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제도 변화
- 2025-09-24
- 305
베이징행동강령 30주년 기념 이행 평가 및 향후 과제 토론회 발제자들이 한줄로 앉아있다. 집필 참여 단위는 다음과 같다.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평화를만드는여성회,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노동자회,한국여성민우회,한국여성의전화,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베이징행동강령 30주년
여러분은 혹시 베이징 선언을 아시나요? 195년 제4차 세계여성회의에서 189개 국가정부의 만장일치로 채택된 베이징행동강령은 여성과 빈곤, 건강, 교육, 폭력 등 12개 중요 관심분야의 구체적인 권고안과 국가의 관련 책무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성인권 관련 50여년간의 법적, 정치적 진전을 총망라한, 현재까지도 가장 진보적이고 체계적인 여성인권 국제 정책 문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특히 성주류화 전략이 채택되면서 정부과 공공기관의 젠더 관점을 통합하여, 성별영향평가 등이 도입되었고, 이후의 국제인권 규범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베이징행동강령은 이행평가 체계에 있어서도 규범력을 발휘합니다. 각국 정부는 베이징 행동강령에 얼마나 도달했는지 주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해야합니다. 이 이행시기 점검에 맞추어 저희와 같은 시민단체들도 한국사회의 이행수준을 검토하고, 여성인권 현황과 향후 과제를 통합적으로 분석하고, 국제사회에 보고하는 시간을 마련해왔습니다.
이에 지난 9월 23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베이징행동강령 30주년 기념 이행 평가 및 향후 과제>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10개의 집필단체가 지난 7월부터 머리를 맞대어온 결과물을 공유했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집필단위로 참여하여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의 교육 및 훈련, 여성과 건강에 대한 내용을 작성하였습니다.
현장은 국제여성인권 규범에 비추어 한국 여성인권 상황을 분석하고자 하는 활동가들, 법과 제도에 있어 주요 행위자인 국회의원들과 정당 관계자, 성평등정책의 총괄 역할을 하는 여성가족부 관계자들로 북적였습니다. 3시간에 달하는 시간동안 밀도 높은 토론이 이루어졌는데 그 중 일부를 공유합니다.(자세한 내용은 토론회 자료집에서 확인해주세요!)
베이징+30 국제사회 성평등 정책 흐름과 여성운동의 과제
기조 발제로 조영숙 한국여성단체연합 국제연대센터장님이 국제사회의 성평등 정책 흐름과 한국의 여성운동과의 연결성을 짚어주셨습니다. 지난 30년간 교육과 의회 내 여성비율, 법률 개혁등의 진전이 있었지만 백래시도 뚜렷합니다. 성평등 진전을 가로막는 반 젠더/반 페미니즘 세력의 도전은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반페미니즘 운동이 조직화되고, 가부장적인 가족가치를 중심으로 한 ‘근본주의 집단’이 국제 규범에 미치는 영향력은 커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역풍에 맞서는 국가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 상황입니다. 또한 교차적 접근의 필요성과 함께 기술을 매개한 성/폭력의 증가, 편견 확산에 대응하는 것도 당면한 과제입니다. 한국도 이러한 국제사회의 흐름과 상호작용하며 진전과 역풍을 경험해왔습니다. 발제자는 한국 성평등 정책의 현재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파보수정부는 적극적 축소/탄압, ‘민주정부’는 소극적/최소주의로 추진하며 후퇴를 거듭해온 성평등 정책” 이러한 한계 속에서도 의미있는 성과를 만들어 왔지만 현재는 생태위기와 기술과 연결된 폭력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 동시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베이징 행동강령 30주년 이후의 행동과제가 더욱 중요한 이유입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란 활동가가 '여성에 대한 폭력' 관련 내용을 발제하고 있다.
폭력, 낙인, 고정관념으로부터의 자유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베이징 행동강령 12개 주요 관심분야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그중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부분을 맡아 보고서를 작성하였습니다. 크게 성폭력의 현황과 베이징행동강령 이행평가, 향후 이행 가속화를 위한 우선순위로 구분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주요 내용을 간단하게 공유합니다.
-한국의 형법 297조 강간죄의 구성요건은 폭행과 협박입니다. 그러나 성폭력 양상은 물리력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강간(미수포함) 피해의 41.1%가 ‘강요’에 의한 피해로, 폭행(23%)나 협박(30.1%)에 따른 피해보다 높았습니다. 성추행 피해에서는 폭행(2.7%)이나 협박(7.1%)보다 가해자의 속임수(34.9%)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강간피해 상담 통계에서도 명시적 폭행 협박이 없는 경우가 62.5%로 나타나, 강요, 회유, 지위이용, 속임 등 비물리적 수단의 만연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정부는 국제사회에 보낸 보고서에 법제도를 정비하고 ‘신종 성범죄’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고 했지만, 현장 체감과는 괴리가 큽니다. 오히려 지난 5년간 정부,정치권의 여성폭력 대응은 시민-삶의 변화에 역행했습니다. 성폭력 무고죄 강화를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전 정부에서 강간죄 개정은 정책 과제에서 밀려났고 온라인 남성커뮤니티의 ‘무고담론‘이 확산되었습니다. ‘여성폭력’대신 ’폭력’이라는 단어가 의도적으로 사용되었고,여성폭력 예산이 식감되었습니다. 통합상담소 추진 과정에서 인력 축소, 특화 기능 약화 등의 문제도 있었습니다.
- 지난 7월 관계 부처 합동으로 발표된 ‘제2차 여성폭력방지정책 2025년 시행계획’에는 여성폭력방지법을 개정해 법 적용 범위를 남성 피해자까지 확대하겠다는 내용을 포함되었습니다. 현행법이 남성 피해자를 보호 대상에서 배제하는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실제 피해자지원 현장에서는 남성 피해자도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아가 이러한 대응은 남성과 여성을 대칭시킬 뿐 불평등한 젠더구조에 대한 논의가 누락되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기계적인 남성 피해자 등장 및 과대표는 젠더기반 폭력의 맥락을 제대로 살필 수 없게 한다는 점이 짚어져야 합니다.
-향후 이행 가속화를 위해서는 ‘폭행 또는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강간죄의 구성요건 변경하는 형법 개정, 수사 재판 과정에서의 피해자 보호 및 권리 보장 등 젠더 관점의 법제도 변화가 필요합니다.
빈곤퇴치, 사회 보호 및 사회 서비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포괄적 성교육 후퇴, 낙태죄 폐지 이후 체계가 마련되지 않고 있는 점, 2030 여성들의 정신건강 위기가 여러 통계를 통해 보고되고 있는 점을 우려하며, 여성 교육권과 건강권에 대한 파트도 함께 작성하였습니다. 주요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현재 초,중,고교에서는 성교육-성인지 교육-성폭력예방교육 등 성평등 교육이 관련법령과 기관 지침에 따라 일정 시간 편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범교과’ 학습 영역으로 분류되어 독립적인 교과가 아닌 여러 교과목에서 단발적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교육 내용의 질적 수준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성차별적인 내용 때문에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새로운 지침이 여전히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2022 국가 교육위원회가 심의 의결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성소수자’ ‘성평등’ ‘재생산권’ ‘섹슈얼리티’ 등의 용어가 최종적으로 삭제되었습니다.후퇴된 교육과정을 근거로 성문화센터 등 성교육 전문기관이 진행하는 포괄적 성교육에 대한 조직적 민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전문기관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고 교육관점 자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공교육 내 포괄적 성교육이 보장되고 가이드가 마련되는 등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낙태죄’헌법불합치 판정 이후 6년이 지났지만 후속조치가 여전히 미비한 현실입니다. 지금까지 법무부와 복지부, 식약처 등 정부 책임 부처에서는 2019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매우 방어적으로 협소하게 해석하며, 법적 허용 기준을 설정하는 것을 우선과제로 두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권리 보장 체계의 진전이 빠르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산유도제 도입에 있어 정부와 국회, 산부인과의사회 모두 약의 안전성과 도입 체계, 접근성에 대한 인식이 심각하게 부족하여 다른 의약품과 달리 유산유도제만은 법령 등에 사용 기준을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거나, 유산유도제 도입에 따른 보건의료 체계 구축에 필요한 조치 등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낙인과 차별 없는 성재생산 권리보장을 위한 입법과 제도 마련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토론회 준비 담당이었지만 베이징행동강령은 ‘성주류화’ ‘베이징선언’ 등 몇몇 키워드를 짚어주는 강의 자료에서만 듣고 보아왔었는데요. 실제로 국제 규범, 이행체계로 작동하고 있구나 알게 된 것은 신기하고 의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한국사회의 여러 여성인권 현황을 수많은 통계자료를 동원해 설명하고, 현실에 기반한 정책제안을 위해 토론하던 시간들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국제사회의 권고 형태로만 존재하지 않도록 현황을 알려내고, 정부 부처에 압력을 넣는 역할로서 토론회 자리도 아주 밀도높게 진행되어 여러 고민과 생각할 지점을 남겨주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첨부파일> 자료집을 확인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