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안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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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4. [KBS] '성폭력' 수사 기관입니까? 가해 기관입니까?
기사제목 : '성폭력' 수사 기관입니까? 가해 기관입니까?
보도날짜 : 2018년 4월 4일
언론신문 : KBS
보도기자 : 류란 기자,김채린 기자
기사원문 :
1.9%.
최근 정부에서 조사한([바로가기] 여성가족부 2016년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성폭력 피해 신고율이다.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 같다", "남에게 알려지는 게 두렵고 부끄럽다", "보복이나 협박이 두렵다"는 생각들이 신고를 가로막는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가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고 수사기관에 자신의 피해를 알리는 것은, 철저하고 공정한 수사를 통해 최소한의 사법적 정의가 세워지길 기대하는 마음에서다. 하지만 수사와 재판 과정이 피해자들에게 더 큰 상처로 돌아오기도 한다. 가해자는 다름 아닌 경찰과 검사, 판사다. 성폭력 피해 고소인 4명 중 1명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겪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피해자들을 면담하고 지원하는 변호사, 연구자들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피해자, 가해자 되다
[이미정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성폭행 사건, 성폭력 사건은 사실 경찰관, 수사 검사, 법관들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조사를 받거나 공판을 거치는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이 굉장히 좀 당황스럽고 고통스러운 일들을 많이 당했죠.
[김보화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한 검사가 조사 과정에서 성폭력 피해자에게 "네가 아빠를 유혹한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든지. "왜 모텔에 따라갔느냐?", "네가 좋아한 거 아니냐?" 이런 방식으로 계속 피해 책임을 묻고. 경찰 수사관이 팔짱을 끼고 앉아서 "예전에 보니까 성매매 업소에서 몇 년 동안 일했던데." 이렇게 대놓고 성 이력이라고 하는 것에 관해서 물어보고.
[신진희 /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
폭행당한 사람한테 왜 폭행당했느냐는 걸 질문하는 거잖아요. 질문을 할 수 있지만, 질문하는 그 표현이 피해자한테 자꾸 책임을 추궁하는 듯한 그런 뉘앙스로 질문하는 것은 잘못이다.
◆ 가해자 편드는 수사기관
[김보화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가해자의 감정에 이입하는 분들을 계속 만나는 거예요. 이를테면 경찰이 "그 사람 불쌍하더라. 네가 좀 좋게 봐주지 그러느냐?" 검사가 "내가 볼 때는 그런 일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던데? 네가 좀 예민하다." 그런 발언들을 하고. 그랬을 때 이미 피해자는 평정심을 갖고 진술을 할 수가 없어요. 왜냐면 저 경찰, 저 검사는 이미 가해자에게 공감하고 있다는 걸 너무 느끼기 때문에.
[이미정 / 한국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가해자가 특정돼서 조사를 받으러 왔는데 그 사람이 피해자에게 사과하니까, 경찰이 가해자에게 "뭐 그렇게까지 사과를 하느냐"라고 말하는, 굉장히 비전문적인 태도를 보여서, 피해자와 부모님이 충격받고 분노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 "피해자답지 않다"…합리를 가장한 편견
[신진희 /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
가해자 측 변호인들이 피해자의 SNS를 다 뒤져요. 찾아내요. 구글링을 통해서, 피해자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내용을. 그걸 보면서 "피해자라면 왜 이렇게 멀쩡하게 일상생활을 하느냐?" 이런 질문 되게 많이 하세요.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그런 피해를 입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생활을 할 수가 있고 이렇게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여행을 가고 그러냐. 피해자라면 이럴 수 없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들이 있는 거예요.
[김보화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가해자가 공인이라고 한다면 늘 따라오는 질문들. "네가 가해자를 좋아했는데 그 남성이 너를 봐주지 않아서 복수심에 그러는 건 아니냐?" 어떤 때는 (조사 과정에서) 또박또박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얘기하면 "피해자답지 않게 왜 이렇게 당황함이 없니?"라고 묻기도 하고 또 반대로 어떤 경우에는 혼란스러워서 울고, 기억이 잘 안 나요, 너무 무서워요. 이렇게 얘기를 하면 "진술에 신빙성이 없고 정확히 말을 하지 못 한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든지.
◆ '처녀 진단서'까지 요구…"갈가리 찢어지는 느낌"
[김보화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10대 청소년이 어떤 운동선수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는데, 현장검증한다고 하면서 경찰이 "자동차 뒷좌석에 그때 그 재연해봐라. 그때 그 상황을." 현장검증이라는 건 아시겠지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고 보고 있는데, 그걸 재연해보라고. 또 재판 도중에 판사가 "그런 자세로 강간이 가능했다는 것이 납득이 안 된다. 그 자세를 여기서(법정에서) 재연해봐라." 이게 과연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있는, 피해자의 권리를 지키려고 하는 수사 과정인가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고. 불과 5년, 10년 전만 해도 "지금이 몇 번째 성관계냐?"라고 물어요. 어떤 경우에는 처음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처녀막이 터졌다는 진단서를 떼어 가야 할 때도 있었고요.
[신진희 /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
그러고 나면 피해자가 마지막에 저희 피해자 변호사한테 하는 말이, "내가 이거 왜 신고했는지 모르겠다, 내가 이런 거 알았으면 신고 안 했을 텐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자꾸 피해자를 추궁하니까요. 해체되는 거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갈가리 찢어지는 그런 느낌을 받는 거죠. 심리적으로는.
◆ 2차 피해 방지 제도 있지만…
[이미정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형사사법절차에서의 2차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에, 이를 완화하기 위한 좋은 제도들은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성폭력처벌법 24조는 피해자의 신원이나 사생활 비밀에 대한 누설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를 배려해야 한다", 그래서 "피해자와 명예와 인격을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고 사적 비밀을 보장해야 한다." 이런 것들. (성폭력처벌법 29조) 다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규입니다.
[신진희 / 피해자 국선전담변호사]
피해자한테 증인 신문을 할 때 (법규대로) "그렇게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인격을 모독하는 그런 질문을 하지 말라"고 바로바로 제지하는 판사님들도 굉장히 많으세요. 하지만 한편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 민감성을 잘 이해를 못 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성폭력 사건은 일반 사건과는 좀 많이 다르거든요. 반드시 교육이 선행돼야 하는 그런 분야가 아닌가.
[이미정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성폭력 수사) 전담 경찰 같은 경우 거기에 걸맞은 트레이닝이 있어야 하는데, 교육을 안 받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검사나 판사 같은 경우는 전담 부서에 있기는 하지만 사실은 머무는 기간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검사 같은 분들은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담이지만 이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일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정말 타이틀에 맞는, '전담'에 맞는 인력, 교육 제공,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다.
[김보화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미국이나 영국 같은 경우에는 일명 '방패법'(Rape shield law)이라고 하는 것이 만들어져 있어요. 이미 수십 년 전에. 성폭력 수사 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과거 성 이력 혹은 성적 행동에 대해서 묻지 못하게 되어 있는 법 조항입니다. 과거에 어떤 여성이었든지 간에 지금의 피해 호소에 대해서 국가와 법이 보호하고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법으로 명시한 것이죠. 한국에서도 이런 법들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강제할지, 진지하게 얘기돼야 할 때인 것 같아요.
영국과 미국의 ‘방패법’ 관련 조항들.
◆ 성폭력 피해자, 그들의 용기를 대우하는 법
[이미정 /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드러내도 큰 고통을 받지 않고 조사와 재판을 다 끝내고 가해자가 응당한 처벌을 받는 거. 이게 사실은 목표인데 지금은 굉장히 힘들죠. 신고하겠다, 고소하겠다, 그 순간부터 고난이 시작되는 거죠. 전장에, 전투장에 들어간 거예요. 이렇게 나서는 분들은 굉장히 용감하신 분들입니다. 이분들이 굉장히 사실 공익을 위해서 일하시는 거예요.
[김보화 /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굉장히 감사하고 감동적인 경찰, 검찰도 많이 계시지만, 저희는 또 이렇게 힘든 사례들도 많이 만나다 보니 그분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피해자들에게 너무 깊게 남을 수 있다는 것을 좀 심각하게 각인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원문링크 :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629323&ref=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