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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보통의연대] 020. “미투 운동은 시대의 흐름” 남성도 위계질서 속에서 종종 성폭력을 겪는다는 범기의 인터뷰
  • 2019-12-19
  • 1474


[보통의 연대] 함께 할 준비되셨나요?


▶ [보통의 연대]란?


성폭력을 '피해자'나 '가해자' 개인, 혹은 '여성'만의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을 바꾸고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사회구성원의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캠페인이에요. 모든 사람은 성폭력 주변인이 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사람들이 성폭력에 대해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인터뷰하고자 해요. 성폭력이 일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어떤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어요. 여러분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주세요.


▶ 성폭력이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동의 없이 성적으로 가해지는 모든 신체적·언어적·정신적 폭력을 뜻합니다. 동의 없는 성적 행위로 강간, 강제추행뿐 아니라 시각적·언어적·비언어적 성희롱, 스토킹, 피해자의 거부에 대한 불이익 조치, 불법 촬영, 비동의유포, 통신매체를 이용한 성적 괴롭힘 등이 포함됩니다.



※ 성폭력 주변인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하여 최소한의 윤문 및 편집 외에는 인터뷰 참여자의 말을 충실하게 실었습니다. 저마다의 관점과 논점이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인터뷰 취지에 맞게 다양한 경험과 생각을 존중해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라도 인터뷰 참여자에 대한 인신공격 등이 있을 경우 수정 또는 삭제 요청드리거나 관리자가 삭제할 수 있음을 안내드리며, 반성폭력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용기 있게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 참여자 분들께 비난과 질타보다는 지지와 격려를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유튜브 영상으로 보기 : https://youtu.be/kQFhCuqnL78


[보통의연대] 020. “미투 운동은 시대의 흐름” 남성도 위계질서 속에서 종종 성폭력을 겪는다는 범기의 인터뷰


저는 마흔세 살 남성이고요. 서울에 살고 있고 직업은 기자입니다. 반갑습니다.


Q. 성폭력과 관련된 언론보도를 본 경험이 있나요?


많이 있죠. 제가 그걸 만드는 사람입니다. 너무 많아서 한두 개를 특정할 수가 없어요.


저는 댓글은 거의 쓰지 않습니다. 직업이 기자이기도 하고. 특히 성폭력 관련 글에 댓글을 쓴 적은 없습니다. (공유한 경험은) 있었을 수도 있는데, 저는 관심사가 정치, 경제 이런 쪽이라 성폭력 관련된 기사는 딱히 공유한 기억이 없는 것 같아요.


Q. 성폭력과 관련된 책이나 작품을 본 경험도 있나요?


많이 있죠. 영화에도 많이 나오고. 최근에 본 영화는 <언니>라고, 프로 복서 출신 배우 이시영씨가 출연한 영화였어요. (주인공의) 여동생이 장애인인데 동네 사람들에게 성폭력을 당하죠. 연쇄 성폭력을 당해서 복수하는 과정을 영화로 만든 내용이죠. 내용 자체가 그렇게 해피엔딩이 아니에요. 끝까지 별로 잘 해결된 게 아니라, 복수를 하긴 하는데 주인공도 많이 다치고, 열린 결말로 끝나는 내용이라 기분이 좀 무겁고 썩 좋다고 할 수 없죠.


Q. 단톡방에서 당사자의 동의 없는 촬영물을 공유하거나 성적인 대화를 하는 상황을 본 경험이 있나요?


그런 적은 많이 있습니다. 요즘 미투 논란이 일어난 이후로는 그런 일이 거의 없어요. 있어도 문제제기 하고요. 이런 거 하면 안 된다고 많이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사실 그 전에는 남자들끼리 모이는 단톡방에는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죠. 야한 동영상, 불법 촬영물, 몰카로 추정되는 (촬영물)……. 또 그런 게 유포된 유명한 사건들이 있었잖아요. 그런 영상들이 돌아다니고 그랬죠.


부끄럽지만 당시에는 ‘이런 거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거나 그런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사실 그런 문제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져서 감히 그런 짓을 하지도 못하고, 그랬다가는 누군가가 지적을 하죠. 그런데 몇 년 전만 해도, 미투가 일어나기 전에는 정말 다른 세상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그런 것에 둔감했습니다. 많이 변했죠.


2019년 4월 미디어오늘을 통해 공론화되었던 기자 단톡방 사이버성폭력 사건에 관한 카드뉴스 중 일부


Q. 미투 운동과 관련해서 주변 사람과 대화해본 경험이 있나요?


많이 있죠. 미투 운동이 요즘 시대의 흐름이 되고 있고 대세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따를 수 밖에 없다고 저는 주로 이야기합니다. 불편해하거나 도대체 어디까지를 정확한 기준으로 봐야 하느냐고 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경우도 많이 있죠.


저는 회사에서 하는 일이 노조 전임자다 보니까 그런 성희롱이나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제가 그런 걸 다루는 일도 하거든요. 가해자로 지목된 분이 와서 저희한테 억울하다고 호소하기도 하고, 또 피해자 쪽에 공감하는 분들이 피해자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전해주기도 해요. 저희는 사안 별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래도 결국 어쨌든 요즘 시대 흐름상 가해자를 엄중하게 처벌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되더라고요.


Q. 성폭력 문제해결 과정에 어떤 역할로든 직접 참여한 경험이 있으신 거네요?


제가 노조 전임자를 하다 보니까 회사 안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 일종의 징계위원회 같은 것에 참여하기도 해요. 최근에 있었던 사건은 가해자가 간부급이어서 노조원은 아니었어요. 다만 그분이 억울하다고 호소를 해오셔서 저희가 한번 들어보기는 했죠. 결국은 회사에서 '가해자가 노조원이 아니기 때문에 노조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라고 정리를 해서 (문제해결 과정에) 들어가진 않았어요.


대신에 노조 내부에서 그 사람에 대해 논의하긴 했었죠. 결과적으로는 가해자가 아무리 억울하다고 주장하더라도, 상황에 애매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피해자 중심으로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어서 깊이 개입하진 않았어요. 대개 노조가 개입하면 변호사의 역할로 개입하거든요. 주로 방어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가해자와 피해자 둘 다 우리 노조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은 피해자의 노동권, 생존권과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많은 노동조합에서 성평등한 성폭력 문제해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Q.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성폭력과 관련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가 많이 있나요?


있죠. 회사에서도 있고, 모임에서도 있고. 워낙 제가 많은 모임을 하다 보니까 그런 상황은 있었죠. 제가 직접 당한 적도 있고.


남자가 남자에게 성폭력을 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제가 기자잖아요. 기자 사회는 굉장히 강한 위계적 문화, 군대 문화같이 기수에 따른 위계질서가 잡혀 있어요. 제가 초년생일 때 한 선배가 타사로 이직하면서 일종의 환송하는 자리였어요. 그때 모인 기자들이 다 남자 기자였어요. 전원 다. 그러니까 폭탄주를 엄청 돌려서 먹는 거예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마초 같은 걸 서로 과시하는 분위기가 되는 거죠. 원샷하고.


나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됐고, 완전 막내 기자여서 그냥 선배들이 부르니까 할 수 없이 가서 앉아 있던 거지, 그렇게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갑자기 한 선배가 누구누구 둘이 러브샷해! 그러면 일어나서 러브샷을 하는데, (상대는) 나랑 같은 팀에서 나를 감독하는 역할의 선배였어요. 제 딴에는 나랑 친하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자기가 이렇게 후배를 아우르고 있다, 자기가 통솔하는 후배다, 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러브샷을 하더니 갑자기 확! 입술에 뽀뽀가 들어온 거죠. 뽀뽀만 들어와도 ‘아이씨’ 했을 텐데 혀가 들어오는 (헛웃음) 그 외에는 그런 일은 없었어요. 벌써 10년 전이죠. 막내 기자 시절이니까.


제가 공개적으로 어디서 이런 경험을 밝혀본 적은 없습니다. 가끔 술자리에서 개인적으로 한 적은 있지만요. 그 선배는 얼마 전에도 만났어요. 회사 그만두고 다른 데로 이직했는데 전혀 기억 못 해요. 나한테 그런 일을 했다는 걸 전혀 의식도 하지 않아요. 그 이후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거나 사과를 한 적도 없고요. 저도 굳이 사과를 요구한 적은 없었어요. 그냥 되게 불쾌했던 기억으로만 가지고 있는 거죠. 그래도 어쨌든 잊혀지진 않더라고요. 10년이 지났는데도.


그런데 사실 여성들이 경험하는 성폭력은 이것보다 훨씬 수위가 높고 피해가 크니까. 생각해보면 그런데. 어쨌든 남자들끼리도 어떤 위계질서, 군대 문화 속에서 종종 그런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성폭력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 그렇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2018년 상담 통계에 따르면 전체 상담 중 남성 피해자는 6.5%에 이른다. 그러나 남성 피해자는 여성 피해자와는 또 다른 잘못된 인식 때문에 성폭력 피해사실을 말하기 어려운 현실을 경험한다. 사진출처:와이드뉴스


Q. 아는 사람이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거나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나요?


있죠. 연설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직접 목격한 적은 없어요. 나중에 전해 들은 적은 있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되게 가슴이 아프죠. 안 됐다는 생각도 들고, 위로해주고 싶고요. 그런데 나도 피해 경험이 조금 있었다지만 워낙 수위의 차이가 크다 보니까 어떻게 말하기가 어렵잖아요. 100% 공감한다고 말하기는 좀 어렵고. 위로를 많이 하기는 하는데 부족함이 있죠.


Q. 그밖에 성폭력 주변인으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청소년 연설 대회같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행사를 제가 많이 주최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종종 성폭력 피해 사례들이 나와요. 청소년 중에서도 그런 사례를 스스로 고백하는 경우가 있고, 청년들은 당연히 많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뭔가 위로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요.


어쨌든 그런 이야기들을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이전에는 (성폭력이) 없었겠습니까? 이전에는 훨씬 더 많았겠죠. 그런데 말을 못했겠지. 말을 못하고 그냥 지나갔겠죠. 그래도 지금은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와서 다행이에요.


남자, 여자, 누구나 다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으니까 같이 공감해나가면서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런 부분을 조심하고 주의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2004년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발간한 남성들을 위한 성폭력 근절 가이드북 '성폭력 근절, 남성도 뛴다!' 표지와 목차.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에서 전문을 PDF로 내려받을 수 있다.


Q. 혹시 강간죄 구성요건을 ‘폭행 또는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바꾸자는 운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강간의 법적 정의를 좀 더 넓게 바꾸자는? 당연히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하겠죠. 요즘 시대 흐름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좀 애매한 것 같아요. 성관계라는 게 굉장히 미묘한 상황에서 벌어지잖아요. 예를 들면 ‘Yes Means Yes, No Means No’도 논란이 되었잖아요. ‘내가 너랑 잠을 자고 싶어’라고 이야기하고 ‘어, 그래, 자자’라고 구두로 서로 동의를 하고 섹스를 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느냐. 아주 친밀한 연인 관계에서도 (합의가) 애매하게 이루어지기도 하고,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서 한쪽은 원하는데 한쪽은 원치 않기도 하는데 그냥 분위기상 하게 되기도 하고. 명확한 동의라고 하는 기준을 무엇으로 봐야 하는지 좀 모호한 것 같아요. 이 부분은 우리 사회가 많이 논의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기본적으로는 그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보는데, 여러 가지 사례들이 축적되어야 하겠죠. 판례도 축적되고요.


누가 봐도 이건 동의라고 인정할 만한 기준을 무엇으로 잡아야 할 것인가? 참 어려운 문제다. 왜냐하면 성관계라는 게 남이 보는 상황이 아니고 둘만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까 사실 둘 이외에는 입증하기 어렵잖아요. 한쪽은 분명히 동의를 받았다고 하는데 한쪽은 동의한 적 없다고 하면 어떻게 입증할 것인가? 법적으로 굉장히 애매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사회적인 공감대가 ‘좀 더 강력하게 이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는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그에 맞게 좀 더 조정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사진) Q. 성폭력 주변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이해하고 공감한다!



[보통의 연대] 릴레이 인터뷰는 2019년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이 인터뷰 진행자로 함께 진행하였습니다.


<이 인터뷰는 의심에서 지지로 캠페인단 김엘라별이님이 진행하였고, 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편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