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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후기] <동의 기준의 성폭력 형사법체계,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나> 토론회
  • 2026-05-29
  • 73

<동의 기준의 성폭력 형사법체계,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나> 토론회 후기

5월 27일 오후 2시 국회의원회관 간담회실에서는 <동의 기준의 성폭력 형사법체계,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나>를 주제로 한 토론회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1975년부터 동의 기준의 성폭력 형사법 체계를 채택해온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동의 기준 법체계가 실제로 어떻게 구성되고 적용되어 왔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여전히 폭행·협박을 강간죄 구성요건으로 삼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강간죄 개정을 둘러싼 우려와 반론들을 미국 사례를 통해 검토해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리였습니다.

[발제 1] 미국의 동의 기준 강간법 체계는 어떻게 변화해왔나

첫 번째 발제는 샘포드대학교 컴벌랜드 로스쿨 라모나 알빈(Ramona C. Albin)교수님이 맡았습니다.

미국은 50개 주마다 서로 다른 강간법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유형력 기준 모델부터 혼합형(유형력+동의부재), 동의, 적극적 합의 모델까지 다양한 형태가 공존해왔습니다. 한국 현행법은 최협의의 유형력 모델로 피해자의 저항 여부와 폭행·협박의 정도를 강간죄의 판단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많은 주에서는 이러한 유형력 중심 법체계가 실패했다고 평가하며 동의 기반 체계로 전환해왔습니다. 발제에서는 그 이유로 네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유형력 중심 법체계의 한계

  • 피해자의 저항 여부와 서사에 초점을 맞춘다.

  • 폭행·협박 요건이 실제 다수의 성폭력 사건을 배제한다.

  • 얼어붙은 반응(freeze response)을 설명하지 못한다.

  • 수면·음주 상태처럼 저항 자체가 어려운 상황을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

실제로 스웨덴의 한 통계에서는 성폭력 피해자의 절반가량이 얼어붙은 반응을 경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많은 주에서는 “적극적 합의(affirmative consent)” 여부를 중심으로 성폭력 여부를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동의란 구두나 명백한 행동을 통해 표현된 자발적이고 인지적인 합의를 의미하며, 단순히 저항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는 동의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중요한 점은, 동의 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이 피해자나 피고인이 아니라 국가와 검찰에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검찰은 성행위가 있었는지, 그리고 피해자의 동의 없이 이루어졌는지를 입증해야 하며, 이는 기존처럼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는지를 따지는 방식과는 다른 구조적 전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위스콘신, 뉴저지, 버몬트, 플로리다 등 여러 주에서는 동의를 기준으로 한 강간죄 법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동의 강간죄를 둘러싼 반론에 대해

발제에서는 비동의 강간죄 도입 과정에서 자주 제기되는 반론들에 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1. “피고인이 동의를 입증해야 하는 것 아니냐” → 미국 여러 주에서 여전히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기 때문에 무죄 추정 원칙이 훼손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1.  “평범한 성관계까지 범죄화되는 것 아니냐” → 합의된 성관계가 아니라 동의 없는 성관계가 강간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오히려 폭행·협박 기준보다 동의 기준이 더 명확하며, 유형력 모델은 피해자가 얼마나 저항했는지를 규범적으로 판단하게 만든다는 점도 지적했습니다.

  1.   “의사소통 오류만으로 억울한 유죄 판결이 생기는 것 아니냐” → 실제 판례들은 잠든 상태에서의 삽입, 음주 상태에서의 성행위, 위협 속 순응 등 명백한 동의 부재 상황들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라모나 알빈 교수는 강간의 핵심은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에 있으며, 피해자의 저항 정도가 아니라 피해자의 주체성과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법체계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발제를 마무리했습니다.

 [발제 2] 한국 사회의 강간죄 개정 논의와 세계적 흐름

두 번째 발제는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소장이 맡았습니다. 발제에서는 한국의 강간죄 체계가 여전히 “폭행 또는 협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을 짚으며, 입법·사법·행정부가 지금까지 어떤 논의를 해왔는지를 정리했습니다. 현행 강간죄는 “현저히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협박”을 요구하는 최협의설을 채택하고 있지만, 실제 성폭력 사건 상당수는 직접적 폭행·협박 없이 발생합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강간 상담 중 71.4%, 2022년 강간·유사강간·준강간 상담 중 62.5% 가 폭행·협박 없이 발생한 사례였습니다. 이는 현행법이 헌법상 기본권인 성적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변화하고 있는 판결의 흐름

2023년 대법원은 강제추행죄에서 최협의 폭행·협박설을 폐기하며 성적 자기결정권 보호를 강조했습니다. 강간죄에서는 아직 최협의설이 유지되고 있지만, 최근 판결에서는 “곤란하게”보다 “의사에 반하여”라는 표현이 증가하는 등 판단 기준이 항거 곤란에서 동의 여부로 이동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소개했습니다.

국회와 정부의 과제

2018년 미투 운동 이후 국회에서는 강간죄 개정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이후 성평등 정책에 대한 반발과 백래시 정치가 강화되면서 논의는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현재 22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조차 발의되지 못한 상황입니다. 정부 역시 국제기구로부터 여러 차례 강간죄 구성요건 개정을 권고받아왔고, 양성평등기본계획에서도 관련 검토를 진행해왔지만, 정치권과 법무부 반발 속에서 실제 추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프랑스와 일본 역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의미 있었던 것은, 그동안 동의 기반 강간죄 개정에 대한 반대 논리에서 자주 언급된 프랑스와 일본 역시 최근 동의 기준 중심으로 법 개정을 이뤄냈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본은 기존 폭행·협박 중심 강간죄 체계에서 여러 검토회와 사회적 논의를 거쳐, 2023년 “동의하지 않는 의사를 형성·표명·완수하기 곤란한 상태”를 기준으로 법을 개정했습니다.

프랑스 역시 오랫동안 동의 기준 도입에 소극적이었지만, 수면제를 이용한 집단 성폭력 사건 이후 사회적 분노와 논의가 이어졌고, 결국 2025년 형법상 성폭력 규정을 동의 여부 중심으로 개정했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법률 개정 논의 과정에서 제시된 문제의식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개정안 제안 이유에서는 성범죄 처벌을 강화하거나 전문가들의 노력이 이어졌음에도 성범죄가 줄어들지 않았고, 기존 형법 체계 역시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강간문화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법이 시민들에게 더욱 명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구성되어야 하며, 프랑스 형법이 국제 규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되었습니다. 더불어 다른 유럽 국가들이 이미 동의를 성범죄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동의를 기준으로 한 형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단순히 몇몇 국가의 예외적 변화가 아니라, 성폭력을 폭행·협박 여부가 아닌 성적 자기결정권과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세계적 흐름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발제자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처벌 강화 차원이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심으로 성폭력을 이해하기 위한 법과 사회의 전환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동의”를 둘러싼 오해와 불안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동의에 대한 사회적 규범과 이해를 더욱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 소감

자원활동가로 상담소를 만난지 어느덧 2달이 지났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상담소와 함께하며 강간죄 개정과 관련된 다양한 사례와 의견들을 접할 수 있었고 저에게는 새롭고도 많은 고민을 할 수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활동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감정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한국 사회의 문제이자 결국 나의 문제이기도 한 이 문제에 대해 왜 그동안 무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 안에서도 무의식적으로 가해자의 서사가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며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토론회를 참여하며 최협의설을 유지하며 피해자들에게 2차가해를 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특히 75차례의 거절 의사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도 여전히 그것은 성폭력이 아니라고 말하는 검찰의 모습은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이러한 사례들을 살펴보며 국가는 가해자가 무고하게 피해를 보면 안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공감하면서도,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공감보다는 의심을 하며 입증을 요구하는 점에서 답답함과 문제의식을 느꼈습니다. 국가가 가해자의 서사에 대해서는 암묵적인 동의를 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많은 국가에서는 동의를 기준으로 한 강간죄 개정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성폭력 사건들이 폭행, 협박만으로는 다루어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앞선 발제에서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도 변화하는 흐름에 맞춰 강간죄 개정을 위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젠더 감수성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며 오히려 강간통념을 재생산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강간법 개정을 위해 필요한 것은 강간통념을 반복하는 정치가 아니라, 현행 강간죄의 한계를 직시하고 피해자의 현실에 공감하며 함께 변화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회적 태도와 정치적 논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 후기는 박진희 자원활동가가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