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상담소 소식
지난 12월 16일(금) 오후 7시 합정역 인근에서 회원소모임 "페미니스트 아무말대잔치(이하 '페미말대잔치')" 올해 마지막 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참여자 지은님의 후기를 전합니다.
연말을 맞아서 이번 페미말대잔치는 합정역 근처에서 오프라인 모임으로 진행했습니다. 나름의 송년회 느낌으로~
추운 연말 저마다의 사정으로 갑자기 못 오게 된 분들이 많아 앎, 지은, 메릿 총 3명이 오붓하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저녁 식사를 한 솔내 한옥집은 앎님이 과거에 추천해주신 장소로 제가 합정역 갈 때면 자주 들리는 곳이기도 해요. 보리밥과 전이 무척 맛있답니다~
한옥을 개조해서 만든 듯한 이곳에서 보리밥과 전을 먹으면서 근황 토크를 하고, 성적 동의에 대해서도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앎님은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사람을 끌어 안기 위해) 서로 팔을 벌린 상태에서도 '지금 이거 동의한다는 의사 표현 맞죠?' 라고 상대의 의사를 말로 물어본다고 하여, 그 방식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눈빛과 제스쳐만으로 암묵적 동의가 있다고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저의 경우 동성의 직장 상사가 팀 배정 첫날 '한번 안아봐도 되죠?'라고 할 때 거부의사를 표현하지는 못했어요. 권력 관계가 작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거부하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을 거라는 불안함이 본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설령 동의 표시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심 진짜 원해서 동의를 한 것인지,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었지는지도 살펴봐야 한다는 대화를 했습니다.
연인끼리 매번 말로써 동의를 구해야만 하는가, 데이트 관계에서는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성적 동의를 이루어낼 수 있는지도 함께 고민해보았습니다.
한편, 성매매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성판매를 한 여성은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어 성폭력 피해를 인정받기 어렵고(심지어 처벌 대상이 되고), '비자발적'으로 성판매를 한 여성만 '성매매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습니다. 구조와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여성폭력 피해자의 '동의' 여부가 얼마나 쉽게 왜곡될 수 있는가 함께 생각했습니다. 앎님의 추천서 『불처벌』도 꼭 읽고 싶어요.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하고서 프랑스 디저트 카페 몽카페 그레고리를 방문했습니다. 홍차 종류가 정말 다양해서 메뉴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디저트로 미니 케이크도 주문했습니다.
오래 전 성폭력 미제 사건이 DNA 정보로 인해 뒤늦게 범인 검거가 되는 상황에서 DNA를 채취하는 것이 정보인권 측면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도 얘기를 나눴는데요, 생명 연구에 관해 새롭게 알게 된 정보도 있었습니다. 과학 수사가 성폭력 사건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기도 한다는 대화도 했습니다. 피해자의 몸에서 가해자의 DNA 정보가 발견돼도 가해자는 '성관계를 한 건 사실이지만, 합의한 성관계였다'라고 주장합니다. CCTV 영상이 있어도 '피해자가 제발로 걸어가는 걸 보니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던 것 같다'라며 오히려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해석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해자가 피해 전후 상황을 녹음하여 증거로 제출하는 사례도 많다고 합니다. 증거 확보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증거를 피해자의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경찰, 검찰, 재판부의 성인지 감수성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외벌이를 하는 경우에 대해 자녀로서의 경험도 이야기 나눴습니다. 어머니가 외벌이를 하면서 가사노동까지 대부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머니가 외벌이를 하는 대신 아버지가 가사노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요, 그 상황을 유독 어머니의 고생으로 받아들이고 안타까워 하는 것이 성역할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인지 여성의 저임금 노동 현실 때문인지 고민했습니다.
온라인으로 모임을 할 때는 11시가 넘어서까지도 모임을 진행하기도 했는데, 오프라인 모임은 대면의 반가움 대신 시간의 제약이 있어서 막차 시간에 맞춰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너무 아쉬웠지만 연말에 만나서 회포를 풀면서 즐거웠습니다.
한 해 동안 열심히 살아내느라고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 12월 모임에서 언급된 작품들
김대현 외 지음,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기획 『불처벌』
캐서린 앤젤 『내일의 섹스는 다시 좋아질 것이다』
바네사 스프링고라 『동의』
제이시 두가드 『도둑맞은 인생』
엠마 도노휴 『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