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림터
  • 울림
  • 울림
  • 열림터
  • ENGLISH

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후기] 연세대학교 인권축제 부스(5월 25일), 혜화역 서울인권영화제(6월 8일, 9일) #의지로QnA 캠페인 부스를 진행하며
  • 2018-07-17
  • 3432

뜨거웠던 5월의 마지막 금요일, 나는 앎님, 신아님과 함께 연세대학교로 향했다. 우리는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가 주최하는 인권축제에 캠페인 부스로 참여했다. 소수자의 인권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연세대학교 인권축제는 올해로 제2회를 맞았다. 연세대학교에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부스에 책상과 의자를 나르고, 세팅을 마친 후 백양로를 바라보며 앉았다. 1교시가 아직 끝나지 않은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다른 부스들도 천천히 사람들이 세팅을 마치고 있었다. 24일, 25일 이틀간 진행된 연세대학교 인권축제 부스에는 학내 인권센터, 단과별 성평등위원회, 총여학생회, 성소수자 동아리와 장애인권동아리를 포함한 학내 인권 동아리와 한국여성의전화, 녹색당, 그리고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이 참가하였다. 



25일 금요일, 연세대학교 백양로에 부스를 세운 우리의 목표는 다양했다. “의심에서 지지로”라는, '성폭력 피해자를 향한 의심의 방향을 가해자에게 되돌리고 피해자가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지지망을 형성'하기 위한 대중 캠페인 진행하기, 한국성폭력상담소의 다양한 활동과 부설기관을 우리가 직접 만든 활동 홍보 포스터 소개와 책자들과 브로셔 배부를 통해 대학생들에게 홍보하기,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 받기 많은 활동들을 목표로 하였고 실제로 많은 활동들을 진행하였다.


우리는 특히 “의심에서 지지로”라는 프로젝트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큰 합판 위에 “우리 사회는 미투 운동 이후 성폭력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하고 있을까요?” 라고 프린트한 후, 사람들에게 포스트잇으로 성폭력에 관련하여 다양한 질문과 답들을 붙여달라고 요청하였다. 우리의 기대는 다양했는데, 이 활동을 통해서 아직 충분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다양한 반성폭력 운동 관련 문제들에 대한 답들을 함께 찾고, 현재 대학생들이 갖고 있는 혹은 자주 들었던 성폭력 통념과 그 통념의 해체를 향한 질문/답변을 관찰하고자 했다. 어떤 질문들이 자주 나오는지 보고, 또 학생들이 성폭력 피해자 통념 해체에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게 하는 교육적인 기대도 있었다.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부스를 방문하였고, 자연스럽게 많은 포스트잇들이 붙었다. 많은 분들이 이미 붙어있는 다양한 포스트잇들을 찬찬히 읽어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우리는 펜과 포스트잇을 드리고 천천히 포스트잇을 붙이시길 기다렸다. “의심에서 지지로” 포스터 앞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을 때 오는 분들께는 상담소 책자와 부설 연구소 울림 브로셔를 나눠드리고, 상담소가 어떤 활동을 하는지 설명을 드리며 시간을 활용했다. 


학생들은 대체로 본인이 들었던 혹은 목격하였던 화나는 질문들을 많이 적었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옷을 왜 그렇게 입었었는지”, “너도 원한 것은 아니었는지”, 고발을 “왜 이제 와서” 하는지, 익명의 성폭력 피해 고발은 어떻게 진정성을 알 수 있는지 등 전형적인 성폭력 피해자를 의심하고 탓하는 질문들이 많이 붙었다. 그러한 질문들은 3월 한국성폭력상담소 공동상영회에서 본 <버라이어티 생존토크쇼(2009)> 라는 10년 전에 만들어진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언급된 성폭력에 관련된 어이없고 화나는 질문들과 아주 크게 다르지 않아 나의 머릿속에서 데자뷰가 일어나는 듯하였다. 이런 화가 나는 질문들을 붙이며 사람들은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답장 포스트잇까지 함께 붙였는데, 우리 사회의 만연한 성폭력 통념을 해체하는 답을 적어 붙이며 학생들은 성폭력 피해자에게 유독 폭력적이고 가혹한 이 사회의 의심을 부수고 반박하는 연습을 하였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왜 이제 와서 성폭력을 고발하였는가?”와 같은 성폭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질문 포스트잇에는, 성폭력 피해자의 복잡한 마음,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위계관계, 피해자들이 바로 고소할 때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법적, 생활적, 경제적인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이해가 담긴 다양한 답장 포스트잇들이 붙었다. 활동가들과 자원활동가는 많이 오고 가는 질문이 어떤 것들인지 파악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학생분들은 활동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를 아프게 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해체하는 논리 구축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듯하였다. 


 

 

(사진 클릭 시 원본으로 보실 수 있어요)


많은 분들이 본인이 들었던 화나는 질문 말고도 정말로 본인이 갖고 있던 질문들을 붙이기도 하였다. 페미니스트인 애인 혹은 친구들은 어디서 사귈 수 있는지, 가해자들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행정적, 제도적으로 어떤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하는지, 학내 성폭력 문제를 끊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등. 지나가는 학생들은 발길을 멈추고 우리가 쥐어드린 펜과 포스트잇을 들고 한참 동안이나 고민하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갔다. 포스트잇을 붙이지 못한 분들도 이미 붙어있던 수많은 포스트잇들을 읽어 보며 반성폭력 이슈에 관해 생각해보는 좋은 기회였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사진 클릭 시 원본으로 보실 수 있어요)


상담소 홍보 활동과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은 6월 서울인권영화제에도 이어졌다. 상담소는 연대부스를 신청하여 활동하였는데, 금요일 하루만 진행하려던 처음 계획과는 달리 6월 8일 금요일, 6월 9일 토요일 이틀간 진행하였다. 연세대학교 인권축제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이번에는 낙태죄 폐지 촉구 서명도 함께 받았다. 5월처럼 우리는 상담소의 이름과 활동을 홍보하고, 차별금지법제정 서명과 낙태죄 폐지 서명을 받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펜과 포스트잇을 손에 쥐어드리며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성폭력 관련해서 어떤 질문들과 답들을 갖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첫째날은 감이님, 신아님, 앎님, 가온님, 선민님과, 둘째날은 앎님, 감이님과 함께 하였다. 다양한 해프닝이 있었는데, '미투 운동이 결백한 남성들에게 누명을 씌울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포스트잇을 어떤 분이 붙이고 가신 후, 다시 돌아오셔서 다른 분들이 붙인 답장 포스트잇들을 확인해보고 화를 내고 가신 적도 있었다. 낙태죄 폐지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시민분과 긴 대화를 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인권영화제에 견학 온 중학생, 고등학생들에게 상담소 브로셔를 나눠주며 페미니즘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다양한 분들에게 “의심에서 지지로” 포스트잇 작성을 부탁하며 자연스럽게 반성폭력 운동에 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며, 야외 캠페인을 통해 사람들과 진지하고 깊고, 때로는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중간 중간 고생하신다며 우리에게 음료수와 커피를 사다 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마음이 뭉클했다. 또, 많은 여성들이 낙태죄 폐지 서명을 해주고 가셔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었다. 


5월달처럼, 6월의 서울인권영화제에서도 사람들이 “의심에서 지지로” 포스터 앞에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가셨다. 특히 “여성 그리고 성폭력 피해자의 편에 잘 서지 않는 공권력과 경찰들이 좀 더 여성주의적인 관점으로 성폭력 사건을 접근하게 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라는 질문 포스트잇에 사람들은 한참을 서서 생각하다가 갔다. 한 분은 그 질문을 보고 “아, 정말 너무 어렵다.”라고 하셨다. 맞다. 쉽지 않다. 이 세상에 쉬운 일이 무엇이 있으랴!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를 의심하지 않고 지지하는 분위기로 바꿔가는 건 우리 모두의 과제이고, 어렵더라도 우리가 한번쯤은 다같이 생각해봐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셔서, 어려운 질문들이었음에도, 몇몇 질문들은 끝내 서로가 만족할 만한 답을 찾지 못 하였어도, 모두가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었던 “의심에서 지지로” 프로젝트였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답들과 질문들이 모여 뿌듯하였다. 또, 상담소가 요즘 어떤 활동들을 하고 있는지 어떤 활동들을 해왔는지 사람들에게 알리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5월달의 인권축제와 마찬가지로 행복한 마음으로 부스를 정리하고 귀가했던 여름의 어느 날이었다. 


<이 후기를 본 상담소 자원활동가 남지민님이 작성하였습니다.>


 

  

 

 

(사진 클릭 시 원본으로 보실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