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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교육

여성주의적 담론생산을 위한 연구와 반성폭력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공유합니다.
[2008]임신과 낙태에 있어 장애여성의 선택권
  • 2008-10-10
  • 3963
임신과 낙태에 있어 장애여성의 선택권
 
장애여성공감 지성
 
이명박대통령이 일전에 ‘낙태를 근본적으로 반대하지만 장애아 임신 등에 있어 불가피하게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발언을 해 많은 사람들의 반발을 산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 그의 말 자체보다 더 우려됐던 것은 그 발언을 두고 벌어진 엄청난 파장이었다. 한 정치인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기 위해, 그의 발언이 가지는 엄청난 파급효과를 잠재우기 위해, 그것을 상쇄시킬 수 있을 만큼 단순하고 확실한 반대의 논리들이 급속히 빠른 속도로 여기 저기 튀어나오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이런 과정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거나 편파적으로 몰고 가기 십상일 테다.
 
무엇을 문제로 볼 것인가? : 장애/낙태/생명존중 숨은 그림 찾기
 
이따금 언론이나 텔레비전에서 장애아동들은 물론 그들을 가진 (장애유무를 떠나)여성/어머니들이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의 차별과 폭력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음이 보도되고 있지만, 이들의 딜레마와 고통은 개인의 운명이나 희생적 모성으로 환원되고, 쉽게 관심에서 사라져 버리지 않았던가?

장애인권진영은 이명박발언 후 ‘차리리 장애인을 죽여라’라는 문구가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등 분노를 표출했다. 우리사회 장애인들의 주거, 의료, 교육, 노동 등에서의 장애인 배제가 장애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에서, 이명박의 발언은 국가의 이와 같은 방임적 행태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인 것이었다.

한편, 기존에 낙태 찬반 논쟁이 일어날 때 마다 정작 행위자인 여성의 시각은 언제나 기각되어온 것처럼 장애/낙태 논쟁에서도 장애를 가진 여성/어머니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드러나지 않는다. 여성이 비장애여성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여성의 낙태선택권과 장애인의 출생권 사이에서 장애여성의 입장은 어떻게 드러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쟁이 필요하다. 나아가 장애인권진영 등 이명박의 발언에 분노한 사람들은 ‘여성’의 입장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 것인지에 대해서도.
 
정상중심의 사회에서 ‘생명존중’이라는 허구
 
우리나라의 경우 낙태를 범죄하하는 가운데 일부 낙태를 허용하는 특별법 형식의 모자보건법에서 의학적, 우생학적, 윤리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의사가 본인과 배우자의 동의를 얻어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먼저, 크게 낙태를 금지하는 규제정책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것이 생명경시풍조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정작 국가가 모성보호 및 양육에 대한 제대로 된 담론이나 정책 등을 가지고 있지 않고 특히 장애인/청소녀/성소수자/비혼모 등 ‘소수자’를 위한 사회적 안정망이 부재한 상태에서 ‘생명존중’이란 추상적인 말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해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자보건법 상 낙태허용 사유 중 ‘우생학적 정당화 사유’ 즉 국가가 장애아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을 때 낙태를 합법으로 인정하겠다는 사고는 지극히 정상성 중심적인 국가이데올로기의 폭력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생학적 정당화 사유’는 유전적인 소질, 또는 특수 사정에 의하여 태아가 치료 불가능한 중한 질병에 거렸거나 확실한 근거 하에 선천성 장애가 있는 경우 낙태 허용으로 적용되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에도 이 사유를 들어 낙태를 허용하고 있는 나라가 있으며 태아의 ‘손상’의 개연성과 강도를 엄격하게 규정하는 방법으로 우생학적 사유를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각국이 우생학적 정당화 사유 요인들에 대한 뚜렷한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장애나 질병 각각의 허용여부를 섬세하게 분류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리고 설령 뚜렷한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한다고 해도 여전히 우생학이 낙태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뚜렷한 과학적 근거란 애초에 성립되기 불가능 한 것이며, 결국 우생학이라는 발상 자체가 비장애/정상중심 사고의 결과가 아닌가?  

국가마다 우생학적 정당화 사유를 인정하는 배경에는 부분적으로 여성/어머니 또는 부모에게 아이의 질병이나 ‘손상’으로 받게 될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가 숨어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것은 왜 태어날 생명의 질병/장애/손상의 유무에만 있는가? 또 여기서의 ‘양육’이란 개념은 어떤 여성의 시각에서만 구성되고 있는가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
 
이 속에서 장애여성의 선택권은?
 
중증의 지적장애 및 발달장애, 신체적 장애를 가진 여성들에게는 임신과 출산의 가능성 자체를 막아야 한다며 가족이나 보호자들에 의해 자궁적출 및 불임시술이 공공연하게 행해지고 있다. 얼마 전에도 필자가 활동하는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에 ‘중증지적장애를 가진 10대 딸이 생리를 시작했는데, 생리처리와 임신의 우려 때문에 자궁적출을 해야하니 가능한 병원을 알아봐 줄 수 있냐’는 어머니의 상담전화가 걸려와 난감했던 적이 있다. 의학적 방법을 동원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가족이나 보호자들은 지적장애여성들의 성과 삶 전반에 있어 엄청난 통제를 가하게 된다. 장애여성공감회원으로 있는 지체장애여성들 다수가 10대 때 한번쯤 가족이나 주변인들에 의해 자궁적출의 시도를 경험했고, 결혼을 한 한 여성은 활동보조인으로부터 ‘아이는 낳을 생각도 말라’는 식의 조언 아닌 조언을 듣기도 한다.

거시적인 측면에서 위에서 이야기한 정상성중심의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장애여성들의 인권침해를 정당화한다. 또 장애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의 심각성, 장애/비장애를 막론하고 양육과 돌봄이 여성 개인의 몫으로 전가되는 젠더이분법구조 그리고 계급, 연령, 성정체성, 장애 등에 따른 차별적 문화가 ‘정상적 양육’이라는 규범을 공고히 하고 있는 상황 등. 이 속에서 장애여성은 너무나 당연히 출산과 양육에 대한 선택으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다.
 
임신과 양육, 낙태에 있어 장애여성의 선택권 보장을 위한 구체적 밑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다만, 얼만 전 이명박 발언을 둘러싸고 보여졌던 것과 같이 장애인의 출생할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반낙태’로 단순화되는 것과 같은 오류는 피해야 할 것이다. 장애여성을 포함해 주변화된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고, 무엇을 문제로 볼 것인가를 짚는 데서부터 다양한 진영 간의 깊은 소통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장애여성들의 ‘선택’이 존중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정상’ 혹은 ‘당연하다’라고 여겨지는 규범이나 윤리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적극적으로 ‘다른’ 규범과 윤리를 상상해 보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 글은 한국성폭력상담소 계간지 「나눔터」61호(2008년 가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