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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성희롱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 한국성폭력상담소
문득 떠오른 질문

지인이 성희롱 가해자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Q 저는 회사에 다니는 근심이 대리입니다. 친한 동료 대리가 회식자리에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A사원에게 술을 따르라는 말을 하며 허벅지를 만졌습니다. A사원이 성희롱으로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여 징계위원회가 꾸려져 동료 대리는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상황입니다. A사원도 힘들겠지만 동료 대리와는 입사 동기이기도 하고 친한 사이여서 옆에서 괴로워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이 불편합니다. 그런데 동료 대리가 어제는 저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별 뜻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니라 친근감의 표현이었을 뿐인데 너무 억울하다. 지금 A사원은 눈을 마주치지도, 만나주지도 않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근심이 네가 대신 만나서 내가 그런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으니 좋게 해결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을 해주길 바란다.’

회사에는 벌써 소문이 나서 동료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고, 저는 동료 대리와 친하긴 하지만 그다지 나서고 싶지는 않고……. 이래저래 마음이 불편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From 근심이〉

A 안녕하세요, 근심이 님. 친한 동료 대리의 부탁을 받고 난감하고 힘드셨겠습니다. 이렇게 가해자와 친분이 있는 경우 보통 가해자편에 서서 가해자를 옹호하고 감싸 안으려 하거나 피해자를 비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고민을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통 직장 내에서 성희롱이 발생했을 경우 근심이 님처럼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에게도 어려운 점이 생기게 됩니다. 근심이 님도 사건 이후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 가해자가 된 동료 대리가 요구하는 상황들로 인해 심적 고통이 상당하셨던 것 같고, 동료들 사이에도 의견이 분분하다 하신 걸로 보아 그분들 역시 마음이 편치 않은 상황으로 보입니다.

지인의 의도가 성희롱이 아니라면 성희롱이 아닌 걸까요?

조직 내에서 성희롱이 발생하는 맥락은 조직 내 힘의 권력관계와 조직 내 집단문화, 우리 사회의 성에 대한 통념과 사회문화적 규범들이 성희롱을 허용하고 있는 데서 비롯됩니다.

근심이 님의 회사에서 일어난 사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근심이 님의 편지를 읽고 제가 걱정된 점은, 가해 동료 대리가 A사원이 힘들어 한 행동을 단지 친근감의 표시였다고 표현하며 피해자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 보다는 근심이 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를 보인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고 반성하는 모습으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성희롱의 판단기준은 행위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성적인 말과 행동으로 상대에게 불쾌감이나 모욕을 주는 것입니다. 동료 대리가 성희롱을 할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피해 A사원이 동료 대리가 한 행위에 불쾌감이나 모욕을 느꼈다면 성희롱이 됩니다.

동료 대리가 근심이 님을 통해 사건을 무마시키려는 모습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바람직한 성인의 태도로 보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들은 자신의 가해사실이 문제가 될 경우에 자신의 잘못을 최소화 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행동의 정당성에 대해 주변인들에게 동의를 구합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기보다는 오히려 잘못이 아니었다고 믿어버립니다. 그러면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거나 강화할 수 있고, 또 다른 피해자 양산 및 가해자에게는 더 큰 대가를 치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가부장적인 성문화 안에서 동료 대리는 자신이 익숙하게 해왔던 생각이나 행동들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징계절차를 밟고 있는 현실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억울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분노를 수용하고 스스로를 성찰하기를 권유하는 것은 어떨까요?

성폭력은 같은 피해를 입었더라도 그 피해의 정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서 그의 행동으로 인해서 고통 받고 있을 피해자의 심정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A사원도 같은 직장 내에 있는 동료 대리가 자신에게 행한 가해사실을 밝혀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것이 힘든 과정이었을 것입니다. 보통 피해자는 성희롱 피해로 상처받고, 피해 이후 가해자나 주변인의 태도에 의해 심각한 2차적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A사원의 경우 신입사원으로서 적응해 가는 단계인데 이러한 사건이 발생하여 직장생활이 많이 힘들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녀 자신은 힘든 하루를 살아가는데, 가해를 한 동료 대리가 진심어린 사과를 하기 보다는 사건을 무마하려는 태도로 일관한다면 피해자로서는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동료 대리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상대에게 친근감의 이름으로 아무렇지 않게 가해를 해온 것은 아닌지 성찰하는 기회로 삼게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근심이 님이 상담소에 상담을 의뢰하신 것도 용기를 필요로 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동료 대리의 부탁을 거절하는 것이 힘들겠지만 이를 통해 건강한 조직문화가 만들어지면 근심이 님 자신을 위하는 길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근심이 님,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처음부터 동료 대리의 요구를 거절한다면 마음의 문을 닫고 근심이 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으니 근심이 님의 입장과 동료 대리를 위하는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근심이 님이 동료 대리의 부탁으로 A사원을 만났다고 가정했을 때 A사원이 느낄 수 있는 상처나 분노를 통찰할 수 있도록 돕고 ‘사건이 빨리 해결되고 마음이 편해지기를 원한다면, 현실을 받아들여 진정으로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 그 분노와 요구를 수용하고 사과하는 것’이라고 알려주면 어떨까요?

그러면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잘못을 인정하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근심이 님을 원망하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요. 그렇지만 근심이 님! 동료 대리에게 그의 행동이 A사원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잘못을 저지른 건강하지 못 한 행위라는 것을 일깨워 줄 필요성이 있습니다.

동료 대리가 A사원에게 친근감의 표현으로 한 것이 범죄행위가 된 것처럼, 우리는 타인과의 소통을 원활히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하여야 합니다. 그 첫 번째 발걸음으로 근심이 님이 상담소에 문을 두드린 것이라고 봅니다. 그럼, 용기 내어 동료 대리와의 대화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From 복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