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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예인들의 성적 문란이 아니라, 남성들의 왜곡된 성접대가 문제다!
  • 성문화운동팀 보짱
쟁점과 입장

여성연예인들의 성적 문란이 아니라,
남성들의 왜곡된 성접대가 문제다!

성문화운동팀 보짱

지난 4월 27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번 조사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용역을 받은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여성 연기자 111명과 연기자 지망생 24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작성한 것이다. 이번 연구조사결과에 따르면 많은 여성연예인들이 성접대 제의를 받거나 성희롱을 경험하는 것 이외에도 다이어트 및 성형을 강요받거나 사생활 및 노동권을 침해당하는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설문에 응한 여성 연기자 중 60.2%가 방송 관계자나 사회 유력 인사에 대한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31.5%는 가슴과 엉덩이·다리 등 신체 일부를 만지는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성접대를 제의한 상대는 재력가, 감독, 제작사 대표, 광고주, 정·관계 인사 등으로 다양했다. 성접대 제의를 받은 경험이 있는 연기자의 절반가량(48.4%)은 제의를 거부한 뒤 캐스팅이나 광고 출연에서 불이익을 받았다고 답했다. 63.6%의 연기자가 폭언 및 인격모독과 같은 언어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으며, 절반 이상은 다이어트(54.6%)와 성형수술(55.6%)을 권유받은 경험이 있었다. 이로 인한 여성연예인들의 신체적·심리적 스트레스도 매우 심각했으며, 10.4%의 여성연예인이 자살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제2, 제3의 장자연 사건은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여성연예인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는 연예계의 왜곡된 구조와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이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언제든지 제2, 제3의 장자연 사건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여성 연기자와 연예인 지망생 중 90%는 공식적 오디션보다 비공식적 미팅이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있으며, 80%는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오디션조차도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다고 보고 있다. 여성연예인의 실력이나 경력보다는 비공식적 인맥과 술자리, 권력 등이 배역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되는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누구라도 제작사나 기획사의 부당한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여성연예인들로 하여금 자괴감과 무력감을 크게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성접대 제의를 거절한 여성 연예인조차도 스스로에게 자긍심을 가지기보다는 과연 자신이 잘한 일인지, 기회를 차버린 것은 아닌지 후회하도록 만든다.

제 주변에서도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모 여자 연예인도 이미 오랜 기간 동안 17살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올라온 것이 실력도 있지만 재력과 만남, PD와의 만남이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 친구도 현재 연예 활동과 모델 활동을 하고 있는데 스폰서에 관한 고민과 스트레스가 큽니다. 제 생각은 이러한 관행을 바꾸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과 막강한 단체를 빨리 만들지 않으면 여전히 고 장자연씨 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일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 국가인권위원회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 183쪽

남성권력들 간의 비공식 네트워크, 매개되는 여성 연예인들

이번 연구결과를 보도하면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여성연예인들의 성접대 사실 그 자체만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면서, 여성연예인들의 ‘성적 문란’을 문제 삼았다.1 힘없는 약자인 여성연예인들의 성적 문란을 비난하고, 도덕적으로 훈계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여성 연예인들에게 이런 성접대를 제안하며, 비공식적인 네트워크와 연줄로서 연예계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모두 인맥이고, 사적인 자리를 빙자해 있죠. 친한 피디랑 술 마시고, 친한 기자랑 술 마시고 이런 식의 자리인 건데, 거기 매니지먼트사 사람이 있으면 아, 우리 이번에 새로 들어온 애 하나 있는데, 한 번 불러볼까? 이래서 인사시키고. 인사시키는 자리인 건데 그런 자리에서 피디나 기자들은 뭐, 놀고 이런 식?

— 전직 영화잡지 기자, 국가인권위 실태조사 175쪽

제작사, 기획사, 스폰서, 언론, 재벌 등 남성권력들 간의 인맥과 네트워크를 공고히 하는 술자리 속에서 여성 연예인들은 ‘상품’으로서 매개되고 있을 뿐이다. 남성들은 어떤 여성 연예인을 부를 수 있는가, 어떤 여성연예인들에게 성접대를 받을 수 있는가를 통해 스스로의 능력을 증명하고자 한다. 여성연예인의 외모나 성적 매력뿐 아니라 연예인이라는 특별함이 ‘남들과 차별화된 과시적 소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왜곡된 과시욕과 성접대 문화를 비판하지 않은 채, 여성연예인들만을 문제 삼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는 것이다.

그런데 스타를 데리고 있는 매니지먼트사 같은 경우는 자기네들 스타에 신인들을 끼워 팔면 되니까 캐스팅을 위한 성상납은 별로 없을 거라 보는데, 다른 권력관계들 오히려 매니지먼트사와 다른 힘 있게 된 사람들? 그런 기업 쪽이나 언론 쪽, 이런 식으로 더 심화될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스폰 관계라든가. 성상납까지는 아니어도 술자리에 불려가서 호스테스 역할을 한다든가. 그런 거는 굉장히 많을 거라고 봐요. 장자연 같은 경우도 보면 자기네들 술 마시다가 너 좀 나와라 이런 식으로. 그런 게 되게 미묘한 거지. 아예 대놓고 성상납이 아니라.

— 전직 영화잡지 기자, 국가인권위 실태조사 167쪽

고립된 여성연예인들, 그녀들의 빛나는 연대를 꿈꾼다

여성연예인들은 그 직업의 특성상 대중들의 시선 때문에 사생활 또한 자유롭지 못하며 폐쇄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연예인 생활을 오래 하면 할수록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도 더욱 고립되며, 매니저나 기획사에 더 의존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연구에 응한 많은 여성연예인들은 자신들의 외로움과 고립감에 대해서 토로하였다. 이렇게 고립된 상황들은 여성연예인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외부에 알릴 수 없도록 하며, 성폭력을 비롯한 심각한 인권침해가 반복되도록 만든다.

부모님한테도 말할 수도 없고, 친구들한테도. 정말 외로운 직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누구한테 말을 하고 싶어도 무섭잖아요. 이제 어떻게 될지, 자기 혼자 끙끙 앓겠죠. 그러니까, 의지할 사람도 없고, 되게 외로운 사람이 되는 거죠.

— 여성연기자 지망생 20대 초반, 국가인권위 실태조사 189쪽
이렇게 인터뷰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고 자기 정화가 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이런 말 안 하던가요? 여배우들은 자기 얘기를 할 만한 공간이 없어요. 모두들 이미지에 갇혀 있어야 하고 또 대인관계에서 쉽게 상처받기도 해요. 드라마 제작현장에서도 자기 매니저와 주로 대화를 나누고 녹화 시간을 제외하면 승용차에 가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죠.

— 여성연기자 30대 중반, 국가인권위 실태조사 189쪽

얼마 전 나온 〈여배우들〉이라는 영화에서는 한국의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나와서 서로의 아픔과 삶을 공감하면서 신나게 의기투합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훈훈한 장면은 단지 영화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현실은 훨씬 냉혹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꿈꿀 수밖에 없다. 그녀들이 소탈하게 둘러앉아서 자신들의 자질구레한 일상을 떠들어대고, 자신을 모욕하는 대중과 언론에 분노하면서, 서로 눈물을 닦아주는 빛나는 시간들을……. 그 시간들이야말로 그녀들의 인권을 개선하는 데 절실한 그 무엇이므로.

1 “연예계 시스템이 만들어낸 여성 연기자 ‘몸로비’ 문제”, 『한국일보 연예』, 2010.04.28. | “화려한 삶 뒤편에선 ‘검은 손길’에 무방비… 여성연예인 60% ‘性접대 제의 받아’”, 『국민일보』, 2010.04.2. | “흑심에 포위된 女연예인들”, 『한국일보』, 2010.04.28. | “여성 연기자에게 뻗치는 ‘악마의 유혹’”, 『한겨레』, 2010.04.27.

2 국가인권위원회(2010),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 1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