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놈에게 복수하는 법’ 감독_ 아오리
interviewer_ 꽃내
막차 시간이 가까운 시각, 아오리와의 인터뷰는 숨 가쁘게 진행되었다. 작은 말하기를 통해 알게 된 이 사람은 우렁찬 목소리에 다혈질, 씩씩해 보이나 말만 하면 우는 여린 부분도 가지고 있다. 시원시원한 이 사람을 나는 단박에 좋아하게 되었고, 내가 참여하고 있는 라디오 방송인 〈야성의 꽃다방〉에도 초대하고, 〈만나고 싶었습니다〉의 인터뷰를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놈에게 복수하는 법〉, 어떤 영화인가요?
성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35분짜리 다큐멘터리예요. 일반적으로 ‘성폭력’이라고 하면 쉽게 보고 싶지 않을 수 있겠지만, 쉽게 봐도 가능하고 재밌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성폭력을 주제로 본인의 경험을 담은 다큐멘터리는 흔치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떻게 영화를 만들게 되셨어요?
일단, 지하철 성추행 경험이 많아서 그것을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선 공부를 좀 해야 되니까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 조감독으로 들어갔죠. 당시에는 내가 성폭력피해생존자라는 걸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2008년 3월부터 작은 말하기에서 출연자들 촬영을 하다보니까 제 경험을 맞닥뜨리게 된 거예요. 처음 작은 말하기 나갔을 때는, 내가 이분들과 되게 떨어져있는 사람인데 날 배척하지는 않을지 고민했었거든요.
그리고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인생을 쫙 훑어보잖아요, 그런데 너무 많은 거예요. 당시에는 쉽게 잊어버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적어보니까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었고, 그 순간마다 늘 도망 다녔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내가 대응할 생각을 안 하고 지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이후에 생존자말하기대회에 참여하면서도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나를 부정하고, 회피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영화를 찍으면서 가해자를 만나는 것 자체보다는 피해자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바꿨죠.
또 다른 결정적인 계기라면……. 친구들의 얘길 듣다보니까 가해자한테 사과를 받거나 복수를 하고 싶은데 본인 스스로 못하는 것을 되게 아쉬워하더라구요. 그래서 “나 할 수 있어, 내가 해서 너희들을 기쁘게 해주리라”(웃음) 이런 생각으로 시작했죠. 주인공 섭외하는 게 가장 힘들잖아요. “그러면 나로 하지 뭐. 섭외도 쉽고 내가 나를 가장 잘 알테니까” 그래서 쉽게 시작했죠.
혹시, 상담소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영화를 찍으면서?
그렇죠. 작은 말하기 촬영이 계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작은 말하기는 저에게는 동아리 같아요. 피해자가 이렇게 많다니 슬프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힘든 공간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나는 친구 보러 간다, 동아리에 간다, 생각하고 가지만 이야기를 들을 기운이 없을 때는 못 나오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영화 예고편의 마지막 부분에 말하기대회 공연하신 게 나오던데, 이야기 좀 해주세요.
1년 동안 다큐 찍으면서 난 피해자가 아닌데, 들키면 어떡하지? 관객들에게 가식적으로 들리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했어요. 찍지도 않고 가해자도 안 만나고 계속 집에만 있는 거죠. 마감은 다가오고……. 그런데 상담소에서 생존자말하기대회가 있다는 거예요. 원래 제가 무대체질이 아닌데 저기 나가면 뭔가 찍을 수 있겠다 싶어서 나갔어요. 말하기대회를 통해서 얻은 것들이 참 많아요. 자신의 경험을 공개된 장소에서 말하고, 연극도 짜고 제가 쓴 가사로 노래도 했잖아요. 같이한 친구들이랑 자주 만나면서 끈끈한 연대감도 느끼고, 되려 제가 많이 배우는 경험이 좋았던 것 같아요.
다큐 중에 가해자가 있는 동기모임에 가잖아요. 만나는 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원래는 사전촬영만 하러 간 거였어요. 물론 카메라를 들고 들어가니까 떨리기도 하고 술도 조금 마시니까 그냥 한방에 찍자, 해서 가해자를 불러낸 거죠.
재미난 이야기라면, 친구들이 많은 자리에 촬영 허락을 받고 들어갔는데, 가해자 친구가 계속 구석에 숨어있는 거예요. 처음에는 성폭력이 주제라거나 내가 주인공이란 얘기는 안하고, 주인공인 친구가 가해자를 쫓아가는데 나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찍어 보는 거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친구들이 도와준답시고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는 거죠. 근데 편집하다보니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그 가해자가 “그만해, 그만해” 하고 있었던 거예요. 저 친구가 정말 징하게도 막았구나, 되게 두려웠겠다, 싶었어요. 카메라가 무기가 될 수 있는 것 같아서 꽤 괜찮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결국 만난 가해자가 너무 당당한 모습에 저는 기가 찼어요.
가해자 만나는 장면을 7월에 찍었는데, 12월에 확인을 했어요. 그 당시엔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아예 플레이를 못 하겠더라구요. 다른 친구한테 시킨 프리뷰도 못 읽겠고. 그래서 ‘아, 내가 이 부분에 대해서 굉장히 안 좋구나’ 싶었죠. 왜 내가 이러지, 하면서도 행동은 안하고.
그나마 다행인 게 아까 말했듯이 카메라로 공개되는 것이 엄청 두려워서 이 친구가 큰 소리를 냈던 거구나, 제가 느낀 거예요. 카메라가 없었으면 달랐을텐데, 계속 사과 안하고 카메라 들이댄다고 싸워서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편집하면서 ‘그래도 저 놈이 나보다 더 무서웠구나’ 싶어서 통쾌한 것도 있었어요.
다른 가해자들도 정말 자기가 잘못했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진심이 우러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도대체 무슨 뇌구조인데 자기가 한 일이 잘못이라고 생각을 안 하지? 그래서 다른 친구한테도 “저 놈들한테 사과 받을 생각을 하지도 말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자신에게 변화된 부분이 혹시 있다면요?
조감독을 했을 때, ‘다큐멘터리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저에게 너무 많은 변화 과정이 있어서, 그러면 내 작품을 찍으면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그래서 작업을 하다보니까 1년이 되어 가는데 변하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조급함도 있었는데, 다 찍고 나서 보니까 큰 깨달음 같은 게 있더라구요. 자신의 영화를 찍거나 출연을 하는 게 치유에 있어서도 괜찮은 방법 같아서 추천하고 싶어요. 제가 다음 작품 찍는 것도 ‘내가 이런 경험을 했으니까 여러분도 이렇게 하면 좋아질 수 있을 거예요’ 라는 마음도 있어요.
제작 과정 중에 힘들었던 점이나 고민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인디다큐 페스티벌에 공모를 하고, 막상 만드니까 공개가 두려워졌어요. 나는 고생했는데 생존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영화인지 아닌지 묻고 싶었어요. 반응은 좋았고, 조급하게 하지 말자고 생각했죠. 지금은 배급에 욕심이 나고 학교 성교육 시간에 교육용 비디오로 쓰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독립영화 감독들이 성폭력이라는 주제에 별로 관심이 없고 시도를 안 하니까 제가 하는 것도 있는데, 물론 힘들기도 해요. 가끔 예민함으로 인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해서. 영화 틀고 나니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더라구요. 조감독이 ‘너 너무 사람한테 치여서 그렇다’고. 4월에 아무것도 안하고 전화기도 음성으로 돌려놓고 그랬었어요.
다음 영화의 주인공들에게, 내가 경험해봤기 때문에 처음엔 영화 촬영에 승낙했지만 상영할 때는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해요. 다 찍어놓고 안 틀면 좋겠다고 하면 저도 시간을 달라고 말해요.
다음 영화 주인공들이라면, 벌써 다음 작품이 예정에 있으신가요?
원래는 이번 다큐에 말하기대회 사람들을 담으려고 했었는데, 제 경험이랑 같이 담으려니 인터뷰 잠깐 하는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예요, 모든 분들의 이야기가 고귀한데. 그럼 다시 담자, 그래서 현재 제작중이예요. 제목은 ‘스피크 아웃(Speak out)’이고, 촬영에 들어갔어요. “당신이 주인공이라면 어떤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느냐”고 물어보니 한 분이 “내 삶에서 얼마나 성폭력이 드러나는지 담아졌으면 좋겠다”고 해서, 너무 좋아서 밀착취재중입니다.
다음 다큐도 기대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남기실 말씀이 있다면요?
열심히 홍보 중에 있습니다. 블로그에 오시면 공동체 상영을 신청하실 수 있어요. 언제든 요청하시면 제가 영화를 들고 갑니다. 참! 원래는 영진위 제작지원금 900만원 중 100만원을 상담소에 후원해서 평생회원 되려고 했는데, 수입지출을 계산해보니까 100만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수입의 5%를 기부하기로 약속 했어요. 언젠가 꼭 평생회원 하고 싶어요.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내면서, 그것도 쉽지 않은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는 일을 통해 그녀가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얼마나 힘든 순간들과 마주했을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어렵다. 정면으로 승부할 것 같은 그녀의 반듯한 자세를, 두 번째 영화에서,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씩 그녀를 만나는 ‘작은 말하기’의 아늑한 자리에서 다시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될 것 같다. 그녀를 알게 되어 참 좋다.
〈놈에게 복수하는 법〉 블로그
http://blog.naver.com/feelido
〈야성의 꽃다방〉 공동체라디오 마포FM에 편성된 비혼 페미니스트를 위한 라디오 방송. 마포구에서는 주파수 100.7MHz를 통해 청취 가능하며 매주 월·화요일 밤 자정에 송출된다(화요일은 재방송). 〈야성의 꽃다방〉 홈페이지(http://femidio.net/)를 통해 지난 방송을 들을 수 있다. 아오리 님이 출연했던 방송은 2010년 5월 31일 방송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