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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상담소 소식

마음 맞는 회원들과 진행한 소모임이나 회원놀이터 등 다양한 회원행사를 소개합니다.
[후기] 회원소모임 <페미니즘 신간 읽기 모임: 나는 싸우기 위해 읽는다> 첫 모임(2020년 5월) 후기
  • 2020-06-01
  • 1721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새로운 소모임이 생겼습니다! 바로 부설연구소 울림에서 주관하는 <페미니즘 신간 읽기 모임: 나는 싸우기 위해 읽는다>라는 (긴 이름을 가진) 소모임이에요. 지난 5월 26일에 대망의 첫 모임을 가졌습니다! 첫 모임에는 연구소 활동가를 포함해 총 10분이 함께하였습니다.

 

첫 모임인 만큼 먼저 3가지 키워드로 각자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여자분들은 “집순이, 사회학, 빵, 술, 산책, 게으름, 영화, 상담, 산, 디자인, 남성, 논문, 비, 사랑, 차(tea)” 등과 같은 키워드를 말씀해주셨어요. 또 소모임에 참석하시게 된 이유, 소모임에 바라는 점도 함께 이야기해주셨는데요. 일상적인 공간에서 벗어나는 대화를 하고 싶어서, 꾸준히 페미니즘 도서를 읽고 싶어서 소모임에 참석하셨고, 각자의 삶이나 사고와 연관지어 다양한 이야기를, 불편함 없이 하고 싶다는 바람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자기소개 이후에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이 공간의 약속”을 다같이 읽었습니다. (“이 공간의 약속” 보러가기)

 

이번 모임의 텍스트는 부설연구소 울림에서 발간한 <반성폭력 이슈리포트 13호>였습니다.

(☞<반성폭력 이슈리포트 13호> 보러가기, ☞<반성폭력 이슈리포트 13호> 발간후기 보러가기)

 

<반성폭력 이슈리포트 13호>는 현재 강간죄의 구성요건을 ‘폭행·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재구성해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법 개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보니 모임에서도 “법”과 관련된 이야기를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텍스트를 통해서 피해사실을 입증하고 가해자를 처벌할 때 성폭력 관련 법이 어떤 식으로 적용되고 어떤 한계들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는 소감을 나누고, 법이 피해자를 오히려 배제하고 있으며 성폭력을 예방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와 함께 “법개정운동의 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판사들의 성인지감수성이 낮은 상태에서 법을 개정한다고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을 요구하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와 함께 법에서 이야기하는 합리적인 인간이 남성으로 전제된 것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또한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비단 사법영역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각자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겪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여학생들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용모와 복장을 통제받고, 남학생들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며(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죠!) 통제받는다는, 성별화된 방식으로 통제를 경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성폭력과 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사법 영역에서 성폭력이 제대로 처벌되지 않는 것으로부터 파생되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언론에서는 연일 성폭력 사건이 보도되는데 제대로 처벌되는 경우가 별로 없어 여성이 피해자로 정체화되고, 많은 가해자들은 비처벌 혹은 가벼운 처벌을 학습한다는 것입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역시 공론화가 처음 되었던 작년 10월 당시 오히려 텔레그램 성착취 방에 입장하는 사람들이 늘었고 참여자들은 “제대로 처벌 받지 않으니까 쫄지 말라”라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죠. 디지털성폭력의 경우 법이나 판결의 허점이 많아 더 확산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법 영역에서 성폭력이 다루어지는 것에 허점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외의 영역에서 성폭력은 어떻게 다루어질 수 있고, 공동체에서 피해자 또는 가해자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하게 되었어요. 차라리 법으로 사건을 처리하면 가해자의 생존이나 공존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데, 공동체에서 사건을 처리할 때는 신경써야 할 지점이 너무 많고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의 생존이나 공존까지 신경써야 하는 현실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공동체 내에서는 사법 영역보다 더 높은 기준으로 성폭력을 판단할 필요가 있고, 실제로 미국에서 대학교 내의 ‘적극적 합의’ 규정이 실제 사법 영역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회사나 학교에서는 성폭력 사건의 수사 및 재판이 이루어지는 동시에 사건을 처리하는 것을 꺼리거나, 사법적 판단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공동체 내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충분한 경험과 실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는 그럼에도 법이 현실에서 사람들의 인식을 개선하고 행동을 바꾸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를 더 들어야 하는 이유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018년에 프랑스에서 캣콜링(남성이 길거리를 지나가는 불특정 여성을 향해 휘파람 소리를 내거나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는 행위) 금지법이 도입된 이후로 실제로 캣콜링이 많이 줄었다고 해요. 캣콜링을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인권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된 것은 아니겠지만 실제로 문제적인 행위를 줄이는 데 법이 큰 역할을 한 것이죠. 한국도 민사 재판에서 성희롱이 처음으로 인정되었을 때 사회적 저항감이 상당했지만, 지금은 성희롱이 사회적 범죄라는 인식 정도는 합의되어 있는 것처럼 법과 인식은 상호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반성폭력 이슈리포트 13호>에서 주장하듯이 성폭력의 판단기준을 ‘동의’로 바꾸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주제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밀폐된 공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의 특성상 피해자 진술이 주요한 증거가 되는데,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보수적으로 판단하는 것에 과연 변화가 있을지, 지금도 그러하듯이 ‘피해자의 말을 다 믿으면 억울한 가해자가 생길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에는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등 여러 가지 고민 지점들이 도출되었습니다. 사실 무고는 성폭력과 관련하여 특별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범죄가 아니며, 무고 사실이 있다면 경찰/검찰 조사과정에서 밝혀질 일임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사건에는 유독 무고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입니다. 피해자 진술이 증거로 채택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피해자중심주의는 피해자의 말이 절대적으로 다 옳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가해자 관점의 이야기만을 사회가 청취해왔으니 피해자 관점의 이야기 역시 주의 깊게 들어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고 사실관계 확인 및 범죄사실 입증의 책임은 검찰이 져야하는 것이겠죠. 하지만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서 보듯이 어떤 사람들은 성폭력 무고에 대해 ‘정의’라는 언어를 전유하며 접근하기도 합니다. 이후에 관련한 대응 논리를 더 이야기해보자고 하며 이날 소모임은 마무리되었습니다.

 

강간죄 개정 외에도 성폭력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었는데요, 다음 소모임은 『20대 남자』(천관율·정한울 저, 2019, 시사인북)를 읽고 6월 30일 수요일 오후 7시에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이 글은 부설연구소 울림의 주리가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