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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도 변화

성폭력 및 여성 인권 관련 법과 제도를 감시하고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법 제·개정 운동을 소개합니다.
[반성폭력으로 읽는 사회] 학폭위 처분으로 대학 못가면 학교에서 성폭력이 줄어들까?
  • 202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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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폭력으로 읽는 사회]

학폭위 처분으로 대학 못가면 학교에서 성폭력이 줄어들까?


*[반성폭력으로 읽는 사회]는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들이 반성폭력의 시선으로 사회 이슈와 정세를 읽고 질문하는 코너입니다.



 지난달, “‘쌍방 학폭 신고’라며 성폭력 피해자-가해자 한 교실에” 라는 기사가 한겨레에서 보도되었습니다. SNS로 지속적인 성희롱 발언을 듣고 강제추행을 겪은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가해자를 신고하고 분리조치를 요구하였는데, 가해자도 성희롱과 폭행이 있었다며 ‘맞학폭’ 신고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 측은 ‘쌍방신고’이기 때문 에 양쪽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유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하지 않았습니다. (기사링크)


  처음 이 기사를 보았을 때 사법절차 과정에서의 ‘역고소’의 양상이 학교폭력위원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피해자가 성폭력을 신고/고소하거나 성폭력 사실을 주변에알렸을 때 피해자를 무고,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하여 피해자를 입막음 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를 학교폭력으로 신고하는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성추행 피해를 겪은 학생이 가해자를 신고하자, 자신을 따돌리는 것이라며 피해자와 주변인들을 신고하였다고 합니다. (기사링크)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에서는 피/가해자의 신고 모두 학교폭력이 아니라고 결정했고, 결국 피해자들은 소송을 통해 학교폭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학교폭력 이력이 대입이나 취업 등 성인이 된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학교폭력에 대해 행정소송을 거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고, 이 과정에서 전략의 한 방편으로 ‘맞학폭’으로 대응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설명합니다. 학폭위 대응과 관련 소송에서 변호사를 선임하는 과정도 늘고 있고요. 성폭력 사건 해결이 법시장화되는 양상이 교육현장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폭력 해결의 법시장화에 대해서는 『시장으로 간 성폭력(저자 김보화)』을 읽어보기를 추천합니다. 


  그렇지만 그저 단순히 법시장화의 영역이 확대되었다고 결론짓기에는 고민이 조금 더 남습니다. 학폭위의 결과가 이후의 사회생활에서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이러한 현상의 배경이라는 점에서요. 유명인들의 ‘학폭 논란’에 대한 거센 질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학교폭력 가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엄중해지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2023년 4월, 학교폭력 기록의 보존기간을 상향하고 대입에서도 평가에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발표하였는데 이 방안은 올해(2026년)부터 시행되고 있습니다.



성폭력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는 것

  성폭력은 경계가 애매합니다. 젠더화된 삶에서 사람들이(주로 여성들이) 느끼는 성적인 폭력의 범위는 특정한 행위로 규정되지 않습니다. 명확한 성폭력도 있지만 뭔가 불쾌한 섹스과 강간, 애정 섞인 간섭과 데이트폭력  사이에 있는 어떤 것처럼 애매한 경험도 있습니다. 유사한 사건이라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흑역사로 남지만 누군가에게는 성폭력적인 상흔이 남기도 합니다. 하지만 법은 이중에서 아~주 좁은 몇 가지 ‘행위’만을 성폭력으로 규정하며, 피해자의 사후대처와와 ‘성적 수치심’과 같은 감정을 느꼈는지를 바탕으로 피해자를 판단합니다.  


   그리고 저는 책임의 경계도 애매하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에게 발길질을 하거나 멱살을 잡는 것이 폭력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이견이 없지만, 성적 접근에 대해서는 대해서는 상대방의 No를 ‘밀당’으로 간주하거나 끝까지 밀어붙인다면 yes로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강간문화’가 은밀하게 통용됩니다. 물론 가해자에게 일차적 책임의 있지만, 성차별적 문화와 ‘강간문화’를 함께 공유한 가해자의 주변인들의 책임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야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좋은 해결이란 당사자가 행위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을 전제로,  그것이 왜 폭력인지 등이 충분히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에게 설명되고 난 이후에, 가해자(와 주변인들)에게 적절한 책임이 이행되는 것입니다. 피해자는 그 과정에서 충분한 응원을 받으며  경험을 잘 곱씹고 정리하고요. 


   하지만 사법절차는 애매함과 모호함의 영역을 남겨두지 않습니다. 폭행 또는 협박이 있었는지(강간, 준강간), 피해자가 누가 보기에도 성행위에 의식을 잃었다고 보였는지(준강간, 준강제추행) 등을 고려해서 피해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명확한지 등을 따져 ‘사실의 증명이 추호의 의심이 없어야’지만 가해자의 유죄가 인정됩니다. 누군가가 범죄자로 기록되고, 교도소에서 복역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들 수 있는 큰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강력범죄에서 엄중한 처벌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이 엄중찬 처벌과 삶을 뒤흔드는 영향이 성찰의 여지를 좁힌다는 생각도 사실 조금 합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불충분하게나마 미안함을 표시하거나, 적절한 보상을 해주겠다며 합의를 제안하던 가해자들도 재판장에서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 부지기수입니다. 또, 이 엄중함이 피해자에게 반복해서 진술을 요구하고, 왜 그렇게 대처하였는지를 질문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피해자다움을 지적하고 성적 욕망과 강간문화를 당연시 하는 남성적인 시각에서의 법의 무게를 ‘보통의 피해자의 관점’으로 옮겨오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법 이외에 가해자의 성찰과 피해자의 회복이 조금 덜 무겁고, 더 밀접하게 가능한 여러 해결방안들을 마련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필요합니다. 직장 내 성폭력 처리나 대학의 인권센터/성평등센터와 같은 비사법적 제도적 절차나, 노동조합이나 학생회와 같은 자치적인 성격을 지닌 조직 내의 해결이 중요한 이유이지요. 



사법절차를 닮아가는 학교폭력처리

   그런데 오늘날 학교폭력의 처리는 점점 더 사법절차에 가까워지는 것 같습니다. 한 연구에서는 학교폭력과 관련하여 정부가 지속적으로 ‘예방’이라는 어휘의 사용을 확대해왔지만, 실제로는 준사법적 관리체제로 바뀌었음을 지적합니다(강혜경, 2026).  학교폭력 관련 제도는 특정한 사건이 이슈화 되는 것에 대한 결과로 대책이 만들어졌는데, 기존의 제도에 새로운 조치를 덧붙여가며 엄정성이 중요해지고, 처리 결과가 일종의 사회적 제재에 가까워졌다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당사자들은 ‘갈등을 스스로 푸는 주체’라기보다, 불이익을 최소화 하기 위해 외부의 규정과 절차에 맞춰 사실관계를 유리하게 고정하려는 주체”가 되고, 예방은  “공동체적 실천이 아니라, 사건화 이후를 대비하는 생존 기술, 곧 절차적 안전의 문제”가 됩니다. 가해자와 주변인들이 폭력에 대해 성찰할 여지는 사라지고, 학교는 문제와 책임을 피하기 위해 폭력을 위기관리로 간주하는 것이죠.  


     청소년인권운동단체 지음의 활동가 애봉은 한 글에서 중학생일 때 일군의 남학생들에게 ‘김치김치’와 같은 성차별/혐오발언을 포함한 괴롭힘을 지속적으로 겪고, 그에 대한 자신의 대응으로 ‘그러면 넌 된장남이냐’ 라고 발언하여 인해 가해자들과 동일하게 자신도 징계를 받은 사례를 이야기합니다(애봉, 2026). 가해자의 언어 성희롱에 맞선 것이 동일하게 폭력이라고 규정되는 것은 매우 부당하지만, 젠더 감수성 없는 절차 속에서서는 ‘쌍방학폭’이라는 결론이 나는 셈입니다. 애봉은 ‘생기부 기재’와 같은 처분 강화, 행정소송으로 이어지는 학폭위가 (변호사를 선임할) 경제능력이 불충분한 계층의 피해자들을 괴롭게 한다는 것을 지적하며 준사법화되고 있는 현실이 피해자의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설명합니다. 부담은 경제적인 것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직접증거가 어렵고 통념이 작동하기 쉬운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에게 입증의 요구가 쏠리게 될(그리고 그 과정에서 2차 피해를 겪을)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변호사를 선임한다 하더라도 절차가 길어지면 피해자는 반복해서 자신의 피해와 고통을 이야기하며 피해의 시간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 학폭위 처분으로 대학 못가면 학교에서 성폭력이 줄어들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좀 줄어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입시가 인생의 가장 큰 과제로 여겨지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에 못갈 수도 있다!! 라는 것은 엄청난 무게이고, 이를 성폭력으로 인한 학폭처분을 막기 위한 예방적 조치들이 사적 영역에서 활발해 질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교육이 중산층에서 사교육의 일환으로 시행되기도 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경쟁적인 청소년들의 생존방식은 그대로 둔채 처벌의 영향을 키운다고 폭력이 사라질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가해행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피해자를 공격하려는 시도가 더 많아질것이고, 앞서 등장한 기사와 같이 ‘맞학폭’의 사례도 늘어날 것이고 그런 사례들이 늘어나면 피해자들은 학폭신고를 마치 ‘경찰 신고’ 만큼의 무게로 고민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비사법적 제도들이 사법절차와 유사해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반성폭력 운동에서 오래전부터 했던 고민입니다.  활동가들이 더욱 머리를 맞대고 있지만 어떻게 액션으로 풀어내야 할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글을 쓰던 와중에 다음 달에 성문화운동팀에서 7월에 <조직 내 성폭력 해결 절차의 사법화 경향, 성폭력 사건 해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연속간담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간담회에서 머리를 더 맞대면 길이 좀 보일까요?



참고문헌

강혜경. (2026). ‘예방’은 어떻게 절차가 되었는가 : 학교폭력 대응 체제의 역사적 제도주의 분석, 1995-2023. 비판사회정책,(90), 7-41. 10.47042/ACSW.2026.02.90.7

애붕. (2026, 3). 피해자에게 부담을 주는 학교폭력 절차의 한계. 오늘의 교육,(91), 32-41.


이 글은 여성주의상담팀의 호랑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

(이 글은 ai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