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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사후보도자료] 2004년에서 2024년으로 :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 2024-06-13
  • 2600


6월13일 목요일 11시에 진행된 기자간담회 사후보도자료입니다.

[사후보도자료]

2004년에서 2024년으로 :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수신 : 각 언론사 사회·여성·법조 담당
발신 : 한국성폭력상담소
제목 : [사후보도자료] 기자간담회_2004년에서 2024년으로: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2004년에서 2024년으로: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일시 _ 2024년 6월 13일(목) 오전 11시
  1. 귀 언론사에 인권과 평등의 인사를 드립니다. 

 

  1. 2004년부터 밀양에서 발생한 청소년 성폭력 사건 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입니다.

 

  1. 2024.6.12. 오전11시, 최근 유튜버를 통해 가해자 신상이 공개되며 공론화된 ‘밀양 성폭력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자간담회를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진행하여 사후 보도자료로 공유드립니다.
  

[기자간담회] 
2004년에서 2024년으로, ‘밀양 성폭력 사건’이 우리를 부를 때: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 일시 _ 2024년 6월 13일(목) 오전 11:00
 
< 순 서 > 

  1. 2004년에서 2024년 재조명까지 :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그리고 피해자의 목소리
     _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2. 당시 경찰 수사, 언론, 검찰 수사, 법원 판결의 문제
    _ 김옥수 (전 울산생명의전화 성폭력상담소장, 당시 피해자 최초 상담자) 

  3. 분노의 마음와 연대의 힘을 모아  피해자의 일상회복으로 
    _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 2004년부터 현재까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지원) 

  4. 피해자,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
    _ 대독/윤경진(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팀 매니저)


 2004년에서 2024년 재조명까지
: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그리고 피해자의 목소리
 _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1. 2004년에 있었던 밀양 성폭력사건이 2024년에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2004년에서 2024년까지 달라진 것과, 달라지지 않은 것, 그리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먼저 인터넷에 의한 피해자 관련 보도, 재현과 피해자의 ‘일상에서 평온할 권리’가 깨지는 문제입니다. 2004년 당시에도 피해자가 처음 생명의전화 울산지부 부설 가정·성폭력상담소에 상담을 하게 된 것은 사건이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 일파만파 알려졌던 때였습니다. 피해자 동의 없는, 피해자를 직접적으로 노출되게 하는 보도의 문제를 밀양성폭력사건대책위원회에서 항의하였습니다*. 

 

2024년 6월 1일 유튜버 <나락보관소>가 밀양 성폭력 사건 가해자 신상공개 영상을 올려 일파만파 확산되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이 영상은 200만뷰가 넘었습니다. 피해자는 지인들에게 관련 연락을 받아 알게 되었습니다. 6월 5일 유튜버 <나락보관소>는 피해자 가족 모두와 소통이 끝나 동의 받았고 동의에 따라 44명을 공개하겠다, 고 공지했으며, 많은 언론이 이를 받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와 가족들 모두 동의한 바 없다고 직접 유튜버에게 삭제를 요청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6월 5일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상의 끝에 보도자료를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6월 7일 유튜버 <판슥>은 피해자의 음성을 변조하지 않고 인터넷에 게재하였고, 상세한 피해내용이 담긴 판결문도 동의 없이 게재했습니다. 이를 삭제할 것을 지속 요청했으나 즉시 수정하거나 삭제하지 않고 15시간 이후 변경했으며, 피해자 이름을 묵음 처리하면서도 입모양을 살려 부르며 인터넷 방송을 이어갔습니다. 이에 피해자 가족은 직접 인터넷에 글을 올려 항의했습니다***.

 

피해자의 동의없이 피해자에 대한 정보를 일방적으로 확보하고, 확산하고, 피해자가 동의할 수 없는 내용과 방식으로 재현하는 문제는 2004년 방송사와 경찰의 문제에서 2024년 유튜버의 문제로 바뀌며 반복되고 있습니다. 2004년 당시 피해자 지원단체인 가정‧성폭력상담소에서 항의하며 일일이 수정 요청을 했으며, 2024년에도 피해자지원기관인 성폭력상담소가 항의하고 수정, 삭제 요청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성폭력상담소가 뭐하는 기관이길래, 무슨 자격으로 이렇게 하냐는 욕설이나 악성민원도 폭주하였고, 이러한 피해자나 성폭력상담소의 입장을 이해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주시는 시민들도 많았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의 ‘일상에서 평온할 권리’는 ‘국민의 알권리’에 우선하는 생존권입니다.


3. 2004년 당시 울산남부경찰서는 피해자를 무시하고, 피해자 보호자의 요청을 무시하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행태를 적나라하게 했습니다. 밀양 성폭력사건 피해자 변호사와 지원기관은, 피해자측은 국가상대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고 최초로 인정판례를 이끌어냈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더렵혀진 여성으로 보고, 성폭력 가해 행위를 평범한 남성들의 일로 보면서, 피해자를 비난하고 가해자 책임을 축소하는 것은 전형적 ‘강간통념’, ‘성폭력편견’입니다. 지금 경찰은 이러한 강간통념, 성폭력통념으로부터 얼마나 많이 변화했습니까.

또한 당시 울산남부경찰서 관련자들은 ‘피의자 검거, 범인 엄벌 등에 중점을 두느라 피해자 보호 조치에 미흡하였다’고 말한 바 있는데(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결정 참조) 피해자가 누락된 가해자 검거, 수사, 엄벌은 지금도 수사기관에서 여전히 보이고 있는 관습과 태도입니다.

 

2004년 당시 울산지방검찰청은 여검사가 포함된 특별 수사팀을 구성해 피해자 인권보호에 만전을 기했다고 하지만 왜 거길 갔느냐, 왜 너는 당했느냐와 같은 질문을 하면서 피해자 추궁하거나 힐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피해자 보호자는 검사가 ‘여성단체와 만나지 말라’, ‘경찰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영장 기각 시킬 거다’고 발언하는 것을 직접 듣기도 했습니다. 검찰은 성폭력 사건의 실체적 진실파악, 기소와 공소유지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진술과 상황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가해의 발생구조나 성격, 해악성을 헤아려야 합니다. 피해자 조력기관의 역할을 이해하면서 피해자 보호를 협력하려면 검찰 우선주의, 권위주의가 장벽이 되어서는 안되며, 성폭력 사건에 대한 성인지적 접근이 필수적입니다. 지금은 얼마나 변화했는지 질문합니다.

 

법원은 당시 피해자 대책위의 의견개진과 항의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비공개로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피의자들의 행위를 미성년 충동적 집단 심리에 의한 우발적 행위 행위라고 보았고, 피의자들이 진학이나 취업이 열려있는 미성년이라는 점을 중시했습니다. 피해자의 상황보다 피의자, 피고인의 사정을 더 고려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형사재판의 제도적, 환경적, 관행적 편향입니다.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 권리보장 및 보호를 위한 절차상, 제도상 변화가 많이 있었습니다. 2012년 친고죄가 폐지되었고, 중계시설 및 차폐시설에 의한 신문제도가 2007년 개선되었고, 성폭력전담 수사재판부가 2006년 도입되었고, 피해자변호사 제도 2011년, 증인지원관제도 2012년, 진술조력인제도 2013년 도입되었습니다.

 

피해자 보호제도가 법과 규칙 상에 형성되었다 해도 재판부 재량에 맡겨져 있고, 피해자 보호제도의 실행이 ‘성폭력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오도되며, 양형기준이 피고인의 사정에 맞춰져 있고, 피해자 자료열람복사권과 의견개진권은 실질적 보장이 천차만별이고 어떤 곳에서는 요원한 실정입니다. 어떤 피해자에게나 어제보다 나은 권리보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성폭력 관련 법·제도개선에 대해 많은 관심을 요청합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2004년 고 최진실님의 기부로 초기 활동자금을 마련하여 형사사법절차에서 발생하는 2차 피해를 근절하고 피해생존자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성폭력 수사·재판 시민감시단’을 2004년 10월 발족했습니다. 밀양 성폭력사건 현장조사 및 모니터링, 제도개선 제안보고는 시민감시단의 첫 번째 활동이었습니다. 그 후 2005년부터 2024년 현재까지 매년 2월 성폭력 수사·재판과정 디딤돌·걸림돌을 선정하고 발표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시민들이 성폭력 수사·재판과정 감시, 모니터링, 의견개진에 함께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4. 밀양 성폭력사건은 가정폭력 피해자였던 청소년이 착취적이고 폭력적인 성폭력 피해를 또래로부터 입었을 때 이에 대해 알리거나, 도움을 요청하고, 일상을 찾아가는데 첩첩이 어려운 관문이 이어졌던 사건입니다. 피해자의 삶에 중첩되어 있는 요소가 취약성이 되어 성폭력 피해와 함께 이후 삶에서도 질곡이 되었습니다. 피해자가 겪었던 가정폭력, 가정폭력 가해자였던 부친의 합의강요, 가난과 폭력 때문에 이 같은 전개 앞에서 무력할 수 밖에 없었던 피해자의 상황이 많은 이들에게 아픔과 분노를 공명케 했습니다.

 

가정폭력과 성폭력을 겪으며 삶이 중첩적으로 취약해지는 여정을 살아가는 청소년 피해자가 지금도 많습니다. 청소년 시기는 곧 성년의 시기(후기 청소년)와 연결되며, 성인기로 이어지는데 한국 사회는 가족의존도가 높고, 주거보장이 열악하며, 성적피해에 대한 낙인과 위험이 여전히 높습니다. 삶의 기반을 단단히 마련하고, 취약성이 굴레가 되지 않으려면 사회적, 관계적 자원과 인식이 힘있게 있어야 합니다.

 

밀양성폭력 사건 피해자도 머물렀던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열림터입니다. 전국에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립을 위한 지지제도나 예산은 미흡하기만 합니다. 열림터는 자신의 삶을 단단히 열어가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관계적 자원을 엮고자 후원금을 통해 또우리폴짝기금, 또우리모임 등 일상회복 그물망을 짜오고 있습니다.

 

이번 밀양 성폭력사건 ‘재조명’시기에 밀양 성폭력 사건 가해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사람들은 주목했습니다. 가해자들이 여러 가족, 사회적, 지역적 자원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과 생계 직업을 영위해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처하게 되는 환경과 조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고민 끝에 오늘 기자간담회를 기점으로 밀양 성폭력 피해자 일상회복을 위한 모금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과 상의하였고, 이러한 걸음이 일부 사람들의 동정이나 일부 사람들의 비난에 좌초되지 않고, 사회적 우애와 연대의 힘으로 지속되는 단단한 기반이기를 기대하고 요청드립니다.

 

사회적으로, 입법적으로, 제도적으로 가해자에 대한 응징이나 처벌만도 중요하겠으나, 피해자에 대한 단단한 지지와 지원이 더, 더불어 연구되고 논의되기를 바랍니다. 여성폭력피해자 지원예산이 증액되고 피해자 일상회복이 단단해지고, 피해자의 목소리가 힘있게 울릴 때 가해자에 대한 처벌 역시 정의로운 방법과 과정으로 심화될 수 있습니다.

 

5. 인터넷 혹은 대중여론은 양면적인 공간입니다. 집단적인 편견이 팽배하기도 하고, 소통과 변화가 움직이는 곳이기도 합니다. 밀양 성폭력사건 피해자는 대중들의 시선, 피해자를 비난하는 편견과 차별을 두려워하고 그로부터 피해 있고자 하면서도 지지와 연대의 마음을 표하는 이들과 이야기 나누고자 했습니다. 2004년 피해자가 중학생이던 시절에도 수사과정에서의 어려움, 가정폭력 가해자 부친에 의한 합의 과정에서의 괴로움을 알리며 엄마를 찾아가겠다는 계획을 글로 썼고, 2005년에도 고등학교 입학 소식을 인터넷 카페에 쓰기도 했습니다.

 

이번 밀양 성폭력 사건 재조명 시기에 피해자와 피해자 여동생, 피해자 가족은 함께 상의하며 함께 위로하고 보호하며 인터넷과 유튜브의 영상과 댓글들을 모두 살피고, 때로는 모두 보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지냈습니다.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연대의 댓글에는 위로를 느꼈고,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을 가르고 나누거나, 불신하는 댓글에는 분노와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악성댓글을 다는 내용을 보면서는 피해자와 상담소 사이의 소통을 하나씩 인증해야 하는지 고민하기까지 했고, 6월 8일 밀양 765㎸ 송전탑 행정대집행 10주년 희망버스 시민사회연대활동에 참여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게시글을 곡해하여 밀양 성폭력 사건 가해자를 옹호하는 버스인 양 쓰이는 댓글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여러 번 표했습니다.

 

이 기자간담회는 이러한 지난 6월 1일 이후 인터넷, 유튜브, 언론,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움직이는’ 여론, 관심, 악플, 선플 사이에서 고민하던 피해자들과 한국성폭력상담소와 조력인들이 상의하여 열게 되었습니다.

 

피해자와 소통하는 것이 맞는지, 피해자는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상담소가 언급하는 피해자의 가족은 누구인지, 상담소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피해자는 왜 그러한 의견을 개진했는지, 이번 ‘재조명’ 사안에서 중요하게 짚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피해자를 도울 수는 없는지, 오해와 오인을 낳고 있는 일부 댓글이나 주장을 어떻게 바로잡을 수는 없는지… 그동안 말 그대로 쏟아져 들어왔던 질문과 의견에 대해 중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004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기를 기대합니다. 2004년에서 2024년으로 온 밀양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삶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피해자와 함께 말입니다.


                                                                    

*밀양성폭력사건대책위 : 2004년 12월 10일 구성, 울산여성의전화 울산여성회 울산YWCA YWCA현장상담센터 민주노동당울산지부여성위원회 울산상담소협의회(가정법률상담소 새명의전화울산지부 동구가정폭력상담소 평안의집

**[보도자료] 유튜브 <나락보관소>가 2004년 밀양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족) 측의 동의를 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2024년 6월 5일, 한국성폭력상담소 ; [보도자료] 유튜브 <나락보관소> 공지 "밀양 성폭력 피해자들과 긴밀한 이야기 후 영상 내렸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2024년 6월 7일, 한국성폭력상담소.

***밀양사건의 피해자 입니다 꼭 읽어 주세요(판슥은 또 거짓말을 하네요). 2024년 6월 9일, 밀양 성폭력 피해자 동생글

****2016, ‘성폭력 2차 피해에 대한 국가손해배상 소송과 피해자 권리/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한국성폭력상담소 개소 25주년 기념 한·일 세미나 : 성폭력 피해 배상을 위한 민사소송의 전망> 참조 

당시 경찰 수사, 언론, 검찰 수사, 법원 판결의 문제
_ 김옥수 (전 울산생명의전화 가정·성폭력상담소장, 당시 피해자 최초 상담자) 

2004년 11월 25일, 112에 신고했던 피해자의 보호자는 12월 7일, 상담자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상담자는 바로 피해자 자매와 보호자를 만났습니다. 당시 피해자 자매와 보호자는 성폭력피해보다 언론보도에 의한 피해를 더 크게 호소했습니다. 이후 상담자가 상담을 통해 알게 된 경찰 수사과정 중 발생한 2차 피해 정도는 경악을 금치 못할 만큼 심각했습니다. 피해자의 보호자는 고소 당시, 경찰에 ‘비밀유지와 언론 비공개’ 요청과 더불어 ‘여자경찰이 조사해줄 것’을 당부했고, 약속을 받았으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1년 가까이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알게 된 경찰 수사, 언론, 검찰 수사, 법원 판결의 문제점들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경찰 수사상의 경찰들의 태도
신문 과정이 폭력적이었고, 수사과정 중 피해자가 겪을 수 있는 모든 2차피해가 발생하였습니다. 이는 성폭력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의 성인지 의식 부족과 성폭력 피해자심리에 대한 이해 부족, 미숙한 수사기법 때문이었습니다. 실제로 경찰은 신문 과정 중, 성폭력이 발생하게 된 맥락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에게 ‘밀양에는 왜 또 갔냐. 같이 갔는데 왜 너만 당했느냐’ 등 마치 피해자가 잘못한 것처럼 비난성 질문으로 모욕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흥업소에서 피해자의 실명까지 거론하며 ‘더럽다, 재수 없다’고 폭언했습니다. 과학수사반 경찰까지 피해자에게 ‘너희 때문에 밀양 물 다 흐렸다. 내 딸이 너희처럼 될까봐 걱정이다.’ 라며 비난했습니다. 

진술녹화실의 부재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여 신문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나 경찰은 피해자와 44명의 가해자들을 한 공간에서 대질신문함으로써 피해자에게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였습니다. 또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자들 앞에서 ‘누가 언제 강간했는지, 추행을 한 자는 누구인지’ 등등을 특정하면서 진술하게 했습니다. 또한, 진술녹화실의 부재는 가해자 측으로부터의 2차 피해를 초래했습니다. 당시 가해자들도 미성년자들이라, 가해자 보호자들은 조사가 끝날 때까지 조사실 밖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피해자와 가족들이 지나갈 때 노골적으로 비난하여 피해자를 위축시켰습니다. 그들은 언론 인터뷰 시에도 ‘피해자에게 왜 미안해해야 하나, 우리가 지금 피해 보는 건 생각 안하나, 딸자식 교육을 잘 시켜야지‘ 할 정도로 피해자와 가족들을 무시하고 비난했습니다. 

경찰은 피해자 보호자와의 약속을 어기고 보도자료 배포
경찰이 수사를 시작한 지 2주도 지나지 않아 출입 기자에게 배포했던 그 보도 자료에는 수사 내용, 피해자 이름과 나이, 거주지까지 적혀 있었습니다. 이를 항의하는 상담자에게 경찰은 ‘관행’이라는 어이없는 대답을 했을 뿐이었습니다.

이후 전국 언론사들은 서로 경쟁하듯 과장되고 왜곡된 보도를 이어갔습니다. 보호자 동의 없이 수사 장면을 촬영하고,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기는 했으나 지인이나 급우들은 피해자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어떤 언론사는 피해자의 육성을 변조하지 않고 그대로 방영하여 피해자가 밖을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의 신상까지 노출시킨 언론은 명백한 인권침해를 자행했습니다.

피해자는 수사과정에 이어 언론으로 인한 2차 피해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이에 상담자가 보호자를 대신하여 남부서와 포털사이트에 기사를 올린 각 언론사에 항의했으나 정정 보도를 올리고 사과한 곳은 CBS 한 곳 뿐이었습니다. 

검찰 수사상의 문제
검찰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44명의 가해자 중, 10명만 기소하고 20명은 소년부로 송치했습니다. 나머지 13명은 피해자 의사와 무관하게, 친권자인 피해자의 부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1명은 타 형사 사건으로 입건되어 모두 ‘공소권 없음’으로 기각시켰습니다. 

법원 판결의 문제
재판과정에서도 사법체계의 한계는 역력히 나타났습니다. 재판부는 44명의 가해자 중 기소된 10명만으로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합의를 했거나, 피고가 미성년자들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전원, 피해자보다 가해자들의 미래를 고려하여 선도차원의 솜방망이 처분을 했습니다. 소년부로 보내진 30명 모두 전과가 남지 않는 소년보호처분을 받았습니다. 결국 44명 중, 형사처벌을 받은 가해자는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20년 전의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히 잊을 수 없는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입니다. 공동대책위까지 결성하여 대응했던 이 사건으로 인해 울산을 비롯한 전국 경찰서에, 공간이 부족하여 불가능하다는 진술녹화실이 생겼습니다. 또 순서에도 없었던 울산에 원스탑지원센터(해바라기 센터 전신)가 설치되고, 2005년 7월에는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이 설립되었습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여성폭력피해자들의 희생 위에 조금씩 지원체계가 잡혀나가는 것이 보여 여전히 안타깝습니다. 갑자기 우후죽순처럼 무방비상태로 이 사건이 부활되는 것을 보면서, 피해자 입장에서 피해자의 눈으로 이 사건을 재조명하고 재정리하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한국성폭력상담소로부터 전화를 받고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하늘에 닿고 작은 정성들이 모여서, 아직 20년 전의 상처로부터 해방되지 못한 피해자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분노의 마음과 연대의 힘을 모아 피해자의 일상회복으로 
_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 2004년부터 현재까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지원) 

“저 많이 단단해졌어요!”
최근 20년 전 밀양성폭력 사건 가해자 신상공개를 접하면서 심리적 불안과 고통, 분노를 느끼고 있을 피해자가 제일 걱정되었습니다. 또 이렇게 힘든시간을 겪게한 것에 대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동안 피해자 옆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피해자께 뭐라 할 말이 없고 미안한 마음입니다. 엊그제 상담소 활동가들과의 만남에서 그녀는 “저 많이 단단해졌어요! 너무 걱정마세요”라고 말해 우리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딛고 일어나 단단하게 삶을 꾸려가고자 하는 피해자분을 온 마음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면서, 그의 일상회복을 위한 마음을 모으고 실천방안을 나누고자 합니다.

피해생존자가 살아낸 시간들
2004년 12월 15일, 저는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성폭력 수사·재판 시민감시단>의 일원으로 강지원 변호사님과 울산으로 가서 피해자를 처음 만났습니다. 우리를 본 피해자는 낯을 가리며 눈을 안 마주치고 말이 없었습니다. 당시 청소년 피해자로서 주체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인식하거나 사회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15살 나이이기도 했고, 1년여 동안 지속된 피해 트라우마로 인한 자존감 결여, 주변 사람들의 회유 및 비난을 마주해야 했기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더욱이 “밀양물을 흐려놓았다(경찰)”, “(가해자들을 세워놓고 면전에서) 누가 강간을 몇 번했는지 골라내라(경찰)”, “시끄럽게 해서 좋을게 뭐있냐(검찰)”, “피고인들이 충동적·우발적으로 저지른 범죄이고, 합의가 되었으며 피해자는 평온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재판부)”, “신고하고 잘사나 보자, 밤길 조심해라(가해자 가족들)” 등의 막말을 들으며 숨조차 제대로 쉬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했습니다. 어렵게 전학한 고등학교에 다녔지만 가해자 어머니가 교실까지 찾아와 소년원에 있는 아들을 위한 탄원서를 써달라고 한 이후 학교도 그만두었습니다. 

20년이 흐른 현재, 피해자는 주거환경도, 사회적 네트워크도, 심리적·육체적 건강도 불안정한 상황입니다. 정식취업이 어려워 아르바이트 및 기초생활수급비로 생계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거기에 전혀 예기치 못했던 온라인에서의 가해자 신상공개가 시작되면서 피해자는 또 다른 고통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계시듯이, 한 유튜버와 통화한 음성파일 원본이 공개되는가 하면, “피해자가 동의했다”는 사실무근한 이야기들로 혼란이 가중되었습니다.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밀양사건 피해자로 여기저기에 재소환되어 소비되고 있습니다. 20년 전에 젖은 옷가지가 채 마르지도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쓰나미가 닥친 격입니다. 피해 시 겪었던 인권침해 상황을 다시 마주하면서 피해자는 사막 한가운데 홀로 있는듯한 막막함과  외로움, 두려움, 분노를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피해자는 “이보다 더할 수 없는” 인권침해 속에서도 땅에 발을 딛고 서있습니다. 온갖 억측과 비난, 의심을 받으면서도 그녀는 스러지지 않고 분투하고 있습니다. 

저는 앞에 소개한 것처럼 피해자가 지금 ‘단단’하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때보다 단단해지고 싶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러면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힘들 때마다 “죽고 싶다”며 무력해지는 대신, 아침에 눈을 뜰 때 하루의 평범한 일상을 그릴 수 있는 생활! 준엄한 삶의 현장에서 때로는 넘어질 수도 있겠지만, 그때마다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정신적인 힘과 물리적인 기반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그를 피해자로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시민으로, 자기 삶을 존중받으며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필요합니다.

피해자가 인간으로서 품위있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기반 마련
피해자가 지난 20년간의 피해로 인한 고통과 경제적인 어려움, 일상의 고단함을 벗어나 인간으로서 품위있는 일상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고, UN의 2030 지속가능개발목표에는 “누구도 뒤에 두지 않는다(Leave no one behind)”를 중요한 원칙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사실 국가가 나서 범죄피해자의 일상회복을 지원했어야 했지만 제대로 시도조차 되지 못했습니다. 20년이 지난 이 시점에 그녀가 안정적인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마중물 기금은 사회적으로 마련하는 방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기반에서 취업이나 창업을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일상을 찾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위로와 쉼도 필요합니다. 가끔 여행도 다니며... 그래야 내일을 향한 꿈을 꿀 수 있으니까요.

피해자 곁에서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갈 변화
피해자가 힘을 내는 데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비롯해 보이게 보이지 않게 함께하며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건 발생 당시부터 울산지역을 중심으로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되어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모니터링 및 피해자 지원을 했습니다. 광화문에서 촛불시위를 하며 서명운동과 모금운동을 한 대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조용히 후원금을 보내주신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뿐만아니라, 피해자가 삶의 구비구비에서 만난 사회복지사, 의사, 변호사, 활동가들과의 소통은 꽉 막혔던 숨통을 틔워주었다고 말합니다. 특히 수사과정에서의 아홉가지나 되는 극심한 2차 피해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으로 대응하며 우리나라 최초로 성폭력 2차피해에 대한 국가손해배상 판결을 끌어낸 법률지원팀, 늘 든든하게 연대해준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활동가들이 있습니다. 힘내라고 다독여주고 마음 나눠주시는 시민들, 댓글로 응원해주시는 네티즌들이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피해자를 내담자와 상담자로 만났지만, 이제는 서로의 삶의 여정을 응원하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 시간들이 ‘맑음’만은 아니었습니다. 변화될 듯하면서도 어느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있는 피해자의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솔직히 지원자로서 한계와 자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당장 피해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집과 생활기반이었지만, 그것은 상담소 차원의 지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도 주변의 따뜻한 시선과 손길들이 꾸준히 이어져왔습니다. 한번은 피해자가 본가에서 나와 자신의 공간으로 독립하는데 필요한 전자제품 및 이불, 가구 등을 회원 중 한 분이 지인 5명과 함께 마련해주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피해자 곁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져서 피해자들이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존중받으면서 보통의 평범한 일상을 펼쳐갈 수 있기를 고대합니다. 
<참고자료> : 당시 본 사건을 지원했던 활동가의 글 (2005년)
https://www.sisters.or.kr/activity/react/554 (한국성폭력상담소 홈페이지)

밀양집단성폭력사건 - 끝나지 않은 이야기

작년 12월, 우리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었던 밀양 집단성폭력사건이 알려진지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인권침해로 문제되었던 수사과정을 거쳐, 기소된 10명 전원 소년부송치라는 어이없는 1심 판결, 그리고 소년부 송치 이후 처분결정까지 난 이 사건은 법적으로는 일단락이 된 상태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여러 의미에서 우리에게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특히 피해 생존자를 지원하고 있는 본 상담소는 이 사건이 결코 끝나지 않은 이야기라는 것을 체감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그동안 이 사건을 곁에서 지켜보며 느낀 단상을 우리사회에 밀양 집단성폭력사건이 끼친 영향을 중심으로 짚어보고자 한다.

“이보다 더할 수 없는” 피해 생존자의 인권침해
이 사건이 알려지기까지는 1년여 동안의 생존자의 고통이 있었다. 2004년 1월부터 피해를 입어온 생존자는 그동안 가해자들로부터 “동영상을 공개 하겠다”, “가족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는 협박을 받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공포와 두려움, 절망 속에서 중학교 3학년 학교생활을 해야만 했다. 결국 친가에서 가출 하여 아버지와 이혼 후 따로 살고있는 엄마를 찾아가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어머니와 이모는 생존자를 설득해 작년 11월 25일 고소를 했고, 생존자는 고소만 하면 경찰이 알아서 가해학생들을 처벌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요청했던 여자경찰의 수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수사관으로부터 “밀양물을 흐려놓았다”라는 폭언을 들어야했다. 그리고 경찰서에서 가해자 가족들로부터 “고소하고 잘 사나보자”는 위협을 받았으며, 언론에 생존자의 신상이 유출되어 여동생까지 더 이상 학교에 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욱이 경찰은 44명이나 되는 피의자들을 세워놓고 그 면전에서 생존자에게 강간한자와 강제추행한자를 골라내라고 하는 주문을 했다. 또한 워낙 큰 사건이기도 했지만, 생존자는 경찰수사 기간에만 9차례나 불려가 한번에 7-8시간 이상씩 진술을 해야했다. 이 사건을 위한 특별검사팀을 꾸렸다는 검찰에서도 마찬가지로 “왜 계속 밀양에 가서 피해를 당했느냐”는 식의 다그침은 피해자비난의 논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생존자는 수사과정에서 정말 “이보다 더 할 수 없는” 인권침해를 입은 것이다.

“합의를 했고, 피고가 미성년자들”이라고 면죄부를 준 재판부의 판결
이번 사건의 44명 피의자들 중 10명(20명은 소년부 송치, 13명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1명은 타형사사건으로 입건)만이 기소된 채 재판이 진행되었다. 재판과정에서 피고인들은 일제히 “강제가 아닌 자발적 행위”라고 주장했고, 피고측 변호인은 생존자의 행실을 문제삼았다. 거의 모든 성폭력사건 재판에서 관행처럼 되어버린 피해자 비난논리는 이번 재판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4월 12일 1심 선고공판에서 재판부(황진효 부장판사, 이현복판사, 정영태판사)는 피고들의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전제하면서도, ▲충동적 집단심리에 의해 우발적으로 저질러진 점, ▲사건 진행중에도 친분관계를 유지한 점, ▲피해자들이 합의한 점, ▲피해자들이 현재 충격에서 벗어나 ‘평온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 ▲피고인들이 고등학생으로 진학이나 취업이 결정된 상태이고 인격이 미성숙한 소년으로 교화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전원 소년부 송치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각각 다음과 같은 이유로 성폭력 피해의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음을 지적할 수 있다. ▲청소년들의 우발적인 범죄가 아니라, 1년동안이나 지속적으로 일어난 범행이라는 점, ▲친분관계 유지라는 지적은 집단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심리와 그 특별한 상황에 대한 이해가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 ▲생존자의 의사가 아닌 친권자인 아버지의 강요에 의한 합의였다는 점, ▲피해생존자는 당시 학교를 결석하고 가출을 한 상태라는 것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였다는 점, ▲피고인들이 미성년자들이지만, 10여명 이상씩 돌아가며 집단적으로 성폭력을 하고, 갖은 협박과 폭력을 행사했던 죄질은 여느 성인범죄 못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무엇보다 당시에 법정에서 판결을 받고 있던 10명의 기소된 학생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들이 과연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특히 재판부의 선처가 피고인들에게 혹시 자신들의 무죄나 죄질의 가벼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었다. 이 일이 얼마나 피해생존자를 고통스럽게 했고, 나아가 각자의 가족들과, 사회적으로 끼친 악영향 등을 저들은 깨닫고 있을까하는 우려는 단지 나 혼자만의 기우는 아니었으리라. 얼마전 소년원에 있는 아들이 학업을 마칠 수 있도록 생존자에게 탄원서를 써달라며 학교까지 무턱대로 찾아온 한 가해자의 어머니를 만나면서도 이러한 우려가 사실로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들 44명 전원에게 아주 특별한 교정교육이 필요함에도 부산가정법원의 소년부 처분은 기소된 10명 중 5명에게는 소년원 송치, 나머지 5명은 보호자와 자원보호자의 감호위탁, 보호관찰, 사회봉사와 수강명령을 내린 것이 전부이다. 이 과정에서 생존자는 소년법에서 소년범의 사생활보호를 위해 심리를 비공개로 진행하는 원칙에 따라, 자신의 사건임에도 재판정보 검색이나 방청도 할 수 없고, 재판결과에 대한 별도의 불복수단도 없다.(* 소년법 문제는 나눔터 제47호 참조바람)

“친권남용에 의한 합의”가 남긴 것들
이번 사건의 판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피해자 측의 ‘합의’로 보인다. 그런데 이 합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특히 재판부는 서류상의 합의서와 탄원서로만 현실을 파악했다. 이들 합의가 이뤄지기까지는 피고인 측의 끈질기고 집요한 공략이 있었다. 이들은 생존자의 아버지와 친가 가족들의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하며 합의를 강권했고, 친권을 가진 아버지는 정신과병원에 입원해 있는 생존자에게 “내가 퇴원시켜주겠다”며 딸의 치료를 중단한 상태에서 강행한 합의였다. 당시 생존자는 한 달간의 정신과 입원 후 퇴원했다가 자살기도로 다시 강제입원을 한 상태였다. 따라서 생존자로서는 외부와 단절된 정신과 병동 입원이 죽고 싶을 정도로 싫었고, 피고인들의 가족과 친부는 이러한 상태를 이용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원자로서 본 상담소는 생존자 본인과 친권을 갖고 있는 친부(비록 알콜중독자로 심한 가정폭력의 경력이 있다 해도)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는 아무런 법적 권한도 없었다. 단지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에 가족과 함께 가진 회의에서 집에 가 있는 동안 어떤 폭력도 행사하지 않을 것, 가해자와의 결혼 등의 이야기는 장난으로라도 절대 하지 않을 것, 자살충동의 우려가 있으므로 세심한 배려를 할 것, 10일 후 쉼터에 입소한다는 약속 등을 각서로 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생존자의 말에 의하면, 퇴원 후 친가에 가는 차안에서부터 합의종용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집에서 자고 있는 생존자를 깨워서 주범의 선처를 바란다는 탄원서를 쓰라는 강요를 받았다고 한다.

생존자는 합의 이후 벌어진 가해자 측의 비웃음 섞인 반응과 합의금으로 받은 돈들이 아버지의 전셋집 마련과 친척들에게 나뉘어지는 것을 보고 곧바로 후회를 했다고 했다. 그러나 생존자가 후회한 때는 이미 합의와 탄원서 제출이 모든 법적 효력을 발생한 이후였다. 결국 생존자는 다시 가출을 하여 엄마를 찾아 헤맸고, 1심 판결 하루 전날 극적으로 엄마를 만나 지금까지 엄마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후 친부는 담당변호사와 본 상담소 등 지원단체들의 설득으로 자신의 친권을 친모에게로 변경하는데 동의를 했고, 지난 주에는 법원에서 친권변경 판결이 났다. 그러나 새로이 친권을 되찾은 엄마는 그 합의금의 단 1원도 받지 못한 채 월세방에서 생활보호대상자로 정부의 보조를 받으며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는 현실이다.

“평온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재판부가 보지 못한 것
재판부는 선고공판에서 생존자가 ‘평온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피고인들에게 선처를 내린다고 했다. 그러나 선고 당일 생존자는 이미 10여일 동안이나 학교를 결석한 상태였다. 따라서 당시 법정에서 ‘평온한 학교생활’을 운운하는 재판부의 선고를 들으며 지원자로서 나는 만감이 교차되었다. 제출된 서류로만 판단하고 있는 재판부의 실상을 알 수 있었고, 그 서류들의 행간을 읽어내는 것은 결국 지원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 남겨진 과제였다.

생존자는 어렵게 중학생활을 마치고 지난 3월에 고등학생이 되었다. 더욱이 재판 이후에는 어머니와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해서 전학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전학을 하기 위해 알아본 10여곳의 학교에서는 “장기 결석생”이라며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한 학교 전학담당자는 학교를 찾은 생존자의 어머니와 나에게 “아무리 그런 일을 당했어도, 부모로서, 또 상담자로서 아이를 얼른 추슬러서 학교부터 등교시켰어야 했다”고 했다. 나는 “피해생존자는 전염병을 퍼뜨리는 위험한 존재가 아니라, 따뜻하게 배려 받을 권리가 있는 학생”이라고 항변을 했지만, 보수적인 교육계의 실상이 뼈져리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학교에 다닌다 해도 생존자가 이러한 제도와 의식구조 안에서 다시 상처받을 일이 걱정되었다. 결국 교육부와 해당 교육청에 항의를 한 후 간신히 한 학교로부터 전학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사건 이후 교육부가 각 시도 교육청에 “성폭력전담위원회”를 설치 운영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 해도 실제 현장에서는 하나도 변함없는 인식들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개정안이 마련된 학교폭력관련법에서도 학교폭력에 성폭력을 포함하느냐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지금까지는 성폭력 후유증으로 인한 장기결석은 학교폭력 피해로서 출석으로 인정되는 특례가 인정되지 않는 상태이다.

지역사회 중심의 공동책위원회와 네티즌들의 활동
12월 7일 언론에 이 사건이 보도되면서, 생존자 가족은 울산지역의 한 성폭력상담소에 수사과정에서의 2차 피해에 대한 상담을 요청해왔다. 이어 여성단체에서 경찰청장을 항의방문하여 진술녹화와 신뢰관계자의 동석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12월 10일에 울산지역의 여성,사회단체들이 ‘밀양성폭력사건대책위’를 구성하였다. 대책위에서는 공동변호인단을 구성하고 경찰청, 검찰청 방문, 재판 방청 등의 활동과 의견서 제출, 그리고 기자회견을 통해 대책위의 입장을 발표하였다. 지난 4월 15일에는 그간의 활동을 마무리 토론회를 갖고 특히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하였다. 또한 전국성폭력상담소.피해자보호시설협의회의 ‘성폭력 수사.재판 시민감시단’에서도 경찰,검찰,재판부를 항의방문하고 피해자의 인권이 보장된 수사와 재판을 촉구하였다. 그리고 대책위와 함께 1심 재판결과를 강력히 규탄하는 성명서 발표, 피해생존자 지원 등의 활동을 하였다.

특히 수사과정에서 생존자의 2차피해 사실에 격분한 네티즌들은 충격과 분노를 넘어 인터넷 카페운영과 광화문에서의 16차례에 걸친 촛불시위, 서명운동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사건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했다. 그리고 피해 생존자를 돕기위한 기금모금을 하여 생존자에게 전달해달라며 본 상담소에 기탁하기도 하였다. 한편 일부 네티즌들이 가해학생들과 가해학생으로 오인된 학생들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 인권침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요란했던 정부 각 부처와 국회의 대응
이번 사건에서 빼놓을 수 없는 현상은 유래없이 적극적이었던 국회와 정부 각 부처의 반응이다. 여성부, 국가인권위원회, 청소년보호위원회(현 청소년위원회), 교육부 등에서는 각기 진상조사단을 꾸려 현장을 다녀오고 대응책을 발표하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였다. 또한 국회에서는 각 정당마다 특별대책반을 결성해 울산 현장에 내려가 진상조사를 하고, 당정협의 내용을 발표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이 사건이 얼마나 사회적 파장을 가져왔는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란한 대응의 과정과 결과를 보며, 한편에 드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당시 연이은 조사단의 울산 방문으로 경찰서에서는 실제 수사보다는 이들에게 보고하는 데에 더 정신이 없어보였다. 그리고 정작 피해 생존자에게 필요했던 어머니와 생존자 자매가 살 수 있는 자그마한 공간 마련은 어느 부처도 세심하게 고려하지 않았다. 결국 이러한 허술한 지원체계 때문에 생존자는 다시 열악한 환경의 어머니를 떠나 아버지에게 돌아가면서 강요된 합의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다. 또한 교육부의 방침을 비웃기라도 하듯 이후 연달아 일어난 익산집단성폭력사건과 진주집단성폭력사건에서 보면 성폭력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학교행정에서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가지 특기할만한 사실은 현재 이 사건 이후로 국회에 8개의 성폭력특별법개정안이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신뢰관계인 동석제도 확대, 여경조사권 확대 등 대부분 2차 피해방지와 피해생존자의 권리확보를 위한 법안들로 성폭력특별법 제정 이후 11년 만에 유래 없는 대폭적인 개정안이다. 이러한 변화는 밀양집단성폭력사건으로 인한 긍정적인 사회의 흐름으로 평가할 수 있다.

생존자에게 힘찬 응원과 지지를...
본 상담소에서는 지난 12월 15일 울산에서 처음 생존자와 가족을 만난 이후, 그동안 수차례의 법정지원과, 상담, 병원연계, 쉼터연계, 학교전학, 복지혜택 연계 등의 지원을 해오고 있다. 지금도 이 사건의 피해 생존자는 밤이면 문고리를 몇 번씩 확인하는 등의 정신적 불안과 여러 신체적인 후유증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특유의 밝음과 힘을 함께 지닌 생존자이고, 때로는 장난도 치는 보통의 청소녀이기도 하다. 특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임에도 오히려 아버지의 술주정과 가정폭력이 없이 지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생존자를 만날 때마다 깜짝 놀랄 정도로 그 내면의 강한 힘이 느껴지곤 한다.

이 생존자는 지난 1년 반동안을 참으로 길고 컴컴한 터널을 지나왔다. 또한 앞으로 닥쳐올 많은 어려움도 예상된다. 이 사건의 법률지원을 하고 있는 강지원 변호사는 앞으로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 및 친권변경 판결 이후 여러 필요한 조치들을 위한 법적 절차를 밟을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생존자의 권리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당장 학교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나아가 학업을 계속할 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제 고1인 이 청소녀의 무한한 가능성과 미래를 향한 꿈, 그 힘이 느껴진다. 또한 생존자가 희망을 가꿔가기 위한 지난한 과정들을 공유하면서 나는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있다. 누구에게나 삶의 어려움과 고난이 있다고 하지만, 이 사건의 피해 생존자는 더욱 특별한 용기와 지혜를 갖고 분투해주길 기원한다. 이를 위해 우리 모두의 힘찬 응원과 지지가 필요하다. 더불어 이 사건의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던 성폭력 피해 생존자의 2차 피해를 방지하고, 생존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마련을 위해 우리사회가 함께 노력해가야 한다.

글쓴이 : 이미경 ( 당시 본 상담소 소장, 現 이사)
피해자,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
_ 대독/윤경진(한국성폭력상담소 여성주의상담팀 팀 매니저)

20년전 이후로 영화나 티비방송에 나왔을 때 늘 있었던 것처럼 잠깐 그러다 말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댓글을 보니 저희를 잊지 않고 이렇게 많은 시민 분들이 제일 같이 화내주고 분노하고 걱정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유튜버 나락보관소, 판슥에게 2023년 11월 피해자가 연락했던 것, 보배드림 글까지 잘못 인식하는 분들이 많아서 한번 짚고 가면 좋겠습니다.
 
● 나락보관소 영상은 피해 당사자가 알기 전 내려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피해자 남동생이 보낸 메일로 인해 오해가 있었지만 피해자와의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이 맞습니다.
● 판슥에 관해서는 보배드림에 올라온 글이 피해자 동생이 쓴 글이 맞습니다
● 앞으로도 유튜버의 피해자 동의, 보호 없는 이름 노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동은 삼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무분별한 추측으로 피해자를 상처 받게 하지 말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가끔 죽고 싶을 때도 있고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미친 사람처럼 울 때도 있고 멍하니 누워만 있을 때도 자주 있지만... 이겨내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얼굴도 안 봤지만 힘내라는 댓글과 응원에 조금은 힘이 나는 거 같습니다. 혼자가 아니란 걸 느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잊지 않고 관심 가져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이 사건이 잠깐 타올랐다가 금방 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잠깐 반짝 하고 피해자에게 상처만 주고 끝나지 않길 바랍니다. 경찰, 검찰에게 2차 가해 겪는 또 다른 피해자가 두 번 다시는 나오지 않기를 바래요. 잘못된 정보와 알 수 없는 사람이 잘못 공개되어 2차 피해가 절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24. 6. 13
밀양 성폭력사건 피해자 자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