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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상담소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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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나 자신을 단단히 다지는 시간, <4주완성!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 활동가 후기
  • 2024-04-30
  • 791


회원홍보팀 활동가로서 이번 프로그램을 기획한 1인이기도 하지만, 사실 저는 자기방어훈련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기방어훈련은 상담소에서 반성폭력운동의 중요한 맥락과 역사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이 듣기만 했고, 그래서 많이 궁금했지요. 그러니까 이번 <4주완성!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은 저 개인의 사심 채우기를 위한 기획이기도 했어요.

동시에 팀에서 주목했던 것은 바로 ‘시기’였습니다. 작년, 너무나도 많은 사건이 ‘이상동기 사건’으로 싸잡아 묶였고, 그 과정에서 어김없이 반복된 여성혐오와 여성폭력은 가려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시기에 두려움 혹은 분노, 어쩌면 무기력에 휩싸여 있을 여성들에게 자신감과 힘을 채울 자리가 필요하다고, 그리고 그건 틀림없이 지금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 자기방어훈련을 들여온 시조새(?)로서 상담소가 강조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요. 자기방어훈련은 여성들에게 공격 상황에 맞설 수 있는 마음가짐을 새기고 더 다양한 몸과 활동을 상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폭력/성폭력의 예방과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둘은 매우 다릅니다. 공격에 대응하는 법을 배운 사람이든 아니든 피해의 원인은 결코 그에게 있지 않습니다. 폭력은 언제나 행하는 이의 잘못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방어훈련이 가리키는 방향은 ‘일을 크게 만들어서는 안 되고’ ‘언제나 조용하고 얌전해야 하며’ ‘수동적이어야 하는’ 우리네 사회의 여성들이 이같은 억압을 깨고,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상황에 대응할 용기와 몸을 통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확장하자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에서는 단순히 호신술을 배우고 실습하는 것을 넘어, 이론 강의 역시 중요하게 다룹니다. 이번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자기방어훈련에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는 것, 자기방어의 목적은 싸움보다는 안전으로 돌아가기라는 것, ‘여성주의'를 덧붙여야 하는 이유 등 자기방어훈련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배웠습니다. 대응이란 공격 태세 스위치를 껐다 켜는 것이 아니라 다이얼을 돌리듯 상황에 맞게 정도를 결정하고 행하는 느낌이라는 것도요.


저는 이 부분이 참 인상 깊었는데요. 만화책 보는 게 취미인 저는, 등장인물들이 어떤 갈등을 마주하고 갑자기 각성해서는 전에 없던 힘을 발휘해 상황을 해결하는 장면을 많이 봐 왔습니다. 비단 만화책 뿐 아니라 많은 미디어에서 ‘정의로운 폭력’을 그렇게 다루고 있지요.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다양한 대응법을 상상하기 어렵게 만드는 연출이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만화 주인공이 아니어서 그런 폭발적인 힘을 내는 재주도 없고, 자주 겪지 않는 예외적인 상황을 마주하면 빠르게 판단하고 대응하기보다 대부분 얼어붙습니다. 이에 더불어, 저를 포함한 많은 여성이 ‘내가 생각하는 그 상황이 맞나?’ 생각하며 자신의 직감을 부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단계, 단계별로 어떻게 대응할지 정하는 다이얼의 이미지가 강하게 와닿더라고요. 스위치보다 다이얼이 몸을 움직이는 데에 더 쉽겠구나! 싶어서요.

직접 몸을 써서 실습해보는 훈련 시간도 이 다이얼의 단계를 다양하게 적용하며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만만해보이지 않도록 기세있게(두둥!) 서 있는 방법을 연습했고, 상대의 동태를 지켜보며 거리를 유지하는 법, 가슴께에 손을 올리고 상대를 진정시키거나 단호하게 거절하는 법을 거쳐 손목이나 멱살, 뒷덜미를 잡혔을 때, 상대의 힘에 밀쳐져 자빠졌을 때 빠져나오는 방법, 도망치지 못하고 맞서게 되었을 때 도움이 될 손바닥 치기, 밀치기, 니킥까지 비교적 온건한 방법부터 과격한 방법까지 고루 반복적으로 훈련했습니다.

여러 상황을 상상하고 대응법을 토론해보는 ‘대응 시나리오 작성’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요. 아래 세 가지 상황을 설정해두고 네 명씩 짝을 지어, 어떤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세세하게 쪼개어 보며 정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 대응을 넘어 사회적, 제도적으로는 어떤 것을 요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했어요. 이 글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은 어떤 의견을 들려주실지 궁금하네요:) 

 - 집에 혼자 있는데 문 밖에 수상한 인기척이 들린다

 - 밤 늦게 귀가하는데 누군가가 따라오는 느낌이 든다

 - 지하철 안, 서 있는데 누군가의 손이 자꾸 내 엉덩이에 스친다


대응 시나리오 작성 시간에 눈에 띄었던 것은 경청하고 공감하는 참여자들의 자세였습니다. 한 번 쯤은 겪어보았을 상황이 제시되어 그런지, 경험했던 과거의 일들이 마구 쏟아졌어요. ‘무서웠겠다’, ‘놀랐겠다’며 경험을 복기하는 서로를 진정시키고 마음을 보듬어주는 장면이 여기저기서 보였습니다. 프로그램 이전에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타인이지만, 과거의 경험과 페미니스트라는 공통점으로 연결되어 서로의 마음을 북돋는 모습에 힘이 생겼습니다.

사실 이런 분위기는 이번 프로그램 전반적으로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신체 활동을 할 때에는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앞사람에게 박수를 쳐주기도 하고, 서로 자세를 봐주며 ‘맞아요. 잘 하셨어요!’ ‘너무 좋은데 발을 좀 더 앞으로 빼면 좋을 것 같아요’와 같은 칭찬과 조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학창시절, 조금만 느리고 우스꽝스러워도 놀림받던 체육시간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후에 1회차에서 3회차까지의 강의를 맡아준 피프티핏의 데조로 님은 이번 프로그램이 달성한 세 가지 목표 중 하나로 ‘공동체의 지지와 연대’를 꼽아주었어요. 참가자 분들이 단순히 용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서로가 서로의 지지기반이 되고 자원이 되는 시간을 경험한 것이 좋았다고요. 4회차에서 목격자의 마음가짐에 대해 다룰 때에도 참여자분들의 집중력이 엄청났습니다. 여성폭력에 함께 대항하는 커뮤니티, 공동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요. 더 많은 여성 시민이 이런 공동체를 겪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획자로서도 이번 <4주 완성! 여성주의 자기방어훈련>을 통해 참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원래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는데요, 신기하게도 평소 운동을 할 때보다 자기방어훈련을 하는 시간이 유독 더 즐겁더라고요. 처음에는 그저 안전한 공간에서 안전한 사람들과 함께 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세 번째 수업에서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세 번째 수업에서는 다른 참가자분과 1대1로 멱살, 뒷덜미를 잡혔을 때 빠져나오는 법을 연습했어요. 한창 연습하는 와중에 저의 짝꿍이 갑자기 눈을 반짝이며 격양된 목소리로 얘기하더라고요. “늘 제압을 당하기만 했는데, 저도 이제 제압하는 법을 알았어요!”라고요. 그 눈빛과 에너지란…!! 그 때 느낀 기분은 그냥 뿌듯함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마주한 이의 기쁨이 제게 전해진 것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제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느꼈던 즐거움들은 여러 사람의 그러한 기쁨이 모이고 얽혀 만들어 낸 것일 테죠.


수료식은 조금 특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어떤 것을 배웠는지, '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는지, 인상깊었던 것이 있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자기방어훈련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곰곰히 생각해보았어요. 그것을 바탕으로 직접! 내가 나에게 주는 수료증을 써 보았습니다ㅎㅎ 


사실 네 차례의 자기방어훈련이 나의 신체를 드라마틱하게 강인하게 만들어주지는 못 할 거예요. 안전하지 못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에 여전히 얼어붙고 우왕좌왕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제 그로인해 좌절하거나 마냥 겁먹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네 번의 훈련으로, 저는 이제 대응해야할 ‘근거’를 갖게 되었거든요. 머리로 그리고 몸으로 익힌 자기방어 기술은 제가 위협적인 상황에서 당당하게 대응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줄 것입니다. 이제, 결코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거예요😤



<이 글은 회원홍보팀 산 활동가가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