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추모참여자 인권침해 집단소송 기자회견문]
“변화를 위한 행동은 계속된다”
지난 5월 17일에 일어난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은 여성이 일상적으로 폭력의 표적이 되어온 여성혐오 사회의 한 단면이 드러난 사건이었다. 이에 시민들은 강남역 10번 출구에 헌화하고 추모함과 동시에, 자신의 피해경험을 이야기하고 수많은 포스트잇으로 여성폭력 반대 의사를 표현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은 여성폭력 중단을 촉구하며 여성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성찰을 요구하는 의미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추모참여자들은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 추모행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심각한 인권침해를 감수해야했다. 추모참여자들의 발언과 행동에 대해 악의적인 조롱과 비방이 시작되었으며, 추모현장 영상·사진 촬영 및 유포, 신상유포, 외모비하와 성희롱적인 각종 폭언 등이 난무했다. 이에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3개 공동대응 단체는 추모참여자 인권침해 제보창구를 열어 약 10일간 총 53건의 제보를 받았다. 제보자는 45명에 이른다. 이들 중 20명의 제보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가 주축이 된 공동변호인단과 3개 단체와 함께 집단소송을 제기한다. 성차별에 근거한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도, 놀이도, 문화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여성들의 직접행동이 계속될 수 있는 제도적・사회적 토양을 만들고자 한다.
제보자들에 대한 조롱과 위협은 결코 사인간의 사소한 충돌이 아니다. 본 공동대응단은 여성에 적대적인 온라인상의 분위기가 오프라인으로 이어지며 확대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현장에서 추모참여자들을 무단 촬영하고 조롱·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했으며, 촬영 게시물이 SNS와 몇몇 커뮤니티를 통해 급속히 확산·재생산되며 불평등한 젠더구조를 바꾸기 위한 움직임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현재 법률은 성차별에 기반한 혐오표현에 대해 규율할 수 있는 근거는 없으며, 표면적으로 모욕과 명예훼손만을 다루고 있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공동대응 단체는 지금을 추모참여자들에게 가해진 악성댓글과 위협행위에 대해 사회적으로 논의를 던지고 개입해야 할 시점으로 판단하였으며, 공동대응의 일환으로 법적대응을 시작한다.
경찰은 추모참여자의 인권침해를 사소한 갈등으로 치부하지 않고, 집단적 인신공격과 욕설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물음으로써 사회에 경종을 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경찰은 예방적 차원에서 여성들의 직접행동이 부당하게 위협받지 않도록 조치할 최소한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경찰은 온라인상의 혐오표현과 공격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전제한다는 점을 분명히 파악하고 여성·소수자 대상 혐오범죄를 수사할 책임이 있다. 공동대응 단체는 경찰이 ‘여성안전 특별치안대책’에 따라 기계적으로 ‘남녀갈등’ 게시물을 검열·삭제하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고, 온라인상 여성혐오 방지 대책에 대해 다시 고민할 것을 촉구한다.
온라인상의 여성혐오는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며, 이를 한국사회가 어떻게 규정하고 규율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그간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성 인권침해는 아무 거리낌 없이 놀이처럼 향유되어왔고, 이제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그 수위와 영향력이 무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3개 단체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는 수사기관이 추모참여자 인권침해 사안에 사회적 경각심을 갖고 철저하게 수사에 임하는 지를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성평등 가치를 향한 행동이 온라인상의 여성혐오와 집단적인 공격으로 인해 봉쇄되지 않고 풍부하게 논의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이 변화의 과정에는 시민들의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혐오를 멈추고 온라인 공간을 자정하기 위한 모두의 노력이 있어야만 우리는 여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을 갖고 문제의 해결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7월 27일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한국여성의전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