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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지원

[폴짝기금] 2022 인터뷰: "너를 위한 무언가를, 아무거나 해도 돼" - 온전한 나만을 것을 고민하는 리나
  • 2022-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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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회 또우리폴짝기금 프로젝트가 진행 중입니다. 자립의 어려움을 통과하며 즐거움도 놓치지 않고자 하는 또우리들의 목소리를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올해는 15명의 또우리들이 폴짝기금 프로젝트에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 인터뷰는 리나와 함께 했습니다. 리나는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나누어주셨어요. 성폭력 사건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하나하나 헤쳐나가며 지금의 이 자리에 있는 리나에게 많은 응원과 지지의 마음을 보내고 싶습니다. 


⛺수수 : 인터뷰는 빵을 먹으면서 해봅시다. 편하게 하세요. 이걸로 막 탈락하거나 합격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저희 인터뷰 첫 번째 질문도 리나가 어떻게 지내셨는지, 안부가 궁금하다는 질문이에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리나 : 저는 퇴소 후 복직해서 1년 동안 일하고 퇴사했어요. 그리고 바로 커피숍에서 두 달을 일했구요. 지금은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근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쉰 적이 한 번도 없더라고요. 그래서 좀 저한테 여유랑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서요.


⛺수수 : 일하고 바로 알바 구하고 또 바로 학원에서 일하고. 이렇게 텀이 별로 없었네요. 카페 알바를 해보셨다니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원래 카페에서 일해보신 적이 있나요? 학원 근무환경은 괜찮은지도 궁금합니다.


🎾리나 : 네, 그래서 다시 일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자꾸만 cctv로 직원들을 관찰하셔서 되게 힘들었어요. 직원들끼리만 있으면 솔직히 수다도 떨게 되잖아요. 근데 그럴 때마다 전화해서 ‘뭐 해라, 뭐 해라’ 그랬죠. 학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은 재밌는데, 근무 조건이 너무 안 좋아요. 지난달은 30일 동안 한 번도 안 빠지고 출근을 해야했거든요.


⛺수수 : 오늘도 인터뷰 끝나면 바로 출근하셔야 하는거죠? 정말 쉼없이 일하셨네요. 제 기억에도 리나는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었던 거 같아요.


🎾리나 : 옛날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대학생 때도 봉사활동이나 아르바이트를 계속 했었거든요. 쉼과 여유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마침 제 가족이 외국에서 결혼을 하거든요. 결혼식 참여하러 간 김에 학원을 그만두고 해외여행을 할까 고민도 들어요. 그런데 급여만 좀 오르면 이대로 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직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요. 사실 일은 더 많이 하는데도 원래 직장에서 받던 것보다 지금 급여가 더 적거든요. 급여 차이를 극복해야 되니까 더 많이 일하게 되는 것도 있어요. 그러다보니 저를 위한 활동을 아예 못하고 있더라고요. 피곤하니까 시간 나면 자고 출근하고 자고 출근하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일을 너무 열심히 하다보면 체력이 훅 떨어지더라구요.


⛺수수: 안 그래도 리나가 폴짝기금 신청서에 작성해주신 내용을 읽어봤는데 건강이 안 좋은 것 같아 걱정됐어요. 지금 체력이 떨어진 시기인 거죠?


🎾리나 : 그런 것 같아요. 저번에 불면증이 너무 심해서 약을 증량했거든요. 어느 날 처방된 약을 먹었는데, 제 몸에 부담이 되었는지 휘청휘청거렸어요. 자전거 타고 가다가도 넘어지고, 걸어가다가 막 부딪히고. 수업할 때도 애들이 막 ‘선생님 집에 가셔야 될 것 같다’고. 근데 빠지면 또 보강을 해야 되니까 그냥 계속 일을 했죠.


⛺수수 : 좋은 노동 조건의 일자리를 찾는다는 건 진짜 진짜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다음 질문이에요. 폴짝기금을 알게 되고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리나 : ‘신청해야겠다. 기회다. 근데 돈을 받으면 어디다 쓰지?’ 하는 생각의 흐름이었달까요. 생각해보니 제가 매일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더라구요. 일주일에 의료비만 15만 원 나와요. 상담비용이 10만 원이고, 병원 진료랑 약값을 포함하면서. 저번 달엔 집 세탁기가 고장 나서 어머니께 하나 사드렸구요. 기금을 신청하려고 고민하다보니 ‘나를 위해 내가 무슨 투자를 하고 있지?’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수수 : 그렇군요. 리나는 폴짝기금을 운전면허, 테니스, 상담, 가족의 결혼식에 입고 갈 옷 등에 사용하고 싶다고 적어주셨어요. 이런 이용 계획에 대한 소개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리나 : 옛날에 테니스를 했었는데, 사건이 있은 후로 안 다녔어요. 한 달 전부터 다시 나가고 있는데 금액이 크니까 좀 부담이 됐어요. 그래서 신청하게 된거예요. 하지만 이것들이 딱 저를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운전면허도 사실은 저만 생각하면 안 따도 되거든요. 20대 때부터 계속 따야지 했지만, 사실 딱히 운전할 일도 없었어요. 지금은 집안에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쯤 더 있어야 되겠더라고요. 저와 가족들을 위한 일 같아요. 제가 온전히 저만을 위해서 뭘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못 했던 것 같아요.


⛺수수 : 면허가 리나 본인을 위한 것이지만 가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단 말씀이시군요. 만약 ‘가족을 위해서 하는 게 곧 나를 위한 거다’라는 마음이라면 저는 완전 응원하고 싶어요. 하지만 ‘나는 너무 가족을 위해서 사나...’ 이런 마음이 든다면 조금 슬프고, 고민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리나 : 음. 면허를 따면 저한테도 도움이 되겠죠. 면허가 있으면 좀 더 자유롭게 여행도 하고 저한테도 도움이 되긴 할 거 같아요.


⛺수수 : 그러면 좋을 것 같아요. 우선 신청서에 작성하신대로 해보세요. 하지만 지금이 5월인데 기금은 10월까지 쓸 수 있잖아요. 사람 일 모르니까, 나중에 ‘운전면허는 아니야’, ‘테니스 이제 그만할래’ 이렇게 될 수도 있겠죠. 그렇다면 신청서를 변경해서 기금을 사용해도 괜찮아요. 그냥 포기하는 게 아니라, 리나에게 더 맞는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라면 얼마든지요.

그나저나 퇴소한 다음 다들 쉼터에서의 삶이 아니라 또 다른 삶을 살잖아요. 그게 일종의 자립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아요. 가족이랑 같이 살든 자취를 하든. 다 자신의 삶을 세우는 과정인 것 같은데 그러면서 되게 좋은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게 있었을까요. 좋은 점도 있고 힘든 점도 있었을 것 같긴 한데요.


🎾리나 : 열림터에 있을 때가 더 좋았어요. 귀가 시간이나 생활규칙은 저는 힘들지 않았어요. 또 열림터에서는 같이 지내는 친구들이 다들 서로 상황을 알고 있으니까 그때그때 반응을 해주잖아요. ‘리나 그때 힘들었겠다.’ 이런 얘기 많이 해주고요. 퇴소하니까 혼자 처리해야 될 일이 되게 많은 거예요. 열림터 있을 때는 상담을 가던, 지원을 받던 다 도와주셨는데 혼자서 하려니 되게 복잡하더라고요.


⛺수수: 그랬군요. 퇴소 후에도 재판이 진행되었다고 기억하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리나 : 2심이 끝났고, 가해자는 징역 3년 6개월을 받았어요. 재판은 지금 대법원까지 간 상황이에요. 형사재판이 끝나면 제 치료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도 진행하려고 해요. 직접 피해를 입은 금액, 제가 일을 안 그만두고 계속했더라면 기대되는 소득이랑 지금 현재 소득이랑 비교한 격차, 그리고 치료비로 쓴 돈하고 위자료. 이렇게 3개를 청구할 수 있다고 다른 상담소에서 안내해주셨어요. 그런데 복잡하기도 하고, 소송 때문에 알아봐야 할 것도 많아서 힘들어요. 퇴소하니까 의료비 지원도 제약이 많더라구요.


⛺수수 : 맞아요. 시설에 입소해 있으면 의료비도 더 좀 많이 지원되고 법적 절차도 크게 신경 안 써도 되죠. 퇴소한 다음에, 혹은 입소하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 생활하면서 생활의 일부처럼 정보를 찾아봐야 되어서 힘들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어요. 그게 아까 리나가 말한 자립 생활의 어려움일까요?


🎾리나 : 맞아요. 모든 걸 다 스스로 해야 되니까. 열림터에 있을 때는 마음은 더 힘들었겠죠. 사건 지난 지 얼마 안 됐으니까요. 그래도 그냥 주어진 일을 하면 되니까 편했어요. ‘지금 오늘은 이거 하는 날이다.’ 그럼 이거 하고, ‘저거 하는 날이다.’ 그럼 저거 하면 됐는데 이제는 혼자잖아요. 어디에 소속이 안 되어 있는 게 또 좀 불안한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직장도 구해야 될 것 같고. 그렇게 하나하나를 준비하는 게 혼자는 좀 버거웠어요.


⛺수수 : 그래도 리나 잘 하고 계시다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불안하지만 그래도 계속 시도하고 계시니까요. 혼자서 버거웠지만, 결국 잘 맞는 병원도 찾았고 심리상담기관도 찾아간 거니까 진짜 훌륭한거죠. 안 그래도 리나가 또우리 수다방에서 간간히 같이 대화를 나누시는 것 같아서 좋아보였어요.


🎾리나 : 맞아요. 저 또우리 수다방에서 알게 된 다른 또우리 분과 함께 영어 강의도 같이 들어요.


⛺수수: 그러면 마지막 질문인데요. 시설을 퇴소한 생존자들 성폭력 피해자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내가 해보니까 개인적으로 나에게 이런 거가 필요했다거나, 아니면은 사회적으로 이런 것이 보장되면 좋을 것 같다. 이런 두 가지 차원이 있을 것 같아요.


🎾리나 : 일단 정신과 약물 치료랑 심리 치료를 같이 계속 받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퇴소하면 약도 마음대로 중단해 버리고 그럴 수도 있잖아요. 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연계되면 좋을 것 같아요. 또 저는 운이 좋게 계속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정말 돈벌이를 못 하거나 자립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친구들도 보게 되어요. 같이 퇴소한 사람으로서 불안해 보이거든요. 그래서 시설에서 나간 다음에 혼자서 살아가는 법을 조금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가면 여기에서는 자연스럽게 주어지던 어떤 것들이 없어지고 이런 거는 네가 스스로 구해야 되고. 여기는 도움을 주니 연계를 시켜줄 수 있다. 이런 거를 미리 고지해주면 조금 편할 것 같아요.


⛺수수 :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말로 설명하거나 같이 계획서를 써보거나 이런저런 방법을 해보지만 막상 또 나가면 실제로 겪는 건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잖아요. 쉼터 있을 때 고민하거나 들었던 것들이 막상 나가면 또 생각이 안 나기도 하고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다 알 수가 없으니까 완전히 처음 겪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계속 궁리해보겠습니다.


🎾리나 : 참, 폴짝기금, 이거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저는 계속 스스로를 피해자, 그러니까 그냥 지원받는 입장이라고만 생각했었어요. 저한테 멈춰진 시간이 있고 그걸 다시 회복해야 된다고만 생각했는데요. 그냥 ‘너를 위한 무언가를, 아무거나 해도 돼’ 이렇게 응원해 주는 것 같아서 좋았어요.


⛺수수 : 그렇게 느껴졌다니 저희도 너무 좋아요. 딱 그런 취지로 만든 프로젝트였거든요.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여기서 마칠게요.


성폭력피해생존자들의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여는 터, 열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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