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상담소 소식
지난 1월 19일 오후 7시 온라인 ZOOM으로 회원소모임 "페미니스트 아무말대잔치(이하 ‘페미말대잔치’)"를 진행했습니다. 페미말대잔치는 2018년 1월부터 5년 동안 꾸준히 이어온 여성주의 수다모임인데, 담당 활동가가 올 2월부터 안식년을 맞이해 약 1년 간 쉬어가게 되었습니다. 긴 공백기를 앞두고 앎, 메릿, 지은, 고유 총 4명의 참여자가 아쉽고 애틋한 마음으로 모였습니다.
늘 그렇듯이 근황을 나누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안식년'이 큰 화두가 되었습니다. 한동안 정기 모임을 진행하지 않는 것은 아쉽지만, 활동가가 재충전할 수 있게 안식년 제도가 있어 다행이라며 마음 놓고 푹 쉬고 오길 응원해주시는 참여자들의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상담소의 활동을 눈여겨보고 지지해주며 활동가들이 얼마나 열심히 활동하는지 알아주시는 회원/참여자분들이 있기에 그동안 소진되지 않고 힘을 낼 수 있었다고 새삼 생각했습니다.
"안식년에는 글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계기로 여성주의적 글쓰기와 성폭력 생존자의 자전적 글쓰기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생존자마다 피해 경험을 글로 풀어내는 형식이 조금씩 다른데요, 성폭력 피해와 치유·회복의 과정을 진솔하게 회고하는 에세이(『용서의 나라』 등), 생존자의 관점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감정 이입할 수 있는 1인칭 자전 소설(『동의』 등), 생존자의 관점과 가해자의 관점을 교차해서 보여줌으로써 가해자의 왜곡된 성 인식과 그 사회구조적 원인을 드러내는 소설(『다크 챕터』 등), 제3자의 관점 또는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생존자나 피해 상황이 아닌 가해자와 가해자를 옹호하는 주변인/환경에 집중하게 하는 소설(『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등)……모임에서 다 언급하지 못한 수많은 책이 출판되어 있고, 시야를 넓히면 미술, 음악, 영화, 연극, 무용 등 더욱 다양한 '생존자의 말하기'가 있습니다(음악극 <미제 사건> 등). 글쓰기를 준비하면서 그 모든 생존자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낸 것인지 더욱 실감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 참여자는 최근 성인 ADHD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했습니다. 예전 페미말대잔치에서 관련 주제로 이야기 나눈 적이 있는데, 그 계기로 더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다고 해요. ADHD는 흔히 집중력이 부족해서 산만한 것으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너무 많은 일에 동시다발적으로 집중하기 때문에 산만한 것이라는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가지에만 집중력을 유지하려면 나머지에 대한 집중력을 억제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죠. 그 말을 듣고 보니, 책을 읽으면서 계속 메신저를 확인하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다음에 볼 영상을 고르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현대 사회는 한번에 2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멀티태스킹' 능력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고, 일상에서도 스마트폰을 통해 수많은 정보를 동시에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하다 못해 언론 기사를 열어도 한 화면에 기사 본문과 함께 수많은 하이퍼링크와 광고들이 뜨죠). 성인 ADHD 환자가 점점 증가하는 배경에 이런 사회적 요인도 있지 않을까 함께 가설을 세워보았습니다.
한편, 윤석열 정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주노총, 한국노총, 세월호 제주기억관 평화쉼터 등 여러 단체를 압수 수색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우려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밖에도 성폭력 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 생기는 어려움, 가해자의 보복성 역고소 문제, 성폭력 사건 해결시 목표 및 한계 설정의 필요성, 국선 피해자 변호사 제도의 한계, 사선 피해자 변호사 선임시 비용 문제, 왜 피해자가 법적 대응을 위해 이렇게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하는가?(단순히 경제적 비용뿐 아니라 시간, 정신력, 인간관계 등을 포함해 너무 많은 비용이 드는데요, 관련해서 한국성폭력상담소 <2019 피해와 생계 사이, 성폭력을 말하다> 집담회 자료집을 추천합니다)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마다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우리, 느슨하게 연결되어 다시 또 만나자고 약속하며 늦은 밤 모임을 마무리하였습니다.
새해 복 많이 보내세요!
<이 후기는 본 소모임 참여자 앎이 작성했습니다.>
■ 1월 모임에서 언급된 작품들
토르디스 엘바, 톰 스트레인저 『용서의 나라』
바네사 스프링고라 『동의』
칼린 L. 프리드먼 『파리에서 보낸 한 시간』
위니 리 『다크 챕터』
린이한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줄리아 캐머런 『아티스트 웨이』
K.L Randis 『Spilled Milk: Based on a True Story』
이지구 <미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