이 확실하지 않은데…… 비친고죄를 주장한 한 사람은 “장애인과 아동은 지켜져야 한다”고 했어. 안그래도 장애인, 아동 대상 성폭력은 비친고죄거든 무식하긴. 또 한 사람은 “챙피하니까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줘야 한다”. 또 한사람은 “남자들은 성욕이 발달해서 어쩔 수 없지만…… 대의적으로 봤을 때 비친고죄는 되어야 한다”.

고움 _ 피해자가 챙피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해야 한다……구?

래이 _ 왜 피해자가 챙피할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봤는데 답이 없어서 ‘순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어떤 나라는 정조를 잃으면 태형을 내린다는데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좋은 거 아니냐”라고 하더라. 그러다 불쑥 나한테 “순결을 중요하다고 안 생각하는 거냐”라고 물어서 “네”라고 했지.

성폭력 처벌? 의지도 개념도 부족한데

고움 _ 법조계 소위 남자전문가들은 ‘부끄러운 일이니까 짐을 주지 말자’고 얘기하는데, 반대논거를 듣고도 그런 생각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래이 _ “남녀관계는 아무도 모르는 거다”라는 말이 있잖아. 사생활 문제로 돌리고 싶어하는 거. 성폭력을 5대 강력범죄, 중대범죄라고 하면서도 공공의 이익과는 별개인 거로 돌리자고 하다니, 말이 안 맞지 않아?

고움 _ 경찰서 갔을 때 형사 분들이랑 성폭력 얘기 막 같이 성토하면서 다 피해자 편을 들고, 가해자가 나쁜 놈이라고 의견 일치하다가 감정 격분해서 “자기 부인을 강간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했더니 형사들이 순간 정적이 됐어. 아무도 아무 말도 안하고……. 자기도 가해자일 수 있겠다는 걸 그때 알았나봐.

래이 _ 살인은 사람이 죽으면 끝나는 건데, 성폭력은 평생 가지고 가야 한다는 점에서 더 강력한 범죄라고 나는 생각해. 그런데 ‘화간’이라고, ‘말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하고, 가해자를 어쩌다 재수 없이 걸렸냐고 다들 동정하고.

고움 _ 내 사건의 경우에는 가해자가 처음에 내 앞에서 인정하고 경찰서에 처음 왔을 때도 인정했다가, 그 다음에 말을 바꿨어. 그러다 다시 대질심문에서 인정했는데 검찰에 가서는 또다시 부인하는 거야. 근데 검사가 불기소처분 했어. 얘는 또 법정에 가면 부인할 거다, 그래서 기소를 안 해야겠다…….

래이 _ 아니, 번복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기소를 안 한다고? 그게 무슨 허무 개그?

고움 _ 가해자가 진짜 그랬을 거라고 경찰도 검사도 생각하지만 가해자가 나이도 어리고 고시공부하고 있으니 어차피 판사도 봐줄 거 아니냐, 그러면서 그냥 기소를 안 한 거야. 패배적으로 생각해. 수사할 의지도 없고.

래이 _ 나는 처음 경찰서에 갔을 때 날 배려한다고 여자경찰에게 조사받게 했는데, 그녀 입에서 “지금 여대생들이 술집, 룸살롱에서 일하고 돈벌고 있는데 이런 거 가지고 고소하면 어떻게 하냐?”라는 말이 나왔어. 성폭력을 수사한다는 전문가들, 어떻게 된 거야?

고움 _ 수사과정은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 모르면 의심부터 해, 피해자를. 가해자를 의심하는 게 정상인데 가해자는 안드로메다에 안전하게 피신시켜놓고 피해자를 의심부터 하는 거지.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선 : 끔찍하게 질긴 ‘꽃뱀’ 의심

고움 _ 증거가 없으니 피해자의 증언을 100%라고 안 믿잖아. 진짜 성폭력인지 아닌지 입증할 수 없대.

래이 _ 살인사건 같은 것도 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 손 놓고 끝인가?

고움 _ 개그맨 주○○ 사건에서도 여자가 무고죄로 판결 받았다고 인터넷상에선 꽃뱀이네 어쩌네 결론지었던 걸로 기억해. 근데 실제 그랬는지는 나도 잘 몰라. 의심 날리는 거는 노력이 안 들잖아, 과정을 알아볼 필요도 없이.

래이 _ 나는 처벌이랑 합의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합의금이랑 처벌이 동시에. 지금 성폭력범죄피해에 대한 보상이 법적으로 생겼어? 피해자는 돈이 들어, 진짜. 근데 이걸 역으로 주장하면 꽃뱀인 거야? 나도 돈은 절대로 한 푼도 받으면 안된다는 패배주의에 완전 휩싸여 있었어.

고움 _ 성인남성은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성인여성은 나쁜 짓 할 거라는 가정. 성인남성은 성인군자라 엄한 여성을 성폭행할 리가 없다? 그렇지만 성인여성은 몸을 미끼로 언제라도 돈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런 편견은 어디서 나온 거야?

래이 _ 자기들이 여자를 돈을 주고 사니까 자기 심리를 여자들에게 투영하나봐. 뭐 눈에 뭐 밖에 안 보이는 거라고 할까. 성매매, 그러니까 ‘매춘’은 필요악이라고 교과서에서까지 봤던 게 생각나. 여자들을 도구로 생각하는 거지.

고움 _ 성폭력은 나쁜 거라고 모두들 생각하잖아. 그래서 성폭력은 비정상적인 사람들만 저지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다 좋은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싶은 건가? 그게 무죄추정의 원칙? 극소수만 저지르고, 당한다는 가정.

고움 _ 진실을 알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 아냐? 낙인 찍히고 싶지 않은 거고.

래이 _ 위태로워지는 게 싫은 거고.

고움 _ 자기 특권을 뺏기고 싶지 않은 거고. 성폭력을 가할 수 있는 특권, 마음껏 쥐고 흔들 수 있는 특권.

성인여성을 유달리 경계하는 이유는?

고움 _ 아동은 돈을 노리고 고소할 수 없는데, 성인여성은 돈을 노리고 고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

래이 _ 성인과 아동 나누는 거 완전 무식한 거 같애. 아동과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단호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자기를 호인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들 역겨워. 성폭력에 대해 경각심 갖지 않는 뭇 남성들은 성인 여성만 유달리 구분하잖아.

고움 _ 완전히 성인여성은 방어할 수 있고 도망갈 수 있고 소리 지를 수 있다고, 어느 나이가 ‘짠’ 되면 모든 걸 알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는데 당할 리가 없다, 성인이 되면 방어할 수 있지 않냐, 이게 성폭력인지 다 알았지 않냐.

래이 _ 그게 성폭력일지 다 알 거라고? 그건 곧 성인여성이라면 언제라도 취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는 뜻? 아동과 장애인은 따로 보호해야 하니 분류해놓고, 성인여성에게만 까다롭게 돌려보내고 증거를 가져와봐라 했다는 건…… 성인여성은 언제나 취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를 다 법망에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인 건가?

고움 _ 구체적인 사건에서 그게 성폭력인지 아닌지, 그런 걸 보고 또 해석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부족해. 성폭력인지 아닌지 너무 모르는 채로 꽃뱀이라고 쉽게 가버리고.

사람들 생각이 바뀌었으면 좋겠어

래이 _ 나는 자신이 성폭력이라 느낀다면 성폭력이라고 생각하거든. 우리 사회에서 편견에도 불구하고 꺼내서 얘기한다는 거는 그 사람은 피해자라는 거야. 근데 지금 신고율이 7.1%이잖아. 비친고죄가 된다면 신고율 자체가 달라지니까 재판까지 안 가도 범죄 의식이 달라질 것 같애. 지금은 유죄나 무죄나 전부 개인 피해자의 책임이잖아. 절차상으로 피해자가 참여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직접 혼자서만 고소하라고 하고.

고움 _ 부끄럼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들은 피해 당사자도 아니면서 피해자는 부끄러울 거라는 추측과 기우를 안했으면 좋겠어. 너 부끄럽지 않니?라고 먼저 물어보는 건 기우라구. 근데 진짜 비친고죄가 됐을 때, 피해자들이 사건수사에 많이 협조할까?

래이 _ 수사기관한테 달렸지. 피해자들이 절로 먼저 가고 싶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어?

고움 _ 〈성범죄수사단(SVU)〉 같은 미국 드라마를 보면 피해자를 의심하기보다는 보호하고 안심시키더라고. 우리나라에서 피해자를 의심부터 하는 거랑 완전 다른 듯. 거기는 범죄피해자를 보호하는 게 많이 발달했나봐.

래이 _ 나는 서울 모 구에 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생겼을 때 피해자 지원하는 일 하고 싶어서 취직하려고 했더니, 피해자는 안 받는대. 어디 법원에서 참관인 뽑는데도 피해사실이 있으면 안 뽑는다고 하고.

고움 _ 그거 차별로 진정해야 하는 거 아냐? 어이없다!

래이 _ 경험 있는 사람은 감정이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거야.

고움 _ 그러면 성폭력 근처에도 안 가본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고 있었구나. 그러니까 가기가 싫지.

래이 _ 피해경험자가 훨씬 많은 실무자가 돼야 돼. 판사는 피고인 눈치 보면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하는데 너무 역기능적으로 되는 것 같애. 그런 것에만 눈치를 보고 피해자의 인권에 대해서는 인식이 결여되어 있잖아. 내 예상대로라면 판사는 피의자한테 ‘피해자에게 미안하다고 했나? 보상했나? 정당한 방법으로 했나?’ 이런 걸 물어봐야 하는데 ‘피해자가 돈 받더냐? 꽃뱀이냐?’라는 말을 먼저 하니. 합리적으로 처리를 해야지, 가해자 인권 존중한다면서 피해자를 더 힘들게 하면 되냐.

고움 _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미국에서는 범죄가 발생하면 우르르 몰려들어서 피해자를 돕는데, 우리나라처럼 공동체를 강조하는 곳에서는 왜 피해자를 소외시키고 외면할까, 참 아이러니야.

래이 _ 비친고죄 개정은 어떻게 해야되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사회적인 인식이 생겨나는 절차, 단계를 거치잖아. 근데 성폭력 문제는 어째 합리적인 해결 방향으로 서서히 가는 게 아니라 사건 터질 때마다 널뛰기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점차적으로 개선될 수 있겠어? 그냥 비친고죄로 좍 개정해버리고 그 후에 인식이 바뀌길 기대해봐야겠다.

고움 _ 이 나라에서 법 개정하는 게 이미 다 그렇지. 그냥 바꿔놓고 우리 그렇게 할 거다, 라고 공표하잖아. 갑자기 웃긴 발상이 떠올랐는데, 일대일 멘토링 어때. 한 명당 한 명씩 엄한 소리하는 사람들 잡아 가르치고, 그 사람이 또 다른 사람 한 명 잡아서 가르치고. 엄한 소리 하는 사람들을 외면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한 사람이 하나씩에게만 가르치는 거야. 그렇게 좍 퍼져나가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