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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후기] 성적수치심 → 불쾌감, 이것만 바꾸면 성범죄 양형기준 개선일까?
  • 2022-06-30
  • 1601


양형위원회는 한국 형사재판에서 양형결정에 기준을 마련하고, 국민들의 참여와 사회적 토론을 통해 신뢰도를 제고하기 위해 설립된 기구입니다. 형사재판에서의 양형기준의 중요성, 문제의식은 '성폭력' 분야에서 특히 많이 관심이 있어 왔습니다. 소위 '솜방망이처벌' '가해자 봐주기' 가 횡행하고 있다는 비판이었습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주취 감경'이 문제가 되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고, 2010년대에는 가해자를 위한 전문로펌(!) 이 많아지면서 가해자 감경을 위해 제출되는 가짜 반성문, 꼼수 기부 등이 문제가 되면서 '반성 감경' 등에 문제의식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2022년 5월 2일에도 양형위원회는 성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을 의결했습니다. 그리고 사회 각계 각층에 의견을 요청했습니다. 이에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의견서를 6월 10일 제출했습니다. 제출한 의견서는 아래 링크에서 보실 수 있고요, 몇 가지 내용을 요약해봅니다. 

https://www.sisters.or.kr/activity/law/6279


성범죄양형기준에 대한 의견서 (2022.6.7)

양형위원회가 2022년 5월 2일 의결한 「성범죄 양형기준 수정안」에 대하여 한국성폭력상담소는 6월 7일 다음과 같이 의견을 제출하였습니다. [목차]1. 성범죄 양형기준은

www.sisters.or.kr


1. 양형을 결정하는 중심축이 '피고인 고려' 에서 '피해자 고려'로 변화해야 합니다


"성폭력에 대한 편견과 편향 없는 정의로운 판결에 대한 피해자들의 외침과 국민들의 큰 관심속에서 성폭력 사건에 대한 재판부의 선고는 개선되어 왔고, 양형위원회의 성범죄 양형기준, 디지털 성폭력 양형기준 마련 및 수정안 논의에서 일부 쟁점들이 다뤄지고 변경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성범죄 양형기준이 가해자 중심으로 이해되고 적용되고 있습니다. 피해자는 형사재판에서 일 주체로서 참여하지 못합니다. 검사는 피해자가 겪은 일과 맥락을 상세히 알고 대변하지 않으며, 피해자 변호사는 의견개진권과 재판관련 정보고지권이 충분히 없고, 피해자는 재판관련 기록 열람 및 접근권, 참여권 등이 사실상 제한되어 있습니다. 피고인의 양형주장이 날로 고도화되는 성범죄 변호사시장에 힘입어 기상천외하고 끈질기게 확장되고 발달하는 것에 비해, 피해자의 삶에 일어난 손상정도는 말해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양형기준은 이러한 불균형을 심화하지 않도록 바로잡고 균형을 맞추는 관점을 가지고 변경되어야 마땅합니다."



2. 낡은 용어와 개념 규정을 폐기해야죠


양형위원회는 특별가중인자에서 '극도의 성적수치심'을 '극도의 성적 불쾌감'으로 바꾸겠다는 계획을 의결했습니다. 이는 지금의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죠. 양형위원회의 변경안을 적극 지지합니다!

그런데 이 문언의 앞뒤를 보면 "가학적 · 변태적 침해행위 또는 극도의 성적 불쾌감 증대"가 가중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가학적 변태적, 극도의 성적 불쾌감 증대" 행위일까요?


양형기준 내 정의 항목에 보면 이러합니다. 

가. 가학적·변태적 침해행위
○ 다음 요소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고 그 침해 정도가 심한 경우를 의미한다.
- 결박 기타 수단으로 피해자를 장기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든 행위
- 담뱃불, 바늘, 몽둥이 그 밖의 도구를 사용하여 피해자의 신체에 침해를 가하는 행위
- 성기 속에 이물질을 삽입하는 행위
- 그 밖에 이에 준하는 행위


나. 극도의 성적 불쾌감 증대
○ 범행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행위 중 하나 이상이 수반되어 피해자의 성적 불쾌감이 매우 큰
경우를 의미한다.
- 범행 과정을 촬영한 경우
- 피해자의 자녀, 배우자, 부모 등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범행을 저지른 경우
- 성적 유희를 위한 도구를 사용한 경우
-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경우

위에서 보면 '가학과 변태' 행위에 대한 양형기준 상 정의는 피해자의 기준이 아니라 제3자의 기준에서 정의되어 있습니다. 피해자의 경험이 아니라 사회상규상 성적행위의 성격과 규범성 일탈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죠. 성적 수치심을 성적 불쾌감으로 변경하는 만큼, 정의 규정과 '가학적 변태적'이라는 용어 역시 폐기하고 전체를 "극도의 성적 불쾌감 증대"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또 하나의 특별 가중요인으로 있는 것이 "윤간"입니다. 그런데 이 "윤간"은 강간에만 해당하는 특별가중요인이고, 강제추행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또한 13세 이상 강간 중에서는 일반 강간이나 강도 강간죄에 '청소년 강간', '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 에서만 해당됩니다. 

윤간은 집단성폭력의 특수한 행위양태를 한자로 표현한 단어이며, 성폭력을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텍스트에서 많이 사용되던 낡은 단어입니다. 또한 강간에서만 특별 가중 원인이 되어서는 안되고, 강제추행에서도 그 해악성이 인정되어야 하지요. 그래서 '윤간'을 '집단범행'으로 변경하고, 일부 유형에만 제한했던 것을 해제하라고 의견 제출했습니다. 



3. 권력 관계에 대해서 제대로 볼 수 있는 기준이어야 합니다


이번 의결안에서는 군형법 성폭력 가중요소에 '상관으로서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환영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 조항 역시 정의규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의 중 일부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라. 피고인이 피해자의 상관(군형법 제2조 제1호 전단의 상관을 의미한다) 으로서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명시적으로 피고인의 직무상 권한 또는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피해자에게 압력을 가하여 범행을 수월하게 한 경우를 의미한다. 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중 두번째 괄호의 '명시적'으로라는 구절이 독소조항이 될 수 있습니다. 상관으로서의 지위를 이용하는 것은 직무상 권한이나 직무상 영향력으로 ‘명시적’으로 보이지 않는 사적 부탁, 사적 노동 요구, 직무와 당장 직접적으로 유관해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이익 또는 해악이 될 수 있는 행위 등이 포함되기 때문에, 명시성은 피해자의 입증 요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해당 양형인자의 도입시 괄호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으므로 삭제가 필요합니다. 


두번째는 '인적 신뢰관계를 이용' 입니다


“인적 신뢰관계”라는 명칭은 사적 친분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지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이 기준에 대한 정의는 ‘제자, 지인의 자녀, 환자, 부하, 신도,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경우’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적 친분을 포괄하는 인적 신뢰관계가 아니라 사실은 신뢰 관계의 영향력 하에 놓여 있는 지위와 위치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따라서 “신뢰지위를 이용” 등의 명확한 문구로 경각심을 높이고 해당 가중요소를 알릴 필요가 큽니다. 또한 의료기관의 환자 이외에도 상담심리적 관계를 맺고 있는 내담자도 명시적으로 표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4. 피해자의 사정이 고려되지 않고 피고인(가해자)의 사정 만을 반영할 수 있는 조항은 바뀌어야 합니다


이번 양형기준은 '상당 금액 공탁'을 줄이고 '상당한 피해회복' 이라는 문구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실제 문구는 '상당한 피해회복(공탁 포함)'입니다. 공탁이 여전히 감경요인인 것이지요.


기존 양형기준에서 “상당 금액 공탁”이 피해자의 회복이나 용서, 피해자에 대한 반성과는 무관하게 금전적 변통만을 수단으로 삼으면 가능했다는 점에서 변경을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당한 피해 회복(공탁 포함”이라는 변경안은 일방적인 상당 금액 공탁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적인 공탁까지 곧 상당한 피해회복이라고 간주할 만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게다가 공탁 액수의 정도 기준도 해제해주고 있습니다. 


피해자의 직접적인 용서, 직접적인 의사표현을 동반하는 합의, 처벌불원이 아닌 공탁 관련한 조항이 위와 같이 형성된 것에 대해서 삭제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설정할 수 밖에 없다면 “피해자의 동의없는 공탁 제외” 조항이 산입되어야 하며, 그럼에도 수정될 수 없다면 균형을 갖추어 가중요소와 집행유예 부정적 사유에 “피해자의 상당한 피해 정도”를 신설해야 마땅할 듯 합니다.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없음'은 고질적으로 지적되는 피고인(가해자) 중심의 기준입니다. 


그동안 성범죄자들이 ‘진지한 반성’이라는 감경요소 적용을 위해 반성문 대필, 꼼수기부·사회봉사, 가해자 가족을 동원한 호소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성’을 만들어 내왔습니다.  이번 양형위원회은 ‘진지한 반성’과 ‘형사처벌 전력없음’에 대한 양형인자 정의를 했습니다. 


재판부가 조사, 판단을 통해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것인데 그러나 피해자의 용서, 합의, 처벌불원 의사와 관련없이 제출되는 ‘진지한 반성’은 결국 피고인의 일방적인 표현물일 수 밖에 없습니다. 피고인이 말하는 피해 회복 노력, 피고인이 말하는 재범 방지 노력과 그에 대한 재판부의 판단은 도리어 피해자의 의견개진 없이도 피고인과 재판부 사이에서 ‘피해회복’과 ‘재범방지’를 암묵적으로 공감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적 유대관계 분명'도 그러합니다.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한 사람의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상대적으로 재범의 위험성이 낮다고 평가받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이 핵심인 거죠. 의대생이라는 이유로, 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닌다는 이유로, 대기업에 다닌다는 이유로 재범 가능성이 낮고, 집행유예 대상이어야 할까요? 


피해자와 국민들의 시선에서는 그런 계층은 범행도 실수에 불과하고, 재범하지 않을 것이 명확하다기보다 부와 권력, 자원을 보유할수록 성폭력을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으며, 그러한 결과가 누적되어 결국 피해자들이 스스로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불평등한 위치가 강화되는 것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습니다. 


N번방 사건에서도 피고인의 부친은 공무원 신분으로 소속기관의 동료의 공무원 증 수십장을 제출하며 ‘사회적 유대관계’ 적용을 시도했음. 해당 가해자의 가족이 공직을 범죄자인 아들을 위해 이용했으며, 자신의 직장내 직위 등을 이용하여 부당하게 동료나 부하직원들의 사회적 보증을 취했을 가능성도 크지요. 


그래서 '진지한 반성', '형사처벌 전력없음', '사회적 유대관계 분명'은 감경요인에서 피고인(가해자)의 사정만을 봐주겠다는 시각에서 존속하고 있는 기준입니다. 따라서 전면 삭제 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전국 여러 의견이 양형위원회에 제출되었을 것입니다. 양형위원회는 성범죄 수정 양형기준에 대해서 7월 4일 117차 회의에서 의결 예정이라고 공지했는데요, 초안 의결 버전을 재차 똑같이 의결하기 보다, 보다 제대로 된 변화를 위한 의견을 수렴하여 최종 개정을 의결하면 좋겠습니다. 결과를 지켜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