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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내가 반한 언니 5월 모임 :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 감상
  • 2021-06-16
  • 879


5월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IDAHOBIT Day)가 있는 날입니다. 그래서 이번 <내가반한언니> 모임은 특별히 넷플릭스에 있는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다큐멘터리 <디스클로저>는 영미권 미디어에서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그려지는지에 대해 아주 치열하게 추적해온 다큐입니다. 트랜스젠더는 미디어에서 굉장히 단편적인 모습으로만 그려지거나, 아예 가시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판매 여성,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여성으로만 그려지는 트랜스여성과, 미디어에서 보이지 않는 트랜스남성 정체성에 대한 탐구부터 왜 트랜스젠더 배역도 트랜스젠더 배우들이 맡을 수 없는가 까지 다양한 주제로 <미디어 속의 트랜스젠더>를 비평하고 있는데요. 페미니즘 컨텐츠에 대해 비평하는 모임인 <내가반한언니>에서 이 다큐멘터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오늘은 비평을 비평하는 비평의 날일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네요. 


다큐멘터리의 인상깊은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땐 각자의 다양한 감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쇼프로그램에서 호스트가 트랜스젠더 출연자에 대해 무례한 질문을 던지자, 굉장히 우아하고 단호한 방식으로 질문을 받아치던 트랜스여성 배우가 인상 깊었다는 의견이 있었어요. 소수자가 자신의 주어진 (어쩌면 사회적으로는 어려움으로 자리잡을 수도 있는)정체성을 자긍심으로 나타내고 무례함을 우아함으로 넘어서는 순간. 자기 정체성을 긍정하고 편견과 차별적인 발언들에 맞서려는 노력은 여성, 트랜스젠더 등 어떤 사회적 소수자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언제나 감동적인 것 같습니다. 또 드라마 <엘워드>에서 트랜스남성을 ‘테스토스테론에 취한 부정적인 존재’로 그리는 것을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는데요, 레즈비언 커뮤니티 내의 트랜스젠더에 대한 통념을 꿰뚫는 비판이라 통쾌했다는 의견도 있었네요. 


<디스클로저>에서는 영미권 미디어의 트랜스젠더(주로 트랜스여성)가 혐오범죄의 피해자로만 그려지거나, 아니면 ‘여장을 한 살인마’의 모습으로만 그려진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보면서는 트랜스젠더에겐 롤모델의 부재가 굉장히 크겠다는 이야기를 나눴어요. 영화 <매트릭스> 시리즈의 감독인 워쇼스키 감독이 어렸을 때 자신은 만화 캐릭터를 롤모델로 삼았었으며, 나중에 나이 든 성소수자를 만나고 감동과 울림을 받았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나와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이 길을 밟아나가서 나이 들어간 사람을 만난다는 것. 롤모델이 될 수 있는 한 명을 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다큐멘터리 중간에는 한 출연진이 이러한 말을 합니다. “트랜스젠더가 영화에서 사랑받고 추앙받는 모습을 보면 길거리에서 괴롭힘을 받는 트랜스젠더를 응원하려는 사람도 생겨요. 하지만 눈에(미디어에서) 보이는 게 폭력뿐이라면 지나가죠.” 미디어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어떻게 재현해야 하는지, 이 다큐멘터리에서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한국 미디어에서는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어느 개같은 날의 오후>, <죽여주는 여자>, <이태원 클라스>, <꿈의 제인> 등 트랜스젠더가 등장하는 여러 국내 작품들이 언급되었는데요. 국내 미디어에서도 여전히 트랜스젠더는 소외됨의 상징, 폭력의 피해자로만 등장한다는 한계가 많아 보인다는 이야기, <꿈의 제인>에서 대안공동체(가출팸)의 구심점으로 트랜스여성이 등장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느껴졌다는 이야기, 트랜스여성 배역을 연기할 때는 대부분 남성 배우가 트랜스젠더를 연기하게 되는데,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트랜스여성이나 트랜스젠더 당사자인 배우가 연기하는 트랜스젠더 배역을 많이 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국내던 해외던 미디어에서 다양한 트랜스젠더의 모습이 드러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디어에서 소수자를 어떻게 그려왔는지는 결국 소수자에 대한 통념이, 또 통념의 원인이 되고 마니까요. 


<내가반한언니>의 예전 모임에서 봤었던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제 주변만 해도 어렸을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 <뮬란>이나 <인어공주>를 좋아했고, 롤모델로 삼았던 트랜스젠더 친구들이 많은데요, 트랜스젠더 어린이들이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컨텐츠, 트랜스젠더에 대한 희화화가 없는 컨텐츠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어렸을 때부터 접하는 서사들 중 여성성/남성성을 구분하고, 강하게 부여하는 방식의 서사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어린이가 자신을 찾아가는 시기에 공주 옷을 좋아하면 ‘여성적인 것’으로 인지시키는 등 특정한 방향의 선호도나 제스쳐가 성별의 표지가 되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어떨까요? 아들이 디즈니의 ‘엘사’ 드레스를 좋아해도, 공주가 되고 싶다 말해도 아들을 존중한다고 말했던 연예인 봉태규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성별 표현에 대해 대놓고 드러내지 않으면 어른들이 오히려 “아들이냐, 딸이냐?”라는 식으로 어린이의 성별을 궁금해하며 묻는 경우가 많죠. 이러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는 양육을 할 수 있고, 대안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사회가 가능할 지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흘러갔어요. (컨텐츠 비평에서 대안교육까지 이야기가 나아갑니다. 내반언 모임의 수다 주제는 이렇게나 방대하다지요!) 


마지막으로는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한 컨텐츠란 무엇일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말을 쓰면 ‘피씨한 것’이고, 어떤 말을 쓰는 것은 ‘언피씨한 것이다’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PC의 정치는 지금 사회의 권력구조가 가진 문제점을 짚어내고 새로이 해석해내는 것에 의미가 있으니까요. 선역/악역 모두, 다양한 역할들이 나오며 기존의 통념을 깨는 불편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말에는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정말이지 지금의 컨텐츠들은 너무나도 갈 길이 멀고 다양성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소수자인 내가 공감하고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컨텐츠, 지금 사회의 기준에서는 너무나도 불편하고 이상하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념을 깨부술 수 있는 컨텐츠들이 미디어에서 더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에 모두가 공감하며 5월 모임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더 많은 불편한 컨텐츠들이 나오는 그날까지, <내가반한언니>에서도 열심히 수다를 이어가겠습니다. 


<이 글은 내가반한언니 회원 '리나'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