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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상담소 9대 소장 이윤상 : 자원활동가에서 소장까지, 상담소와의 20년을 돌아보며
  • 백미순 | 본 상담소 부소장
만나고 싶었습니다

자원활동가에서 소장까지,
상담소와의 20년을 돌아보며

이번 호 ‘만나고 싶었습니다’의 손님은 퇴임을 앞둔 이윤상 소장입니다.
이윤상 소장은 2009년 1월 31일 9대 소장으로 취임한 이후 제도화에 맞선 반성폭력 진영의 운동성 강화, 2차 피해 방지, 낙태와 같은 여성의 성과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 확보 등을 위해 동분서주했습니다.
자원활동가로 시작하여 지난 20여 년 동안 상담소 역사를 함께 써왔던 이윤상 소장으로부터 그간의 활동 소회를 들어보았습니다.

interviewer_ 백미순 | 본 상담소 부소장

본 상담소 9대 소장 이윤상
본 상담소 9대 소장 이윤상

Q 상담소와의 인연이 깊으시죠? 상담소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셨어요?

A 대학생이었던 1992년으로 기억합니다. 여성학을 수강했는데, 당시 우리 상담소의 활동가이셨던 정경자 자문위원님이 특강을 하셨어요. 김○○·김△△ 사건이 한창일 때였는데, 선생님이 처음 강의를 시작하시면서 성폭력 경험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하셨죠.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어요. 선생님이 본인의 이런 저런 경험을 이야기하시면서 성폭력과 여성운동의 이야기를 풀어가셨고 강의가 끝난 후 다시 같은 질문을 하셨어요, 성폭력 경험이 있는지. 저를 포함한 몇 명이 손을 들었는데, 그 순간 명명의 정치학이 이런 거구나 하는 깨달음의 전율을 느꼈어요. 이름 없던 내 경험에 이름이 붙여지고 해석되는 순간이었다고 할까요, 그 후에 제가 상담소를 찾아가서 자원활동을 자청했죠.

대학원에서 여성학 논문을 쓰고 난 뒤인 1997년 1월부터 약 3년 정도는 활동가로 일했고, 그 이후는 회원활동을 했어요. 부소장은 2006년 11월부터 소장 취임 전까지 했고요. 아마 제가 상담소 내의 모든 포지션을 다 경험한 유일한 사람일 거예요.

Q 상담소와의 인연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어요?

A 인연이 질겼죠(호탕한 웃음). 제게 성장할 수 있는 많은 기회와 가르침을 준 인연이었어요. 솔직히 소장직을 승낙하도록 마음을 움직인 것은 상담소에 대한 애정이었고 책임감이었어요. 만약 상담소가 아닌 다른 단체의 제안이었다면 승낙 안 했을 겁니다. 모든 활동을 관통한 공통점은 ‘참 재미있었다’는 거예요. ‘즐거운 노동’을 경험한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렇지만 소장으로서의 부담감은 엄청 컸어요. 같은 공간에서 같은 활동가로서 활동하지만 소장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사는 느낌이었어요. 큰 부담감과 책임감을 안고 살아가는 운명이랄까요. 가지각색의 사람들에 맞춰 소통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당연하지만 보통일은 아니었고요. 더구나 대외적인 얼굴마담 역할을 하게 될 때,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상담소 활동이나 여성운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통념을 깰 수도 있고 강화할 수도 있다는 책임감이 의식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익숙한 저의 취향과의 결별이랄까, 한마디로 저 자신에 대한 도전이었어요.

인터뷰 중인 이윤상 소장

Q 막중한 책임을 감당하며 상담소와 여성운동을 이끌 수 있게 했던 동력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무엇보다 제게 힘을 준 것은 ‘사람’이었어요. 다수의 보편적인 사람이 아니라 소수의 제 주변 사람들, 그리고 구체적인 회원님들이요. 그들이 제 준거집단이었죠. 끊임없이 성찰하게 하고 인정해주고 공감해주는 주변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힘들어도 내일 다시 일할 수 있었어요.

2010년 상담소 지하에 물이 차서 난리가 났을 때, 상담소의 형편없는 근무환경을 걱정하며 턱턱 기부해주시는 회원님을 뵐 때 정말 든든했어요. 물이 차 있는 지하방, 그 참담함은 말로 다 못해요. 밤새 물을 푸고 출근해보면 또 물이 차 있고. 그것도 추운 겨울에 말이죠. 너무 한심스럽고 서러웠어요. 큰 공사를 하겠다고 손을 걷어붙였을 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신 회원님들께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사했는지 몰라요.

20주년 앙코르 발기인도 그래요. ‘초심’을 다시 새기고 잘 해나가겠다는 저희의 말만 믿고 다시 발기인으로 참여해주시는 한 분 한 분께 감동이 밀려왔어요. 이것이 상담소의 저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회원님들의 지지가 활동가들이나 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이었습니다.

Q 임기 중에 각종 성폭력 사건으로 사회가 뜨거웠고 여러 가지 제도적 변화도 많았습니다. 지난 3년 간의 활동에서 역점을 두었던 점과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지, 활동을 정리하면서 의 소회를 말씀해주시겠어요?

A 지난 3년 간 시민운동을 움직이는 힘은 시민이라는 것을 현정부가 가르쳐줬어요. 예전에는 기금마련이 상대적으로 쉬웠지만, 현정부에 의해서 그러한 통로들이 막혀버려서 시민이 후원이나 직접 참여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상담소가 돌아가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저희는 이슈 레이징(issue raising)과 펀드 레이징(fund raising)의 선순환을 위해 노력했어요. 이슈를 제기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커지면 기부도 이뤄지는 식이죠. 이를 위해서 상담소가 날카로움이나 혁신적인 자세 등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했고, 회원들과의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서 SNS나 블로그 활용도 열심히 했어요. 저희는 성폭력을 알려내는 것에서 나아가 성폭력에 대한 불편하지만 날카로운 진실을 드러내고자 했지요. 쉽게 펀드 레이징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런 유혹에 빠지지 않고 우리의 문제의식을 지켜가며 긴장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반성폭력 운동의 중요성은 해마다 확장되고 있지만 성폭력에 대한 통념은 오히려 강화된 측면이 있습니다. 올해 20주년을 맞이하여 그 간의 상담통계를 분석했는데, ‘일관된 현상’은 나이 불문하고 가해자가 아는 사람이나 친인척이 대다수라는 점이었고, 다른 나라의 통계에서도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사실이 여전히 외면되고 있어요.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사건은 예외적인 케이스나 공분하기 좋은 것들뿐이에요. 사회가 이런 예외적 사건들에만 반응할 때 대다수의 유형을 차지하는 피해자들은 더 말할 곳이 없어집니다. 성폭력 대책이 예외적인 경우에만 매달릴 때, 우리 사회의 성폭력 근절은 기대할 수 없어요.

차를 마시는 이윤상 소장

성폭력 가해자 형벌강화정책에 분명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도 매우 아쉽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니까 화학적 거세, 찬성하지?”라는 질문을 받고, 그런 조치가 정신병리적 문제를 가진 소수의 낯선 사람들에 의해 성폭력이 자행된다는 통념을 강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더 분명하게 제시했어야 했는데, 애매모호한 우리의 대응으로 결국 인권과 반성폭력 대응이 함께 가는 가치라는 것을 설득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Q 성폭력 피해자 지원은 정부가 책임져야 할 사안임은 분명하지만, 성폭력상담소나 피해자 보호시설이 정부지원을 받으면서 반성폭력의 운동성은 약화되고 사회복지서비스를 전달하는 역할에 머물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폭넓게 공유되고 있는데, 반성폭력운동의 제도화에 상담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A 제도화는 우리의 요구였고 상당부분 성과를 거뒀다고 봅니다. 다만, 제도 안에 정신이나 가치가 있다기보다는 그런 가치나 정신을 담보한 사람들이 제도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개입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상담소가 지금까지 20년 동안 제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면 이제는 제도 밖에서 긴장감을 주는 역할, 제도가 담보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현장에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정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다고 해서 상담소의 기본가치나 원칙이 흔들리면 안 되고, 그 선이 어디까지인지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더구나 리더는 현재의 작은 결정이 5, 10년 뒤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해요.

임기를 마치면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맘으로 말을 한다면, 정부와의 관계에서 긴장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관계는 상호적이라 정권의 성격도 중요합니다. 지금의 상황은 굉장히 우려스러운데, 현 정부는 부처나 이슈에 따라 자신들에게 불편한 단체나 사람은 논의의 파트너로 삼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현장이나 피해자에 대한 고려 없이 여성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미치는 정책을 쉽게 결정해왔어요. 우리의 경험 상 적어도 전에는 관련부처에서 자문을 구했을 정도의 사안인데도, 요즘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정책이 도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까지는 우아하게 자문을 했다면, 이제는 시위를 하거나 항의방문을 하는 등 소통방식 자체를 변화시켜야 할 상황입니다. 갈등을 유발하는 방식이라도 적극적인 컨택이 필요하고, 상대해주지 않아도 말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해야 합니다.

Q 그 간 미녀소장으로서 여성계에 이름을 날리며 상담소의 위상을 드높였는데, 우리 상담소의‘노이즈 마케팅’에 있어 상당한 손실이 예상됩니다. 퇴임 후 대선출마설도 본인으로부터 나온 이야기인데,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A 상담소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한 전략으로 미녀소장이라고 떠들고 다녔다는 점에 대해서는 한 점 부끄럼이 없습니다(이때, 이윤상 소장의 한바탕 웃음으로 인터뷰 잠시 중단). 제가 ‘미녀소장’이라는 점을 의식화하기 위해 내외부에서 많이 노력해왔는데, 외부에서는 좀 먹혔지만 내부에서는 별 소득이 없었어요. 그런 점에서 우리 활동가들은 참 꿋꿋해요. 이렇게 멋있는 여성들이 뭉텅이로 모여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상담소는 참 특이한 단체입니다. 여성운동에 대한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깨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지요.

책 출판을 아직 못해서 총선이나 대선 출마는 불투명합니다(이윤상 소장의 웃음보가 터져서 인터뷰 또 중단). 2006년 부소장으로 활동하면서 끝까지 여성운동가로 살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여성운동가로서의 일을 계속하겠습니다. 상담소에서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달려올 것이고 상담소를 빛내는 일에 기여하면서 상담소女로 살아가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미녀소장 물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