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소식지
저는 구글 캘린더를 애용하는 MBTI(성격유형검사)에서 J(계획형)인간입니다. 어릴 때부터, 기억나는 한 9살 정도부터 다이어리를 쓰면서 일정 쓰거나 계획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만 변덕이 심한지라 일정이 자주 변경되어 지우고 다시 쓰기가 용이한 것을 찾다 보니 구글 캘린더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00월 00일 토요일, 열림터에 들어오고 처음 하는 주말 숙직이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전날 하필 회식이 있는 날입니다. 상담소 전체 회식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놀기 좋아하는 저는 오래오래 놀고 싶었지만, 이성을 잡고 구글 캘린더에 이렇게 작성해봅니다. ‘내일 숙직을 위해 일찍 귀가’ 그리고 그 시간을 오후 7시로 지정해봅니다. 그냥 칼퇴근한 것이나 다름없는 회식 날이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뒤로 하고 2차 가는 동료들에게 인사도 해봅니다. ‘안녕.. 잘가.. 내몫까지 놀아…’
첫주말 숙직 전 뭔지 모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저를 보며 전활동가 박00활동가가 말합니다. ‘파랑! 당당하게 해요. 몰라도 아는척하고 아는척 못하겠으면 알아본다고 하거나 다른 활동가한테 물어보라고 하면 돼요.’
뭘 당당하게 하라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무슨 느낌인지 잘 알겠습니다. 아, 뭐가 되었건 당당한 자신감이 중요하구나! 깨달음을 얻어봅니다. 하지만 도를 믿습니까에 자주 걸리는 만만한 인상을 가진 덕인지 몰라도 이미 생활인들에게 몇 번 무시와 놀림을 당한 적 있어 당당하게 하는 것이 나에게 가능한 것인지, 다시금 생활인에게 있어 나의 컨셉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해봅니다.
그리고 다시 박00 활동가 왈
‘그리고 생활인들이 외출하면 푹 쉬어요. 계속 긴장해 있으면 오래 못해요.’
‘아, 쉴 수가 있겠구나’ 생각해 봅니다. ‘그래.. 누구는 몇 시에 나가고 누구는 몇 시에 약속이 있다고 했으니 오후 시간에 2시간 정도는 쉴 수 있겠다.’
구글 캘린더 애용자답게 내일 해야 할 일들을 빼곡히 적어봅니다. 이 시간엔 이것을 하고 저 시간엔 저것을 하고, 처음이라 그런지 할 일이 많게 느껴집니다. 잊어버릴 것 같기도 합니다. 또 휴식 시간도 야심 차게 적어봅니다. 그래도 캘린더에 적어뒀으니 잊지 않고 챙길 수 있겠지. 자신감, 뭔지 모를 당당함을 캘린더와 함께 장착해봅니다.
그리고 찾아온 대망의 숙직 날. 저의 계획, 일정은 전면 수정되었습니다. 그래도 구글 캘린더에 적어서 얼마나 다행인지요? 클릭 한 번이면 일정을 옮길 수 있거든요. 휴식 시간이요? 30분이나 쉬었을까요.. 갑자기 생긴 긴급상황에, 약속한 것과 미뤄지는 방 청소 검사 시간, 삼시세끼 먹으면 주방 정리 정돈 확인, 공간 사이사이 여러 지도(잔소리) 등등 계획되지 않은 일상을 보내다 보니 하루가 다 갔습니다. 뭐, 이미 여러 차례 숙직 일기를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예상했을 결말이었을까요.
계속하다 보면 뭐든 나아지겠지요? 그래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4번째 숙직이라고 약간은 여유를 찾았답니다. 오늘은 삼시세끼 밥이라도 맛있게 챙겨 먹자는 여유를 억지로 가져보았어요. 그리고 생활인과 함께 산책도 갔다왔습니다. 맞아요. 이것도 캘린더에 적어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저의 주말 숙직은 시작되었고요. 앞으로도 몇 년간 저는 월에 2~3번 숙직하는 일정을, 숙직 전 컨디션 조절을 위해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을 캘린더에 적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받아들이고 숙직날 계획되지 않은 일상에도 유연하게 대처하여 진심 당당한 활동가가 되어보겠습니다. 우리 모두 화이팅.
열림터 활동가 파랑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