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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상담소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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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원활동가 기자단 ‘틈’, 인사드립니다! (나눔터 91호 수록)
  • 2023-01-27
  • 633


자원활동가 기자단 ’, 인사드립니다!

 

 

작년 하반기, 상담소 곳곳을 바쁘게 누빈 분들이 계십니다.
바로 자원활동가 기자단 의 노을, 원영, 은화, 지윤입니다.
섬세하고 다정한 눈길로 상담소를 살펴 준 네 분을 인터뷰해 보았습니다!

 

0.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은화 자원활동가 은화입니다. 졸업을 1년 정도 앞둔 대학생이고요, 사회교육과 사회학을 같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자원 활동 말고는 특별히 하는 건 없는 대학생입니다.

지윤 정지윤입니다. 저도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고, 저는 조금 생소한 전공인 아동가족학과 정치학을 같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노을 저는 노을이고, 신문방송학과를 전공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졸업을 앞두고 있어요. 마지막 학기를 보내며 자원활동을 병행하고 있는데, 시민단체에서 일해보는 건 처음이어서 신기하고, 기대를 안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원영 저는 손원영이고요. 문화인류학을 부전공 했고 철학과가 본 전공입니다. 전에는 리셋에서 잠깐 피해자 지원을 했었고요. 당시에 만난 미성년자들이 성매매 업소에 취직하려고 하거나 조건만남을 시도하는 것을 보면서 한국 성매매에 대한 의문, 업계 특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성매매와 관련된 시위들이나 글을 주로 썼습니다.

 

1. 한국성폭력상담소,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자원활동을 하게 된 계기는요?

은화 학교 인권센터에서 자원활동 프로그램을 모집했는데, 마침 인권센터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이전 학보사에서 학생기자로 활동했던 시기에 권력형 성폭력 사건들이 있었어요. 그때 성폭력 문제가 결국은 구조의 문제에서 기원한다는 생각을 했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관련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진로와 관련해서는, 학교나 교실 속에 있는 학생들이 성폭력과 거리가 멀지 않잖아요. 이럴 때 내가 어떻게 대처를 할 수 있고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상담소에 왔습니다.

지윤 상담소를 알게 된 경로가 저랑 똑같은데요. 전공이 아동가족학이다 보니 전공 공부를 하면서 아동학대나 가정폭력 문제를 많이 접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젠더관점에서 사회문제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접했고, 실질적으로 관련 이슈들을 좀 더 가까이서 접하고 더 깊게 공부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를 1순위로 적어 신청서를 내고, 우연히 잘 되어서 이렇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노을 대학 인권위원회에서 활동했을 때 상담소를 접할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는 상담소라고 하면 상담만 할 것 같은 이미지가 강했는데 자원활동을 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단순히 피해자 상담을 넘어서 법제화나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들을 해결하려는 곳으로요. 대학생 신분으로 운동의 생리를 파악할 수 있는 활동을 해보고 싶었는데, 자원활동 모집 글을 지인분이 공유해주셔서 좋은 기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원영 저는 성매매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성매매 당사자들이 내담자로 올 수 있는 성소수자 단체, 장애여성 단체 등 여러 곳에 메일을 보냈는데 자원활동가를 모집하는 곳이 상담소밖에 없었어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워낙 오래됐으니까 알고는 있었는데, 막상 와보니까 하는 일이 많더라고요. 이전에는 (성폭력/가정폭력)통합 상담소가 다루는 내용이 워낙 많아서 오히려 한국성폭력상담소처럼 전문화된 상담소보다 지식적으로 따라가기 어렵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지금은 결과적으로 모든 폭력의 문제가 이어져 있어 외면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2. 자원활동가 기자단 ''이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요? 이름 선정 이유는?

노을 가부장제 사회에서 반성폭력 문화를 같이 배우고 구조적인 성폭력이 만연한 이 사회에 균열을 내보자!’ 라는 의미에서 균열의 시작 틈이라는 이름으로 시작을 했다가 너무 길어서 ''으로 줄였습니다.

원영 <켈리번과 마녀들>이라는 아이디어를 먼저 떠올렸었는데요, 후원자님 역시도 운동의 주체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이라는건 단순히 가부장제 하나로만 말을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고요, '거대 서사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라고 생각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윤 주 업무는 상담소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직접 참여/참관해서 행사 후기를 작성하기도 하고, 조금 더 대중적인 자체 콘텐츠를 만들고 있어요. 상담소 행사를 친근감 있게, 부담 없이, 후기를 읽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목적을 두고 작성하고 있습니다.

노을 ''이라는 이름을 짓게 된 계기랑 잘 이어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기자단으로서 엄청 많은 활동이나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법제화 운동에 나설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신의 일상에 균열을 낸다'는 의미로 우리가 독자들의 일상에 잠재해 있는 가부장 문화를 해체하는 데에 기여하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3. 6개월간 상담소를 드나들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은화 <생존자랑대회 2>가 기억에 많이 남았어요. 학내 집회나 시위에 주로 취재를 하러 다녔는데, 밖에서 보는 것과 내부에서 시위자로 참여하는 건 정말 다르더라고요. 바깥에서 볼 때는 사건과 주장에 초점을 맞추고 ', 그래 이 문제 해결되어야지~' 정도로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내부에서 보았을 때에는 당사자들의 이야기가 주는 울림이 느껴지니까 몰입도가 다르더라고요. 친족성폭력 문제를 경험한 누군가가 실제로 존재하고, 개인에게 고통스러운 문제임과 동시에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라는 게 체감되어서 찡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당일 광화문을 통과해서 행진했잖아요. 솔직히 사람들이 신경쓰였어요. 바깥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사실 하나도 신경쓸 필요 없는 건데 외부의 목소리가 의식되더라고요. 친족성폭력 문제가 시급히 해결되기를 바라면서도 행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을지 반응이 신경쓰여서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그 때가 기억에 남아요.

지윤 저는 <미투운동 중간결산>에 참여한 게 인상깊었어요. 행사 규모도 꽤 크고 참여자도 많았기도 했고요,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미투운동이었어서요. 그때 고3이었는데, 스텝으로 참여하면서 세션을 듣는데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되었어요. 미투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는 관심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을 잃었었구나. 그 행사에 가 보니 아직도 그 당시의 피해자들은 계속 목소리를 내고 있고, 해결되지 않은 현실의 문제가 남아있는데 관심을 잃었던 제 모습이 좀 반성이 되기도 했고요. 또 피해자들이 여전히 말하고 있다는 점도 굉장히 인상깊었던 것 같아요.

노을 저는 행사참여를 많이 못해서 거기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건 아쉽긴 한데요, 개인적으로 '상담소에서 자원활동을 한다' 라고 주변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우리가 상담소에서 이야기 나눴던 내용을 집에서 복기할 때 깨달음이 있었어요. 이를테면 성문화운동팀의 <적극적 합의> 교육을 듣고 기자단끼리 이야기 나눌 때, 우리끼리는 너무 당연한 말이라고 생각하고 주변에 공유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나 태도를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4. 가까이서 본 '상담소''활동가'를 각각 한가지 키워드로 설명한다면?

지윤 저는 상담소 하면 가족같은 분위기가 연상이 되는 것 같아요. 건물 자체도 포근한 집 느낌이 나고요. 사무실이 두 층으로 분리되어 있는데도 활동가끼리 사이가 돈독해 보여서 더 그렇게 느꼈던 것 같네요. 연장선으로 활동가를 떠올리면 자매애, sisterhood가 생각이 납니다. 그냥 연대가 아니라 여성 활동가로서의 맥락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은화 다른 모임에 가면 항상 앞으로 뭐 하고 살 거냐’, ‘가족 관계가 어떻게 되냐’, ‘어디 출신이냐’, 이런 질문들을 항상 받았어요. 한국 사회의 전형에 맞춰서 잘 답해야 된다는 압박이 있었고요. 여기서 자원활동 하며 만난 사람들은 같은 일과 목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이유 하나로 모인 사람들이잖아요. 압박이 없으니까 마음이 편하고 저 자체를 봐주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아요. 그걸 뭐라고 표현하는 게 좋을까요. 환대로 하겠습니다.

노을 저는 연결감, 연결성. 각자 관심사와 의제는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마냥 똑같지 않은 활동가들이 모여서 공통된 대의를 위해 노력하는게 연결감 있다고 느껴졌어요. 상담소 공간 특성도 재미있었는데, 주거지처럼 생겼는데도 공적 공간은 분리되어 있더라고요. 업무 공간이 분리되어 있지만 같이 이야기가 필요할 때는 토론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서 중간에 의견교환이나 토론이 쉽겠다 싶었어요. 한국의 일 문화는 토론을 많이 안 하는 문화이지만 여기는 확실히 많은 느낌? 해방감이랑 비슷한 것 같네요.

원영 저는 '돌봄'이 생각이 났어요. 근대적 자아라고 해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오롯이 혼자 책임을 지는 존재가 성인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취약점을 타인에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고요. 그런데 돌봄은 외부 환경과 사물에 대한 관심에서 서로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같이 나아가자는 체제인 것 같아요. 활동가들이 식사할 때 보면 서로 대화도 잘 주고받지만, 개인 공간을 명확히 존중하더라고요. 이건 돌봄의 영역인 것 같아요.

서로를 평어로 부르는 점도 기억에 남는데, 선배활동가나 상사분들과도 평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조직문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5. 네 분, 열정넘쳐보여요! 열정의 원천이 있다면?

지윤 틈 활동에 대한 열정인가요? 아니면 전반적인 삶에 있어서의 열정인가요?

닻별 그것까지 자세히 써주진 않았지만 활동에서 드러나는 열정 같아요.

노을 분노 같은데요, 당연히? 어떻게 열정이 없을 수 있어요? 아직 번아웃 올 정도로 일하지 않았고, 뉴스에도 수십개의 여성혐오 뉴스가 뜨니까. 당연히 열이 날 수밖에 없어요.

지윤 열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진 모르겠는데, 애초에 여성혐오가 가득한 사회의 현실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많이 없었어서, 자유롭게 이야기 하고 서로 공감하고 신나하는 게 열정처럼 보이지 않았을지 싶네요.

노을 저 코난 명대사 이야기 해도 되나요? "사람을 죽이는 데는 이유가 있어도 사람을 살리는 데에는 이유가 없는거야!" (일동 웃음) 이 운동이 사람을 살리는 운동이잖아요. 아무 이유가 없는 거예요. 원동력이 분노든, 공감이든.


은화 열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진 모르겠는데, 저는 의무감이 항상 활동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아요. 반성폭력 운동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고 세상을 바꾸는 일이니까, 그 의무감에서 계속 하게 되고 관심을 놓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이랑 대화를 하다보면 "여성가족부 폐지 하는 게 맞지. 지금 성차별이 있어? 성소수자 문제가 뭐?"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가 비겁한 건지 소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순간에 강하게 반박하거나 제 의견을 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내가 잘 모르는데 괜히 말을 얹었다가 다른 편견을 만드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 활동에서 어떤 해방감, 숨통이 트이는 구석을 찾는 것 같아요. 그게 열정의 근원이 아닐까 싶어요.


원영 제 삶은 보편성과는 거리가 있었어요. 가정폭력, 친족성폭력 등 여러 폭력을 지속적/중첩적으로 경험하며 10대와 20대 초반을 보내서 그걸 해석하는데 여성주의가 필요했어요. 다른 친구들은 고차원적 인권/정의의 개념으로 활동 목표를 세우지만 저는 살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여성주의 운동 안에서는 제가 보편자가 될 수 있는 기회였고, 특수성을 넘나드는 인식론으로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 내적 흥분을 주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몸이 자주 아프거든요. PTSD가 있어서. 내일 못 일어날 정도로 아플 수 있고, 어쩌면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요. 누구와 관계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내가 일을 안 하면 다른 사람이 힘들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일을 열심히, 빨리 하게 되는데 그게 열정이 많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6. 상담소에서 6개월간 드나들면서 나에게 특히 더 중요하게, 와닿게 느껴졌던 의제/이슈가 있다면?

원영 저는 적극적 합의요. 여성운동계 내부에서도 동의를 똑같이 해석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되었는데, 제가 가장 관심있는 성산업에서는 동의가 일어날 수 없다고 전제되는 업계여서요. 성매매 분야 뿐만 아니라 가정폭력에서의 동의 개념이 또 조금 다를 수 있고요. 여러 단체들이 같이 동의 개념을 다듬어가는 과정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의 개념이 특히 어렵다고 생각했던 게, 동의를 고맥락적인 행위라고 하잖아요. 상대방의 컨디션, 관계의 역사와 맥락, 비언어적 표현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동의에 필요한 모든 능력을 다 갖춘 '정상인'에 초점을 맞추면 거기에서 '탈락'되는 예외적 존재들이 많이 있을텐데, 평균 모델을 어떻게 세울 수 있을지도 개인적으로 고민입니다.


은화 성폭력 해결 과정을 돌이켜 보면 법이나 사회 인식 모두 가해자 처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아요. 처벌에 집중하다 보니 피해자가 '꽃뱀'인지, 거짓말을 했는지처럼 가해자 시선에서 피해자를 바라보는 흐름으로 오지 않았나 싶어요. 그런데 성폭력의 다양한 성격과 양상이 있잖아요. 법적 처벌 이외에도 공동체적 해결처럼 다양한 방법이 있고요. (법적 해결에서 벗어나) 공동체적 해결을 생각해보면 피해자 보호와 2차피해를 예방하는 데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공동체에서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우리 공동체의 문화를 점검하고, 피해자 보호책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는 것처럼요.


노을 저는 여성주의 말하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에게 여성주의 시각은 익숙한 개념이잖아요. 아직까지 '일반 사람들'의 눈에는 독특한 시각으로 보이고 낯설어서 거부감이 드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더 많이 말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어요. 동의나 성폭력 개념이나 여성주의 시각이 결여된 채 바라보게 되니까 그걸 더 면밀하게 해석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 학생들을 많이 만나는 일을 하는데요, 일상적인 언어나 관점에 남성중심적 시각이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차별적인 단어들도 다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을 규제하거나 제어하는 말들인 경우가 많고요. 이런 것들을 우리가 좀 더 평등한 관점에서 바라보려면 여기에 대항하는 여성주의적인 말하기가 일상에서 좀 더 많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더 확장되어야 하기도 하고요. 


지윤 저는 은화 님이랑 비슷한 고민과 문제의식인데, 피해자다움의 통념이예요. 최근에 로우킥 집담회 3차에 갔을때 느낀 건데, 법정에서 피해자가 정말 피해를 입었는가? 를 너무 많이 질문하고 있는 거예요. "피해자가 아무 저항 액션 없이 모텔에 갔다"는 상황이 가해자가 스스로를 방어하고 피해를 부정하기 위한 근거가 된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안 됐어요. '피해자다움'의 통념이 법정에 너무 뿌리 깊게 박혀 있구나 싶고. 그래서 피해자다움의 통념을 깨야 한다는 말에 너무 공감되었는데, 이걸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떻게 할 수 있지? 하는 막막함이 같이 들었어요.



7. 여성단체 활동가로서의 진로를 고민하는 분이 계신가요? 있다면 계기가 있나요? 기대되는 점이 있다면?

은화 저는 아주 예전부터 교사가 꿈이었어요. 솔직히 상담소에 오기 전에도 활동가라는 진로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길만 생각해왔어서 다른 직업을 생각해보긴 했어도 큰 틀에서 벗어나진 않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다들 아시지만 교사는 한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이고 중립성을 요구받는 직업이기도 해서 회의감이 들기도 해서 고민스럽기도 해요.


지윤 저도 항상 법 쪽으로 진로를 생각했고 변함은 없는 것 같아요. 무조건 '변호사가 되겠다!'는 건 아니고 남성중심적이고 사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법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진로를 정했던 거라서 사실 그건 오히려 활동가로서 더 큰 변화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를 상담소에서 활동하며 더 느꼈던 것 같아요. 요즘에 고민이 많아요.


닻별 졸업을 앞두고 있는 시기라 고민이 많아지나봐요.


노을 대학 내에서 보편 인권을 다루는 활동을 많이 하면서 여성주의 강의를 들을 때마다 사회변화에 대한 필요성은 느껴지는데, 그쪽으로 완전히 진로를 잡기에는 부담스러운 거예요. 물론 실천도 중요하지만 내가 관련 전공을 공부해서 지식적 토대가 있는 것 같지도 않고, 운동에 필요한 시각이 내 안에 충분히 있나? 하는 자기검열도 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대학에 있으면서 토론의 장이 펼쳐졌을 때 사람들과 토론을 하며 설득하는 일도 힘들었는데, 이걸 정말 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와중에 사회적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까 인턴 생활도 해보고 취업에 필요한 활동들을 했는데, 점점 갈망이 쌓이더라고요.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인데,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데? 하는 이끌림에 상담소에 오게 되었습니다. 여성주의 활동가로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한편으로, 많은 다짐과 각오가 필요한 분야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의 삶의 양식이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기도 하지 않나 싶어요.


닻별 (웃음)노을 님이 저보다 활동가의 삶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요.


원영 원래는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 비현실적인 꿈이라 접고 제가 열심히 했던 것, 대학에서 내내 배워왔던 걸 생각해보니 여성주의 하나더라고요. 여성운동 안에서도 가고 싶은 분야는 미성년자, 청소년과 교차점이 있는 영역이예요. 나이, 법적 한계로 자원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요. 현실적으로 그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쉼터 활동가 뿐인데, 제 여건상 생활보조인이 될 수는 없고, 상담소 활동가나 상담원을 한다고 해도 20년 넘게 활동가로 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평생 해왔고 관심있는 분야가 이쪽이긴 하지만 연관된 분야 어느 것 하나 만만치 않고요. 그래서 저도 고민이 많습니다.


닻별 활동가가 되는 데 굉장히 많은 사전 훈련과 능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여성주의 관점의 훈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본격적으로 단체에서 활동을 하게 되면 내부에서 당연히 그런 훈련을 하거든요. 그래서 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처음 들어간 직장 평생 다니지 않듯이 저희도 마찬가지랍니다. 상담소 출신 변호사도 있고요, 학내 인권센터, 다른 여성운동 분야나 다른 시민사회운동단체, 심지어 수의사로 일하는 분도 계세요.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어떻게 하면 페미니스트로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답니다.

네 분이 어느 길을 선택하든, 우연히 여성주의의 길 위에서 다시 만나뵐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