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2015년 10월 22일, 이룸센터 지하에서
장애여성공감 주관,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 주최로 열린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종합 토론>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여성의 재생산권을 법률뿐만 아니라 제도로서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는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논하는 자리가 마련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95년 북경아시아대회에서 주창된 이후로 여성의 재생산권은
임신과 출산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를 넘어 여성의 몸, 섹슈얼리티, 건강 등
2015년 현재까지 다양한 세부 주제에 관한 토론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토론 주제는
'장애'를 가진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통해
'장애/비장애'의 구분, '건강/비건강' '정상/비정상'과 같은
이분법적 개념에 대해 근본적인 비판을 제기하면서
'장애'를 가진 여성의 경험과 목소리를 포함한 '건강'으로 재개념화할 것을
주장하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롭고 급진적이기까지 합니다.
첫 발제를 맡은 나영정(장애여성공감 정책연구원)은
재생산권의 주체가 과연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재생산권을 획득하고 실행하기 위한 조건, 사회적 규범성을 비판하면서,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얼마만큼 장애 여성의 경험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를 질문합니다.
'건강' 개념 자체가 누구의 경험과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지요.
두번째 나영(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팀장)은
지금까지 임신과 출산 위주로 여성재생산권 담론이 구성되어 온 흐름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비장애'라는 특정집단을 기준으로 한 '재생산 권리' 개념을 탈피하기 위해
'재생산 정의'개념을 제시하면서 '사회적 책임'을 제안합니다.
즉, 재생산 권리가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탈정치화되었으나,
사실 재생산 권리는 인구정책만이 아니라, 사회 전영역에 걸친 구조적 통제 기제로 작동되어왔지만,
이제 재생산권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정의'의 관점에서 사회적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토론자로 참석하신 박명애(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장애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자신의 임신과 출산, 혼인에 관한 경험을 들려주기도 하였고,
문현아(건강과 대안 연구위원)는 기존의 건강, 재생산권에 '장애'를 포섭하면 될 문제인지를 질문하면서,
비장애 개념확대로 풀 수 있고, 비슷한 집단과의 연대를 추진해볼 것을 제안하기도 하였습니다.
김도현(한국장애학회 정책분과위원장)은 국가 권력이 장애/여성에게 부과하는 규범성을 해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며
'어떻게 정치화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기도 하였고,
마지막으로 이미경(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지금까지 젠더, 여성의 몸, 건강,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고 결정할 권리가
국가의 정책으로 다루어왔던 역사를 비판하면서
이 토론의 자리에 참석한 연구자들의 연대를 통해 운동으로 이어나갈 것을 다짐하며 마무리하였습니다.
플로어에서는 박선영(여성정책연구원)이 여성정책이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인지를 비판하면서
낙태연구를 하면서도 장애여성의 경험에 관한 자문도 구하지 않았던 연구 현실을 반성하기도 하였고,
기획단 활동을 해온 유림(건강과 대안 연구원)은 여성운동의 역할을 질책하기도 하는 등,
활발한 토론이 펼쳐진 자리였습니다.
CEDAW(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에는
여성의 재생산권과 관련된 조항을 다음과 같이 마련하고 있습니다.
※ 제 11조2. 당사국은 결혼 또는 모성을 이유로 한 여성에 대한 차별을 방지하며 여성의 근로에 대한 유효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음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a) 임신 또는 출산휴가를 이유로 한 해고 및 혼인 여부를 근거로 한 해고에 있어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위반시 제재를 가하도록 하는 것 (b) 종전의 직업, 선임순위 또는 사회보장 수당을 상실함이 없이 유급 또는 이에 상당하는 사회보장급부를 포함하는 출산휴가제를 도입하는 것 (c) 특히 아동 보육시설망의 확립과 발전의 촉진을 통하여 부모가 직장에서의 책임 및 사회생활에의 참여를 가사의 의무와 병행시키는 데 도움이 될 필요한 사회보장 혜택의 제공을 장려하는 것 (d) 임신 중의 여성에게 유해한 것이 증명된 유형의 작업에는 동 여성에 대한 특별한 보호를 제공하는 것 ※ 제16조1. 당사국은 혼인과 가족관계에 관한 모든 문제에 있어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하며, 특히 남녀평등의 기초 위에 다음을 보장하여야 한다. (a) 혼인을 할 동일한 권리 (b) 자유로이 배우자를 선택하고 상호간의 자유롭고 완전한 동의에 의해서만 혼인을 할 동일한 권리 (c) 혼인 중 및 혼인을 해소할 때의 동일한 권리와 책임 (d) 부모의 혼인상태를 불문하고 자녀에 관한 문제에 있어 부모로서의 동일한 권리와 책임: 모든 경우에 있어서 자녀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함 (e) 자녀의 수 및 출산 간격을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결정할 동일한 권리와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정보, 교육 및 제 수단의 혜택을 받을 동일한 권리 (f) 아동에 대한 보호, 후견, 재산관리 및 자녀입양 또는 국내법제상 존재하는 개념 중에 유사한 제도와 관련하여 동일한 권리와 책임: 모든 경우에 있어서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함 (g) 가족성(姓) 및 직업을 선택할 권리를 포함하여 부부로서의 동일한 개인적 권리 (h) 무상이든 혹은 유상이든 간에 재산의 소유, 취득, 운영, 관리, 향유 및 처분에 관한 양 배우자의 동일한 권리 |
그러나, 여기에도 임신과 출산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권리 외에는
그 어디에도 여성의 몸, 섹슈얼리티, 건강에 관한 개념 정의나
장애여성의 재생산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에 관한 조문은 없습니다.
이번에 개최된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종합 토론>을 통해
'장애'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가 담긴 여성/재생산권의 재정의와
진정한 의미의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활발한 토론이 이어나가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