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기자회견문]
그것은 ‘반성’이 아니다
성폭력가해자의 일방적인 후원/기부는 감경요인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성폭력 가해자의 일방적인 후원/기부가 ‘반성’으로 인정되어 감경되고 있다. 2015년 동부지방법원은 카메라등 이용촬영으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서 1심에서 300만원 벌금형을 선고유예한데 이어 2심에서 ‘성폭력예방프로그램을 자발적으로 수강하고 성폭력상담소에 정기후원금을 납부하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며 다시금 선고유예하였다.
성폭력은 범죄로 의율, 제재되고 있다. 그러나 형사절차과정에서의 피해자 권리보장은 여전히 철저하지 못하고, 성폭력을 수사하고 판단하는 시각은 여전히 남성중심적 편향에 놓여있다. 법정형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법체계에 기대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정의이고, 형사법이 성폭력에 대해 예방적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러나 가해자 시각의 양형인자, 감경요인은 여전히 성폭력을 우리 사회에서 기꺼이 봐주어야 할 일, ‘열외’로 만들고 있다.
전국성폭력상담소는 그동안 일방적인 후원/기부금 납부를 겪어야 했다. 2년간 100건이 넘는 시도와 실행이 있었다. 후원은 원래 반갑고 고마운 것이다. 기부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와 참여를 뜻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가해자와 가해자의 가족, 가해자의 변호사는 긴급하게, 피해자 지원 상담소의 상황과 설립취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입금하였고, 이를 재판부에 ‘반성의 징표’로 제출하고 있다. 이를 ‘반성’이라고 인정해주고 있는 것은 누구의 시각인가.
가해자의 일방적 후원금이 '반성'과 '사죄'로 해석되고, 이것이 감경으로 이어지는 것은 부당하다. 가해자는 너무 많은 이유로 감경되고 있다. 고령이라서, 어려서, 학생이라서, 직장인이라서, 평범한 사람이라서, 성실해서, 가족이 있어서, 사회적 유대관계가 있어서. 우리 사회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성차별적인 사회다. 피해자야말로 평범한 일상을 침해받고, 가족 직장 학교로부터 낙오되거나 비난받으며 생존하고 있다. 평범하게 살던 피해자가 피해자로 인정받기까지 얼마나 긴 과정이 험난하게 펼쳐지는지 우리는 매일 현장에서 목도한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존재하는 사법절차가, 가해자에게 너무 손쉬운 반성을 인정하고, 가해자의 평범한 일상을 지킨다는 목적으로 많은 감경요인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성폭력에 대한 형사사법체계의 중대한 오류이자 패착이다.
전국 126개, 성폭력피해자를 지원하고 있는 성폭력상담소들의 뜻을 담아 이 의견을 법원행정처에 제출하고, 변화를 요구한다.
우리는 요구한다.
- 가해자의 일방적인 후원/기부는 감경요인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 피해자의 권리를 위축시키는 가해자 위주의 감경요인, 재판부는 용인해선 안된다
- 재판부는 피해자 권리보장 제도와 정책을 이해하고, 피해자 목소리를 들어 판결해야 한다
2017년 9월 14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