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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화운동

성폭력에 맞서기 위해 대안적인 관계, 일상, 실천을 만들어가는 성문화운동을 소개합니다.
[후기] '폭주하는 남성성' 시리즈 토크 세션1 <여성을 죽여서 '화풀이'하는 남성들>
  • 2024-09-19
  • 306



지난 8월 27일(화) 오후 19시 30분,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폭주하는 남성성' 시리즈 토크 세션1. <여성을 죽여서 '화풀이'하는 남성들>이 열렸습니다. 여성혐오와 젠더폭력이 점점 더 공격적인 형태로 분출되고 있는 현재를 '남성성의 폭주'로 진단하고 함께 대응 방안을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 한국여성의전화 최선혜 활동가가 <가장 일상적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살인,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습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2009년부터 매년 '분노의 게이지'라는 이름으로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보고서'를 발표해왔습니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2023년 분노의 게이지 통계에 의하면, 2023년 한 해 동안 남편이나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된 여성은 최소 138명, 살인미수 등으로 살아남은 여성은 최소 311명으로 나타납니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을 분석한 통계 자료이므로,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하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게 살해당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한 여성의 수는 훨씬 많은 것으로 예상됩니다.


구체적인 통계 자료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3년 분노의 게이지 : 언론 보도를 통해 본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 및 일면식 없는 남성에 의한 여성살해 분석

https://hotline.or.kr/archive/?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26184041&t=board


최선혜 활동가는 이처럼 많은 남성들이 친밀한 관계에 있는 여성을 살해하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가 이에 관한 공식적인 통계 자료를 전혀 내지 않고 있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습니다. 공식적인 통계 자료가 없다는 말은 곧 최소 19시간마다 1명의 여성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되거나 살해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국가가 주목하지 않고,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고, 원인을 분석하거나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경찰청은, 2023년 살인범죄(미수 포함) 피의자 778명 중 192명(24.6%)은 전·현 배우자와 전·현 애인, 사실혼 배우자를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가리키는 통계를 발표하면서도, 해당 통계 자료에서 피의자의 성별 정보를 의도적으로 누락시킴으로써 친밀한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살인범죄가 많은 경우 남성 가해자가 여성 피해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할 뻔한 성별화된 범죄임을 감추고 부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편, 언론 보도를 살펴 보면, 친밀한 관계 내 여성 폭력을 다루는 기사는 많지만, 대부분 이를 성별 권력 관계에 의한 구조적 폭력으로 보지 않고 개인의 일탈로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가해자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거나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살해 이유('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아서', '잠자는데 불을 켜서', '텔레비전 전원을 끄지 않아서')를 받아쓸 뿐, 정작 젠더 폭력을 발생하게 하는 구조적 책임은 묻지 않는 기사가 대다수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페미니즘은 다시금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친밀한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가? 어떤 문화에서 친밀한 관계의 남성 파트너에 의한 여성 폭력이 발생하고 있는가? 여성에 대한 폭력은 어떻게 정당화되고 있는가? 국가는 친밀한 관계 내 여성 폭력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가? 실질적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두 번째 순서로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추지현 교수가 <모르는 남성들의 구체적인 여성혐오, 페미사이드>라는 주제로 발표를 이어받았습니다. 


추지현 교수는 '페미사이드'란 여성에 대한 성차별적 테러 연속체의 극단(Russell, 2001)이자 성계급으로서의 여성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일종의 사형(Radford, 1992)이라는 개념과 문제의식에서 발표를 시작했지만, "여자라서 당했다"라는 항변을 넘어 가해자의 삶의 양식과 폭력의 맥락을 더 면밀히 살펴 봐야 예방과 해법의 모색을 위한 질문을 할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남성성'은 실제로는 단일하지 않고 '남성성들'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로 다양한 행동과 실천으로 나타난다는 점을 설명해주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도적 권력을 가진 헤게모니적 남성성,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실질적 자원이 전무한 곳에서 권력을 주장하고자 하는 주변부 남성성과 하위문화들, 오히려 남성 약자 서사를 주장하는 등 주변화된 남성성을 스펙타클하게 전시하며 실제로는 '헤게모니적 남성성의 가부장적 배당금'을 가져가는 공모적 남성성, 헤게모니적 남성성으로부터 추방되어 여성적 행위로 여겨지는 실천을 하는 종속적 남성성 등등.


그동안 우리 사회는 대부분의 여성살해 범죄를 일종의 '인셀'에 의한 범죄로 진단해왔습니다. 흔히 '인셀(Involuntary celibate, 비자발적 독신주의자)'은 여성을 만나고 싶어 하지만 사회경제적으로 도태된 조건 때문에 여성과 만나지 못하고 그 화풀이로 여성혐오와 여성폭력을 일삼는 남성들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남성이 모르는 여성을 살해하면 일단 '여성살해'가 아닌 '묻지마 범죄'로 규정하고, 범인이 "여성에 대한 열등감", "연애, 취업, 결혼의 젠더화된 트랙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려워진 신자유주의적 경쟁 속에서 남성들의 불안이 여성혐오로 전이되어", "취약해지는 노동조건과 남성 생계부양자로서 살 능력이 없어진 상황에서 남성성 상실에의 공포" 또는 "울분"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분석하며, 은연 중에 남성들에 대한 연민을 표현하고 여성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이 익숙한 수순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첫 번째 발표에서도 확인했듯이 여성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도 그 여성에게 심각한 폭력을 저지르는 남성들이 많습니다. 게다가 제가 추지현 교수의 발표를 제대로 이해한 게 맞다면, 예전에는 남성들이 '인셀'로 분류되는 것에 수치심을 느끼고 '인셀'이 되지 않기 위해 애를 썼던 반면, 이제는 스스로 '인셀'이라는 정체성을 수용하면서 여성혐오와 여성폭력이라는 놀이 문화를 적극적으로 즐기고 정당화하는 남성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놀이 문화를 조장하여 돈을 버는 남성들도 존재하고요.


따라서 추지현 교수는 남성성'들'의 차이를 살피고, 각각의 남성성이 실천되는 위치, 상황, 맥락 등을 분석하여, 지금까지와는 다른 남성성을 실천할 수 있는 조건, 제도 정치 등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과제를 남겨 주었습니다.




마지막 순서로 페미니스트 연구웹진 Fwd 만두(이민주) 연구자가 <온라인 공간 내 여성 대상 집단괴롭힘, '페미사냥'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였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 대상 집단 괴롭힘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지만, 이번 발표는 그중에서도 기업과 남성 소비자가 공모하여 여성 노동자를 해고하는 등 실질적인 여성 배제와 불이익으로 이어졌던 이른바 '집게손가락 논란'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만두 연구자는 메갈리아의 '미러링' 전략, 디지털 성폭력 공론화, 대중문화 콘텐츠 내 여성혐오 공론화 등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의 등장으로 온라인 공간과 하위문화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음이 드러나자, 주도권을 위협당했다고 느낀 남성들이 '여성들이 남성들의 재미를 빼앗는다'는 분노와 복수심의 정동으로 '페미사냥'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처음에는 '메갈'이라는 반사회적이고 비정상적인 온라인 여성 집단이 은밀하게 특정한 표식(집게손 등)을 드러내 사람들을 선동하고 혐오를 표출한다는 음모론이 형성되었고, '메갈'에 대한 공격은 점차 페미니즘 전반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특히 게임계에서는 여성 작업자가 과거 SNS를 통해 여성단체를 팔로우하거나 성폭력 관련 뉴스에 '좋아요' 버튼을 눌렀다는 이유로 남성들이 기업에 항의하면, 기업이 남성들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며 해당 여성 작업자를 사상 검증, 해고하기까지 하는 일이 몇 년 째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기업은 '소비자 요구를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여성혐오에 공모하고, '페미사냥'의 선례와 정당화 근거를 만들어 이를 사회적으로 승인하는 결과를 만들고 있습니다. 넥슨을 비롯한 게임계에서 시작한 이러한 '페미사냥'은 GS25, 빙그레, 서울우유 등 다양한 업계와 심지어는 국방부, 보건복지부 등 정부 부처까지 확산되고 있습니다.


기업과 정부가 '페미사냥'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남성들은 허무맹랑한 음모론이 사실인 양 진실을 호도하며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자의 지위에 있다는 '남성 피해 소비자 정체성'을 구성하게 됩니다. 페미사냥 요구가 받아들여지는 사례가 늘어날수록 집단으로 타자를 공격하고 굴복시키는 행위가 도덕적 정당성이 있는 합당한 행위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남초 커뮤니티 안에서 '페미사냥'은 '참교육' 또는 '정의구현'이라는 언어로, 밈과 유머를 통한 즐거운 놀이 문화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한편, 만두 연구자는 기업과 남성이 공모하여 여성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페미사냥'이 사실상 여성 소비자의 존재를 지우고 '진정성 있는 소비자는 남성'이라는 믿음을 확인하고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전체 소비자 중에서 여성 소비자의 비율이 적지 않음에도 마치 일부 남성 소비자가 전체 소비자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공유되고, 기업과 정부가 이를 대외적으로 인정해주는 꼴입니다. 소비자와 기업이 모두 남성으로 상정되고 여성을 손쉽게 주변화하는 이러한 현상은 기울어진 시장 경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모든 발표를 마치고 질의응답이 이어졌습니다. 패널들이 각각의 발표에서 다루는 영역은 달랐지만, '폭주하는 남성성' 그 자체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남성성이 폭주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이 되어주는 국가, 기업, 남성 문화 전반에 문제 의식을 가지고 개입하며 사회구조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짚어주셨던 것 같습니다.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폭력이 공론화되어 우리 사회의 남성성에 대한 좌절감과 환멸감이 강하게 드는 요즘,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지만, 무력하게 굴하지 않고 연대하고 저항하고자 하는 우리가 있음을 서로 만나서 확인할 수 있어 든든한 시간이었습니다. 힘을 내서 오늘도 행동해야겠습니다.


'폭주하는 남성성'을 주제로 한 이번 이슈대응 집담회는 세션2. <여성의 고통을 팔아 돈을 버는 남성들>로 이어졌는데요, 세션2의 후기는 아래 링크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sisters.or.kr/activity/action/7269


이 후기는 여성주의상담팀 앎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