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그 평범을 깨고, 우리의 평범을 찾자 -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부터!
<그것이 알고 싶다>(1193회)의 “충격”시선이
친족성폭력을 ‘몰라도 되게’ 만든다
우리는 말한다
그것은 평/범/한/가/족에서 일어났다
그 '평범'을 깨고, 우리의 평범을 찾자
친족성폭력 공소시효부터 폐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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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가 친족성폭력 편을 만든다고 했을 때 많은 피해생존자들이 기대했다. <그알>은 파급력이 큰 프로그램이라 이 문제가 쟁쟁한 사회적 의제가 되길 바라는 사람들에겐 희망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알> ‘부성애의 두 얼굴’ 제작팀은 제작과정에서 친족성폭력에 대한 편견을 휘둘렀다. 우리는 <그알>의 시선이 친족성폭력을 알고자 하는 게 아니라 ‘몰라도 되게’ 만드는 전형적 방식이라 생각한다.
* 제작팀과 소통했던 당사자들과 방영분을 모니터링한 이들의 의견이다.
♨ 친족성폭력은 ‘충격적’인가?
<그알>은 “이 파렴치한 남자는 ... 의 친아버지였다” “미투운동 이후 오빠, 남동생, 친척은 있었지만 친아버지라는 것은 좀처럼 접해보지 못한 일이다. 믿고 싶지 않은 일”, “어쩌면 오늘 방송을 보는 분들 중에서 채널을 돌리는 분 있을 것이다” 등을 멘트로 썼다. 직장 내 성희롱이나 불법촬영 문제를 다룰 때도 이런 멘트를 쓰는가? ‘충격적’ ‘믿고 싶지 않은 일’이라는 반응은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매번 ‘원점’으로 만든다. 구조나 원인을 짚지 않고, 일상성과 평범성를 보지 못하게 한다. 경찰통계상 친족성폭력은 매년 6-700건이며, 한국성폭력상담소 통계에서 25년 이상 매년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 제일 많은 가해자가 ‘친부’다. 친족성폭력을 ‘충격’으로 여기는 건 대중들이 아니라 30년째 ‘충격’만 반복하는 방송이다.
♨ 친족성폭력은 ‘소재’일 뿐인가?
<그알> 출연을 타진했던 친족성폭력 피해당사자는 제작팀과의 첫번째 갑작스런 통화에서 “그러니까 어떤 행위였냐, 삽입이었냐 OO이었냐?”는 질문을 받았다. 해당자는 결국 <그알>에 못/안나갔다. <그알>은 방영분에서도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게 2차 피해가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객관적인 확인과 판단을 해야 했다.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구체적인 행동을 들어봐야 했다. 여러분도 함께 판단해주시기 바란다.”라며 밤 시간 피해장소로 피해자와 갔다. 다른 사례자는 (인터뷰 도중 ‘행위’를 떠올리다가 자리를 피하자)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감정을 추스리고 해준 이야기는 방송에 공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알은 그 ‘행위’들이 알고 싶은가? 그런데 정작 들으면 공개할 수도, 직면할 수도 없는가? 정작 알고자 하거나 듣고자 하지도 않으면서 어떤 행위는 ‘판단해야 할 행위’로 파헤치고, 어떤 행위는 ‘공개조차 할 수 없는’ 행위로 금기를 설정하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은 것인가, 모르고 싶은 것인가.
♨ 친족성폭력 피해자는 특정 ‘이미지’일 뿐인가?
당사자들은 <그알> 제작팀의 인터뷰 요청에 방송기획안이나 사전질문지를 메일로 요청했다. 그러나 제작팀은 “자연스러운 대화를 위해 사전질문지를 줄 수 없다”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기 위해 그런 것은 드리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제작팀은 출연여부를 타진하는 소통 과정에서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은 다 힘들게 산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다. 그렇지 않다고 하자 그럼 그런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고 했다가, 결국 그 사람이 겪은 사건이 자극적이기 때문에 출연시킬 수 없다고 했다. <그알>의 “파괴된 삶이냐? 극복한 삶이냐?”라는 이분법적 질문은 틀렸다. 두 부류의 피해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분법적인 시선의 방송이 있을 따름이다.
제작팀은 친족성폭력의 ‘일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가족은 일상을 유지시키는 사회적 기본 단위로 기능하고 상징한다. <그알> 방영분에는 외국으로 이주한 상태의 피해당사자가 주로 나왔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사회체계는 생애주기를 따라 다니며 일상에 부착된다. 친족성폭력의 해악성은 파괴된 듯 보이는 어떤 피해자를 찾아 다녀도, 극복한 듯한 피해자를 찾아도, 그 둘을 비교해도 결코 찾을 수 없다. 친족성폭력의 해악성은 가족이라는 사회적 기능과 상징이 한 개인의 생애 대소사를 부당하게 좌우하는 사회에서 발생하고 지속, 은폐된다. 피해자를 믿고 싶지 않은 성적 충격을 경험한 몸으로만 보고자 한 <그알>의 시선이 안타깝다. 가족의 권력, 위계, 차별, 폭력을 고발하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피해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힘있게 듣지도, 담지도 못한 <그알>이 안타깝다.
우리는 말하고 싶다.
그것은 평/범/한/가/족 에서 일어났다.
그것은 평/범/한/가/족 에서 일어난다.
그 ‘평범’이 친족성폭력을 은폐하고 지속시켜 왔다.
그 ‘평범’이 유지되는 한, 친족성폭력은 지속된다.
그 평범을 깨고, 우리의 평범을 찾자.
평범한 우리들이, 친족성폭력 공소시효부터 없애겠다
이 글을 함께 쓴 <친족성폭력 공소시효 폐지부터-, 공폐단단> 은
<그것이 알고 싶다 ‘부성애의 두 얼굴’> 제작과정의 문제를 말하고자 모였습니다.
그리고 울고 웃는 만남과 회의 끝에 신나는 액션-캠페인을 하기로 했어요.
♨ 평범한 친족성폭력을 말하는
♨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액션-캠페인
2019년 12월 21일(토) 1시 30분부터 영등포-여의도 근처-
함께 할 분들을 찾아요.
작은 목소리도, 소심한 마음도 다 좋아요, 모이는 만큼 힘일 거예요.
평범한 장소들에서 피켓을 번쩍! 들어요
신청은 이곳에서 ☞ http://bit.ly/공폐단단
(12/20(금) 오전 11시까지 신청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