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오늘(2018년 2월 14일) 정오 일본대사관 앞에서 <제1322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하 '수요시위'>가 진행되었습니다.
수요시위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주최하였고, 오늘의 행사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평화의샘이 주관했습니다.
추운 겨울 날씨를 대비하며 핫팻 한 상자를 챙겨갔는데, 다행히 한결 포근한 공기 속에서 수요시위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설 연휴 직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참여자분들께서 자리를 가득 채워주셨습니다.
사회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 피해자보호시설 열림터 백목련, 유네 활동가가 맡았습니다.
본격적으로 수요시위를 시작하기 전에
당일 오전에 별세하신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김모 할머니를 추모하며 잠시 묵념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분위기를 바꿔
매번 수요시위를 여는 노래 <바위처럼>과 함께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평화의샘 활동가 일동의 힘찬 율동이 있었습니다.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자꾸나
바람에 흔들리는건
뿌리가 얕은 갈대일뿐
대지에 깊이 박힌 저 바위는
굳세게도 서 있으리
우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가며
마침내 올 해방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
이어서 김미순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소장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아래는 인사말 전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천주교성폭력상담소에서 성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가 김미순 입니다.
오늘은 1322회차 이자 27년차를 맞이하는 수요시위입니다.
최근 우리사회에 #미투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혹자는 왜 대한민국에는 미투운동이 활발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의 증언을 시작으로 일본에 의한 성적착취의 잔악성을 폭로하는 말하기가 이어져왔고, 우리 할머니들은 베트남, 필리핀, 중국, 대만 등 다른 나라에서도 만행되었던 일본군성노예제 실상을 밝히는 피해생존자들의 말하기를 추동해왔습니다.
뿐만아니라 아직 말하지 못하고 있는 분들에게 입막음을 했던 해당 정부들의 반성과 해결을 위한 활동들도 하고 계십니다.
이제 누가 우리에게 너희 나라는 왜 미투운동이 없냐고 하면 다시 말해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미투 운동은 27년 전에 이미 시작했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다만 너희와 비슷한 것은 성폭력피해 생존자의 입을 막으려는 문화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주목할 지점은 왜 미투 운동에 동참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내가, 내 주변사람들이, 이 사회가 어떠한 방법으로 말하지 못하게 했는지 주목하고 변화를 촉구해야 하는 시기이다“라고 말입니다.
2015년 12월 31일 한국과 일본 정부는 최종적불가역적 합의라고 선언하면서 우리의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이 합의로 2014년부터 일본군 위안부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보류되었습니다.
전국에 세워지는 소녀상 건립을 저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정부는 일본의 눈치를 보며 다시 우리의 입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주 8일에 주한미군 기지촌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국가손해배상 책임의 일부를 인정하는 판결이 있었습니다. 재판부는 정부가 기지촌 내 성매매를 방치 또는 묵인하거나 적극적으로 조장하고 정당화했으며,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성적 자기결정권과 존엄성을 외화 획득 및 군사동맹 강화 수단으로 삼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재판부의 판결을 환영합니다. 늦었지만 우리 정부는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대한 사과와 배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수요일 마다 모여 일본과 정부에 공식적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수요시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려 26년을 넘게 말입니다.
대학생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스티로품 위에서 소녀상을 지키고 있습니다. 죄송하고 뜨거운 연대감을 전합니다.
이제 당당한 증언으로 일본의 잔혹한 실상을 알렸던 할머니들이 일본의 사과를 듣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26년을 투쟁했고, 앞으로 몇 년을 더 투쟁해야 할지 모를 이 길에 저희들은 살아남은 자로서 일본의 성의있는 사과를 받기 위헤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의 경과보고가 있었습니다.
아래는 본 상담소 트위터 계정으로 실시간 중계했던 경과보고 내용의 일부입니다.
"이제 30명의 생존자가 남아있습니다. 이 숫자에 무슨 의미가 있나 생각해보게 됩니다. 우리는 당시 일본군 성노예제로 끌려간 여성의 숫자가 얼만큼인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더 이상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져야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정한 사죄와 해방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라 그것이 가능하도록 만든 우리 사회의 문화와 우리들의 잘못입니다."
"지금도 스스로 피해자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전쟁 중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그들이 '나도 피해자'라고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대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주시기 바랍니다."
가극단 미래와 배우 이영매님의 문화공연 <평화가 춤춘다 통일이다!>도 진행되었습니다.
위안부 성노예제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의 시를 음악극으로 재구성한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평화가 춤춘다. 통일이다. / 길원옥
열세 살
평양
나 그 때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전쟁이
남자가
나를 빼앗긴다는 것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남의 나라 식민지가 되는 것이
내 인생을
그렇게
긴 어둠의 시간으로 덮어버릴 줄
몰랐습니다.
감악소에 갇힌 아버지를 빼낼 수 있는 돈 10원,
그 돈을 벌어서
아버지 나오게 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음이 콩닥거렸습니다.
아버지를 나오게 해드릴 수 있다는 믿음이
나를 어른이라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엄마에게도, 오빠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며 내 앞에 나타난 낮선 사람을 따라 나섰습니다.
감악소 벌금 10원을 벌고 싶어…
너무 아팠습니다.
내게 닥치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어
소리치고, 구르고, 버팅기고
하지만 내게 돌아오는 것은
구타와 고문과 감금이었습니다.
열세 살 어린 나이로
견기기 너무 힘들어
“엄마, 엄마” 소리쳤습니다.
저 멀리 평양에 있을 내 엄마에게
내 통곡소리가 들리기를 바라며
그렇게…
1945년 8월 15일,
남들은 해방이랍니다.
남들은 그 추운 겨울을 이겼더니 봄이 왔답니다.
남들은 그 어두운 터널을 지났더니 빛이 비춘다고 합니다.
하지만,
내겐 아버지 감악소 벌금 10원이 없었습니다.
다시 내겐
또 다른 어둠의 터널이 시작되고,
추운 겨울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내게 10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삼팔선에 가로막힌 휴전선은
다시 내 고향, 내 아버지를 빼앗아 가 버리고,
또 다시 전쟁이랍니다.
와~ 와~ 전쟁을 하랍니다.
무기를 사들이랍니다.
그것이 평화랍니다.
아니야!!!
휴전선에 봄이 와야 진정한 해방이야!!!!
휴전선에 새벽이 와야 비로소 아침이야!!!!
비로소 평화야!!!
아 ~
나비가 되어 날고 싶습니다.
아직 해방 받지 못한 이 몸.
늙은 몸이지만
헐헐 날아 고향으로 가고 싶습니다.
휴전선이 가로 막은들 못가겠습니까?
철조망 가시덤불에 찢겨
내 몸뚱아리 피투성이 된들 못가겠습니까?
가는 길에
분단도 허물고,
휴전선 가시덤불도 걷어치우고
‘휴전’을 ‘평화’로 ‘통일’로 만드는 일인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습니까?
열세 살 이별 이후
생각만 해도 아프던 내 고향, 내 아버지 무덤가에
감악소 벌금 10원을 내어드리며 내 손으로 아버지 해방시켜 드리렵니다.
아~ 보입니다.
저기 저 보통강 가에 놀고 있는 열세 살 철부지 길원옥이가
식민지의 고통도 걷어치우고,
‘위안부’라는 아픈 굴레도 다 벗어버리고,
전쟁의 공포도 전혀 없이
평화롭게 친구들과 동네에서 고무줄 놀이 하고 있는 원옥이가 보입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탓하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듯한 남자 교사의 발언을 듣고 처음 문제의식을 느꼈고 앞으로도 사회에 힘을 보태겠다는 평화의샘 남다영 활동가의 발언
어린 아이도 내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사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왜 일본 정부는 단 한번도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가 의문을 던지며 우리가 올바른 역사를 알 수 있도록 용기내어 세상을 향해 말해주신 할머니들께 감사드린다는 닥공시대 박연희님 발언
대학생들이 앞장 서서 더 많은 시민들과 함께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외치기 위하여 3월 17일 시청광장에서 2018 평화나비런이라는 기부마라톤을 진행할 것이라는 김소향 활동가의 발언
한 학기 동안 일본군 성노예제를 주제로 한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 과정에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후원금을 모은 것을 알고 이를 직접 전달하고자 나왔다는 서울여중 역사교사 이바름님의 발언
우리는 절대 잊지 않을 것이고, 기억만 하지 않고 할머니들을 위해 계속해서 행동할 것이라고 다짐한 부천에서 온 예비 고1 김경림님의 발언
총 다섯 분의 자유발언도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과 평화의샘 김태옥 활동가가 성명서를 낭독하였습니다.
27년 간 외쳐온 우리들의 요구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며 후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일본정부는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에게 공식사죄하고 법적배상하라!
일본정부는 일본군성노예제문제에 대한 역사왜곡을 중단하고 올바른 역사를 교육하라!
한국정부는 2015 한일합의를 즉각 폐기하고 피해자중심적 문제해결을 추진하라!
양국정부는 피해생존자에게 직접 사죄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피해자의 존엄성 회복을 위해 즉시 행동하라!
<이 글은 본 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 앎이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