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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보통의연대] 003. 가해에 가담했던 경험부터 페미니스트가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핑크수박의 인터뷰
  • 2019-08-22
  • 1530


[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보통의연대] 003. 가해에 가담했던 경험부터 페미니스트가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 핑크수박의 인터뷰


저는 핑크수박이고, 현재 잠시 쉼의 기간을 가지고 있어요.


Q.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이 떠오르나요?


어떤 피해를 당한 사람이 나한테 얘기했을 때, 그 순간 주변인이 되는 것 같아요. 혹은 그 건너 이야기를 들었을 때.


Q. 스스로 성폭력 주변인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렇죠. 성폭력은 큰 개념이니까요. 성희롱, 성추행 등등. 주변에 여성들은 그런 피해를 안 당한 분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주변인인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Q. 그러면 내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나요?


멀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숨 쉬듯이 경험하는 것.


Q. 성폭력 주변인이 되었던 경험이 있나요?


많죠. 일단 단톡방에서 불법촬영물, 유출본을 공유하는 일이 예전에 있었어요. 그때는 저 또한 궁금해서 보고 싶었는데 핸드폰 기종이 안 좋아서 열리지 않았어요. 그런 것들을 잘 공유해주던 언니가 있었고, 그런 것들을 돌려보던 문화(가 있었죠) 당시에는 그게 상업적으로 이용된다는 걸 몰랐고, 실수로 유출되었다는 것 정도로 이해하고 전혀 문제의식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이게 구조적으로 이루어지는 행위이고, 몸이 노출된다는 것의 사회적 의미가 남성과 여성이 굉장히 다르고, 사회적으로 받는 타격이 다르고, 그런 지점들을 많이 느꼈어요. 자살한 사람도 많았고요. 내가 그 피해 당사자라면……이라고 치환해보면 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런 가해 행위에 동참하지 않게 되었어요)


Q. 단톡방에서 불법촬영물이 공유될 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여성들만 있는 단톡방이었고, 단톡방 멤버들은 그걸 성관계 방법에 대한 학습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 이렇게 비슷비슷하게 (성관계를) 하는구나.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 (거죠) 보면서 성적 흥분을 느끼고 그렇다기보다는, 거의 그런 정도의 얘기만 나눴던 것 같아요.


Q. 만약 그런 상황이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본인을 포함 그 멤버들이 어떤 태도를 취했으면 좋았을까요?


정색하면서 보면 안 된다고 얘기했을 것 같아요. 어디서 유출된 거냐 따져 묻고요.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좀 그렇긴 하네요. 그걸 공유한 사람이 나보다 선배였어요. 말없이 조용히 단톡방을 나가거나 개인톡으로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얘기하거나……그 집단 안에서 공론화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것 같아요. 그 선배가 이상하거나 권위적인 선배면 더욱더 그냥 그 단톡방을 나왔을 것 같아요. 좋아하는 선배라면 얘기를 해볼 것 같고요. 사이가 틀어지지 않을 것 같으면…….


Q. 단톡방과 관련한 또 다른 사례도 있나요?


사회적으로 불법촬영 관련해서 문제의 심각성이 엄청 대두되고 있을 당시였는데, 조금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친구랑 얘기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걔가 이렇게 말했어요. “아니, 그걸 왜 찍게 허락하지?” 그 순간 말을 못 하겠는 거예요. 그때 ‘그걸 합의 하에 찍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고 동의 없이 찍거나 동의 없이 유포하는 게 문제’라고 얘기해야 했는데. 그 순간 제가 맥락을 잘못 파악하고 ‘작정하고 찍는데 그걸 몰래 찍는지 아닌지 어떻게 아냐’라는 식으로 얘기해버린 거죠. 걔는 그 포인트가 아니었는데. 여전히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전히 피해자에게 잘못을 돌리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같은 여성이라도 문제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다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나중에 그 친구랑 얘기 나누면 그 부분 같이 짚으면서 얘기하면 좋겠다 (생각은) 하지만, (친구가) 많이 감수성이 부족해서 대화를 잘 안 하게 돼요.


Q.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이유가 뭘까요?


본인은 그게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인지 잘 모르는 거죠. 우리는 평생 여자가 조심하고 살아야 한다고 배워왔으니까요. 특히 비서울 지역은 더 보수적이다 보니까.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Q. 미투 운동 터졌을 때 관련해서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본 경험이 있나요?


그래도 제 주변엔 성인지 감수성이 굉장히 높은 사람들이어서 그런 얘기들이 불편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얼마 전에 여성주의 관련 집단 단톡방에 ‘미투 이후에도 여성들끼리 여성혐오적인 발언을 하는데 무섭게도 진보 여성인 경우가 많다. 386으로 대표되었던 세대가 그렇게 얘기한다는 문제의식이 대두되고 있다’라는 기사가 공유되었어요. ‘(여성들끼리도) 다른 건 다 괜찮게 받아들이면서 성폭력에 대한 고발만 나오면 그 피해자가 꽃뱀인지 아닌지 따져봐야 한다는 논란이 나와서 놀랍다’는 기사 내용이었어요. 분열의 예시로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언급됐는데,) 단톡방에서 어떤 분이 “그건 여성혐오적인 발언으로 보아선 안 된다. 그 둘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잖아요”라고 (기사의 문제의식과)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다른 분이 반박을 해주시고 다른 논리도 세워주시고 다른 영역을 예시로 설명도 해주셔서, (그 상황은) 그분이 생각을 해보겠다면서 끝냈는데요. 저는 ‘뭐지?’ 싶은 거죠. 우리는 왜 (피해자를) 못 믿는 걸까? 꽃뱀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심지어 여자들도 기준을 세워서 증거를 잡고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하는 (이유가 뭘까?) 피해 보고 싶지 않다고 하는 현대인들의 소양이라도 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면서 슬프더라고요.


Q. 성폭력은 다른 범죄의 경우와 다르다고 생각하시나요?


성폭력 같은 경우는 확실히 더 (피해자를 의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둘 사이의 은밀하고 사적인 관계로 치부되다 보니까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닐까요. 성에 대해 터부시하는 문화도 강하고요. 잘 모르겠어요. 윤리적인 면에서……좀 이상한 것 같아요.


그것도 너무 심한 것 같아요. 펜스룰. 남성들이 ‘미투 당할까봐’ 되게 두려워하더라고요. 숙대에서도 (한 강사가) 자신의 개인 SNS에서 본인이 오해를 받을까 봐 평소에 고개를 숙이고 다닌다고 (글을 쓴 일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쳐다보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나를 성적으로 대상화하는지 여부가 문제이고, 성적 대상화라는 건 사회적 구조에서 구성되는 거니까, 그걸 다시 개인의 문제로 치환해서 생각하는 건 되게 멍청한 생각 (같아요) 절대로 구조를 볼 생각은 없는 거죠. 제가 생각할 땐 그것을 미투 운동에서 가장 이해시켜야 할 것 같아요. (구조를) 이해시키지 못하면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해요. 미투 운동의 가해자들이 개인의 일탈 때문에 가해한 게 아니라는 것이 저의 핵심인 거죠.


구조적으로 인식이 된다면 사회 문제로 받아들여질 거고, 주변인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식의 매뉴얼도 나올 거고, 그러면 2차 가해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2차 가해가 큰 문제니까요.


Q. 주변인이 되었던 다른 경험도 있나요?


지인이 속한 공동체에서 일어났던 일을 전해 들은 적이 있어요. 공동체의 권력자가 공동체에 속한 어떤 여성을 성폭력 했는데, 피해자가 문제제기를 했고, (그 해결을 위해) 논의를 하는 과정에서 저한테 도움을 요청한 (거였어요) 이걸 어떤 식으로 처리하고, 앞으로 공동체 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지인의 말에 따르면) 논의하는 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권력자(가해자)에 대해서 분노만 터뜨리지, 피해자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2차 가해를 한다는 거예요. 피해자가 꼬리 친 거 아니냐든지. 피해자와 가해자 둘 다 잘못이 있는 것처럼 끌고 가는 거죠. 그 얘기를 듣고 너무 놀랐어요. 피해자도 공론화를 시작한 후 계속 말이 나오니까 공동체에서 소외당하고. 제 지인은 주변인으로서 그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고 얘기를 했지만 (잘 해결되지 않았대요)


그리고 나중으로 갈수록 점점 귀찮아지는 거죠.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절차가 점점 진행되고, (서로 말이) 안 맞고, 이러면서 사람들이 점점 귀찮아하고 지루해하면서 빨리 끝내고 싶어 했대요. 제 지인은 그게 너무 화가 났대요. 정말 너무 뻔한 일이에요. 항상 그런 식으로 이야기 나오니까. 그래서 주변인으로서 내가 2차 가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변인을 독려하고 이끄는 것도 중요한 거예요. 계속 사건이 진행되고 해결될 수 있도록. 그것을 귀찮아하는 나머지 인원을 이끌고, 귀찮아하는 게 잘못 아닌지 되묻고, 서로서로 막아야 하는데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 지친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무엇이) 2차 가해이고,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희 엄마도 항상 그래요. 제가 ‘아니, 내가 밤늦게 돌아다니는 게 문제가 아니라 밤늦게 돌아다니는 여자를 괴롭히는 남자 문제 아니야?’라고 말하면 엄마는 ‘그건 그렇지만 그러다가 성폭행당해버리면 어떻게 할 건데?’(라고 말해요) 제가 ‘그러면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가해자가 잘못한 거지’ 이렇게 얘기하면 엄마는 화나서 얘기 안 하죠. 교육해도 안 받아들일 것 같아요.


Q. 교육을 받아들이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인식 개선 캠페인이죠. 그건 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예요. 그리고 요새 드는 생각은 언론이 중요해요. 우리가 문제를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은 사실 몇몇 언론사들이 세팅해놓은 프레임이잖아요. 예컨대 한동안 우리가 미세먼지 그렇게 얘기했는데 요즘엔 아무도 얘기 안 하고, 여름에도 미세먼지 심한데 아무도 마스크 안 끼잖아요.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이슈메이커의 권력이 강하니까요. 정부나 언론사가 이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어야 바꿀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에는 인식이 많이 변했으니까요. 불법촬영에 대한 경각심도 생기고. 최소한 눈치는 보니까. 이런 얘기 하면 안 된다, 이게 왜 잘못인지 이해는 못 하지만 일단 이런 얘기하면 분위기 안 좋다, 정도는 이해하는 사회기 때문에 계속 주입하면 효과는 분명히 있을 거예요.


Q. 지금까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제 주변에는 직접적 피해자는 없다 보니까 저 자신이 모르는 새 가해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고 반성하게 돼요. 완벽하게 윤리적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요. 또 오히려 제 주변 사람들이 훨씬 인권 감수성이 더 높으니까. 저는 초반에는 오히려 그런 게 싫었어요. 계속 혼나니까요. 지인이 대놓고 혼낸 적이 많거든요. 저는 알면서도 너무 잘못한 것 같은 죄책감이 들고요. 일단은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죠. 그걸 넘어서면서 저도 조심하게 됐어요. 그 초반을 넘어서기가 힘든 것 같아요. 그걸 받아들이느냐 못 받아들이느냐의 기로가 성격 차이이지는 않을지. 그래도 짚고 넘어가는 행위들이 필요한 것 같기는 해요. 저도 그런 게 참 어렵더라고요.


얼마 전에도 친구가 전형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를 해서, ‘아……앞으로 얘랑 연락하지 말아야겠다’ (생각)하고 거기서 그쳤죠. 회피를 하다 보니까. 갈등을 일으키고 싶지도 않고요. 물론 좋아하는 사람이면 화를 내서라도 내 기준에 올바른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싶은데, 이런 경우 둘 다 너무 스트레스가 되죠. 어쨌든 제가 얘기하는 게 어떤 공간에서는 너무 급진적이고, 어떤 공간에서는 온건한 이야기로 변할 수 있으니까.


Q. 본인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만큼, 책임질 수 있는 만큼 하면 될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인터뷰가 마무리된 지금은 내 삶과 성폭력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동안 제가 (성평등과) 관련된 일을 했으니까, 일적으로만 판단했거든요. 이걸 어떻게 하면 콘텐츠를 만들까. 이렇게만 생각하다가 제 주변에 있는 일상으로 생각해 보고. 인식을 못 하더라도 나는 항상 성폭력 주변인일 수 있다, 성희롱이나 이런 것들을 다 포함하면……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 범위를 더 크게 생각하니까. 슬프긴 하네요. 주변인이 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해야 하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인터뷰였습니다.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피해자 탓하지 않기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하며, 여성가족부가 후원하는 2019 양성평등 및 여성사회참여확대 공모사업인 "성폭력,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 부영님이 진행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