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상담소 소식
안녕하세요. 선선한 가을에 인사드리는 한국성폭력상담소 기자단 틈의 스텔라입니다. 2022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국비 지원을 받는 전국 성폭력 피해 상담소는 서울·경기 및 일부 지역에 편중되어 있고, 이 외 지역에서 개소된 상담소가 극히 적었는데요. 뿐만 아니라 지방의 성폭력 지원 인력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거센 백래시에 인권은 퇴행하고 있는 이 시기, 수도권 중심의 반성폭력운동이 지방에서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사단법인부산성폭력상담소(http://heaven010.nayooint.co.kr/)의 차가영 활동가와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사단법인부산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상담소는 부산 지역의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 1992년 시작해 1997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했습니다. 상담소는 성폭력 및 가정폭력을 지원하는 부산성폭력, 가정폭력 상담소, 청소년 성교육 및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늘함께청소년성문화센터, 그리고 학교 안팎의 청소년 상담 복지를 지원하는 동래구청소년지원센터꿈드림과 동래구청소년상담복지센터, 그리고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 부산성폭력, 가정폭력상담소에서 상담 지원을 맡고 있습니다.
법인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지원 중에서 부산의 지역적 특성이 반영된 지원이 있을까요?
대표적으로 ‘부산문화예술계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가 있습니다. 미투 운동이 문화예술계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는 배경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전부터 상담소와 협업해 온 부산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 분야 성폭력 해결에 관한 의제를 제안했고, 이후 재단으로부터 위탁받아 프로젝트 형태로 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역 기관과의 협업이 이루어진 좋은 사례네요. 상담소의 다른 활동에서도 연계 기관과 많이 협업하는 편인가요?
일반적으로 법인 자체의 지원 툴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법인에 청소년 성폭력 지원을 위한 세 개의 센터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청소년의 발달 시기를 고려한 상담을 종합적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정서적 지원이 필요한 학교 밖 청소년은 같이 공부도 하고 식사도 만들고, 멘토-멘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어요. 해당 활동을 통해 치유와 자립심을 모두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다만, 복잡한 법률 상담 또는 의료 지원이 필요한 경우 상담소가 타 기관과 협의해 연계하기도 합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법인에서 제공하는 지원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게다가 자체적인 인력을 최대한 활용한다고 하니 활동가의 일이 많게 느껴져요.
최근 연대 활동을 위해 한국성폭력상담소를 방문했던 다른 활동가들이 놀랐다며 들려준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네요. 제가 속한 부산성폭력, 가정폭력 상담소는 총 6명이 연대부터 상담까지 모든 활동을 수행해요. 그런데,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상담소 내 팀이 꾸려져 있어 업무가 분화되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어요. 부산에만 있었을 때는 단순히 ‘일이 많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이 경험을 통해 지방 상담소 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 알게 되었어요.
저도 뉴스를 통해 성폭력 의제를 다루는 인력 및 예산 부족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어떻게 실감하시나요?
슬프지만 사실입니다. 지방보다 인력이 많은 서울마저 피해자 수에 비하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거든요. 게다가 성폭력 의제는 전국민적 관심이나 필요와 거리가 있고, 정부나 지자체에서 여성 및 젠더폭력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폭력 기관에 대한 예산 확보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어요. 예를 들어, 부산의 예산 집행 기관으로부터 운영 비용과 인력을 감축하라는 압박이 계속 있어요. 지원금을 받기 위한 심사 과정은 더 까다로워졌고요. 수시로 바뀌는 정책 기조 때문에 지원액이 일관되지 못한 문제도 있어요.
예산 및 인력 부족 문제는 곧 활동가 1인에게 오는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이어질 것 같아요. 활동가 님도 업무상 경험할 때가 있나요?
사실 매일 경험하고 있어요. 성폭력 피해자 상담은 삶의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과 매일 접촉하는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정적으로 취약해질 때가 많죠. 활동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문제 자체가 단시간에 해결되기 어렵기 쉽게 지치기도 하고요. 인력이 부족해 저에게 배정되는 업무량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활동가 간의 마음 돌봄이 너무 어려운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다들 감정적으로 지쳐있는 걸 알기 때문에 선뜻 서로의 감정을 나누고 보듬어 줄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결국 혼자 힘듦을 떠안고 번아웃이 오게 되죠. 실제로 성폭력 피해지원 활동가의 퇴사율이 높다고 들었어요.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가 님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나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다들 번아웃에 너무 매몰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저 같은 경우는 퇴근 후 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요.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버리려는 몸부림 같은 거죠 :) 다른 동료는 아이들을 돌보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거나, 또 술을 맘껏 마시기도 한다고 해요.
이 분야에 있는 많은 활동가 함께 겪는 문제지만, 지방은 특히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 크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그럴 것 같아요.
지방 성폭력 활동의 또 다른 한계는 ‘관심의 부족’일 것 같아요. 한국 사회는 서울(수도권) 중심이기 때문에, 웬만큼 충격적이지 않으면 지방의 이야기는 언론의 관심을 쉽게 끌기 어려운 모습이 보이는데요.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행히 상담소에서 다루는 사건 몇몇은 공론화되었어요. 그런데, 저는 이슈화 된 후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서울이었다면 피해자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을 받거나 문제 해결이 더 빨랐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어, 저는 최근 부산에서 발생한 여성 장애인 활동가 성폭력 사건을 지원한 경험이 있는데요. 이 건은 장애인 연대 단체 대표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에요. 피해자가 몇 년간 수없이 많이 호소했지만, 단체끼리 연대가 강한 지방 특성 때문에 목소리가 뻗어나가지 못했어요. 피해를 얘기하는 데만 3년이 걸렸죠. 그 후 서울의 대규모 장애인권단체에서 해당 사안을 인지했지만, 그 심각성을 이해하고 진상을 조사하는 데 2년이 더 걸렸어요. 저는 이 과정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서울이었다면 그 단체에 조금 더 빨리 다가갔을 텐데,’ ‘피해자가 서울에서는 더 많은 연대와 지지를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서울(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를 경험하는 순간이 많은데, 피해자가 가질 수 없는 취약성 때문에 그 힘듦이 배가되었을 것 같아요. 조금 무거운 질문이지만, 활동가 님이 생각하시는 해결을 위한 노력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상담소가 진행하는 활동을 먼저 말씀드리면, 저희는 지역 단위 안에만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해요. 지방 기관끼리 연대하거나 혹은 전국 단위로 공론화하려고 시도합니다. 예를 들어, 대책위원회를 꾸려 사건을 정리한 다음 의제와 관련된 단체와 접촉해요. 또, 다른 지역의 기관과 사건을 공유하면서 해결의 네트워크를 확장하기도 합니다. 방금 말씀드린 여성 장애인 활동가 성폭력 사건 역시 지방 기관의 이권 때문에 부산 내에서는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잖아요? 그런 일이 또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요. 이런 과정을 통해 연대와 지지,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자원을 넓혀가고 있어요.
이것도 쉽게 대답하기 어려우실 수 있지만, 활동가의 정신적 외상에 관한 문제에도 대응책을 넘어선 해결책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가장 큰 문제는 ‘혼자만의 문제’로 남겨둔다는 점이에요. 혼자 떠안을수록 번아웃은 크게 오기 때문에 외부로 발산할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어요. 피해자처럼 상담 인력에게도 지지 자원이 필요한 셈이죠. 우리끼리는 회의를 하면서 일부러 서로 이야기를 나누려 해요.
사실 활동가의 감정적 소진을 예방하는 방법을 꽤 많이 물어보시는데, 사실 유일한 해결책은 ‘인력과 예산 확충’이에요. 한 명이라도 더 일을 나누고 경제적으로 조금이라도 더 지원된다면, 소위 말하는 그런 인프라가 늘어난다면, 활동가의 감정적 부담은 어느 정도 해소될 수밖에 없어요.
말씀하신 인력과 예산 확충, 결국 사람들이 더 많이 관심을 갖고 개입해야 가능할 것 같은데요. 그런 점에서 활동가 님이 꼭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아마 이 인터뷰의 전반적인 취지일 텐데요. 여러분, 지금은 반성폭력과 젠더폭력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상담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피해자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즉, 한 명이라도 나를 지지하고 나와 연대하려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성폭력 피해지원 활동가가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유도 같은 맥락인데요. 문제의 해결을 위해 대단하고 어려운 부분도 필요하지만, 결국 모든 것의 출발점은 ‘관심과 끌어안기’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도, 그렇지 않은 분들도 반성폭력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시간내어 인터뷰에 응해주신 차가영 활동가님께 감사를 전하며 인터뷰는 마무리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부산성폭력상담소의 차가영 활동가를 통해 지방 성폭력상담소의 활동과 고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어요. 지역 단위의 상담소가 지닌 가장 큰 한계는 인력과 예산 부족, 그리고 의제에 대한 관심 결여였는데요. 지역에서 생활하는 성폭력 피해생존자가 온전한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지방 활동가가 안정적인 지원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전국적인 관심과 연대가 더욱 필요합니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자원활동가 기자단 틈의 스텔라 님이 작성해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