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화학적 거세’, 믿을만한 성폭력 재범방지대책인가?
지난 6월, 이른바 ‘화학적 거세’로 불리는 '아동성폭력 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었다. 법안은 2008년 의원입법안으로 발의되었으나 심도 깊은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던 중 일련의 아동성폭력 사건들을 계기로 신상공개 제도의 확대, 전자발찌 등과 함께 성폭력 대책의 일환으로 거론되었다. 실효성에 대한 검증이나 사회적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강경처벌을 요구하는 대중의 공분만을 바탕으로 시급하게 추진된 해당 법안은, 내년 7월부터 시행된다고 하나 벌써부터 그 타당성 및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거세다.
성도착증 환자의 성충동 억제가 성폭력 대책?
약물치료의 대상자는 ‘16세 미만 아동으로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19세 이상 성도착증 환자로서 재범 위험이 있는 자’로 규정되어 있다. 이에 해당하는 성폭력 가해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현재 성폭력 사건의 고소율은 7.1%, 고소된 사건 중 재판에 회부되는 비율은 40%이며, 이 중에서도 실형판결률은 20%에 불과하다. 따라서 고소된 성폭력 사건 1,000건 당 처벌되는 사건은 5.7건에 불과하며, 이 중 약물치료 대상자는 고작해야 1~2명 미만일 것이다. 고소되지 않는 90% 이상의 성폭력 사건까지 포함한다면 처벌확률은 더 줄어든다. 이렇듯 극소수의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대책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성폭력 재범 근절의 주요 대책인 것처럼 사회적으로 인식되는 것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점이다.
또한 ‘성충동 약물치료’는 기본적으로 가해자의 ‘성충동’이 성폭력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본다. 성폭력은 분명 폭력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성폭력 사건에 있어 ‘욕정을 참지 못하여’라는 문구는 여전히 면죄부가 되어 왔다. 금번의 법안은 성폭력이 ‘욕정’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는 사회적인 통념을 그대로 수용한 것에 다름 아니며, 나아가 약물치료를 비롯한 일련의 처벌강화 대책들이 아동 피해와 성인 피해에 대한 이분법적 인식을 강화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일시적인 치료보조 수단일 뿐 처벌이나 근본대책이 아냐
약물치료는 그 효과가 즉각적일 수는 있으나 약물 투여 뒤 일정 기간 동안만 유지된다는 점에서 일시적이다. 만일 정말로 성폭력 가해자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면 남성 호르몬을 억제하는 일시적인 약물치료보다는 꾸준한 인지행동치료를 통한 변화가 근본적인 성폭력 재범 예방 대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법무부조차 약물치료에 대해 ‘중단하면 다시 성충동이 생기’는 것임을 인정하고 있으며, 치료감호와 함께 선고되거나 심리치료를 병행한다고 명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안은 보조적인 치료수단에 불과한 약물치료를 강제조항으로 두어 처벌의 의미를 띄게 했다. 약물치료는 대상자가 자발적으로 동의해야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치료가 가능하나, 현재처럼 강제적으로 집행될 경우 가해자가 치료효과를 없애는 다른 약물을 주사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가해자에 대한 권리 침해 논란까지 불거질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또한 개인의 신체에 가해지는 치료법인 만큼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해외국가들의 현황 및 실효성에 대한 평가 자료의 분석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약물치료가 성충동 억제에 실제로 어느 정도의 효용성이 있는지 관련 데이터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법안은 통과되었다. 또한 치료감호나 심리치료와 병행했을 경우, 치료경과 및 계속 치료 여부에 있어 약물치료의 효과인지 전자의 치료요법에 의한 효과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기존 제도의 적극 시행 및 검증이 우선되어야
2008년, 치료감호법 개정으로 (소아성기호증, 성적가학증 등의 성적 성벽이 있는) 정신성적 장애자에 대한 치료감호가 가능해졌다. 해당 법률은 치료감호에 대해 ‘형벌과는 달리 장래의 재범 위험성을 근거로 치료 목적에서 부과하는 처분’임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진단과 감정에 있어서도 정신과 전문의의 진단과 감정을 의무화하고 있으며 필요 시 법원에서 재감정을 요청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 약물치료는 치료감호와 동시에 선고가 가능하다.
여기서 문제는 치료감호제도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작업조차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정신성적장애 성폭력범죄자가 치료감호소에 처음으로 입소한 것이 불과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고, 치료감호소의 성폭력 치료재활센터에 배치된 인력은 고작 14명에 불과하다. 치료감호제도의 구체적인 내용과 그 효율성에 대한 뚜렷한 평가조차 없는 상황에서 일시적인 보조수단이자 그 실효성조차 입증되지 않은 약물치료를 새로 도입한다는 것은 가해자의 재범 방지대책이라기보다는 보여주기식 처벌강화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기존 치료감호제도의 프로그램을 정비하고 적극적으로 실시하여 평가 가능한 데이터자료를 구축, 평가 및 검증 이후에 논의되어도 늦지 않다.
근본적인 성폭력 재범방지대책은 교육에 있어
그렇다면 성폭력 가해자의 근본적인 재범방지를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 것인가. 당연하게도 현재 수감되어 있는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는 치료감호법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성폭력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을 고려했을 때, 수감 중인 가해자를 대상으로 왜곡된 성인식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시설 내 교정·교화교육이 적극 실시되어야 한다.
이는 너무나도 기본적인 대책이다. 그러나 본 상담소에 간혹 교도관이나 성폭력 가해자인 수감자로부터 날아오는 서신의 대부분이 교도소 내 교정·교화 교육의 미비를 한탄하는 내용인 것만 보아도 수감시설 현장에서의 교육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당장의 효과는 미미할 수 있으나 관련 예산과 인력의 확대, 충실한 프로그램 이행을 통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정·교화 교육으로 가해자의 성인식을 변화시키고, 폭력과 인권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야 말로 성폭력 재범을 예방하는 진정한 대책일 것이다. 1~2명의 극소수를 대상으로 한 즉각적인 효과에 기댄 ‘화학적 거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나머지 999명의 변화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다미 _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