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국제 연대
[성명]
성폭력 피해자에게 이중잣대 적용한
반인권, 반여성적인 판결을 규탄하며,
이에 대한 정영환 국민의힘 공관위원장과 당의 공식적인 해명을 요구한다!
지난 8일 정영환 국민의힘 공관위원장이 판사 시절인 1991년, 성매매 피해 여성에게 △흉기 협박 △강간 시도 △피해자 상해 등을 한 이유로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한국일보, 2024.01.08.). 기사가 나온 후 정 위원장은 한국일보에 문자메세지로 “판결은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리와 관련된 법리적 문제 때문인 것 같다”며 “성인지도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해명했다고 후속 보도가 나왔다(한국일보, 2024.01.08.).
해당 사건의 판결문을 확인하면, 재판부는 기소된 혐의인 흉기 협박, 강간 시도, 피해자 상해를 모두 인정하면서도 “피해자가 겉으로는 한 번 더 성교하는 걸 거부했어도 실제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오해하기 충분해” 피고인을 강간치상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가해자가 오해하여 성교를 하려고 한 과정에서 상해를 입힌 것이므로, 수단이 지나쳤지만 피해자가 뿌리칠 수 있었고, 목적도 비디오테이프에서 본 것과 같은 방법으로 성교를 하기 위함이었으며, 강간도 미수에 그쳤다는 이유로 강간치상을 무죄로 선고했다. 최대한 양보하여 관례적으로 ‘피해자에게 저항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 협박이 있어야 강간죄가 성립된다’는 강간죄의 최협의설을 적용한다 하더라도 이는 맞지 않은 판결이다. 과도를 목에 들이대며 말을 듣지 않으면 찌르겠다고 협박하고, 비닐테이프로 피해자의 두 손을 묶은 것은 명백히 폭행 또는 협박에 해당된다. 재판부는 이러한 범죄 사실이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피해자의 내심을 오해하였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피고인이 피해자의 속마음을 오해할 수 있었다고 든 근거는 △피고인과 피해자가 손님과 접대부의 관계였고, △피고인이 상당히 취한 상태였는데도 화대를 받고 따라나섰으며, △1회 성교 후에도 즉시 귀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가해자의 고의성 이전에 피해자의 순결함을 판단하여 가해자에게 무죄를 준 것이다. 재판부는 범죄 사실이 명백함에도 피해자가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유로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우리 사회의 부족한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성매매 여성은 성폭력·강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재판부의 수준 낮은 편견과 성인지 감수성을 확인할 수 있는 판결이다.
성매매 여성은 성폭력과 강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는가? 우리 사회가 「성매매방지법」을 만든 이유는 국가가 성매매를 방지하는 책임을 지고, 성매매 여성이 성매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기 위함이었다. 당시 해당 법이 없었던 시절이라는 걸 고려하더라도, 성매매 여성이라는 이유로 명백한 협박, 상해 사실에도 불구하고 강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는 사실은 성매매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국가가 방조하고 묵인했다는 뜻이다. 이러한 반인권적이고 반여성적인 판결을 내린 재판부의 일원으로서 정 위원장은 당연히 이에 대한 현재의 입장을 내놓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기사가 나온 후에도 해당 판결에 대해 반성하는 대신, 성인지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는 정 위원장의 성폭력과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 수준이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법 시행 이전 수준이라는 걸 보여줄 뿐이다. 또한 이러한 정 위원장의 입장을 정정하거나 해명하지 않고 있는 국민의힘은 매우 문제적이다. 공천관리위원장은 국회의원 후보자를 검증해야 하는 자리다. 국회의원 후보자는 성폭력에 대한 관점, 인권의식을 제대로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작 위원장 본인이 성폭력과 여성인권에 대해 제대로 된 인식을 갖추지 못했다. 이런 판결을 한 인물을 국민을 대변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세운 국민의힘을 주권자들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국민의힘은 당시 피해자를 포함해 잘못된 판결, 그리고 낙인과 편견으로 성폭력 피해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수많은 피해자들이 있음을 다시한번 뼈아프게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 2024년은 성매매처벌법과 성매매피해자보호법이 제정 20주년을 맞는 해이다. 입법기관인 국회가 지난 20주년을 평가하고, 반성하며, 앞으로를 준비해야하는 때이다. 이를 해야할 국회를 구성할 총선을 앞두고 여전히 성폭력과 여성인권에 대한 인식이 없는 정 위원장과 국민의힘을 규탄한다. 그리고 하루빨리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수준 낮은 편견과 이중잣대로 내린 판결에 대해 반성과 공식적인 해명을 강력히 요구한다.
2024년 1월 10일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2024 총선! 여성 주권자 행동 ‘어퍼’(전국 146개 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