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상담소 소식
지난 4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29번째 생일을 맞아 상담소의 두 환갑활동가인 지리산과 사자를 인터뷰했습니다.둘이 합쳐서 47년. 오랜 활동경력만큼 재치있는 입담과 케미로 많은 분들께 감동과 재미를 선사해 주었는데요, 이번에는 반대로 상담소에 들어온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활동가 3인을 2년차 활동가 닻별이 인터뷰해 보았습니다. 인터뷰는 이번주 금요일까지 총 5회 연재됩니다. 활동가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먹고 살 만 한지, 시민사회단체의 활동가로서 일한다는 것은 무엇일지. 매일 오후 6시, 함께 지켜봐 주세요!
인터뷰어: 닻별(닻)
인터뷰이: 주리(주), 유랑(유), 낙타(낙)
Q6. 상담소에서, 자기 팀에서 어떤 일 하는지 업무소개 부탁드립니다.
주: 연구소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30년간 성폭력피해생존자를 지원하며 축적한 자료와 경험을 바탕으로 반성폭력 이론, 성폭력 문화, 관련 법, 정책, 제도를 분석하는 일을 합니다. 지금 저는 <반성폭력 이슈리포트>에 들어갈 직장/대학 내 성폭력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어요. 그 외에도 페미니즘 신간읽기 모임 소모임도 하고 있고, 연구자 네트워킹 사업과 활동가 교육도 맡고 있어요. 연구소는 연구 프로젝트 맡는지 여부에 따라서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유: 저는 여성주의상담팀에서 활동하고 있는데요, 여성주의상담을 통해 피해자를 지원하고 상담하는 업무를 주로 하고 있고요.
주: 와, 완전 매뉴얼 같아요. 어디 써왔어요?
유: 아뇨? (웃음)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성폭력 피해자 전화상담-면접상담 등을 하거나, 지원이 필요한 경우 법률/의료지원을 하고요, 예를 들어 변호사 선임을 돕거나 의료기관이나 상담센터에 기관에 연계하는 일을 하는 게 주요 일상 업무고, 그 외에도 피해자 자조모임을 주최하거나 집단상담을 모집하거나 성폭력전문상담원 교육을 열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닻: 낙타는요?
낙: 저희 쉼터 열림터는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이고요, 주로 친족성폭력 피해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다수의 생활인이 청소년이고, 성폭력피해 치료회복, 재판지원, 의식주를 포함한 포괄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닻: 이 사람이 진짜 적어왔네.
유: 이 사람은 진짜 적어왔다!
낙: 네. (웃음)
닻: 네, 그렇군요. 아직 소개되지 않은 팀이... 사무국과 성문화운동팀인데요, 사무국은 주로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사무 전반을 담당하고 있고요, 채용 관련된 업무도 사무국 소관입니다. 자원활동가, 상담소 홈페이지 통한 자원활동 말고 각 대학이나 다양한 프로그램 통해 들어오는 자원활동은 저희가 담당하고 있고요, 법/정책 관련 운동도 담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강간죄 개정연대회의도 사무국과 성문화운동팀이 함께 하고 있고, 정말 내정도 맡고 있기 때문에 회원관리, 재정, 홍보도 사무국 안에 포함된 업무입니다.
성문화운동팀에서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여성단체의 아주 멋있는, 캠페인이나 행사를 주로 기획하는 것 같아요. 이슈대응을 하기도 하고요. 가장 액티브한 팀이에요. 꾸준하게 해온 활동은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대안적인 판결을 제시하는 판례바꾸기운동, 성폭력생존자말하기대회 등이 있어요. 당장 이번주 토요일에 올해의 자기방어훈련 <일상 대응 연습>이 시작되죠! 최근 의제강간연령상향 이슈에 대응하여 찬/반을 넘어서는 토론의 장을 열었던 <16세 미만의 동의> 토론회도 성문화운동팀에서 기획했던 것이에요. 다양한 인권운동 연대체에도 성문화운동팀에서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차별금지법제정연대나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연대체이고, 군형법 92조의6 개정운동이라던지, 포괄적성교육권리보장을위한네트워크 등 다양한 연대체에 들어가 있습니다.
주: 다들 말 잘한다.
낙: 와, 제가 제일 짧게 들어갈 것 같아요.
닻: 괜찮아요. 다 편집될 거예요. (그리고 편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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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7. 활동가로 일하는데 도움이 되거나 필요한 자질이나 특성이 있다면?
유: 체력이요.
낙: 마음을 잘 돌보는 법.
주: 체력, 집이 가까운 거요.
유: 음, 체력이 큰 영향을 미치지.
닻: 체력은 왜 중요한 것 같아요?
유: 요즘 부쩍 일을 하기 위한 힘과 에너지가 체력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닻: 체력이 많이 떨어진다고 느끼시나봐요.
유: 그런가봐요. 몸이 건강해야 일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건강이 마음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닻: 낙타는 마음 돌보기라고 하셨는데.
낙: 체력저하도 크게 미치는 것 같은데, 쉽게 지치지 않기 위해 체력이 필요한 것 같고요. 마음 돌보기는 제 업무가 다른 사람들을 마주하는 일이다 보니까. 당연하게도 제 마음같이 되지 않을 때가 많아요. (일동 폭소)
낙: 그래서 스스로 마음을 잘 다독이고.
닻: 인내?
낙: 네, 인내도 필요한 것 같고. 마음을 급하게 먹지 않고 생활인의 속도에 맞추는 것도요.
주: 그런 경우에는 동료들과의 관계를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낙: 저는 다른 팀에서 일해보지 않아 비교는 어렵겠지만, 열림터는 특히나 동료들의 도움, 논의가 많이 필요한 팀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열림터에 거주하는 분들을 생활인이라고 부르는데, 생활인을 담당하는 담당자가 한명씩 있어요. 그런데 담당 생활인이라고 해서 혼자 지원하는 게 아니라 열림터 활동가들이랑 다같이 지원하는 거라서. 좋은 논의 파트너의 관계를 형성하고 이어갈 수 있어야해요.
닻: 하긴, 주로 담당하는 생활인은 있겠지만 결국엔 팀 단위로 지원을 하게 되는 거네요, 그러면?
낙: 모든 활동가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 논의를 거쳐서, 열림터 차원에서 말을 해야 하는 거니까요. 활동가들이 서로 너무 다른 말을 하면 생활인들도 어지럽잖아요.
닻: 일반적으로.
주: 내담자를 만날 때도 중요한 것 같아요. 상담소에 상담을 받을 때 상담팀을 통해서만 상담을 요청하지는 않잖아요.
유: 상담소에서 일하기 전에는 상담활동을 떠올릴 때 공감하고, 들어주면 되겠지? 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우리가 하는 건 심리상담센터에서 하는 심리상담이나 임상심리가 아니잖아요. 연계를 하거나 지원을 하는 데 현실적으로 상담소의 한계도 있고. 그래서 소통하는 과정에서 상담자와 내담자가 평등한 관계임을 지향하면서 지원자랑 피해자가 모두 주체적으로 논의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018 말하기 대회. 말하기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피해생존자와 지원자는 주체적으로 어떤 '말하기'를 할 것인지를 의논한다. (2018)
닻: 그 논의는 피해자중심주의랑도 관련이 있는 것 같네요. 자세한 내용은 한국여성민우회의 2차피해 토론회 자료집을 참고해 주시고! 아까전에 주리도 특성 하나 말하지 않았어요? 집 가까운거. 집은 왜요?
유: 체력과 연관되어서?
주: 워라밸을 위해서?
유: 음. (깊은 공감)
주: 요즘은 적응되어서 괜찮은데, 처음 입사할 때 맨날 야근하는데 왕복 두시간 넘으니까 헛구역질도 자주 하고 몸이 정말 안 좋았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과로 때문인 것 같아요. 일에 집중해야 할 때는 야근도 하게 되는데, 집이 가까운 거랑 먼 건 다르거든요. 집에 1시에 들어갔는데 8시부터 나오면 힘드니까. 아무래도 그런 마음이나 피로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요. 이 분도 잘 아실걸요.
유: 음. 맞아. 왕복 네시간이었지. 그래서 워라밸 관련해서 사적 공간과 공적 공간을 구분하는 능력도 필요한 것 같은데, 상담팀에서도 피해자 지원이나 소통을 자주 하니까 업무가 집에서도 떠오르거나, 내담자와 갈등이 있을 때의 마음이 집에서도 남아있으면 충분한 쉼, 휴식이 어려워요. 잠을 자거나 취미생활을 통해 리프레시하고, 다음날 새로운 마음으로 출근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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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8. 활동가의 나이 분포가 궁금합니다!
주: 20-30-40-50-60 골고루 있습니다.
유: 비율이 어떻게 되지?
닻: 일단 60대 두 명. 두 60대 활동가는 4월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유: 50대는 몇 명이예요?
낙: 3~40 다음이 20대 정도 될 것 같은데요. 그다음 5~60?
닻: 저는 누가 나이분포 물어보면 '20대에서 30대 초반 그룹이 있고,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그룹이 있고, 5~60대. 이렇게 세 분포 정도' 라고 설명하는 편이예요. 그 중에서 20대에서 30대 초반 활동가가 가장 많고.
유: 아, 가장 많아요?
닻: 네. 숫자로 보면 20대에서 30대 초반 그룹이 제일 많아요.
유: 나이대가 그렇게 다양한 거 처음 알았어요.
주: 대화폭이 다양하니까 좋은 것 같아요.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면 왜 이렇게 아는 게 많냐는 말을 많이 들어요. 우리 세대는 잘 모르는 소소한 꿀팁을 많이 알아서.
닻: 사실 활동가들끼리 나이를 잘 물어보지 않아서, 같이 일하는 저희도 누가 몇 살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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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9. 활동가라는 ‘직업’을 선택한 계기가 있다면?
낙: 제가 소모임을 많이 했다고 했잖아요. 어느 정도였냐면, 근무시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쏟은 거였어요. 퇴근하고 소모임 하고. 재미있어서 시작했지만 활동가는 못하겠다 싶었어요. 근데 점점 이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즐겁고, 본래 직업보다 더 흥미로운 일이 생긴거죠.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랑 일해보고 싶어졌어요. 자원활동가나 스태프로 참여하면서 이 일에 접근성이 높아졌고요. 제 직업을 좋아했지만 더 오래,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발견했다고 생각했어요. 오랜시간 고민해서 결단을 내렸는데, 한문장으로 축약한다면 그냥 마음이 가서, 라고 말하게 되네요.
닻: 들어와 보니 상상한 거랑 어때요? 가감없이 얘기해 주세요.
낙: (깊은 고민) 음. 날 것의 면을 많이 보게 되었어요. 다양한 시선이 오가는 논의에 깊게 참여하고 생활인을 직접 마주하면서. 그런 모습은 상상을 아무리 해도 직접 겪지 않으면 모르는 일이니까 당황스러울 때가 많지만, 동료들과 얘기하면서 일하니까 재미있어요.
닻: 그런 부분은 자원활동이나 소모임 하면서 상상했던 거랑 비교했을 때 비슷한 것 같아요? 동료들이랑 이야기했던 것들?
낙: 네. 상상했던 것보다는 더 괜찮지 않나? 싶어요. 물론 맨날 그런 건 또 아니지만. 모든 일에 소통은 기본이지만 이만큼 소통이 중요한 직업도 있겠나? 라고 말하면 너무 이상한가요? 서로의 생각을 말하는 게 되게 중요한 것 같아서.
유: 왜요, 말 잘 하고 있는데요!
닻: 맞아! 그럼 유랑은요?
유: 이전에 여성단체에서 일했었다고 했었잖아요. 퇴사하고 나서도 졸업하기 전이어서 진로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진로고민이라고 해봤자 사회학이나 여성학 계열 대학원을 갈지, 아니면 여성단체 활동가로 취업할지였어요. 진로탐색을 위해서 많이 알아봤던 것 같아요, 근데 대학원 다니는 친구들 너무 힘들어보여서. (폭소) 그리고 주변에 여성단체 활동가 하고있는 친구들이 그들의 관심사와 가치관에 맞는 일을 하면서 재미있어 하는 면도 보였고.
대학원 가서 공부도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돈을 벌어야 하는 미래를 유예해야 하잖아요. 그게 너무 불안해서. 그래서 여성단체 활동가 길을 일단 택했던 것 같아요. 첫 직장을 다녔던 것도 계기가 있고. 그만큼 활동가가 익숙해졌으니까요.
닻: 아마 학생활동을 한 사람 중에 활동가 꿈꾸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랑 비슷한 케이스일 것 같은데.
저는 학교에서 페미니즘, 정확히는 반성폭력 운동이나 퀴어 활동을 계속 해오면서 단절되지 않고 자기 활동에 자부심이 단단히 서 있는, 선배들이랑도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에 목말랐던 것 같아요. 안정적으로 활동하는 건 어떤 감각일까? 가 궁금하기도 했어요.
20대 초반에 했었던 경험 중에서 승리의 경험이 저한테는 별로 없어서, 아주 작은 거라도 승리의 경험, 성취의 경험이 저한테 목마르기도 했고요. 학교에서 활동하다 보면 무언가 성취하는 경험을 하는 게 쉽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저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 활동하던 친구들 보면 시작한 싸움을 잘 마무리한 케이스를 많이 못 봤어요. 성공을 하더라도 너무 많이 상처입어서 활동 자체를 그만두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래서 저는 성취감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열망도 좀 있었던 것 같아요.
"낙태죄 헌법 불합치"의 순간. 아무리 공고한 체제여도, 긴 호흡으로 준비하면 언젠가는 변화가 온다. (2019)
낙: 저는 그게 가장 걸렸던 것 같아요. 승리나 성공이라는 건 눈에 보이는 거잖아요. 전 직업은 운 좋게도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게 저한테 잘 맞았는데. 활동가.. 라고 함은 성공하거나, 실현되는 것이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고 이뤄지기도 참 어렵고 지난한 과정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이걸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작은 변화를 잘 알아차릴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서 선택할 때 고려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유: 제 첫 직장은 지역운동을 하는 곳이었는데요. 지역운동 하면서 상담소나 한여전, 민우회를 보면서 그들이 정책을 제안하고 이슈메이킹을 하는 걸 보면서 좀 더 규모가 큰 곳에서 저런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 지역운동은 지역을 변화시킨다는, 조금 더 나와 가까운 곳을 직접 변화시킨다는 효능감을 주긴 했죠. 하지만 사회 전체를 변화하는 데에 동참하는 감각이 무엇일지 궁금했어요. 지역운동을 했던 곳이 제가 살거나 연고가 있는 동네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드네요.
닻: 맞아, 그럴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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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0. 야근이 많은 직업인가요?
닻: 좀 눈물나는 질문인데요.
유: 엉엉엉.
닻: 일단 울고 시작합시다. 주리 선생님 한창 연구할 때 야근 많이 했잖아요.
주: 어떤 프로젝트를 하냐에 따라 되게 달라지는데, 외부프로젝트 받으면 연구소는 무조건 맨날 야근하고, 마감이 닥쳐올수록 새벽까지 하고, 주말에도 나오고. 프로젝트 완료해야 되니까. 책상 앞에 “실패하면 연구비 삼천만원” 써붙여놓고 일하고. (일동 대폭소) 그랬었죠.
닻: 내가 지게 될 미래의 부담으로 스스로를 채찍질했군요.
주: 작년부터는 외부 프로젝트를 안 받아서 그렇게 고강도는 아니지만, 어떤 마감이 있으면 그거에 비례해서 올라가기도 해요. 또 연구는 다른 일이랑 다르게 마감이 저~ 멀리 있잖아요. 그래서 자기를 잘 채찍질해서 야근도 잘 분배해야되는데, 6시되면 그냥 집에 가고싶고, 배고프니까 잘 안하게 되어서. 이제 다음주부터 하려고 합니다.
닻: 갑자기 다짐을 이렇게. (웃음) 열림터는 어때요?
낙: 제가 초반에 자주 들었던 말이, 야근은 최대한 하지 말라고, 야근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팀이라고 그랬어요. 근데 야근을 덜 하고 숙직이 있는 거 아닐까 생각을 해요. 주말 숙직이 열림터 활동가라면 월 3회정도 있고요, 숙직을 하게 되면 주말의 경우 아침부터 그 다음날 아침까지 열림터에 있어야 해서. 그걸 야근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숙직 할 때 생활인과 마주하는 시간 외에는 야근에 할 법한 일을 집중해서 할 수 있어요. 주간 근무시간에는 사무실에서 계속 생활인 지원에 대해 듣고 얘기하기 때문에 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운 분위기예요. 일이 많을 때는 숙직일이 언제인지 체크하면서 위안을 삼기도 해요. ‘숙직일에 할 수 있을거야’ 하면서요. 일상적으로는 없는 편입니다. 아, 퇴근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갑자기 생활인, 특히 여럿에게 뭔가 역동이 생겼을 때에는 활동가들과 논의하며 상황에 투입되다보니 자연스러운 야근을 하게 돼요. 아까 일상적으로 없는 편이라고 했는데 이런 역동, 돌발적인 이슈도 일상이기도 해요. 정시퇴근 할 수 있을 때 열심히 해두려고 합니다.
닻: 근데 비상상황이 생기면 집에 있다가도 나와야 하는 경우도 있지 않아요?
낙: 그런 경우도 있는데. 야간에 발생하는 비상상황... 갑자기 아픈 사람이 생기거나 하면 열림터와 거리 가까운 사람이 가장 먼저 호출되긴 해요. 아니면 사자가 갑니다.
닻: 원장님이시니까~
유: 책임이 있는.
낙: 원장님이 열심히 하실 것 같고. 저는... (웃음)
유: 다행이다.
닻: 맞아, 그래서 열림터는 6시 땡 치면 문 딱 닫고 가는 것 같아요. 근데 열림터 활동가들한테 필요한 일인 것 같아요.
낙: 그렇다고 일이 적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야근은 최선을 다해서 하지 않으려고 해요. 일을 하다보면 퇴근시간은 그냥 훌쩍 넘기게 되니까,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중입니다.
닻: 유랑은요?
유: 오늘 야근할래요 닻별?
닻: 아~ 저 오늘 야근 못해요.
유: 으이씨..
닻: 방금 제안하셨다시피 야근 되게 많아요, 유랑은.
유: 연구소는 프로젝트 따면 야근 많다고 했는데, 상담팀은 일상 업무가 계속 들어오는 게 있어서, 프로젝트 기간에 맞춰서 근무시간이 조정된다기보다는 매일 상담전화를 받고, 거기에 딸려오는 행정 업무와 일상 업무가 많이 있어요. 이건 상담팀 인력이 부족하고 업무가 많은 것과도 연관되어있는 것 같은데, 저는 같은 팀 활동가랑 항상 그런 말을 해요. 일주일에 한두번은 야근을 해야 밀인 일이 정리된다는. 실제로도 일주일에 최소 이틀은 야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밀린 일상업무를 정리하려고. 업무가 많은 거겠죠?
닻: 사무국은 어떨까요? 사무국 업무 중에서도 저와 백목련의 재정/회원관리/홍보의 경우, 재정은 명확히 정해진 업무의 사이클이 있어요. 근데 회원관리는 마감이 뚜렷하게 없거든요. 일의 사이클을 제가 조정해야 해서, 페이스를 놓치면 일이 엄청 밀리긴 합니다. 더군다나 홍보업무는 제가 컨텐츠를 발굴해야 해서... 그래서 저는 제가 업무스케쥴 조절에 실패했을 때 불쑥 야근이 생기는 편입니다. 원래 야근을 극도로 기피해서 야근해야할 상황을 최대한 안 만들려고 하고 있기도 하고요.
유: 상담팀도 프로젝트를 하면 마감이 있지만, 회원업무처럼 마감이 없는 일상적인 업무들이 많고, 굳이 마감이라 하면 지원하고 있는 내담자가 급히 연계가 필요할 때 정도인 것 같아요. 보통은 일상업무가 밀려서 정리하는 것 때문에 야근을 하게 되네요.
닻: 명확하게 정해진 야근은 성문화운동팀이 많은 것 같아요. 왜냐면 실제로 행사를 제일 많이 하는 팀이라, 보통 평일 저녁에 행사 하는데 그러면 무조건 야근 해야되잖아요. 행사성 야근은 성문화운동팀이 제일 많지 않나 싶습니다.
주: 닻별은 아침에는 야근하실래요? 물어보고 오후에는 안한다고 도망가는 것 같아.
유: 오, 맞아. 맨날 그래.
닻: 오늘은 야근할 기분이 아닙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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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1. 백래시의 시대가 오면서 활동가 개개인에 대한 공격이 점점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활동가로 일하는 것 자체가 신상 유포나 모욕 등의 다양한 위협이 점점 커지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공포감, 두려움은 없었는지?
닻: 애매하긴 하네요, 쉼터 활동가들은 잘 드러나지 않고, 연구소 활동가는 글로 사람들을 만나고, 상담팀 활동가는 지원자의 위치에 있으니까요.
주: 이 질문을 해 주신 분의 의중이 중요한 것 같은데, 제 생각에 이 질문 하신 분은 대학 내에서 페미니즘 운동을 하신 분이 아닐까 싶어요.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이 15년 이후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격도 많이 받고, 신상유포도 많이 당했잖아요. 활동가들도 비슷한 고민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질문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그 이전에 대학에서 반성폭력운동 할 때나 지금이나 활동가 개인으로서 공격/주목받는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체가 공격받을 때는 있지만, 개인 신상에 대한 위협은 별로 걱정해본 경험이 없네요. 주변에 든든한 동료들이 있기도 하고요. 우리가 아직 미디어 출현 빈도가 낮아서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인터뷰 많이 하는 활동가들은 또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닻: 위치에 따라 다르겠네요. 확실히 대학 운동은 페미니스트 활동가가 적어서,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운동이나 단체가 공격받기도 하지만 활동가 개인에 대한 모욕이나 명예훼손으로 그 사람을 꺾으려는 시도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지만, 이를테면 총여 운동했던 사람들도 공통적으로 경험했을 것 같고요. 주리 말대로 특정 시기 이후에 활동한 사람들이 공통으로 겪은 경험인 것 같네요.
그런데 확실히 대학에서 활동했을 때랑 지금을 비교해보면, 다른 든든함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나중에, 활동하고 있는 단체보다 개인이 더 유명해졌을 때 당연히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짆아요. 저의 결함이나 약한 지점을 찾아서. 그래도 조직의 사람들이 같이 나를 지지해주겠구나, 싶은 느낌은 대학에서 활동하던 때보다는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물어보았다! 부설 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파이에게!
파: 인터뷰의 제일 이상한 순간이 캡쳐되어 네이버 뿜에 올라간 것도 봤고, 지인들이 올라온 글을 캡쳐해 보내준 적도 있고.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수준의 모욕적 댓글도 여러번 경험한 적이 있지만, 솔직히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오히려 재미있었어요. 친구들이랑 웃으면서 이야기한 적도 꽤 많았거든요.
특히 미디어나 외부활동을 활동가들이 할 수밖에 없는데, 언제든지 엄청난 비난과 명예훼손과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이나 반성폭력 운동을 악의적으로 깎아내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은 충격받아본 적이 없어요.
약간 데미지가 있었던 건, 동료까지는 아니어도 우리의 주변에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원색적인 비난을 할 때였습니다. 음...뭐랄까, 놀람? 그렇게 말할 정도인가? 싶은 황당함이나 말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 일말의 화남도 있었던 것 같네요.
다음으로는 '한국성폭력상담소의 활동가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6개의 질답이 업로드됩니다.
내일 저녁 6시에 또 만나요!
기획/인터뷰/편집 : 닻별
녹취록 작성 : 닻별, 주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