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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을 기획하다 - 보다 자유롭고 생기 있게
  • 유경희 | 생기랑마음달풀 연구소장
기획특집

다른 삶을 기획하다

보다 자유롭고 생기 있게

유경희 | 생기랑마음달풀 연구소장

지난 해 12월, 나는 큰일을 저질렀다. 하고 싶다는 욕망이 차올랐을 때 시작할 수 있어 행운이다. 여성 상담 교육 연구소 <생기랑 마음달풀>! 내가 꾸린 공간의 이름이다. ‘생기를 얻고 마음을 달달하게 풀어간다’는 뜻을 담았다. 작은 사랑방 같은 편안한 공간에서 마주치는 인연들. 그 속에서 우연이 필연이 되는, 자기공부가 사람공부로 성장하는, 다시 세상 공부로 이어지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나를 포함한 여성들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에너지를 충전해가는 장(場)을 만들고 싶었다. 운동을 하면서 늘 꿈꾸었던 공간이다.

여성주의와의 만남

나는 민우회를 통해 여성주의와 만났다. 1992년 초, 처음 민우회 문을 두드렸을 때를 잊을 수 없다. ‘가족주의’ 틀 안에서 나와 유사한 경험을 가진 여성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들과 눈 마주치며 나누었던 자신의 이야기들. 각각의 일상을 터놓다보니 가슴 속에 품고 있던 풀리지 않던 가족의 삶, 그 답답한 실체를 볼 수 있었다. 그 안에서 가족에 묶여 있는 나의 삶을 꺼내 놓는 과정만으로도 가벼워졌다. 하지만 활동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내 안에서는 여러 목소리가 들렸다. “살던 대로 살아, 웬 오지랖인가? 책도 읽어야 하고 회의도 해야 하고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할래? 잠시 뿌듯하지만 돌아가면 살림은 온전히 네 몫인데?” 하지만 여성운동의 현장은 ‘나’를 다시 만나는 활력을 주고 있었다. 그 모든 걸 감수하고도 발걸음이 가는 곳이었다. 여자들, 우리는 통했다. 가족의 범주 안에서 벗어나 새로운 ‘나’가 있다는 값진 깨달음을 공유했다. 가부장적 체계내의 삶을 당연하다 생각했던 자신들이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는 건 가슴 뛰는 일이었다. 먹거리를 나누고, 아이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주변의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고, 폭력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고, 더불어 사는 사회의식을 갖는 일 모든 것이 내 일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열정인지 일은 계속 확장되었고 다양한 경험은 나를 성숙하게 하였다.

여성주의와 만나는 일은 행복한 경험인 동시에 ‘불편’한 경험이다. 새록새록 알아가는 여성운동의 현장에서 보니 싸워야 할 대상과 문제가 너무도 많았다. 이해는 좀 안 되지만 세상이 그렇지 하던 내가 왜? 라고 질문을 하게 되고 두루두루 편한 게 좋은 거지 했던 내가 정말 그래? 하고 고개를 들 때, 지지리도 운이 없는 게지라고 했던 내가 어째서? 라고 의심할 때, 이 ‘불편’함에 대한 감수성이 운동의 동력이 되었다. 여성주의로 세상을 본다는 건 현실의 나와 충돌하는 것이며, 다른 목소리를 불편해 하는 기득권층들과 끝없이 맞서야 하는 것이었다. 운동의 연차가 쌓여갈수록 세상에 질문할 수 있는 힘은 커져갔고, 목소리를 내도 된다는,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갔다. 때로는 의미 있는 실천도 때로는 아쉬운 결과도 여성들과의 연대 속에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얻은 값진 경험이었다.

치료와 휴식, ‘비우고 채우고’의 시간들

운동의 연차가 더해지면서 내 몸은 여기저기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위염에다 신장이 안 좋다 하고, 만성피로감으로 몸은 젖은 솜 같았다. 혈액순환이 안 되어 잘 붓는데다가 폐경과 함께 온 갱년기 증상, 열이 오르면 가라앉지 않고 식은땀이 났다. 거기에다 어느 날 소리 없이 찾아 온 허리 디스크! 애초에 수술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기에 일하면서 병원을 전전하였다. 양·한방 치료를 넘나들며 운동요법과 약물 치료, 봉독요법, 추나요법 등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동원하였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졌다. 쉬어야 했다. 쉴 수 있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는 쉽지 않았지만 내 몸의 소리를 듣기로 했다. 만 15년, 기나긴 상근 활동을 마무리하고 치료에 전념했다. 5개월 남짓 집중치료! 50대를 넘어선 나의 몸은 쉽게 달래어지지 않았다. 이미 ‘퇴행성’이란 꼬리표까지 달려 있었다. 걷고 운동하고 침 맞고 약물치료까지. 서서히 몸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1년 가까운 시간, 치료와 휴식이 전부였다. 3년 남짓 이어진 휴식의 기간은 달콤했다. 해보고 싶었던 목공작업과 손바느질과 그림, 이 3종 세트에 무조건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네 문화예술회관에서의 소박한 수채화 강좌. 그리는 시간 몰입할 수 있어 좋고, 아르쉬지(수채화 용지)에 퍼져 나가는 맑은 수채화 물감의 퍼짐이 나를 행복하게 하였다. 뚝딱 뚝딱 목공 작업은 또 다른 매력, 나무의 향과 맞춰져가는 나무퍼즐이 즐거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사포질만 빼면. 거기에 하나 더. 이전부터 관심만 있던 발도르프 인형 만들기. 쉽지 않았다. 박음질만 자신 있던 나로서는 인형의 머리를 만들고 솜을 넣어 손발을 만드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그러나 인형들의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색감의 조화를 잘 맞추어 자연스러운 아이들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각각의 과정은 무지개 빛깔의 다른 충족감을 내게 선물하였다. ‘비우고 채우고’의 시간들은 여유롭고도 풍성했다.

여자들의 사랑방 꾸리기

휴식의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 안에 일어나는 갈증. 채워지지 않는 갈증의 정체는 분명했다. 늘 생각해 온 여자들의 사랑방 같은 공간에 대한 욕망! 바로 그것이었다. 운동하면서 만나던 활동가와 회원들,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커져갔다. 서로를 성장시키며, 의미 있는 활동을 만들어가는 공간의 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욕망은 분명하였으나 현실은 막막하였다. 손안에 가지고 있는 저렴한 경제력의 한계. 경제활동과 친하지 않은 성향은 그 해결책을 찾기에 무력했다.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는 소심함은 머릿속의 상상만으로 몇 개월이 흘렀다. 그러다가 가까운 지인으로부터 장기임차가 가능한 도움의 손길이 다가왔다. 평소의 나였다면 마다했을 상황이나 이번엔 달랐다. 망설임 없이 덥썩 잡았다. 이렇게 보증금 마련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의 첫걸음을 딛게 되었다. 하나를 해결하니 다음 과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간을 찾는 일. 보는 공간마다 그 음침함과 썰렁함, 계단참의 칙칙한 남녀공용화장실, 게다가 높은 임대료까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안 들었다. 만족은 아니어도 수용은 되어야했다. 발품을 파는 일이 지속되었다. 어느 날 마음이 가는 공간이 나타났다. 드디어 터전이 마련되었다. 재활용센터에서 책상을 들이고, 하나하나 채워나갔다. 이제는 어엿한 <생기랑마음달풀> 공간. 이제 한 계단 올라섰다.

<생기랑마음달풀>은 잘 사는 삶에 대한 상담과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다. 배움에 대한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는 문턱 없는 공간. 또 하나 여성(시민사회)운동가들의 정신적, 심리적 스트레스와 어려움을 함께 해결하고 개인의 성장을 돕는 충전 공간이었으면 한다. 나의 또 다른 삶의 전환점, 새로운 변화는 시작되었다. 그 변화에의 욕망을 키울 수 있게 한 것은 온전히 여성운동의 힘이다. 여기에 긴장감과 두려움은 필수과목임을 알고 있다. 여성들과 더불어 또 다른 ‘나’를 만나러 간다. 보다 자유롭고 생기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