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립지원
폴짝기금은 열림터를 퇴소한 생존자('또우리')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기금입니다.
올해는 7명의 또우리가 프로젝트에 함께 하고 있어요.
자립의 과정에서 마주하는 경험과 변화하는 마음을 담은 또우리들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네 번째 인터뷰는 진주입니다.

2025또우리인터뷰➃ 서울에 있는 것과 없는 것
🦊신아: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진주: 00에서의 삶도 일도 적응했고 모든 것이 좀 단조로운 상태인 것 같아요.
🦊신아: 단조로운 것은 좋은 것인가요 안 좋은 것인가요?
👀진주: 좋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익숙해지니까 신나는 것, 재밌는 것, 두근거리는 것을 찾아서 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서울도 다시 가고 싶고 그래요.
🦊신아: 그래서 머리를 탈색하셨군요(웃음)
👀진주: (웃음) 네 그쵸 새로운 시도죠.
🦊신아: 원래는 서울에 계셨었어요?
👀진주: 네 상도동우리집에 5년을 살았었거든요. 지금은 없어졌다고 들었어요. 상도동우리집에서 5년 살고 나오면서 00으로 왔어요. 그때 사실 주거가 비용이 비싸잖아요 그래서 00 부모님댁으로 오게 되었어요. 열림터에 다른 집이 생겼다고 들었어요.
🦊신아: 네 ‘또같이’ 라는 집이에요.
👀진주: 거기 지원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00에 내려온 가장 큰 이유가 집값이 크기 때문에. 1년 있을 수 있는거 맞죠?
🦊신아: 네 맞아요!
👀진주: 내년에 가고 싶은데 그런데 이게 신청자가 많으면 선발 기준이 아마 있겠죠? 서울 집값이 10년전에도 비쌌는데 지금 더 올랐잖아요. 서울은 장점은 있지만 단점도 같이 가지고 있어서.
🦊신아: 서울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진주: 친구들도 거기 많이 있고, 커뮤니티 활동이나 문화생활이 좀 더 있고요, 기회가 많은 것 같아요.
🦊신아: 서울에 오래 사셨어요?
👀진주: 00에 산 것보다 오래 살았죠. 10년 정도 살았고, 학교도 다니고 일도 다녔었어요. 주거 문제 때문에 내려오긴 했지만 10년 전보다 오른 걸 보면 그때라도 눌러앉았어야 하나 싶기도 해요. 지금은 바라볼 수 없는 곳이 되었어요. 상도동우리집이 있어서 좋았어요.
🦊신아: 또같이를 준비하면서 여러 집을 참고했는데 상도동우리집도 그 중 하나였어요. 상도동우리집에 살 때는 뭐가 좋으셨었나요?
👀진주: 일단 월세가 싸니까 다른 곳에 비해서. 그리고 노량진이랑 신림에 자주 가야 했는데 접근성도 좋았고요. 거기를 별로 안좋아했던 사람들도 있긴하지만 저는 만족했어요. 없어져서 아쉽더라고요. 그런 비슷한 공간이 있나요?
🦊신아: 민달팽이유니온에서 하는 달팽이집이나 다다다협동조합에서 하는 다같이사는집 이런 집들이 있어요. 퇴소 이후에 진주의 집구하기 여정들이 궁금한데요.
👀진주: 퇴소하고 00에 잠깐 내려와있다가 거의 바로 상도동우리집으로 들어간 것 같아요.
🦊신아: 5년 살고 나오게 된 이유는 뭐였어요?
👀진주: 5년까지 있을 수 있었어요. 그때 나와서부터 지금까지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어요.
🦊신아: 서울살이는 집값때문에 힘든 것 같아요. 심리상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진주: 저는 이 분야로 오게 될 줄 몰랐어요. 그렇지만 원래 심리와 상담에 관심이 많았었어요. 여건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어서 겁을 먹고 못하고 있다가 일을 시작하고 나니 관심있었던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대학원에 가서 배우게 되었죠. 그 이후로는 쭉 심리상담쪽에 있어요. 결국 관심있었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되는 것 같더라고요. 급히 진로 변경해서 오게 되었습니다.
🦊신아: 진로 바꾸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진주: 특별한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어요. 돈을 벌다가 공부하다 보니까 수입이 줄어든다는 게 리스크였긴 한 것 같아요. 대학원에서 일을 하면 소정의 급여를 주긴 하지만 적으니까요.
🦊신아: 쉼터 퇴소 이후 자립을 하게 되잖아요. 자립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요?
👀진주: 가해자가 친족인데 장례식에서 봤었거든요. 23년도였던 것 같아요. 벌써 10년 정도 지났는데 부글부글하는 거부감과 화가 남아있더라고요. 한동안은 남아있는 화와 여러 감정들을 다루느라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때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에 하는 작은말하기를 몇 번 나가서 다른 생존자들과 이야기 하면서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요. 3번 이상 나갔던 것 같아요. 제가 그걸 이야기 하니까 비슷한 일 겪은 사람들이어서 공감을 많이 해주더라고요. 시간이 많이 지나도 잔여 감정이 자극되는 경우 때문에 다들 어려움을 겪고 계시더라고요.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다들 고군분투하고 있구나 느껴지고 위로해주시기도 하고 공감해주시기도 해서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그때 기억이 좋았어서 또 나가고 싶긴해요. 작은말하기 아직도 하고 있죠?
🦊신아: 맞아요 하고 있어요. 진주는 또우리모임에도 꾸준히 오시고 작은말하기도 참석하셨던 것 같은데 그런 모임에 자주 나오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그렇게 모임에 참석하게 되는 진주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진주: 00보다 서울에 오래 살았었고, 서울 가면 또우리모임이라는 갈 곳이 있다는 느낌. 저는 여러 가지 변했는데 열림터는 항상 그대로 이더라고요. 그래서 든든한 느낌이 좋은 것 같아요.
🦊신아: 심리상담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열림터에 살았던 경험, 생존자인 점이 자원이 되기도 하나요?
👀진주: 가끔씩 추행이나 친족 관련해서 폭력 피해가 있었든 분들을 만나면 제가 좀 더 공감을 할 수 있는 자원이 되기도 해요. 상담 시작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감정이 자극되어서 방해가 되기도 했었어요. 상담 시작한 지 첫 해에 친족성폭력 피해자 만났었는데 최근에는 없었어요. 첫 해와 비교해서는 제가 많이 달라지기는 했으니까 지금은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있어요. 나도 발전했으니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
🦊신아: 좋은 상담가로 더욱 성장하실 수 있기를 바랄게요. 진주님에게 지금 자립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에요?
👀진주: 제가 만약에 서울에 가게 되면 주거가 가장 문제이긴 한데, 지금 현재로서는 자기계발을 하거나 내적으로 단단해지고 성장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 자립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신아: 또우리폴짝기금으로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고 썼는데 그것과 연관되나요?
👀진주: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를 더 하고 싶어가지고요. 그런데 지금 점수를 만들어놓는 게 1순위에요. 심리상담쪽 공부도 해야되지만 영어도 해야되는데 예전부터 미루고 미뤄왔어요. 이번 기회에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서 신청했어요. 그런데 이 공부를 자유의지에 맡기는 게 힘든 일이에요. 온전한 자유의지에 내맡긴다는게..
🦊신아: 종종 ‘진주 공부 잘 하고 있나요?’ 라고 여쭤봐 드릴까요?
👀진주: 좋아요 (웃음)
🦊신아: 생존자의 자립에 대해 더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어요?
👀진주: 열림터가 ‘또우리’ 라고 해서 퇴소자들 이름을 붙여서 계속 연을 잇어주니까 연결감과 안정감을 많이 주는 것 같아요. 오랜 기간 동안 연결감을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이 많지는 않은 것 같거든요 요즘에. 계속 또우리들을 묶어준다는 측면에서 되게 감사한 것 같아요.
🦊신아: 저희도 감사하죠. 그럼 오늘 인터뷰는 여기서 마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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