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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후기] 젠더폭력-저항하고 애도하기: 젠더 갈라치기라는 새로운 함구령을 넘어
  • 2022-09-01
  • 1033


일시: 2022.08.16(화) 장소: 온라인 zoom 주최: 한국성폭력상담소, 유니브페미, 준강간사건의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토론 1. 대학에서 성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원정(유니브페미 사무국장)

토론 2. '젠더 갈라치기'라는 프레임의 구성과 젠더폭력의 대응

추지현(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토론 3. 준강간, 누가 어떻게 '허용'하고 있는가

남성아(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 천주교성폭력상담소 활동가)

이번 토론회는 3부에 걸쳐 대학 내 성차별과 이를 보도하는 ‘젠더 갈라치기’ 프레임의 구성방식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준강간의 보다 정의로운 판결을 위한 방법으로 적극적 합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인하대 성폭력 사건을 다룬 1부와, 전반적인 준강간 의제를 다루는 3부의 발언을 살펴보며, 남녀 갈라치기를 넘어 젠더폭력을 근절시킬 근본적인 해결책을 탐색하고자 한다. 



1부 대학에서 성차별은 어떻게 지워지는가

7월, ‘인하대학교 성폭행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일동’은 인하대 내에서 일어난 성폭력 사망사건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2차 가해 법적 대응과 학생 심리상담, 성평등 교육 및 성폭력 방지 교육, 치 강화 등의 사후 대책을 약속했다. 인하대 본부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어떠한 경우도 용납될 수 없다”며 “학생들의 성인지 감수성”과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문화”를 바로잡고 “폭력 근절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시민사회와 함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인하대 본부는 여전히 대학을 “최고 지성의 전당”으로 묘사하면서, 사건을 두고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전대미문의 사건”이자 “학교로서는 뜻밖의 사고”라고 표현했다. 문화와 감수성은 예고 없이 발생해서 한순간 퍼지지 않는다. 

한편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 사건을 두고 ‘젠더 문제가 아니라 안전 문제’라고 하면서도 사건에 대해 반박이라도 하듯 청년 남성이 겪는 고충을 늘어놓았다. 성폭력 사건에서 성차별의 맥락을 분석하는 시도 앞에서 젠더 권력을 애써 지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대학 내 성폭력은 전대미문일 수 없다

교육부가 파악한 학내 성폭력 신고 건수는 대학가에 미투 바람이 불었던 2018 년도에 182건, 2019년도에 346건으로, 학사가 비대면으로 전환되었던 2020년도에도 반년간 94건 접수될 정도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여전히 남성중심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곳에서는 익명 제보도 자유롭지 않았다. 공과대학 등에서는 여성주의 활동을 공개적으로 이어가는 것마저 위협으로 다가오는 상황이다. 에브리타임에 홍보물이나 대자보를 부착하는 활동가의 모습을 중계하거나 공대 내부 커뮤니티를 통해 단체의 활동 보고 게시글을 퍼나르며 비난하는 일이 있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가 차별적인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남성호모소셜에 섞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 20대 남성들의 성인지 감수성은 저절로 뒤처졌다. ‘키스와 애무를 한 것은 성관계에 동의한 것’이라는 데 20대 남성 50% 이상이 긍정하는 지금, 대학은 성폭력에 취약한 공간일 수밖에 없다. 2019년도 말 유니브페미에서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대상으로 조사한 성평등 제도 현황에 따르면, 23개의 지표 중 기준을 만족한 개수를 파악했을 때 43개교 평균 9.8점으로 반에도 못 미치는 결과가 나타났다. 대학 본부가 그간 수많은 요구에도 성폭력 예방을 위한 제도적 변화를 꾀하지 않은 이상, 대학 내 성폭력은 전대미문일 수 없다.


페미니즘 검열은 ‘젠더갈등’을 해소하지 않는다

대학은 여성 입학생 비율이 극도로 낮았던 때부터, 오히려 여성 입학생 비율이 높아지기도 하는 지금까지 성평등한 공간이었던 적이 없다. 대학 본부에서도 학생 공동체 안에서도 내부의 성차별을 성찰한 적이 없고, 여자를 대학에 다니지 못하게 했던 성차별의 맥락이 교묘하게 모습을 바꿔가며 오늘날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대학에서 성폭력은 뜻밖의 일’, ‘우리 대학은 충분히 성평등하다’는 논리가 바로 그 공간이 성평등하지 않음을 역설한다.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과 그를 둘러싼 모든 대응이 더할 나위 없이 부조리했던 가운데 우리를 벅차오르게 했던 것은, 인하대 학생의 익명 대자보로부터 이어진 릴레이 액션이었다. 반여성주의를 기치로 대통령이 당선되는 백래시의 정점에 서 그동안 지쳤던 페미니스트들이 다시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과 관련한 성명을 동시다발적으로 업로드한 후 곳곳에서 활동을 재개하거나 조직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총여학생회 등의 여성주의 단위가 대학에서 밀려난 상황에서 어떻게 이후를 그릴 수 있을지는 깊은 고민이지만, 제도권 내외에서 일어나려는 대학 페미니즘의 재부흥을 잘 견인해야 할 것이다.


2부 ‘젠더 갈라치기’라는 프레임의 구성과 젠더폭력의 대응

젠더폭력의 문제화를 가로막는 “젠더 갈라치기”라는 프레임

젠더폭력에 대한 문제제기와 관련 의제의 공론화를 가로막는 언설로서 “젠더 갈등”, “성별 갈등”, “젠더 갈라치기”를 야기하지 말라는 비난의 프레임이 대두했다. 성폭력 피해자의 평소 행실이나 행위시 책임을 이유로 한 비난, 피해 사실 자체의 부정 등 개인을 향한 기존의 2차 피해 야기 방식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피해자 개인에 대한 비난 대신 젠더 관계를 문제삼는 일체의 시도를 집단간 “갈등”을 부추기는 행위로 발전한 것이다. 성별 갈등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중립적 외양의 주장은 결국 남성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는 의미로 페미니즘에 대한 백리쉬로 해석된다.


페미니즘에 대한 의도적 왜곡과 언론의 공모

젠더폭력이라는 문제 진단을 거부하는 대표적인 논거는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라는 주장의 부당성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언설은 바로 이를 비난하는 그들이(온라인 커뮤니티, 청년 정치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여성정책 확장을 제지하는 공약을 설파해 온 정치인 등) 여성들의 문제제기를 묵살하기 위해 스스로 생산, 유포해 온 것이다. 여성혐오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방법을 모색하기보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자의적, 극단적으로 차용한 후 그 극단성을 비난하며 페미니즘에 대한 의도적인 왜곡이 진행된 것이다. 여성혐오로부터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정하고 세상을 새롭게 보자는 주장을 수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언론 역시 여성들의 대응과 온라인 커뮤니티의 일부 극단적 반응을 선택적으로 차용하며 “젠더 갈등”이라는 프레임을 유포했다. 집단간의 차이, 다름, 갈등을 다뤄야 할 제도 정치의 역량 부족을 지적하기보다 그들의 문제진단을 받아쓰기하며 자극적으로 보도한 것이다. 헌법상 보장된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존립, 발전을 위한 것임을 망각 한 채 언론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 언론은 근본적인 구조를 지적하는 데 실패하고, 가해자 개인의 행위와 처벌 수위에 집중하며 젠더폭력을 개인의 일탈로 문제화하는데 기여했다. 이는 2차피해 보도 부재로 이어지며 언론의 본기능을 상실했다고 판단된다.


 “다수의 매체가 ‘여대생’이라는 표현을 무척 많이 제목에 사용했는데요. 기사 제목에는 없더라도 기사 본문에 ‘여대생’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매체는 무척 많았습니다. 아시겠지만 직업 앞에 ‘여’를 붙이 는 것은 해당 직업군의 표준이 남성이며 여성은 특수한 존재라는 식의 전제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교사, 여기자, 여대생 등의 표현은 지양되어야 할 차별적 표현입니다.”

 2022.7.23 미디어 문화연구자 윤복실 박사


대학과 성폭력의 관계에 대한 논의 실종

그렇다면 논의되었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의 '여자라서 당했다'는 외침은 모든 남성이 가해자라는 숙명론적 주장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여성들이 피해자가 되는 가의 구조를 묻는 과정이었다. 인하대 살인사건 그 이후 논의되어야 할 것은 대학 내 성차별 발생 구조에 대한 개선방향이다. 많은 이들이 “배움의 전당”, “최고 지성의 전당”에서 성폭력이 발생한 것을 개탄하지만 정작 대학 조직이나 학생은 물론 학부모들조차 대학의 운영과 존립 목표를 배움과 지성으로 여기지 않아 온 지 오래다. '공동체'라는 소속감보다 스펙의 한 종류로 여겨지는 대학은 자신들이 정립해 온 인재상을 보다 보편인권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위해 젠더와 교차하여 구성되는 다양한 사회 부정의를 이해하는 역량을 기르기 위한 실천적 행동이 필수적이다.

 

“아무래도 대학에 근무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저희는 그야말로 배움의 전당인데 왜 이런 사건이 학교 안에서 일어난 것인지가 제일 좀 한탄스럽고요. 그렇기 때문에 재발 방지 차원에서라도 학교가 사실 은 외부처럼 그렇게 치안이 철저하지는 않거든요. 워낙 넓은 땅에 건물들이 띄엄띄엄 있는 게 일반적인 대학의 모습이라서. 앞으로는 여러 가지의 사건 사고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치안 활동에 좀 더, 보안수준이나 이런 것들을 높여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2022.7.21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3부 준강간, 누가 어떻게 ‘허용’하고 있는가

- 수사 재판기관에서의 준강간 피해자 지원경험을 중심으로-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 지난 7월 15일 인하대학교 교내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사망한 사건을 언론이나 정치권 등에서 부르는 사건명이다. “가장 안전해야 할 ‘학내’에서, 서로 존중하며 신뢰해야 할 동료 학우에 의해 / 술에 만취해 동의나 거절의 성적자기결정을 할 수 없는 심신상실 상태의 학생이 / 성폭행 및 불법촬영 피해를 당하고 건물에서 추락해 사망한 사건”, 이렇게 풀어서 되뇌어보면 사건이 발생한 상황적 맥락과 사회구조적 문제가 한눈에 보인다.

준강간 사건들이 수사 및 재판기관에서 어떻게 외면되어 왔는지, 준강간에서 피해자 동의를 누가 어떻게 허용하고 있는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절대적으로 완전무결한 심신상실 상태를 요구하는 준강간죄

준강간죄로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1)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였는지, 2) 가해자가 그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하였는지 등 두 가지 요건이 충족해야 한다. CCTV나 목격자 증언, 사건발생 시간대의 전화 및 문자기록 같은 증거와 함께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로 판단하게 되고, 이때 수사 및 재판기관이 어떤 관점으로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는 가해자 처벌의 향방에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준강간죄가 입법목적에 부합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뿐 아니라 상반되는 가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엄격하게 판단해야 하지만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미명하에 피해자에게 더 많은 질문이 던져지고 있다. 절대적으로, 완전무결하게, 그 어떤 여지도 없이 성폭력 피해를 당할 만한 상황이었다는 것을 증명해내길 끝없이 요구하며, 피해자성에 대한 정형화된 기준과 낮은 인권감수성으로 오히려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성폭력 관련 법들이 시대의 흐름에 맞춰 개정하며 변화하여 왔으나 그 법을 적용하고 집행하는 수사 및 재판기관의 관점은 정체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을 제기해야 할 때이다.


일상에서 문화까지 '지금 강조해야 할 것, 성적 동의'

현재 많은 단체들이 성평등한 제도의 마련과 시민사회의 인식변화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235개 단체가 함께 활동하는 강간죄개정연대회의는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으로 성폭력 유무를 판단하는 강간죄 구성요건을 ‘동의여부’로 바꾸기 위해 강간죄 개정운동을 하고 있다. 성폭력의 판단 기준이 ‘동의여부’로 바뀐다면 술이나 약물로 인해 성적자기결정을 행사할 수 없었던 준강간 사건에 대한 판단기준도 바뀔 것이라 기대된다. 다만, 수사 및 재판 기관이 피해자가 동의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는 것을 판단하기 위해 동의 여부에 초점을 둔 다양한 관점의 해석이 필수적이다. 

성관계 시의 “동의”라는 개념과 방법에 대해 적극적인 관점으로 맥락, 상황, 구조, 권력관계를 살피는 훈련이 이루어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인하대 성폭력 사망사건 피해자의 죽음과 제대로 애도조차 하지 못한 상황은 수많은 편견과 통념속에서 싸우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큰 아픔과 상처가 되고 있다. 이에 발제자는 모든 성폭력피해자들이 끝까지 싸우고 연대하며 생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강간공대위 피해자의 탄원서 한 단락을 인용하며 발표를 끝내고자 한다. 이 피해자의 바람처럼 너무도 흔한 성폭력인 준강간 사건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에 대한 폭넓은 해석과 적극적 관점에 의한 ‘동의여부’판단으로 실질적으로 피해자의 권리가 보장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본 후기는 콘텐츠 기자단 ‘틈’의 노을 님이 작성하였습니다.

"저는 지극히 평범한 시민이며, 또 보통의 피해자입니다. 성실히 저의 일을 하고, 가끔은 술도 마시고, 친구들과 일상을 즐기던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성입니다. 이런 저에게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많은 단체들이 함께해주는 것은 제가 운이 좋기 때문이 아니라 저의 사건이 가해자같은 남성들의 잘못된 문화를 보여주는, 가장 흔히 일어나는 사건의 대표성을 띄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더이상 인면수심의 가해자와 가해자를 도와 성폭력을 방관하는 사람들이 선량한 시민의 얼굴을 한 채 사회를 활보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가 더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무섭지만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니 더욱 힘을 내 싸우겠습니다.

저는, 우리들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계속 숨 쉬고 싶습니다. 많은 지지와 연대 부탁드립니다."

- 준강간사건의정의로운판결을위한공동대책위원회 피해자 발언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