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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교육

여성주의적 담론생산을 위한 연구와 반성폭력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공유합니다.
[후기]연속 집담회 : 피해와 생계 사이 1회차 '노동은 비정규, 성희롱은 정규?'
  • 2019-05-30
  • 2351

5월 9일 목요일 오후 7시,  「피해와 생계 사이」 연속 집담회 1회 <노동은 비정규, 성희롱은 정규?>가 서울 망원동에 위치한 오네긴하우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통계청의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일하는 여성 근로자의 41%가 비정규직이고(10명 중 4명) 임금은 남성에 비해 70%도 못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투 운동’ 이후 사회 전반에 걸쳐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직장 내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는데요, 직장 내 성희롱 신고 건수는 해가 바뀌면서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신고 건수와 같이 겉으로 보여지는 통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신입사원, 계약직, 프리랜서, 아르바이트 등을 하는 여성들은 직장 내/업무관계상 지위가 낮거나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성폭력 피해를 입어도 신고는커녕 문제 제기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 집담회를 통해 성폭력의 원인 및 문제는 권력관계를 이용한 가해자에 있음을, 그리고 그것을 용인하는 성차별적 조직문화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더 나아가 이는 우리 사회 전반의 오래된 구조적 문제임을 다시 한 번 환기시키고자 합니다.


이번 1회차 집담회는 사회는 신아(한국성폭력상담소 성문화운동팀 활동가)님께서 맡아주셨고 패널로는 마루(인천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상담활동가), 도명화(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부위원장, 톨게이트노동자), 차소영(출판노조 출판노동자), 진진(불꽃페미액션 활동가)님께서 참여해주셨는데요.


저녁 7시가 가까워지면서, 오늘 이야기가 진행될 장소인 오네긴하우스에 사람들이 가득 차기 시작했습니다. 2시간 반에 걸쳐 나눴던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을 주제별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의 60.3%가 불리한 처우의 경험이 있음”

“20대일수록 / 근속 연수가 짧을수록 직장 내 성폭력 상담 비율이 높음”

[2018년 한국 여성 노동자회 평등의 전화 상담 사례집 분석 자료]


“여성일수록 / 비정규직일수록 2차 피해 경험률 높음”

 [2018년 여성가족부 조사]


첫 번째 주제 : 내가 일하는 일터의 구조


먼저 도명화님께서 이야기의 운을 떼셨는데요, 명화님은 서산 톨게이트에서 12년 동안 요금 수납원으로 근무하신 톨게이트 노동자입니다. 톨게이트는 전국에 440여개로 수납원들은 6700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서산 톨게이트와 같이 작은 곳에는 수납원이 20명 정도, 서울 등 차량 운행량이 많은 곳은 수납원이 100명 이상이나 된다고 해요.


톨게이트를 지나다 보면 크게 한국도로공사라고 쓰여 있어 톨게이트 노동자 = 한국도로공사 직원으로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실제 톨게이트 노동자는 외주 용역업체 직원이라고 합니다. 원청과 하청, 즉 2차 관계인 것이지요. 이는 톨게이트 사장과 톨게이트 노동자의 관계에도 비슷하게 적용되는데, 톨게이트 사장은 한국도로공사의 명예 퇴직자로, 도로공사에서는 명예 퇴직자에게 보상 차원으로 톨게이트 영업권을 준다고 해요. 주로 5~6년 계약이며 사장이 바뀌면서 동시에 업체도 바뀌는데 이때마다 직원들은 재고용에 대한 불안에 떨었었다 해요. 왜냐하면 업체에게 고용 승계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톨게이트 노동자들은 지속적인 간접 고용 환경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운영자로 오는 사장과 관리자는 대부분 남성으로 명화님께서 근무하시면서 업체가 4번 바뀌는 동안 단 한 번도 여자 사장을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해요. 반대로 그 지반을 이루고 있는 톨게이트 노동자들 대다수가 여성이었고 간접 고용된 비정규직이었죠.


톨게이트 수납원은 기본적으로 8시간 3교대 근무로 돈을 주고받는 단순한 수납 업무뿐만 아니라 기계에 달린 복잡한 버튼들을 이용해 차종을 구분하여 통행료를 산정하고 장애인 할인이나 화물차 심야 할인 등 기타 다양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관리자들은 톨게이트 수납원들이 통행료를 제대로 징수했는지 심사하는 업무를 맡고 있으나 이를 수납원들에게 떠맡겨 놓고는 아침에 와서 출근 도장 찍고 결재가 올라오면 앉아서 결재하고 업무 시간에 텃밭을 관리하는 등 형식적인 보여주기식 업무를 일삼고 있다고 합니다.


명화님은 현재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계신데요. 그녀가 민주노총에 가입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명화님의 ‘해고 사건’ 때문이었다고 해요. 그녀는 그저 여기서 계속 일했으니 해고당하지 않는 이상 '평생직장'이라 생각하며 일해 왔다고 하는데요. 그런데 2013년도에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시작하면서 소송 중에 노동조합을 설립했는데 2015년에 업체가 또 한 번 바뀌면서 고용 승계가 되지 않고 해고된 것이지요. 고용 승계라는 단어조차 몰랐던 이때서야 자신이 ‘비정규직’이라는 것도, 톨게이트 수납원들에 대한 ‘고용 승계 의무’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며 그동안의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열악한 환경 및 부당한 처우에 분노하여 투쟁을 시작하셨습니다. 4년 1개월간의 투쟁을 통해 결국 승리를 쟁취한 것이지요. 명화님께서는 현재 해고되었던 일터로 다시 돌아가 근무하고 계시고 그녀의 사례는 하나의 중요한 선례가 되어 이후로는 모든 직원들이 고용 승계되고 있다고 합니다.


상담 현장에 몸담고 계신 마루(인천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상담활동가)님은 명화님께서 ‘불법 파견’ 상태에 처해 있던 일을 짚어주셨는데요, 명화님은 하도급 업체에 소속되어 있는 노동자로서 도로 공사 직원이 업무에 대한 지시를 하면 안 되는 관계임도 불구하고 이러한 불법 파견은 매우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에요. 여성 노동자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 분야는 대표적으로 서비스직이나 청소직으로 이 역시 대부분 간접 고용된 비정규직 형태인데 이러한 불법 파견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이유는 바로 일을 하면서 본인의 고용 형태를 정확하게 알기 쉽지 않은 시스템 때문입니다.


출판업계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계신 차소영님은 우선 사람들이 잘 모르는 편집자의 업무에 대해서 설명해주셨는데요. 편집자라는 직업은 기본적으로 맞춤법이나 오타를 수정하는 일도 하지만 영화로 따지면 감독과 편집자의 중간 역할로 책 제작에 있어 총괄자, 책임자의 역할을 한다고 해요. 책을 기획하고, 그 기획에 적합한 필자를 찾아 미팅 약속을 잡고 만나서 제안하기까지의 많은 일들을 도맡아 한다고 합니다. 편집자는 '소통의 중심'으로서 책 기획 과정 중 상사 및 동료, 부하 직원과의 소통뿐만 아니라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저자, 번역가, 디자이너, 인쇄소 게다가 현재에 이르러서는 본래 마케터의 역할인 서점과의 소통까지 도맡고 있어요. 서점과의 소통, 즉 홍보는 본래 마케터가 하는 일이지만 출판업계 자체가 좁을뿐더러 전체 사업장의 80%가 5~10명으로 이루어진 영세 사업장으로 이러한 인력이 부족한 작은 회사에서는 편집자가 거의 떠맡는 게 현실이라고 해요.


신간 매출은 작은 출판 회사 매출액의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회사가 유지되는 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인데요. 그렇기에 빨리 빨리 새로운 책을 내야 한다는 압박이 존재한다고 해요. 게다가 출판업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4년제 대학 졸업자로 고학력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노동 강도에 낮은 임금을 받는다고 해요. 엄청난 저임금은 아니지만 최저임금의 선을 조금 넘는 정도의 임금 수준이라고 합니다. 통계적으로는 여성 노동자 비율이 50% 정도이나 소영님의 말씀에 따르면 이는 실제와 거리가 먼 통계로 체감 상 80%나 된다고 합니다. 대부분 여성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업계인 셈입니다.


영세 규모 사업장에서는 마케터의 역할을 대신하는 편집자의 ‘영업력’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해주셨어요. 실제로 SNS를 이용해 자신을 ‘하나의 기업’으로서 굴리는 편집자들을 종종 볼 수 있기도 하고요. ‘평판 조회’라는 처음 듣는 단어 또한 소개해주셨는데 이는 마루님께서 이어서 설명해주셨는데요.


‘평판 조회’는 출판 업계 외에도 여성 전문 직종이라 여겨지는 간호사, 요양보호사, 어린이집 교사, 보조 교사에게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 중 하나로서 옛날엔 ‘블랙리스트’가 종이로 존재했다면 지금 ‘(네이버)밴드’로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력서를 내면 사업주로 이루어진 밴드에서 지원자의 평판을 조회한다고 해요. 이는 부조리한 일터에 대한 고발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공공연한 관행처럼 유지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 관련해서 또는 직장 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문제 제기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마루님께서는 사업주의 성희롱을 못 이겨 그만 둔 여성의 상담 사례를 들기도 하셨는데요. 이러한 일들로 인해 문제 제기를 하면 재취업하기 힘들어지는 건 당연하고 경력이 어느 정도 쌓여야 재취업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 한 곳에서 너무 짧게 일하고 그만두는 것 또한 힘든 결정일 수밖에 없겠죠.

 

진진님은 미대를 다니며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셨다고 해요. 미술 관련 학과는 여초학과인데 반해(여성, 남성 비율 9:1 혹은 8:2 정도) 실제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이라고 합니다. 여초학과인 미술 관련 학과에서 소수의 남학생들은 ‘대우 받는 존재’가 되기도 하는데요. (대부분 남성인)교수들이 조교, 학생장 등의 업무를 남학생들에게 몰아주는 경우가 다분하다고 합니다. 여학생이 조교 일을 하고 싶다고 자원한 경우에도 교수가 임의로 남학생에게 준다고. 학교에서 수업을 가르치는 교수 또한 대부분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요. 이들은 작가 활동 수입이 별로 되지 않기 때문에 교수 활동을 병행하여 수입을 늘리는 동시에 권력 및 네트워크를 형성해나간다고 합니다.


미술계의 비즈니스적 컨택은 대부분 남성들로 구성된 술자리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데요. 전시 뒷풀이와 같은 술자리에서 다음 전시에 대한 이야기나 다른 작업(갤러리, 큐레이터 등)에 대한 제안 등이 이곳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술자리는, '그들만의 리그' 마냥 참석하거나 어울리지 못하는 여학생 및 여성 작가들을 무리에서 배제하는 동시에 남성 연대를 공고히 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진진님께서는 여성이 전업 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현실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요. 낮은 수입 조건은 물론이고, 남성들로 이루어진 관계망에 끼기도 힘들며 여전히 여성의 작가 활동을 직업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환경을 예로 드셨어요. 특히 기혼 여성의 경우 작가 활동을 직업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환경으로 인해 출산 후 육아나 돌봄 노동을 떠맡는 상황이 많다고 해요. 대학 교수들은 이를 두고 ‘작품 활동 안 할 거면 결혼해라’는 우스갯소리도 한다고 하네요. 또 기혼 여성 작가의 경우, 기혼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기혼 여성임을 밝히면 자신의 이미지가 더 이상 팔리지 않기 때문에 그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섹스 가능한 여성’이라는 이미지가 여성이 작가 활동을 하는데 더 유리하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작가라는 직업이 생업이 되기 굉장히 어려운 환경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수많은 여학생들은 진진님과 같이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병행할 수밖에 없겠더군요. 전공자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계약직 또는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로 최저시급에 가깝거나 혹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학원은 채용 시 강사들의 학벌은 또 중요하게 따진다고 하는데요. 학원에 강사들의 졸업장을 붙여 홍보에 이용한다고도 합니다.

 

진진님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첫 번째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는데요, 많은 여성들이 몸담고 있는 현장 속에서 일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 그리고 다양한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계신 마루님의 경험을 통해 그 현장이 어떤 식으로 구조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주제 : 성폭력 피해와 생계 사이


명화님께서 노동조합을 만든 계기 중 하나는 ‘직장 내 성희롱’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노조를 만들기 전 남자 사장과 관리자들의 횡포는 말도 못할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곧 ‘법’이었고 이에 토를 다는 순간 업무에 부당한 처우가 그대로 반영되었죠. 그렇기에 당시 부당하다고 느꼈어도 대항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들은 직원들에게 무조건 반말을 행사하면서 심지어 ‘이 새끼, 저 새끼’를 찾기도 했다고.


그리고 명화님께선 직장인이라면 다들 공감하는, 격하게 가고 싶지 않지만 안 갈 수 없는 회식 자리에 대해 이야기 해주셨는데요. 원청인 도로공사에서는 관리자들에게 한 달에 두 번 정도 회식비를 지급한다고 해요. (역시나)업무의 연장으로 다 같이 즐거운 회식이 아니었다고 하시네요. 그 자리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관리자들의 ‘기쁨조’ 역할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야, 너 오늘 술 안 따르면 내일 힘들다?” 협박은 물론이고, 설령 집안 사정 때문에 회식에 갈 수 없다 얘기하면 다음 날 얄짤 없이 보복이 들어왔다고 해요.


이러한 강제적 회식 문화가 유지되고 있던 어느 날, 한 회식 자리에서 명화님은 관리자 중 한 사람이 웃으며 이야기하던 도중 동료 언니의 가슴을 팔꿈치로 툭툭 치는 장면을 목격하셨다고 해요. 거기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명화님은 “그만하세요.” 딱 다섯 마디 던지시고 고개를 푹 숙이셨다고.


다음 날 출근하니, 그 관리자가 명화님을 따로 불러 처음에는 자기변명을 줄기차게 늘어놓다가 훈계질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도명화씨는 직장생활 하려면 애교를 좀 키워야 돼.”

“너 나한테 밥 한 번 사달라고 얘기한 적 있냐?”

“그래서 넌 직장생활 힘들게 하는 거야.”

명화님은 이때 굉장한 모욕감을 느끼셨다고 해요. 그러나 고용 승계 의무가 없어 업체에서 마음에 안 들면 바로 해고이기 때문에 모욕감을 느껴도 부당하다고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고 그런 회식 문화에 어쩔 수 없이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날 이후 관리자가 사장에게 명화님의 해고를 압박하기 시작했고, 관리자와 사장이 합세하여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해요. 명화님께서는 이때 처음으로 사표를 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가 직장을 그만두더라도 한 번 싸워보겠다고 다짐하셨다고 하네요.

그래서 노동조합이 설립되었고 처음에는 사장 및 관리자가 미워하는 ‘미운 애들’끼리 노조를 결성했으나 노조를 만들고 나니 관리자와 평소에 친하게 지내고 관리자가 예뻐하던 ‘예쁜 애들’도 모두 다 가입했다고 해요. 실은 그분들도 마찬가지로 좋아서 그들과 어울렸던 게 아니었던 거죠.


노조를 만든 뒤 바뀐 점은 우선 더 이상 반말하지 않고 기본적인 예의는 지킨다고 해요. 이러한 기본적인 인간 대접도 노조를 만들고 나서 받을 수 있었다니 통탄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를 통해 명화님께서는 노조는 꼭 필요하다고 다시 한 번 느끼셨다고 하네요.


이 외에도 명화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로는 직장 밖 고객들의 성폭력이 있었는데요. 차량 한 대가 톨게이트를 지나가는 그 짧은 30초라는 순간에도 톨게이트 노동자에게 성폭력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가장 많이 발생하는 예는 돈을 주고받는 순간에 의도적으로 손가락으로 손바닥을 긁거나 갑자기 손목을 확 움켜잡는 등의 경우가 있다고 해요. 욕설은 기본이고요. 예쁘게 생겼는데 남편은 뭐하고 이 야밤에 이런 곳에 와서 일을 하느냐며 돈을 더 많이 주는 곳도 있다는 쓸 데 없는 오지랖이 섞인 언어적 성희롱은 덤이었습니다.


게다가 명화님께서 처음 입사하셨을 때 아예 하의를 벗고 나타난 남성까지 있었다고. 요금을 낸 후 가지 않고 계속 차가 서있기에 고개를 돌려보니 하의를 탈의하고 있었다고 하네요. 다행히도 현재는 예전보다 시스템이 많이 좋아져 톨게이트에 차량이 들어올 때 사진이 찍히고, 성희롱 예방을 위해 톨게이트 내 블랙박스까지 생겼다고 해요. 그러나 이런 시스템의 발전을 모르고 아직까지도 성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이 허다하다고 하네요.


이러한 고객에 의한 외부적인 성폭력 대처 방법에는 많은 발전이 있었으나 상사에 의한 내부적인 성폭력은 아직까지 공론화시켜본 적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조차 없었다고 하네요. 얼마 전에도 한 동료가 신문고에 익명으로 사장이 밤마다 야한 문자를 보내고 만나기를 종용해 괴롭다는 호소문이 올라왔다고 하는데 노조에서 나섰으나 도로공사에서 나서서 사건을 무마시켰다고 합니다. 아직까지도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 이런 일이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도 명화님을 포함한 서산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지금껏 싸워온 결과 관리자들이 서산 톨게이트에 오기를 꺼려한다고 하네요. 설사 와도 눈도 안 마주치고 조용히 지나간다는. ^^

 

이제 소영님의 이야기로 가볼까요? ‘문학계 내 성폭력’ 이슈가 한창 떠들썩했던 때 다들 기억나시는지요? 소영님은 당시 이러한 폭로들이 왜 출판계 내 성폭력에 대한 폭로로는 이어지지 않을까 의문이 드셨다고 해요. 문학계 내 성폭력이 학생과 스승, 즉 사제관계를 중심으로 폭로된 이면에는 ‘저자와 편집자의 관계’라는 갑을 관계 또한 존재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고용관계도 아니고, 직장 밖에서 이루어지지만 직장 업무와 연관되는 이런 관계 속에서 성희롱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저자를 섭외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사실상 ‘안면 트기’라고 해요. 안면을 튼 후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야 섭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지요. 큰 출판사 같은 경우 저자들이 먼저 자원하여 이런 책을 내보는 게 어떻겠느냐 제의하기도 하나 작은 출판사의 경우 이러한 경우가 전혀 없다고 해요. 그래서 저자와 친해지기 위해 이런 저런 수단을 동원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술자리’가 이용돼요. 이러한 경우 때문에 소영님은 ‘직장 내 성희롱’이라는 단어를 출판업계에는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의문이 들기도 하셨다고 하는데요, 왜냐하면 편집자는 직장 내에선 직원으로 속해 있다고 해도 프리랜서처럼 직장 밖에서 저자를 만나는 업무도 동시에 수행하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소영님과 같이 이런 직장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발생하는 성폭력은 어떻게 이름 붙여야 하나 고민이 되신다고 해요. 직장 내 성희롱이 가리키는 협소한 의미의 성폭력으로 인해 고발 및 폭로가 더욱 더 어려워지는 것이지요.


특히 이는 외주업체 여성 출판 노동자들에게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인데요. 출판 노조에서 외주업체 여성 출판 노동자들을 상대로 실태 조사를 한 결과 그들의 경우 직장 내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더 문제 제기하기 힘든 환경에 놓여 있었어요. 그들에게 문제 제기란 곧 계약 해지로 이어지는 것이었죠. 외주업체 톨게이트 노동자인 명화님의 이야기와 겹쳐 보이는 부분이에요.


소영님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이 커리어를 쌓고 발전시켜나가는 과정 속에 안전망이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전반적으로 들 수밖에 없었는데요, 문제 제기의 어려움은 취약한 환경 및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진진님도 ‘술자리’라는 장소에서의 성폭력을 말씀해주셨는데요.

‘너희도 이제 필드에 나가야 한다.’ ‘전업 작가로 활동하려면 이런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명목으로 대다수 남성으로 이루어진 술자리에 여학생들을 데리고 가 분위기를 맞추도록 강요하는 문화가 있다고 해요. 이러한 술자리 속에선 암암리에 성추행 등의 성폭력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학생들을 연애 대상으로 대하거나 전시 기회를 빌미 삼아 오늘 자신과 있어 달라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는군요.


그러나 학생들이나 졸업 후 전업 작가가 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있는 지망생들의 경우, 자신이 여기서 조금이라도 분위기를 깨거나 잘못 행동할 경우 이 필드에 다시 들어올 수 없다는 공포감이 존재한다고 해요. 그래서 더욱 뿌리치거나 문제 제기 및 고발하기가 힘든 현실이라고 합니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내가 이 사람들과 그래도 연을 쌓아놔야 나중에 메일 하나라도 보낼 수 있겠지라는 생각에 참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마루님께서는 회식 자리에서 여전히 수많은 성희롱이 발생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팀별 회식 중에 발생하는 성희롱이 가장 많다고 지적해주셨어요. 그러나 회식 자리에서 벌어진 성희롱을 직장 내 성희롱으로 처리해주지 않는 사업장이 너무 많아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게다가 이러한 사건들 같은 경우 사실상 형사처벌이 가능한 성폭력 범죄에 가깝기 때문에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한다고 하더라도 사업장에서 업무 관련성으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은 취해야 하지만 ‘경찰이 내놓은 결과를 보고 처리하겠다’ 또는 ‘조치를 빨리 내리면 이중 처벌이 된다’는 식으로 변명 및 회피하거나 발뺌하려는 경우가 다분하다고 하네요. 또는 가해자에게 가벼운 경고만 줘놓고 할 거 다 했다는 식으로 모르쇠하기도 한다고 해요. 아까 소영님의 이야기와 같이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곧 밥줄이 끊기는 경우가 되기도 하고요.


언어적 성폭력의 처리 애매성도 함께 이야기해주셨어요. 성추행 등의 사건은 경찰에 신고하거나 고소를 통해 사건으로 진행시킬 수 있는데 반해 술자리 등에서 오가는 언어적 성희롱은 증거로 삼기 힘든데다가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자들은 똑같이 모욕감을 느껴서 신고했어도 현행법상 이를 처벌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거든요.

그러나 실제 피해자들은 피해 이후 해소되지 않은 분함과 억울함을 지속적으로 호소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도 많다고 해요.


게다가 이러한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 또한 빈번하다고 하는데요. 최근 2차 피해 문제로 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가벼운 시정 조치밖에 내려지지 않아 답답하다고 하셨어요. 피해자는 지속적으로 피해를 호소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데 반해 이러한 가벼운 시정 지시 처리조차도 몇 달이 걸리는 상황이라고 하네요. 결과적으로 제대로 조치하지 않는 사업장들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패널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생계와 연결되는 근로 문제 속에서 피해자들은 문제 제기조차 하기 힘든 현실을 알 수 있었어요. 그리고 세 분의 이야기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공통점이 있었죠. 바로 ‘술자리’였습니다. 직장 내 위계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술자리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 및 욕망을 채우고 있는 작태를 엿볼 수 있었는데요. 이는 직장 내 성폭력에 업무상 위계 관계가 분명히 작용되는 부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비출산 여성 외에도 육아나 출산 이후 경력 단절이나 근무 조건이 계속 하향되는 여성들의 사례를 들으며 성별 자체가 하나의 차별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마지막, 세 번째 주제 : 성폭력 없는 일터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1. ‘말할 수 있는’ 권리

명화님께서는 이 자리에 나오시기 전 조합원들에게 이러한 집담회에 나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 말씀하셨다고 해요. 그랬더니 다른 조합원들이 그런 일이 얼마나 많은데, 게다가 그것보다 더 한 일들도 많다고 일체 목소리를 높이셨다고 합니다.


그러던 와중 연세가 있으신 조합원 한 분께서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라도 있었간요?”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명화님께선 이 말을 듣고 혼자가 안 되면 노동조합의 힘을 빌어서라도 그 권리를 찾아줘야겠다 다시 한 번 다짐하셨다고 합니다. 인간답게 한 번 살아보자 해서 시작된 노동조합은 아직 미비하지만 어느 정도 이 권리를 행사하고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아직까지도 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명화님께선 활발한 노조 활동을 통해 더 많이 알리고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어요.

 

2. 성폭력이란 개인적인 인권 침해는 물론 생존권까지 위협하는 폭력

진진님께서는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는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그리고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일어난다고 하셨어요. 노동자로서 나의 일할 권리가 침해받고 그로 인해 나의 생존권까지 위협 받는 현실을 들며 이 부분은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적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일터, 직장에서 성희롱 등의 성폭력 피해 발생 시 이는 개인의 감정이나 인격에 피해를 주는 것은 물론 ‘생존권’까지 위협하는 행위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해주셨어요.


이를 위해선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성 평등 교육과 내가 약자의 위치에 있더라도 내가 일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 받지 않고 안전하게 고발 및 상담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도 덧붙여 주셨어요. + 더 많은 여성 보스들이 필요하다는 것도 말이죠!


3. 내가 할 수 있는 일들 해나가기

소영님께선 마지막으로 현행법상 성희롱을 고용관계에만 초점을 두고 직장 안에서만 벌어지는 일로 한정해버리는 현실을 꼬집어주셨어요. 이러한 사회 전반을 바꾸려면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영님이 이 집담회에 나와 목소리를 내는 것처럼 말이에요.


4. 성폭력 = 가해자의 문제

마루님께서는 성폭력은 가해자의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행위자를 비판하고 문제 제기하기보다 오히려 피해자에게 문제의 화살을 돌리는 현상을 지적해주셨어요. 모두가 성폭력은 행위자의 문제라고 인식하고 피해자에게 문제의 화살을 돌리는 행위만 멈추면 된다는 말도 덧붙여주셨고요.


암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마루님께서 20년 간 상담 활동을 해 오시는 동안 희망적인 변화 또한 존재했는데요. 여성 노동자들이 보다 더 당당해지고 직장 내 성폭력 문제에 관해 문제 제기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처음에는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이 당한 일이 과연 성희롱이 맞는지의 여부에 관해 굉장히 조심스러웠다면, 현재는 성희롱에 대해 인지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고 그런 일이 있을 때 빠르게 전문가를 찾아 상의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이렇게 피해자들은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변하지 않는 문제는 가해자들이지요.


이제는 성희롱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대응 방안에 대한 상담이 더 많아지고 있는 추세인데요. 마루님께서는 “초기에 전문가와 상의하여 함께 대응 방안을 찾고 해결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왜냐하면 성폭력 피해 경험과 대응 방안은 개인마다 각각 다르기 때문인데요. 마루님께 상담을 의뢰하시는 여성 노동자들 중 성희롱을 겪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문가와의 상담을 통해 대응 방안에 대해 함께 논의하며 피해를 극복해나가는 여성 노동자 분들도 계시고, 성희롱 피해 이후 당시 겪었던 스트레스, 모욕감, 분노 등이 해소되지 않고 누적되면서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여성 노동자 분들도 계시는데요. 후자의 경우 시간이 지날수록 스트레스가 계속 누적되어 정신적 피해가 점점 더 커지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대응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치셨어요.


또 곁에 있는 동료나 친구들에게 상담하는 경우도 많지만, 동료 또한 대처 방법을 모르거나 2차 피해를 가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어 전문가에게 이야기해서 문제 해결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도 말씀해주셨습니다.


패널 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 함께 웃고, 분노하는 시간을 가졌던 뜻 깊은 자리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폭력 피해와 생계 사이에 놓여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는데요. 앞으로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도 당당하게 문제 제기하고 고발할 수 있는 사회를 사회 구성원 모두가 다 같이 고민하고 만들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는 성폭력 문제는 행위자, 즉 가해자라는 단순한 결론을 기본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 피해자를 의심하고 캐묻는 것이 아닌 가해자에게 따끔하게 ‘네 잘못이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 제 후기는 여기서 마치겠고요, 다음 집담회도 기대해주세요! XD


<이 글은 기자단 MEKA 5기 민지님께서 작성해주셨습니다>