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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 2023-01-02
  • 937

안녕하세요! 틈 기자단 지윤입니다~

요즘 바람이 많이 매서운데 다들 따뜻하게 잘 지내고 계신가요? 이런 추운 겨울날에 난로 같은 따뜻함을 선사할 영화를 하나 추천해드리고자 하는데요, 바로 2020년 개봉작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입니다..! 평소에 여성 영화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이라면 이미 영화를 보셨거나 제목이 익숙하실 것 같아요. 저 역시 오래전부터 위시리스트에 담아두었다가 이번 기회에 영화를 꺼내 보게 되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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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감독인 셀린 시아마는 꾸준히 여성에 관한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온 여성감독입니다. 감독의 이전 작품들(워터릴리(2007), 톰보이(2011), 걸후드(2014))은 주로 성장기 소녀의 성적 정체성 형성을 다루는 데 집중해왔는데요, 그녀의 네 번째 장편 연출작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18세기를 배경으로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라는 두 여인의 짧은 기간 동안의 사랑과 기억을 다루고 있습니다. 

셀린 시아마 감독은 이 영화가 “여성의 시선에 대한 선언”임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제까지 영화언어를 지배해왔던 것은 남성의 시선으로, 관음적이고 여성을 시선 끝에 놓인 수동적인 대상으로 묘사하는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감독은 이러한 남성의 시선을 배제하고, 영화를 보는 이들이 오로지 여성의 시선으로 영화 속 여인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합니다.


두 번의 초상화 

화가인 마리안느는 한 백작 부인으로부터 밀라노에 있는 정혼자에게 보낼 그녀의 딸 엘로이즈의 초상화를 그려줄 것을 청탁받고 브르타뉴 섬에 도착합니다. 엘로이즈는 정략 결혼을 한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아가길 원치 않는 인물로, 초상화를 위한 포즈를 취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이 때문에 마리안느는 자신이 화가임을 숨기고 산책 친구로 가장하여 며칠 간 엘로이즈를 관찰합니다. 그렇게 첫번째 초상화가 완성되고 마리안느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그림을 엘로이즈에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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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본 엘로이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 초상화는 나랑 닮지 않았으며, 생동감과 존재감이 없어요.” 그리고 그녀는 그림이 “저를 닮지 않은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마리안느)도 닮지 않았다”고 비판합니다. 마리안느는 초상화 그리기에 규칙, 관습, 이념 등이 있다고 말하며 반박하지만, 이내 그것들이 초상화 그리기의 남성중심적 권력을 뒷받침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름도 모르는 엘로이즈의 정혼자의 마음에 들 수 있도록 예쁘고 온순한 모습으로 그려진 그림 속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의 시선이 아닌 남성 화가의 시선만이 담겨 있었던 것이죠.


엘로이즈는 마리안느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이 나를 볼 때 나는 누구를 보겠어요?”

그녀의 말을 통해 마리안느와 엘로이즈는 화가가 일방적으로 모델을 바라보는 관계에서 벗어나 쌍방의 시선 속에서 서로의 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마리안느는 다시 한번 초상화를 그리게 됩니다. 그렇게 완성된 엘로이즈의 모습은 첫 번째 초상화와 사뭇 다릅니다. 그림 속 엘로이즈는 당당하고 어쩌면 정혼자가 보기에 ‘건방지다’고 느낄 수 있는 표정을 하고 있죠. 다시 그린 그림은 일방적인 시선이 아닌 서로의 시선으로 완성됩니다. 서로의 시선을 초상화 속에 담으며 마리안느와 엘루아즈는 진실된 서로를 마주하게 되고, 그렇게 둘은 서서히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평등한 그녀들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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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마리안느와 엘루아즈 간의 사랑을 다룸과 함께 하녀 소피를 포함한 세 여인의 연대적 관계를 다루기도 하는데요.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며칠 간 집을 비우게 된 후, 귀족 아가씨 엘루아즈, 서민 계층 화가인 마리안느, 그리고 하녀인 소피는 서로 친구가 됩니다. 애당초 집이라는 공간에 남자는 없지만, 엘로이즈의 어머니는 가부장적 질서의 대리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녀가 집을 비우자 집은 신분도 계급도 존재하지 않는 해방의 공간이 된 것이죠.


소피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상태입니다. 엘루아즈와 마리안느는 그런 그녀를 여러 방면으로 도웁니다. 임신한 소피를 대신하여 그녀들은 함께 밥을 차리기도 하고, 소피의 임신중절을 위해 민간요법을 시행해보기도 하지만 실패합니다. 결국 소피가 낙태술을 받으러 가게 되고, 엘루아즈와 마리안느는 당연하다는 듯 그녀를 동행합니다.


이 여인들 간의 연대 속에는 위로와 격려가 놓여있습니다. 원치 않은 임신을 하여도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던,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팔려 가듯 결혼하는 것이 당연했던, 중요한 주제는 그릴 수 없어 숨어 그림을 그려야 했던 그 시대의 여성들은 연대를 통해 서로를 지지하고 또 어루만집니다.


오르페우스 신화와 기억

영화의 서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세 여인이 오르페우스 신화의 절정 장면을 읽는 순간인데요. 오르페우스는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되살리기 위해 지하 세계로 갑니다. 그는 하데스에게 단 하나의 조건을 받고 그녀를 지상으로 데리고 올라갈 수 있게 됩니다. 그 조건은 지상에 도착할 때까지 아내 앞에 앞장서서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었는데요. 오르페우스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길에 참지 못하고 뒤 돌아보게 되었고, 그로 인해 에우디리케는 다시 지하의 세계로 끌려 들어갑니다.


소피는 약속을 어긴 오르페우스의 행동에 분노합니다. 마리안느는 소피의 입장에 동의하면서도 오르페우스가 뒤를 돌아봄으로써 아내가 아닌 음유시인으로서 아내와의 추억을 선택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엘루아즈는 다른 견해를 제시합니다. 에우리디케가 운명에 순응하고 오르페우스를 불러 뒤를 돌아보게 함으로써, 그녀의 의지로 지하세계로 돌아간 것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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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안느의 해석은 마리안느와 엘루아즈의 사랑이 신화 속 두 사람처럼 기억으로 남겨질 것임을 암시합니다. 엘루이즈의 해석은 에우리디케를 구출되기를 기다리는 수동적인 인물에서 남편을 떠나보내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전환시킵니다. 그리고 이들이 헤어지는 순간 엘루이즈는 “뒤돌아봐”라고 말함으로써 본인이 해석한 에우리디케가 됩니다.


과연 마리안느와 엘루아즈는 다시 만나게 될까요? 그들의 사랑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요? 영화를 보는 내내 르누아르의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들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아름다운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꼭 보시길 추천드리며 리뷰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후기는 자원활동가 기자단 '틈'의 지윤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